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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유여촌의 유년의 흔적, 하회솔밭을 찾아서(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아동문학가 유여촌(柳麗村·1912~1981)의 고향 하회로 길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햇살이 따가워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이미 해는 중천에 있다. 낮이 길대로 긴 여름날의 태양은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그래도 하회마을 입구 소나무의 그늘은 늠름하고 시원하다. 풍산의 너른 들은 모내기가 끝나 말끔한 얼굴이고 푸른 벼가 논물에 비치니 산뜻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아직 관광객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라 기념품 가게는 물건을 내다 진열을 하고, 식당에서는 음식재료 손질로 분주하다. 솔밭에서 경운기는 쓰레기를 져다내고, 오토바이 탄 아저씨들은 하회마을을 두루 살피러 다니신다.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는 하회마을 풍경이 환하게 들어온다.

유여촌 선생의 고향이 어딘지 몰라 한참 수소문을 하다가 동아일보 신문기사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하회마을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다음 해인 1978년에 하회마을 유씨를 다루는 기사에서 유여촌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또 아동문학가 최춘해 선생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여촌 선생의 회갑에 맞춰 출간한 기념문집에는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 731번지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념문집의 기록을 믿고 하회마을에 도착해서 번지수를 여쭈며 돌아다녀보니 솔밭이 시원하게 펼친 강둑 쪽이다. 부용대를 마주보며 있는 기념품 가게 중앙상회는 718번지이고, 거기서 입구 쪽으로 몇 미터 내려간 낙고재 민박집은 695번지라고 한다. 중앙상회에서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네와 널을 뛸 수 있는 너른 공간이 나오는데 그 주변이거나 약간 더 위쪽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번지수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100년이 다 된 세월을 간직한다는 일이 쉽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을 산천이라 하기도 하나, 또 십년 단위로 변하니 영원한 것이란 얼마나 관념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가. 우리처럼 개발의 속도가 빠른 구조 안에서 옛 것의 흔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더구나 오래 고향마을에 산 것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대구사범 입학이 1929년이니 요즘으로 따지면 고교시절부터 외지로 떠나 살았다. 이런 환경을 모르지 않으면서 굳이 하회의 731번지를 찾으러 나선 까닭은 뭘까. 차라리 대구아동문학회 활동을 함께 한 동료문인들의 일화를 구하거나, 대구사범의 기록을 의뢰했던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료문인들께 전화를 드려봤으나 가깝게 어울리던 분들은 이미 작고하신 상태이다.

대구아동문학회 최춘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1960년대에 대구 서부초등학교 교장이었고 이때 회갑기념으로 작품집을 내고 출판기념회도 열었다고 한다. 아주 친했던 같은 학교 교사가 있었으나 이미 이 분도 작고하셔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신 것 같았다. 1970년대에 대구서부초등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서울로 가셨으나 숙환인 위암으로 1981년 돌아가셨다. 퇴임하고 오래 활동하지 못하셨다. 돌아가신 1981년에 69세를 맞이한 것으로 신문기사에서 확인되는데 결국 퇴직 후 5년 정도 활동하신 것이다. 특히, 대구에서 활동하시다 서울로 옮겨가면서 대구문인들과는 소통이 두절된 것으로 짐작된다. 선생의 5주기를 맞아 문학기념비를 세웠는데 1984년 11월 24일 경기도 벽제 국제공원묘지에서 이뤄졌다.

2.
대구문단을 추억하는 매일신문 기사의 한 토막을 보면 유여촌 선생이 술과 얼마나 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선생은 늦깎이로 문단에 나왔는데 지순하고 성실했던 그는 평소 아동문학의 교육성을 늘 강조했다고 한다. “아동문학은 향기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되 어린이를 올바로 갈 수 있게 하는 거울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굴 표정이 소년 같았는데 대구 대봉동 술집 ‘골목집’에서 술잔을 자주 기울였다고 한다. 특히 윤장근 작가는 “유여촌·김녹촌을 만나면서 아동문학이 갖는 서정세계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고 기억한다. 대봉동과 남산의 술집에서 밤늦도록 흠뻑 취해 문학과 삶을 함께 나누고 고민했을 아름다운 시절을 그려낸 것이다. 많은 작가들의 공통점인 술과 글과 삶이 어우러진 한 때를 대구문단시절의 일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기사이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에서 비롯한 것인지 선생은 유독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사랑했다. 1964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는데, 그때 선생의 나이 쉰둘이었으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청년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 당시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보면 아이들에 대한 선생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특히 문경 생달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동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직접 글을 써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신춘문예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선소감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이들은 환상에 가까운 꿈이 있어야 하나, 아이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너무나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아이들이 견뎌야 하는 일상을 선생은 동화를 통해 위로하고 현실극복의 힘을 이야기에서 찾아내고 싶어 하였다.

그 당시는 국가 자체가 가난하여 꿈을 찾기 버거웠다면 오늘날은 잘 살기 때문에 치르는 경쟁교육으로 꿈을 지속하기 불안하다. 학교 현실이 줄 세우는 공부를 무시하고 세상을 바로 보고 배우는 시간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부모는 부모대로 현실을 인정하느라 경쟁공부를 포기할 수 없고 학교는 학교대로 그렇다. 그럼 어느 역사시대에나 아이들이 꿈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고 정리되는가. 그런데 보릿고개라는 가난한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시절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과거추억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가난 속에도 꿈이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는 것인지.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이들에게 묻혀 반생을 보낸 나로서는 서당개 3년의 풍월격으로 동화 몇 편쯤 쓸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노릇이다. 생각이 이르면 즉흥으로 갈겨써서 어린이들 앞에 흥분된 얼굴로 읽어준다. 소용을 다한 작품은 으레 쓰레기통의 휴지가 되기 마련이다. 소중히 간수하고자 해도 주위 사람들 보기에 오히려 쑥스럽고 또 적당하게 발표할 지면이 없는 탓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마음에 다짐하는 것은 어린이는 작은 성인이 아니다. 확실히 어린이의 동심의 특설무대가 있는 것이다. 성인이 보는 어린이가 아닌 정말 어린 그대로의 꿈나라……환상의 세계를 그리려고 하는 것이 나의 염원이다. 그러나 그 환상의 세계는 또한 절박한 현실세계와 직결되어 있음을 생각하면서.” 어린이에게는 자극적이 아닌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선생의 동화관이다.

동심은 천사라는 입장의 글이 아니라 동심은 아이의 고유 세계이고 어른들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글이다. 아이의 마음은 천사가 아니며 천사를 표방하는 것이 아이들의 글이 아니다. 아이들의 현실이 소외된 글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아이들의 현실을 인정하는 동화가 귀한 것은 바로 ‘아이가 처한 현실’에 대해 어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눈여겨 살펴야 할 내용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는 ‘작은 어른’으로 어른답게 의젓하게 태도를 갖는 것을 주문받았다. 작은 어른에는 아이가 없다. 단지 어른만이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한 시간만 허락된다. 이렇게 훈육되던 아이들에게 아이다운 환상을 전하고자 한 의도에서 유여촌의 동화세계는 출발한다.

인터넷에서 유여촌 선생을 검색해보면 대구사범학교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기사를 만난다. 그래서 대구사범의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책자를 찾아봤으나 선생의 본명 유운생을 언급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더 많은 자료나 대구사범출신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동인 형태로 모임을 가졌으므로 우리의 독립을 위해 당연히 함께 글을 읽고 토론을 했을 것이지만 자료부족으로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선생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전북 남원에서 첫 발령을 받아 교직에 나섰다. 이때 일본어 소설이 매일신보사에 당선되기도 한다. 더러 일본잡지와 일본신문에 작품을 싣기도 했다. 안동으로 전근한 이후, 풍북심상소학교 재직시절에는 방학이 되면 소인극단을 이끌고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벌이던 1941년에는 아예 교직을 그만두고 하천부지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었으나 해방 이후 복직, 미군정청 산하에서 해방시기 교육일선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훨씬 부지런히 일해야지 않겠습니까? 어린이를 위해서 해줘야할 얘기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신춘문예에 등단한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그 후 4년 동안 4백여 편의 동화를 썼다. 이 기사가 1967년 12월 27일자인데 첫 동화집을 묶은 소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잘 보인다. 당시,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선생의 면면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1963년 화전민촌인 문경 생달초등학교장으로 부임해 오니 가난한 화전민 생활에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불우하고 초라한 어린이들에게 무엇인가 도시 어린이들이 가지지 못한 꿈을 심어주자고 결심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바로 동화 쓰기와 읽어주기였다. 이전까지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동화를 밤새워 쓰기 시작하였다.

당선작 ｢바람을 그리는 아이｣는 지명, 산, 내의 이름은 실명을 그대로 붙였고 등장하는 어린이도 그 학교 학생 이름을 따랐다. 매일 시간이 되는대로 교실을 돌면서 선생은 자신이 쓴 동화를 읽어주었다. 자기 동네 이름, 동네의 산, 개울이름, 자기이름이 나오면 어린 학생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듯 슬퍼하고 기뻐하며 희망과 꿈에 눈동자를 빛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 사이에 동화 교장선생님으로 불렸고, 1964년 학교선생님들의 권유로 경향신문 신춘응모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수필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교육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확인할 수 있다. 동화 쓰는 일도 그 교육관을 실천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3.
선생의 동화세계가 환상성만으로 요약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와 역사적 전개에 따라 작품도 현실성이 가미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에서는 환상성이 아주 돋보인다. 선생의 초기 동화세계는 환상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1960년대 우리의 창작동화에서 환상성을 가미하는 일은 드물었다. 당시는 창작동화도 귀한 시절임을 감안할 때, 선생은 아이들의 꿈을 몹시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꿈을 그리는 방법을 찾아 고민한 결과 환상기법에 닿았던 것이 아닐까. 어른이 가지지 못한 어린아이의 세계는 바로 환상성에 있다고 선생은 날카롭게 찾아냈다. 어른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다양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리는 방법에서 환상기법은 무척 중요하다. 선생은 소중한 아이의 세계를 찾아서 곱고 빛나는 말을 골라냈다. 아이들의 시점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세계를 찾아내는 일이 동화작가들의 몫이다. ｢바람을 그리는 아이｣의 내용일부를 옮겨놓는다. 이미 동화 제목에서도 아이들만의 꿈을 주제로 내세우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시간, 선생님은 낭하를 걸어가자 옥련은 머리를 갸우뚱,
“먼 곳에서 벼를 떠는 탈곡기 소리가 웽웽 벌떼가 한꺼번에 날고 있는 듯한 탈곡기 소리, 보건장 한복판에서 호각을 부는 선생님”
후리후리하게 키가 큰 선생님, 곱게 빗은 하이칼라 머리가 반짝인다.
옥련이 순자도 호각소리를 따라 보건장으로 뛰어간다
“담임 선생님 널찍한 손바닥으로 그 사라져 가는 안개의 실마리를 잡아 밤색 윗도리에 칭칭 감고 계신다.”
이번 시간에는 뭘 그릴까, 박민식은 다람쥐 날개를 그리겠다고
“자 어린이들, 지금 막 안개는 개고 산골짜기도 들판도 개울가도 모두 우리들의 친근한 친구들이란 말이야. 크레용을 끼고 그쪽으로 달려 가야한다. 동무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미술지에 그려 넣어야 한다. 이번시간 주의는 그만”
옥련은 순이의 이마 위에 앉은 청동파리의 고운날개 위에 내려앉은 청하늘을 만졌습니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특히 화전민촌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일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멋진 미술선생님이 이 동화의 주인공이다. 문화적인 체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주변 동식물을 통해 꿈을 심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런 의도는 먹고 살기 바쁜 학부모에게도 전달되어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그려내는 그림이 얼마나 소중한 교육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교육적인 의도가 짙게 깔린 동화이다. 미술시간이 되면 미술도구를 제대로 갖춘 아이들이 없었던 시절을 배경으로 그 도화지와 크레파스가 간절하게 갖고 싶은 아이의 목소리와 꿈이 환상적인 기법으로 그려진다. 1960년대 당시, 꿈이라는 환타지를 도입, 다람쥐, 까마귀와 그림 내용이 실제 살아있는 사물로 구성되는 스토리는 매우 신선하고 독특했을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을 알게 된 옥련의 부모는 씨암탉을 팔아서라도 미술용품을 사주기로 마음먹는다.

자전적인 수필인 <도루묵 교장>에서는 하회 부용대 앞을 흘러간 물길로 추정되는 글이 있다. ‘왕릉과 장미열차’라는 제목의 글에서 선생은 강마을에서 성장했다고 썼다. 강변과 가까이 있는 산에서 자랐고 강기슭의 우거진 솔숲에는 솔방울과 낙엽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솔방울을 딴 기억을 더듬는데 “막 겉날개가 피기 시작하는 솔방울일수록 토실한 솔씨가 날갯죽지 한 칸 한 칸에 싸여 있었다. 쌀알 크기의 솔씨가 투명한 엷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날개를 제거하고 솔씨를 입에 씹으면 고소한 솔씨 특유의 향기가 입안에 감돈다.” 이 글을 보면 출생지라고 밝힌 하회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강둑 앞의 솔밭은 오래된 숲이어서 안동에서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이곳으로 소풍을 갔을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 솔방울에서 솔씨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용대를 끼고 흐르는 물의 흐름과 솔바람과 향기 속에서 소년은 성장했을 것이다.

‘언어순화’라는 주제의 글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욕설이 문제가 된다. 아이들은 언제나 말버릇도 거칠고 상스러운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지, 아니면 문명의 수치와는 상관없이 경쟁구도가 아이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어린 아이들이 욕을 하는 것은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인상적이거나 개성적인, 특이한 말을 먼저 따라하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욕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똑같다. ‘거칠기가 한이 없고 그 순한 천사들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상스런 말이 나오는지 어떤 때는 아찔하다고’ 적었다. 동요보다 유행가를 부르기를 즐기는 유치원생들, ‘언어질서를 바로잡는 데 무관심할수록 그 사회는 병들기 쉽다고’ 보았는데 선생이 오늘날 살아계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기대된다.

‘전국의 다방을 청소년의 독서실로’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었다. 아마 작은 도서관 운동을 하지 않아도 마을마다 도서관을 몇 개씩 만들 수 있겠다. 선생이 사시던 시절에도 다방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1960년대부터 이미 다방이 시골마을마다 등장했을 것이니 염려스러웠을 일이다. 어느 지역이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는 뭣해서 에둘러 써본다면 시골 시장골목에는 다방간판이 진짜 많다. 상가건물이 낮고 듬성하니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다방이다. 이런 문제를 1960~70년대에 제기했으나 오늘날까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 외,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문제되는 학교행정을 지적하고 솔직하게 밝히는 대목이 나온다. 학교 명예보다 학생 개개인의 인격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고 ‘교장실의 방문’에서 교장실은 언제고 개방되어야 하고 수위실 앞에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철조망에 국기를 달고’를 읽어 보면 어린이 애향반은 이웃을 단위로 조직되어 국기게양일에는 이들을 동원 “국기 달아요”하고 골목골목 소리치고 다니게 했다. 학급에는 반기도 있어서 반장에게 반기, 호각, 기록용 공책까지 배급되었다. 국기달기운동, 집안청소, 뒷골목 청소, 아침 보건체조 등의 운동을 했다. 당시 학교생활을 보면 군대의 통일된 움직임을 보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공동체의 조직문화를 통해 사회적 책임감을 배우게 한 것은 소중하다.

4.
하회 솔밭은 여전히 오랜 시간 묵묵히 자란 소나무들이 우아하게 햇볕을 받고 있었고, 일정이 빠듯했든지 서두르는 여행객도 더러 있었고, 그 가운데 외국인도 보였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인지 유창한 불어가 바람처럼 굴러서 내 귀를 울렸다. 주말을 바쁘게 보냈을 하회의 기와집과 초가집들은 새로운 아침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선생은 생전에 고향에 대한 글을 얼마나 남겨뒀는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자전수필에서 읽은 글이 고향에 대한 궁금함을 조금 풀어주었으나 많이 부족하다. 더 많은 글을 찾아 읽으면 실마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마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나타날 것 같다. 한 편의 글이지만 솔밭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드러난다. 아이의 눈으로 솔방울을 유심히 관찰했을 표정이 읽힌다. 솔향기를 맡고 솔잎을 밟으며 또래 친구들과 뒹굴었을 유년의 솔밭이 선생에게는 특별한 고향공간임에 틀림없다. 어린 소년에게는 높고 우람찬 솔숲이 소년의 희망을 더 멀리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은 아니었을까. 솔숲과 부용대의 멋진 위용과 강물이 함께 흘러서 더욱 아름다웠을 유년을 좀 더 찾아보려고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