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의 8월령(글/김복영_본지 발행인)
여름이 유난히 덥고 길다고들 한다.
8월은 한 여름이지만 입추 처서 절기이기도 하다.
처서가 가까워지니 하늘은 더 선명하고 간간이 스치는 바람결도 한결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을 준비를 할 때이다.
농가월령가는
한 여름이 아무리 혹독하여도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어느덧 화성은 서쪽으로 비켜나고 미성이 하늘 복판에 자리를 잡는구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한들 계절을 속일 수는 없는 법,
가늘어진 빗줄기와 피부를 스치는 바람결에 생량이 느껴지는도다.
그러니 때를 놓치지 말고
피사리도 하고 논두렁도 깎아 가을걷이를 준비하고, 선산의 벌초도 늦추지 마라.
허수아비를 세워 새도 쫓고 장마에 찌든 곡식과 옷가지는 바람을 쏘여라.
호박은 얇게 썰어 말리고 오이 가지는 절여서 겨울에 대비하라고 이르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꽃들도 하나같이 가을 바라기를 하고 있고 도시의 골목에서는 우리 이웃들의 아기자기한 삶이 마지막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비록 가난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만큼 알뜰하게 꾸려가는 그들의 소박한 삶이 골목 길 좁은 공간에 마련한 그들만의 아주 작은 화단에서 한 여름을 이겨내고 있다.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 헌 비료포대, 빈 화분들에 새 생명을 가꾸어낸 그들의 정성이 무심히 골목을 오가는 이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한다.
8월의 골목에는 누군가에 의해 가꾸어진 보기 좋은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도블록 사이, 메마른 시멘트 틈새에서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고단한 삶도 있다. 때로 그것들은 작은 화단이 주는 설레임보다 몇 배 진한 감동으로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어쩌다 그늘진 도회의 뒷골목에 낙오되어 힘겹게 꽃 하나를 매달고 있는 야생 참깨의 삶이 처연하다. 저토록 왜소한 몸으로 하나의 꽃이라도 온전히 지키려면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야 하리라. 그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다음 생을 위한 씨앗을 갈무리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척박한 환경을 넘지 못하고 소멸한다 할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가꾸어진 삶보다야 얼마나 떳떳하고 아름다운 것이랴. 삶은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오로지 자신만의 몫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입추의 계절 8월이 깊어간다. 우리 모두 겸허해질 때이다. -彷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