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글/백소애_편집기자)
친구는 초보 스님이었다. 갓 머리를 깎고 암자에 기거하던 새내기 스님 친구가 몇 해 전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했다.“친구야, 심심하니 놀러와.”버스도 뜸한 경기도의 어느 절로 올라가니 입구에서 날 반기는 친구의 동그란 머리. 친구가 한 가지 빼먹지 말고 갖고 오라던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피자였다. 피자라니. 친구는 야채피자로 한판 사오라고 한다. 그것도 라지 사이즈로.‘친구야 아무래도 수련이 부족한 것 같구나.’
아침나절에 놀러갔다가 저녁까지, 나는 친구의 안내로 큰스님께 얼결에 삼배까지 하고 뜰도 거닐고 산도 오르고 보살들이 시주한 과일도 훔쳐 먹고 하루를 고스란히 어린 아이처럼 뛰어놀았다. 헤어질 시간이 다 되자 친구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에게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을 당부하더니 기어코 택시비를 차 안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고 내게 선물해준 책 한권. 이젠 제법 스님 테가 나는 그 친구가 나에게 읽어보라며 준 책은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헬렌 니어링의 책 한권이었다.
재생지에 코팅하지 않은 표지의 그 책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였다.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1904~1995), 그 감동의 기록이라고 했는데 도무지 어떤 책인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친구는 새내기 스님시절에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서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스코트 니어링의 21살 연하 부인인 헬렌 니어링의 지난 삶에 대한 기록이다. 1904년 미국 뉴저지 리지우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헬렌은 문학과 학문에 관심이 많은 성공한 뉴욕의 사업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를 두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젊은 시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스물여섯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문화적 권력과 야만에 도전하다 대학 강단에서 두 번이나 쫓겨난 스코트 니어링과 결혼한 헬렌은 가난한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으로 이주해 농장을 일구며 자연과 더불어 살게 된다. 친환경적인 삶을 선택한 그들은 늘 가난했으나 대부분 행복했다.
헬렌 니어링을 소개할 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다거나 스코트 니어링의 아내로 밖에 소개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녀의 삶은 ‘땅에 뿌리박은 삶’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었고 그래서 책 소개에 나왔던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은 더 이상 딱 맞는 표현이 없을 정도로 어울렸다.
니어링 부부는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법을 배웠으며 빈터를 개간하고 길쭉하고 죽은 나무들을 베어 겨울 땔감으로 썼다. 도시에서 친구들과 교류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엘리트 여성 헬렌은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를 구별하고 사탕단풍시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들은 절약하며 살았지만 세금과 트럭의 기름값 등 현금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 생업을 위해 사탕단풍시럽을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문을 받았을 때에는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의 숲속 생활과 유기농법, 채식생활과 집짓는 방법, 이웃들과의 관계 따위의 전체 생활을 담은 책 『조화로운 삶』은 자연 그대로의 삶을 본 작가 펄 벅(P. Burk)이 감명을 받아 부부에게 권유해서 쓰게 된 책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소화기관을 쉬게 하는 단식을 선택했고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얻게 해주고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더 보태거나 더 낫게 할 수 없는 세 가지 습관인 일하는 습관,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을 실천하며 살았다. 30제곱미터쯤 되는 정원둘레에 돌담을 쌓는 일을 시간이 날 때 틈틈이 해서 14년의 세월이 걸렸고 건강과 장수를 위해 깨끗한 양심, 바깥일과 깊은 호흡, 금연, 설탕과 소금을 멀리 함,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밝은 쪽으로 생각하기 등을 실천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헬렌이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삶에 대한 담담한 기록으로 멈췄으면 더욱 기품 있는 에세이가 되었을 텐데 그들과 교류한 이들의 편지와 말, 잡지 등에 소개된 스코트 니어링에 대한 평가는 넘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물론 경제학자, 교육자, 평화주의자, 인권옹호자, 좌파정치인, 국제 사회주의자, 생태주의자, 귀농운동가, 미래주의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 평가의 몫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폴 발레리가 얘기했듯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할 것입니다.’의 말을 실천한 부부의 삶은 누구보다 풍요로웠다. 이 책은 1983년 스코트 니어링이 죽은 후 8년 뒤 나왔고 헬렌은 그후 1995년에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관심을 두었으며 문명의 경박성을 거부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지향해서 일해 온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삶의 연속성과 의식이 이어짐을 믿었다. ‘노년은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예상치 못하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리하여 부부는 완전히 무능력자가 되어 죽음에 방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위엄 있고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다 자연으로 돌아간 부부는 자연주의 운동을 직접 실천함으로 주위 많은 사람들의 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책을 선물했던 스님 친구는 더러 삶의 부질없음을 얘기하고 나는 그예 맞장구를 잘 치는데 그럴 때면 친구는 언제나 “그렇지, 니가 내 도반이 됐어야 해.”한다. 그러면 나는 뒤통수만 예뻤더라면 고려해봤을텐데, 아침잠이 없었더라면 고려해 봤을텐데, 별 시답잖은 소리로 대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