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잘 살았어˝(글/편집실)
샴페인은 오랜만이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가 죽기 전에 한 말이다. 품위 있고 낭만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그러기 힘들다. 삶 자체가 품위 있고 낭만적이기 힘든데 말이다. 특히나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난 5월이었다. 웅부공원을 지나는데 흔하지 않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농촌어르신 행복만들기 작품전시회’라는 제목으로 안동시가 주최하고 안동시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주관한 행사였다. 평생학습 1도시 1특성화 프로그램으로 농촌어르신들에게 미술치료활동을 통해 정서적 고립감을 벗어나고 자아 존중감을 갖게 해 삶의 만족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지난 3월부터 마애리, 도산면, 임하포마을 등 3개 마을 60여명의 어르신이 참여해 탈, 꽃신, 보석함, 꽃가마, 찰흙작품 만들기, 자화상 그리기, 유서 쓰기 등의 프로그램을 3개월간 진행하였다. 그렇게 만든 작품을 웅부공원 영가헌 마루에 전시해 놓았는데 난생 처음 크레파스를 만져보았다는 할머니들의 해맑은 모습과 유언장을 쓰며 가슴 시큰했을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술치료는 고통과 억압의 기억을 표출하게 만들어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기껏해야 앞으로의 바람이 ‘자식들 잘되는 것’에 그쳤던 어르신들에게 자아 존중감을 갖게 한다는 취지에 은근히 감동했던 터였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기억에 남았던 것은 유언장 미리 쓰기와 배우자에게 남기는 설문 조사 ‘여보 고마워’였다.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날을 상상하며 써내려간 유언장은 남아 있는 날을 더욱 뜻있게 살라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평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배우자에 대한 고마움을 설문지를 통해 공개했는데, 짧지만 진솔한 글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대부분이 자식 건사 잘하고 시부모 잘 모시고 동기간 우애 있게 지낸 것을 배우자에게 제일 감사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나의 배우자가 참 멋있었을 때의 의견에는 ‘상대가 누구이건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할 때’와 ‘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할 때’, ‘처음 만났을 때’, ‘결혼할 때’, ‘지금이 제일 멋있다’와 심지어 굳이 공란으로 남겨둔 것을 보고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결혼식 때, 자식들 결혼시켜 손자 손녀 잘 낳았을 때가 가장 많았으며, 배우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놀이를 묻는 질문에는 ‘순대에 열광하고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내용 외에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농사일을 좋아한다’는 다소 신빙성(!)이 의심되는 답변도 있었다. 결혼생활이 힘들었을 때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서로 배려하고 참으면서’ 혹은 ‘아이들 생각하면서 이겨냈다’는 대답이 많았다. 배우자에게 감사함을 느낄 때는 ‘약 챙겨먹으라고 잔소리 할 때’와 굳이 ‘나를 사랑해줘서’를 빗금쳐 지우고는 ‘결혼하고 여태까지 살아준 것’이라 다시 쓴 글 등, 재치 있는 글들이 많았다.
문화는 넘치나 공유는 어렵고 매번 비슷한 행사가 기획되는데 지역에서도 이러한 뜻 깊은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많은 어르신들과 아이들, 소외계층 사람들의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를 향유하면 일상적 생활에 활기가 넘치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벗들의 전시회를 축하하며 꽃 한송이 나눠주는 풍경을 좀 더 자주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