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길에서 객을 맞이하고 있는 천전리 귀봉종택(글/사진/ 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의성김씨와 귀봉종택 이야기
임하 천전리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안동의 문화유산분포지역 중 한 곳으로 건축유산이 많이 분포한다. 이들 건축문화유산은 의성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대부분 의성김씨 관련 건축유산이다. 이번 문화유산 순례는 천전리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주차장 맞은편 귀봉종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시작했다.
귀봉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279번지에 있다. 귀봉종택이 있는 천전마을은 15세기 후반 의성김씨 천전파 문중에 의해 시작하였다. 의성김씨 16세 김한계의 장남인 17세 김만근(金萬謹)은 당시 임하면의 대지주였던 장인 오계동(吳季童; 해주오씨)으로부터 많은 토지를 물려받으며 천전에 터를 잡았고, 이후 김예범이 청송과 진보방면에 터전을 확장하였다. 이후 의성김씨 문중은 김예범의 장남 청계(靑溪) 김진(金璡)이 틀을 이루었다고 한다. 귀봉종택은 청계공 김진의 다섯 아들 중 둘째 귀봉 김수일 종택이다. 이 종택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수일(金守一)의 현손 김학달(金學達: 1623~1690)이 생전에 조영하였다고 하며, 이후 1888년에 김주병(金周秉: 김수일 12대손)이 중건하였다. 이 종택은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귀봉 김수일은 한양조씨 처가를 따라 일직면 귀미리에 정착하였으나, 41세 되던 해에 천전마을로 돌아왔다. 천전으로 돌아온 김수일은 조부 김예범이 만년에 거처했던 반변천가 ‘한송정(寒松亭)’에서 잠시 살았으며 이듬해 부친이 마련해준 터에 백운정(白雲亭)을 짓고 거처했다고 한다. 귀봉종가는 귀봉 김수일(1528-1583)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김수일의 아들 운천(雲川) 김용(金涌, 1577-1620)은 임란 호종공신으로서 불천위(不遷位)로 추대된 인물이다. 그래서 이 종가를 운천종가로 부르기도 한다.
안마당과 사랑마당, 그리고 텃밭의 일상생활
정침은 기본적으로 ‘ㅁ’형으로 정면의 사랑채가 좌우로 돌출한 평면을 하고 있다. 정침을 감싸고 있는 외부공간은 안마당과 사랑마당, 뒤뜰 등이 있다. 안마당은 대청마루가 마당으로 돌출하여 방형이 아니다. 안마당에는 현재 장독대와 수도가 있는데, 장독대는 대청 남쪽 기단 앞에 있고 수도는 안방 부엌과 사랑방 열의 보일러실 기단 앞에 있다. 예전에 안마당은 집안의 혼례를 올리던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안마당 바닥과 기단은 일부 콘크리트와 흙으로 덮여있다. 예전에는 자연석과 강회다짐, 마사토로 덮여 있었을 것이다. 고택의 종부님은 안마루 기단 앞에 화초를 심어 콘크리트 기단을 한결 부드럽게 하였다. 안마당으로의 출입은 큰사랑방과 아랫사랑방 사이에 있는 중문과 좌우 열의 부엌대문을 이용하고 있다.
정침의 사랑과 중문 앞 사랑마당은 다른 집에서 보기 드물게 넓다. 현재 사랑마당의 동측과 서측 담장 주변에는 나무와 화초를 심어 화계를 꾸며 놓았고, 사랑채 정면에도 식재 및 기타 식물을 심어 집을 꾸며 놓았다. 특히 큰사랑방 정면 백일홍은 집을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모습은 종손의 연로한 어머님이 끊임없이 가꿔 놓았기 때문이다.
정침의 뒤뜰은 현재 넓어 채소류를 심은 텃밭을 일궈 사용하고 있으며, 텃밭 끝에는 야산이 있다. 이 텃밭은 뒤쪽으로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축대를 2단으로 쌓아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텃밭의 상단 동쪽 끝에는 사당이 있고, 하단 서쪽 끝에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는 화장실이 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흐뭇해한다.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당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손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아닐까?
정침 안채와 사랑채의 실 구성
귀봉종택은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이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다. 안채부분은 안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실을 꾸몄고 정면으로도 실을 꾸며 사랑채와 연결했다. 동서방향의 안채 실은 동측부터 부엌, 안방, 침식방, 대청 안마루, 상방과 마루고방이다.
안채의 부엌은 안방과 상방에 딸린 2개소가 있는데, 안방 부엌은 정면 1.5칸, 측면 2칸으로 현재 입식부엌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부엌은 배면과 측면의 판벽에 2짝 여닫이 판문을 달아 외부 텃밭으로 손쉽게 출입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부엌 남쪽 통로간도 동측 벽에 2짝 여닫이 판문을 달아 동측 텃밭 출입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부엌의 동쪽에 있는 안방은 정면 1.5칸, 측면 1칸 규모이며 현재 종손의 연로한 모친이 사용하고 있다. 안방 서측 침식방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정면에 툇마루를 꾸며 안대청 안마루와 연결하였다. 침식방은 툇마루 쪽에 통머름을 걸고 두짝 여닫이문을 각간에 달아 놓았다.
안대청은 정면 2칸 측면 3칸으로 동측의 침식방과 툇마루에, 서측의 마루고방과 상방에 면하고 있으며, 안마당쪽으로 1.5칸 돌출하였다. 이와 같은 안대청의 규모와 구성은 어느 종가 또는 가옥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안대청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상생활 중 하나인 식생활 공간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귀봉종택은 겨울철에 날씨가 춥기 때문에 온 가족이 안방에서 식사를 하였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안마루에서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일꾼들은 안방 옆에 침식방에서 식사를 하였으며 여름철에는 집안 식구들과 일꾼들 모두 안마루에서도 식사했었다고 한다. 침식방은 조리한 음식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이외 음식물 보관장소로 상방 위 마룻고방이 있다.
정침은 자연석 주초 위에 사각기둥을 세우고, 사각기둥 상부에 창방과 보아지가 사개맞춤을 한 후 다시 보와 짜 맞춤을 하였다. 안채 가구는 주간 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안방 열이 오량이고, 좌ㆍ우측 열이 삼량이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안대청 회첨골에는 긴 골추녀를 걸어 독특한 천정 가구를 구성하였다.
사랑채는 중문간을 중심으로 동쪽에 큰사랑이 있고 서쪽에 아랫사랑이 있다. 큰사랑의 실구성은 사랑마루를 중심으로 동쪽에 동쪽 사랑방을, 서쪽에 큰사랑방과 작은방을 꾸며 놓았다. 큰사랑은 정면에 툇마루를 꾸며 정면 5칸, 측면 2.5칸인데, 안마당쪽에 한간을 꾸미지 않은 전체 11.5간 규모를 하고 있다. 2간 규모의 동쪽사랑방 동쪽 기단 위에는 쪽마루를 달아 측면에서 공간이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사랑채의 사랑방은 사랑마루 쪽에 네 짝 여닫이 들문을 달아 내부 공간의 확장을 용이하도록 하였고, 툇마루 쪽에도 네 짝 들문을 달아 내 ․ 외부공간을 손쉽게 확장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사랑마루에 면한 작은방, 큰사랑방, 동쪽사랑방에는 네짝 여닫이문을 달아 사랑마루를 중심으로 공간을 손쉽게 확장할 수 있는 창호시스템을 갖고 있다. 큰사랑방은 툇마루 쪽 두 짝 여닫이문을 통하여 사랑마당을 조망하도록 하였다. 큰사랑방의 아궁이는 중문간에 있고 굴뚝은 사랑마루 뒤쪽에 기와와 흙을 이겨 만들어 놓았다. 동쪽 사랑방의 아궁이는 북쪽 처마아래 기단 위에 있고, 굴뚝은 동쪽 기단 위에 꾸며 놓았다. 1947년 집안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빈소는 평상시 거쳐하던 큰사랑방에 차리지 않고 큰사랑채에 딸린 작은방에 마련했다고 한다. 이는 조문을 위하여 빈소를 찾아올 많은 손님을 대비하여 큰사랑방과 사랑마루를 비워두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빈소는 아랫사랑채의 작은방, 큰사랑방 등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종택의 기제사는 남녀조상의 구분 없이 사랑마루에서 지냈는데, 남녀에 따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을 분리하여 사용했다. 남성의 경우 사랑마루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에서 음식을 준비해오면 제상을 차렸다고 한다. 귀봉종택의 불천위제사는 귀봉 김수일의 아들 운천 김용을 모시는 제사로 기제사와 마찬가지로 사랑마루에서 지냈다. 중구날 차례는 안마루에서, 설 차례는 사당에서 지냈다고 한다.
아랫사랑채는 서측부터 아랫사랑마루, 아랫사랑방, 정지, 작은방, 중문간과 일렬로 놓여 있다. 아랫사랑은 부엌을 제외한 나머지 실의 정면에 쪽마루와 평난간을 달아 놓았다. 평난간의 풍판은 판재를 투각하여 장식하였다. 작은방은 안마당 쪽에 벽장을 달아 실내 확장하였고, 부엌과 중문간 쪽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이외 쪽마루 쪽에는 머름을 꾸미고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외부으로 개폐하도록 하였다.
아랫사랑방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서측에 아랫사랑마루가 있다. 사랑방의 출입은 안마당 쪽에서 주로 출입을 하였으며, 부엌 쪽에는 벽장을 꾸며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쪽마루 쪽과 마루 쪽에도 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사랑마루는 우물마루 단간으로 사면에 두짝 여닫이문을 달았는데, 배면과 서측면은 판문을, 정면은 띠살문을 달았다. 정면의 쪽마루 서쪽 끝에는 외여닫이 판문을 달고 기단에 디딤돌을 놓아 오르내리는데 용이하도록 하였다.
귀봉종택의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로 중앙의 대문간 용마루가 높은 솟을대문 형태를 하고 있다. 대문채는 대문간을 중심으로 동쪽에 화장실과 마구간이 있고, 서쪽에 초당방이라는 문간방 2간이 있다. 현재 마구간은 장작을 쌓아 놓는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초당방은 사랑마당 쪽에 띠살 외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는데, 현재는 생활도구를 넣어 두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초당방의 아궁이는 서쪽 기단 위에 있고, 굴뚝은 대문간 서쪽 기둥 옆에 있는데, 아궁이와 굴뚝은 현재 담장과 대문 밖에 있다. 대문간은 자연스럽게 휜 보를 이중으로 걸어 대공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오늘 순례한 종갓집은 많은 인물을 배출한 천전마을 사대부가로서 조선후기 종가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건축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 또한 귀봉종택은 안동지역 불천위 중 운천 김용의 불천위 제사가 이뤄지는 등 종가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귀봉종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이 잘 갖추어진 안동지방 사대부가의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종택으로 남녀유별, 장유유서, 조상숭배, 접빈객의 유교적 덕목 등을 잘 실천하도록 조성되었고, 더 나아가 민속 및 생활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다.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전통가옥은 안동에 수도 없이 많다. 이제 또 다른 대문으로 나서볼까?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