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 시인의 고향, 남후 대실마을을 찾아서(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가을이 오면 안동에는 늘 안개가 낀다. 이른 아침은 물론이고 해가 중천에 떠올라야 할 정오 무렵에도 희끄무레하다. 더러 전국이 이렇게 연무에 쌓이기도 하는 가을, 오늘은 남후면을 고향으로 둔 김원중 시인을 찾아 나선다. 남후면 검안리 대실마을은 앞으로 미천이 흐르고 미천 건너에는 넓은 들이 환한 동네였다. 미천의 강줄기를 왜가리 한 마리가 유심히 지켜보고 선 동네 초입에는 정자가 있고, 1971년에 기념식수를 한 느티나무가 마을지킴이로 의젓하게 서 있다. 운무에 가려진 태양이라도 가을 태양답게 따갑게 내리쬔다. 이 햇살은 아직 덜 여문 곡식과 과일에게는 요긴하다. 한창 가을에 접어든 황금들녘의 여유로움이 이 마을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선생이 사셨던 집을 전혀 알 길이 없음에도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수확 할 때라 모두 들로 나가고 문을 닫아 두어 동네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흔한 들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지만 멀리 경운기가 지나가고 들깨를 수확하는 희끗한 할배, 할매의 굽은 등이 보인다.
김원중 선생은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셨는데 정확하게는 교토대학 부속병원이다. 이때는 일제 식민지시기로 한창 전쟁의 와중에 있었으니 그렇게 좋은 시절은 못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운명이라고 묶어 설명해도 이상할 게 없다. 세계대전으로 몸살을 앓았던 근대초입에는 식민지까지 얹혀 있었고 그 가운데 태어나서 살았던 사람들이 하늘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전쟁 자체를 무조건 운명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전쟁도 극단의 정치이고 보면 사람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힘없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운명을 말할 뿐이지 정치를 벗어난 사람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도 국가 간 무력적인 충돌이 어떻게 운명으로 설명될 수 있겠는가. 개인과 국가의 거리는 이렇게 멀고 가치가 다르다.
선생이 일본의 패전으로 원폭이 투하되던 기억을 갖고 계시는 것은 전쟁의 두려움에 대한 강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교토에는 전쟁으로 인한 폭격이 직접 미치지 않았으나 가까이 있는 오사카와 나고야에 원폭이 투하되었던 장면을 불꽃으로 말씀하신다. 멀리서 밤하늘의 불꽃이 장렬하게 피어올랐던 것인데 미군의 공습으로 방공호대피 훈련이 잦았던 일상에서 불꽃의 아름다움은 두려움과 묘하게 공존했을 것이다. 어린 소년의 눈에 전쟁은 어떻게 비춰졌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렇게 전쟁을 멀리서 바라본 소년은 1945년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내린 소개령에 의해 교토를 떠나 안동으로 왔다. 엄밀하게 부모는 돌아온 땅이지만 소년에게는 낯선 땅이다.
적어도 소년 김원중의 일본생활은 책과 친했다. 훗날 선생이 동시를 쓰고 시와 수필을 쓴 이력은 아마도 어린시절 독서체험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출판사에 근무하셔서 동네 친구들에게 책을 넉넉하게 빌려줄 형편이었고 생활도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보다 일찍 개화를 선택한 일본의 풍물을 어린 눈으로 본 것이니 이미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막연하게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동네아이들처럼 서당에 다닌 것이 아니라 학교를 간 것도 이미 시골의 자그마한 동네의 인심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변한 세상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었다.
남후면 검암리 대실에 살다가 남후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가 너무 멀어 무릉으로 옮겨와 살았다. 여름철 비가 많아 물이 불으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미천을 건널 수 없어서 버드나무에 매인 소를 풀어 소꼬리를 잡고 강을 건너갔다. 학교에 결석한 적이 없었던 선생은 큰물이 일면 절벽을 타고 철로를 건너가서라도 지각하지 않고 학교에 갔다. 그만큼 학교가 좋고 공부가 좋았다고 하신다. 보통 어린아이들이라면 비 핑계를 삼아 학교 가기를 그만두고 홀가분하게 좋아했을 것인데 또래에 비해 철이 일찍 들었거나 책 보는 일이 너무 잘 맞았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안동에서 농림학교를 다니다가 6.25를 만나면서 학업이 중단되었다. 어머니와 청도까지 걸어서 피난을 떠났다 돌아오기도 했고, 1.4후퇴로 북쪽에서 안동까지 내려온 피난민과 어울려 자고 먹기도 했다. 먹을 것도 없고 날도 추웠던 겨울이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양조장에 가서 술 막지를 얻어다 먹기도 하고, 피난민이 무겁다고 버리고 간 보리껍데기 자루를 주워와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 청량리를 출발해 안동역에 도착한 기차는 항상 피난민으로 버글버글 만원을 이뤘다.
당시 농림학교는 매우 인기가 있었다. 이유는 취직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농림중학교에 낙방하면 안동중학교로 갔다고 하니 그 유명세를 알만하다. 또 전국에 농림학교는 몇 개 되지도 않았을 시절이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학교였으니 당연하다. 선생은 입학식부터 입학금을 내지 못해 교장실에 불려가서 야단맞고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신다. 일본에서 가져온 옷을 팔아 겨우 입학금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꿋꿋하게 버티고 지냈던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 저력은 어디에 근원이 있을까. 전쟁 중에 문을 닫았던 농림학교가 수업을 시작했으나 선생은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만다.
2.
농림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던 선생은 고향을 떠나 대구로 와서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야간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도시로 나와 삶의 길을 혼자서 찾아가는 소년에게 문학은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 동시와 동화를 소년세계, 새벗, 소년서울신문 등에 투고를 해서 글이 실리기도 했다. 원고료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 일이 선생에게 현실적으로 글을 써야 할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풀고 인생의 서러운 무게를 나름대로 덜어낼 수 있었다. 그 후 학원, 학생계 등의 잡지에 시를 발표 하였다. 당시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잡지는 단연 『학원』이었다. 「야학」이라는 시로 학원문학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때 여러 잡지에 작품을 기고하게 된 출발은 ‘돈’에 있었다고 고백(?)하셨다.
문학작품 현상공모에 당선되면 상금이 주어졌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기 되었다. 어린시절 단신으로 대구로 나가 여러 잡일을 마다않고 돈을 벌기도 했던 선생의 일화는 당시 한국전쟁 전후로 힘들게 살았던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조선양조장에 급사로 일을 했으나 학교를 다니지 못해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 학교에 가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 읽힌다. 시장바닥에서 신문도 팔아보았는데 선생이 1부 팔 동안 모 대기업 회장이 된 K씨는 같은 시간에 10부를 팔았다고 한다. 가만 살펴보니 일단 신문을 무료로 준 뒤 수금은 뒤에 따로 했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수완이 남다르다고 하는데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야간 중, 고등학교를 성실하게 다녔다. 그러고 보면 대학까지 선생은 야간부로 다녔다. 청마 유치환 시인이 서라벌예대의 추천서를 써주기로 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포기하게 되었다. 서울살이를 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았다. 동창 서영수 시인은 당당히 서라벌예대로 갔으니 어린 소년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컸을 것이다. 15~16세 시절에 이미 혼자 살 방을 구하는 독립적인 마음을 가졌으나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한 좌절은 얼마나 심하게 마음의 생채기로 남았을까. 그 상처가 훗날 대학원을 가고 박사학위까지 받도록 했던 원천이 되었을 것 같다. 선생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현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동창 서영수 시인과 2인시집 『별과 야학』을 출간한 것도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청마 유치환 선생의 서문까지 받았다. 청마 시인은 서문 써주기를 불편해 하셨지만 어린 학생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셨다. 당시 청마 시인은 경주고 교장으로 재직, 서영수 시인이 경주고를 다니고 있었다. 중학시절부터 문학동아리를 지도해주신 박양균 시인이 굳이 청마 시인에게 추천의 글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셔서 어린 문청들의 길을 여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셨다.
『별과 야학』은 3,000부를 찍어서 성황리에 판매되었고 당시 문단에 화젯거리가 되었다. 1957년 10월에 출간된 전국 최초의 고교생 시집은 한 해를 넘기기 전에 다 팔려나갔다. 영남일보 편집국장 박귀송 시인과 이설주 시인의 주선으로 서울에 있는 범조사 출판사에서 출간을 했다. 청마 시인이 쓴 이 시집의 서문을 보면 당시는 작가층이 얇아 잡지사에서는 학생작품 투고를 받아서 싣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것이다. 학생시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전후의 문학은 사정이 절박했다. 더구나 지방에서 한평생 시를 쓰고도 시집 한권 내지 못한 문인들이 수두룩한데 ‘까까머리들이 자작집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일은 귀엽다고 볼 수 있으나 조졸성(燥拙性)을 보여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썼다. 그냥 칭찬 일색이 아니라 후학들에게 ‘문학은 고역’임을 엄하게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선생의 후기에는 가을 코스모스처럼 수줍게 시집을 내놓지만 부끄럽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라 다짐하면서 시 잘 쓰는 사람보다 인간성이 올바른 사람이란 소리를 듣기를 원한다고 썼다.
고교생으로 <칡넝쿨>문예동아리를 하던 선생과 친구들은 1955년의 경북대 주최 문학의 밤 행사를 보러간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대학 서클을 실제 지도했던 박양균 시인이 시를 낭송했고 그것을 보고 선생과 함께 참석했던 민경철 시인은 대학생의 문예활동을 흉내내기 시작한다. 친구 민경철 시인이 <칡넝쿨>의 지도위원으로 박양균 시인을 모셔오게 된 것이다. 처음 지도를 맡았던 박훈산 시인의 도움은 회지를 창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학생들은 고정적으로 문학지도를 해줄 지도교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작품합평회를 가졌다. 매달 한번씩 박양균 시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무릎 밑 제자가 되었다. 그 곳에서 많은 작가들의 얼굴을 익혔고 문학의 깊이를 차츰 더듬어갈 힘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비현실적이거나 회피적, 신비적인 문학분위기를 박양균 시인은 지양할 것을 주문했다. 머리도 단정하게 깎고 현실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면서 작품활동을 해야 할 것을 지도했다. 문학하는 일과 삶을 사는 일이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이다. 1964년에는 친구 민경철 시인과 2인시집 『과실 속의 아가씨』를 발간할 때 박양균 시인이 서문을 맡아 써주었다. 선생에게 박양균 시인은 일찍 여읜 아버지이자 큰 형님이셨으니 그 존재감은 다른 문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한창 고민 많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사춘기시절 박양균 시인의 도움이 남달랐다고 한다. 선생은 박양균 시인과의 관계를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인연을 맺고 소중한 만남을 가진 행운아였다고 하는데 사제간의 정이 특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3.
『별을 쳐다보며 살자』는 수필집은 김철규 시인이 선생의 글을 모두 모아둔 결과물이다. 김원중 선생은 평소 당신의 글을 잘 챙기는 성격이 못 되어 두 번째 수필집 역시 김철규 시인의 열성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이 불의에 교통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이 수필집 서문에는 시인을 위한 글이 들어 있다. 세상에는 참 기구한 사연이 많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수필집을 보니 대체로 여러 사보에 실었던 수필을 모은 것인데 시대나 세태에 대한 선생의 입장이 잘 드러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오래된 말은 역으로 귀천이 있음을 보이기라도 하듯 실업계열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공장에 갔다가 그곳에 남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1990년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아예 실업계 고교 진학률이 아주 낮거나 미미하다. 이미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서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 300년 된 전통있는 제과점이 우리는 왜 없는가를 묻고 있는데 덧붙여 물을 것은 우리의 의식이다. 과자 만드는 일과 다른 일을 구별하거나 차별하는 우리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인가를 물어보고, 늦으나마 제도를 통해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떨까.
선생의 구체적인 생각이나 마음은 수필을 통해 잘 헤아릴 수 있다. 수필 장르가 주는 좋은 점은 글쓴이에 대해 전혀 몰라도 글을 통해 사람을 미약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수필은 허구를 가미하지 않는 글이고 글쓴이의 주변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삼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의 가정을 돌보고 고학을 했던 야간부 학생으로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으나 5.16쿠데타로 교사자격증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헌책방을 하려고 대구시청 근처를 헤매기도 했으나 결국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그 조치가 번복되면서 교사가 되었다. 선생이 지속적으로 공부의 길을 걷는 데 5.16쿠데타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선생의 아버지는 당시 대구사범에 입학시험을 치러 가셨는데 안동에서 대구까지 걸어가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고 한다. 시험에 떨어지고 일본 동경으로 가서 출판사에 취직을 했으나 동경대지진으로 조선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일이 있어 교토로 옮겨 기반을 잡았다고 한다. 이때 안동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은 교토까지 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해방 후 밀항선을 타고 안동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집과 재산을 일본에 그대로 뒀으나 다시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동으로 돌아온 몇 해 뒤 마흔 셋의 나이로 복막염에 걸려 돌아가신다. 아마도 이렇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선생이 채워야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롭고 힘든 삶이 시작된다. 선생은 아버지 장례식날 인생에서 흘릴 눈물을 다 쏟아냈을 거라고 한다. 열두 살 소년이 겪기에는 버거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부재가 확인되었고 그 존재감이 개인의 성장과 삶에 얼마나 본질적인 의미인가를 새록새록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누구나 부재를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만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무게였다. 학사고시를 쳐야하나 원서 마감날까지 돈이 없어서 원서조차 내지 못했던 시절도 모두 아버지 부재로 비롯하는 것이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선생은 삼덕동 우체국 벽에 기대 혼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주신 연필 두 자루가 마지막 선물이자 유산이었다.
이렇듯 「아버지가 주신 연필 두 자루」를 보면 어린시절 상처와 아픔이 자세하게 드러난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일본에서 살았던 선생은 교토의 골목과 집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한다. 1984년 일본에서 개최된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석하면서 40년만에 교토에서 살던 집을 찾아갔으나 옛 건물은 어디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이제는 그 동네에 큰 호텔이 섰으니 어린시절의 자그마한 동네가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의 기억에는 전형적인 일본 목조2층 건물이었던 집은 꽤 넓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문학청년시절의 풍경이 잘 나타난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잡지 『학원』에 원고를 투고하여 상금을 받기도 한다. 경주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서영수 시인과 2인시집 『별과 야학』을 발간하여 문단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더구나 청마 유치환 선생의 서문이 이 시집에 실려있다. 또 고교시절 <칡넝쿨>동인의 활동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칡넝쿨>의 지도교사는 박양균 시인으로 후학지도에 마음을 많이 쓰셨다. 박양균 선생의 시문학 40년을 묶는 일도 김원중 선생이 한 것으로 보면 은사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박 시인의 시와 산문, 그리고 제자와 문인들의 글을 함께 묶어 『만나서 기쁘지 아니하랴』를 편집하였다.
학창시절 선생의 꿈은 천하의 고전을 모두 읽는 일, 유명한 지역과 국가를 두루 다니는 일, 유명한 사람을 모두 만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은 고서적을 뒤지느라 헌책방을 전국적으로 누비고 다니셨다. 지구를 누비기 위해 방학만 되면 여행길에 오르셨다고 한다. 한 분야의 뛰어난 사람, 이름이 난 사람을 만나고자 시간을 내서 강연장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인생이 만남이라고 할 때 가장 귀한 만남으로 문학을 꼽는다. 그래서 선생은 시인이고 아동문학가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고교시절 발간한 동인지 『칡넝쿨』은 4집까지 나왔고 1집은 1956년에 발행되었다. 시와 산문을 주로 실었으며 1958년3월 4집을 마지막으로 발행하였다.
4.
학업과정을 모두 야간부로 마친 선생에게 특별한 애착이 가는 시는 따로 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힘든 일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야학」 시는 1955년 『학원』4월호에 입선한 작품이다. 선생께 직접 어떤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가는가를 여쭤보니 이 시를 꼽으신다. 청춘의 방황과 갈등, 그 무거운 무게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웠을 시절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둠이 내리는 학교의 희미한 조명 아래 책을 펴고 하는 공부는 하루의 고되고 힘든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위안이자 희망이 된다. 자신도 모르게 펼쳐지는 희망의 기대는 날개가 되어 야학의 보람을 키워주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면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선생은 미래를 향한 강한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어려운 현실에 대한 힘든 마음은 모두 공부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녹여내는 아름다운 마음결을 작품에 담고 있다.
저무는 교사 밖으로
바다처럼
바다처럼 펼치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어두운 등불 아래 앉으면
나도 모르게
하루의 고달픔은 고요히
사라져가고
은밀히 스미여 드는
보람을 위하여
훨훨 날아보고 싶은
나는
푸른 하늘을 보았습니다
장하게 날뛰며
부서지는 밀물소리여
어두운 등불 아래서
당신의 끝없는 은혜속에
오늘도 포근히
안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