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호의 가을(글/사진/김복영_본지 발행인)
산 첩첩 물 겹겹
안동호는 경북 내륙 깊숙한 산간에 댐을 막아서 생겨난 인공호수다.
그래서 산은 첩첩이고 물은 그 산 굽이들을 돌고 돌아 겹겹이다.
언덕을 넘고 굽이를 돌 때마다 옹긋쫑긋 숨바꼭질 하듯 집들이 나타난다.
안동호 주변 마을이라고 해서 다 물가에 터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을 피해 산 위로 올라온, 사실상 산촌이 많다. 어디에서나 저만치 발아래로 물이 내려다보이고 그 건너로 첩첩이 둘러싸인 산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산마을이다.
여섯 집이 살고 있는 도목동 구미도 그런 마을 중 하나이다.
산비탈에 밭을 일구어 콩을 수확한 이 아주머니는
와룡 가구리에서 영일정씨 집안으로 시집온 예순 살의 구백담 후손이다.
올 농사가 괜찮은 듯 손놀림이 가볍다.
도목 구미 태생으로 미질에 살고 있다는 영월신씨 할아버지.
대처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위해 농사일을 하고 있다지만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경운기에 싣는 볏단 무게보다 일흔 일곱 나이가 더 힘겨워 보이는 신씨 할아버지의 가을이다.
안동호 산자락,
내륙속의 섬으로 살아가던 서당골 가는 길은
이제는 뒷산을 깎아 신작로를 내고
말끔하게 아스팔트까지 덮어 놓았다.
그 고갯마루 한 켠을 마당삼아
콩 타작을 하던 늙은 형제는 잠시 일손을 놓고
안동호 물바람에 땀을 식힌다.
길섶에 마주앉아 소주 몇 잔으로 새참을 때우고는
이내 도리깨 장단을 주고받으며 가을을 턴다.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권씨 형제, 아마 그들의 가슴속에는
달밤에 서로 몰래 곡식을 보태주던 옛이야기 속의 형제보다 더 진한 우애가 숨겨져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눈으로 대화하고 가슴으로 느끼며 팔십 여년을 서로 보듬어온 동병상련의 삶이 있기 때문에.
산 너머 정산리에 사는 말 못하는 여든 두 살 형과 고개 아래 서당골에 사는 귀 먼 일흔 네 살 아우의 가을은
안동호 산길에서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서당골의 가을은 쓸쓸하다.
가지 끝에 남은 몇 개의 감이 홍시가 되어
텅 빈 마을을 지키고 있고
가을볕이 내려앉은 골목길은 적막에 쌓여 있다.
열일곱 살 때 박시골에서
이곳 권씨네로 시집왔다는 안동김씨 할머니,
몇 집을 돌며 인기척을 내고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일흔 세 살의 이 할머니는
지금은 늙은이만 있는 다섯 집이 전부지만 한때는 서른 두 집이나 살던 동네였다고 서당골을 회상한다.
사랑방 부엌 앞에 가지런히 장작더미를 준비한 김씨 할머니,
서당골에서 보낼 오십 여섯 번째 겨울 준비는 얼추 된 듯이 보인다.
안동호의 가을이 그렇게 깊어간다. -彷杖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