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강 제일의 경치속에서 엉뚱한 화두에 갇히다(글/이동백_시인)
낙동강은 삼강 나루를 지나 남으로 급하게 내리꽂혀 흐르다가 올망졸망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을 만나면서 그 방향을 서쪽으로 잡는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강은 한 7Km쯤을 그 의지를 꺾지 않고 곧게 흐르다가 또 산 하나를 만나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쭉 뻗어 내린다. 강은 산을 만나면 그 의지를 꺾어야 하지만 산은 묘하게도 강의 의지를 다독여 그 강을 품 안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산과 강이 상극이면서도 교합하는 운명적 역설이다. 강은 또 다시 작은 산을 사이에 두고 다른 강과 만난다. 영강이다.
월악산 속리산, 조령의 산간 계류를 발원지로 한 영강은 문경의 진남교 아래에서 농암천과 조령천이 섞임으로써 세력을 키워 먼 낙동강에 몸을 섞기 위해 남동 방향으로 백여 리를 흐른다. 영강은 영순 말응리에서 낙동강을 만나면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 물의 흔적만이 예천 풍양 언저리를 스치고 자나간다.
백여 리를 흐르는 그 영강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놓고 살았을 것이고 때로는 마음을 맡겨놓기도 했을 것이다. 오백 리 한양 과것길에 지친 몸을 이 물에 의탁하기도 했을 것이고, 수적(讎敵)의 피가 이 강을 물들이기도 했을 터이다. 영강은 옛날부터 이렇듯 사람들의 간난신고를 품어 안으며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영강과 조우한 낙동강은 새로운 땅 상주로 그 흐름을 이끌어 들인다. 낙강은 사벌면 매호리와 풍양 낙상리를 이어주는 다리 하나를 인간들에게 허락했다. 다리를 허락한 강은 매협제(堤)를 따라 길게 흐른다. 매협제 끄트머리에서 강은 경천대 석벽으로 파고드는데, 그 흐름은 부드럽고 유유하다.
풍양을 스쳐가는 길은 낮은 구릉지를 넘고 들판을 뚫고 상주를 향해 무장무장 뻗어나갔다. 길섶엔 풍찬노숙을 견뎌낸 마른 억새꽃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릿결을 겨울바람에 맡기고 있었다. 들판은 얇은 겨울 햇살에도 힘을 쓰지 못하고 낮게 가라앉았다. 흰 비닐에 감싸인 짚 둥치가 들녘의 풍경을 휘어잡고 있는데, 밭에다가 줄을 치고 말리는 시래기가 노박이로 햇빛을 받고 있는 모습이 낯이 설다.
풍양에서 사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이 언저리의 낙동강에서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트럭은 강에다 길을 내고 포크레인은 강에다 웅덩이를 내고 있었다. 물길은 갈리고 모래는 찢겼다. 강 너머 들에는 강에서 퍼 올린 모래가 산을 이루었다.
삼백의 고장 상주로 들어선 낙동강은 숨결을 틔운다. 태백 준령을 빠져 나오면서 낙동강은 산을 줄이고 들을 넓혔다. 차에 실려 가는 기분도 덩달아 호연(浩然)해 졌다. 사벌국을 호령하던 옛 선인들의 호기(豪氣)가 바람결로 전해지는 듯했다.
낙동강을 건너 좀 달리니, 경천대로 들어가는 길이 나섰다. 916번 도로를 버리고 경천대 길로 접어드니 곧장 산마룻길이었다. 휘돌아나가는 굽잇길 근처에 ‘낙동강 투어 로드’란 표지가 길손을 맞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투어 로드를 걸었다. 매협제까지의 1Km 남짓한 길은 통나무를 뉘어 울타리를 친 산길이었다. 음지녘 산 지락엔 넉줄고사리가 푸르게 군락을 이루었다. 눅눅한 골짜기에 짓푸른 색깔로 자라난 모습이 이국적인 풍정(風情)을 불러일으켰다.
영강을 아우른 낙동강은 매협제를 따라 경천대로 흐른다. 사진의 왼쪽 제방이 매협제이고 멀리 보이는 곳이 풍양이다.
오후 세 시 어름의 햇살은 이미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나를 이끌고 가는 그림자가 길다. 내리막길에선 길던 그림자가 시멘트 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오를 적에는 그 그림자가 짧아졌다. 그림자도 오르막길이 힘겨워 몸을 사리는가 보다. 길섶엔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였는데, 푸른 소나무는 가지를 뻗어 하늘을 넓히고, 검은 참나무는 까칠하게 서서 하늘의 높이를 재고 있었다.
산의 땅은 자갈돌이 섞인 흙이었다. 자갈돌은 물에 갈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아마 강이던 것이 오랜 세월 융기하여 산이 된 모양이다. 물이 땅을 이토록 높게 밀어올린 것이다. 아니, 자연이 억겁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물과 흙을 다스려서 이루어 놓은 작품이리라. 이 땅 어딘가에는 아득한 옛날의 것이 화석이 되어 묻혀 있을 법도 하다. 아니, 이 자갈돌이 물속에서 혹은 물 밖에서 겪은 세월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내가 밟은 발자국도 화석으로 남아 먼 훗날 무슨 역사로 판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나의 이 기록이 남아서 억겁 뒤의 사람들에게 오늘의 메시지를 직접 전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나는 이 하찮은 기록이 화석이 되어 뒷날을 도모해 주길 바란다.
매협제 가는 투어 로드 중간쯤에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섰다. 전망대에 올라 앞을 내다보니 저만치 나지막한 산이 발밑에 깔리고, 먼 산은 산등성이가 길어 하늘에 일직선을 그으며 북에서 남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매협제 쪽으로는 매협제를 사이에 두고 들과 강이 갈린다. 확 펼쳐진 들녘 가장자리엔 마을들이 듬성듬성 들어앉았다. 묵하 마을이다.
매협제의 낙동강 역시 공사로 분주하였다. 트럭이 일개미들처럼 일렬로 늘어서서 모래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포크레인은 멀다. 이따금씩 번쩍번쩍 햇빛을 반사하는 품이 작업 중인 모양이다.
작업장으로 변한 강은 상당히 일그러졌다. 모래가 찢기고 모이고 쌓였다. 물은 찢긴 모래에 갈라지고, 모인 모래에 가두어지고, 쌓인 모래의 사이를 뚫고 길게 흐른다. 강은 이렇듯 번잡한데, 마침 한 마리의 학이 강물 위로 유유히 활강하고 있었다. 그 학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경천대가 눈 안에 들어왔다.
“경천대가 캄캄하다.”
방장의 말이 실감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태양을 등지고 낙동강을 에워 두른 경천대는 깊고 어두웠다. 겨울의 음산함이 느껴졌다.
투어 로드를 빠져 나와 경천대로 들어갔다. 겨울 경천대는 조용했다. 경천대 가는 길섶, 큰 참나무가 바위 틈서리에 뿌리를 내리고 섰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힘을 뽑아내어 가지에다가 실었는지 수세가 굉장히 좋다.
경천대 영역으로 들어선 나는 곧장 무우정(舞雩亭)으로 다가들었다. 우담 채득기 선생이 병자호란을 예견하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은둔의 근거지로 잡아 지은 정자가 무우정이다. 기우제 터에 세운 정자라 해서 무우정이란다. 이 정자는 낙강 시회의 중심지로서 일찍이 우담이 ‘봉산곡’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 바람벽이 없는 정자는 소쇄(瀟灑)한 멋이 있으면서도 겨울 산 그림자에 묻혀 소슬했다. 경천대 벼랑 끝에 선 노송의 긴 가지가 정자 위에 드리워서 예스러운 멋까지 더해 주었다. 어느 가을 보름쯤에 이 정자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낙강의 물소리에 취하고 싶다. 그리고 달빛이 정자 속으로 서려들면 그 달과 하룻밤을 동침하고도 싶다.
무우정이 의지하는 것이 경천대이다. 경천대는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층암절벽을 이룬다. 너럭바위들이 포개졌는데, 그 몇 개는 강으로 금방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서 위태롭다. 그런 경천대를 철책에 몸을 의지하고 올랐다. 우선 세 개의 돌확이 눈에 띈다. 우담이 연분(蓮盆), 관분(盥盆), 약분(藥盆)으로 사용하던 돌그릇이란다.
다시 한 구비를 돌아 오르니, 세월의 때가 담뿍 묻은 비석 한 기가 바위 사이에 옹색하게 끼어 있다. ‘大明天地 崇禎日月-조선은 명나라에 속한다.’란 명문이 새겨진 경천대비(擎天臺碑)이다. 본래 하늘이 지은 절경이라 해서 ‘자천대(自天臺)’라 한 것을 우담 이후로 하늘로 솟은 절벽, 곧 경천대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의 뜻이 마음에 걸리긴 해도 가히 하늘 뚫을 만한 가경(佳景)이었다.
영겁의 세월을 불어온 바람과 억겁의 세월을 내린 비에 갈리고 씻겨서 바위의 허리가 깊이 파였다. 그러나 그 바위에 생명을 맡긴 늙은 소나무는 낙강의 겨울바람에도 그 푸름에 일탈이 없고 당당하다. 바위에 얹힌 삶이라 조촐하여 키는 낮았으나, 그 품은 넓어 삿갓처럼 경천의 바위를 부딪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정작 절벽 밖으로 뻗어나간 가지 하나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서 마르고 닳고 헐었다. 천심절벽 끝에 서서 아득히 강물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저르릉 떨린다. 이파리를 떨군 겨울나무들이 절벽에 따개비처럼 빽빽하게 붙어 섰다. 그 가운데 산죽이 그나마 푸르렀으나, 이파리의 가장자리가 이미 마른 품이 바위에 기대어 겨우 삶을 버티고 있는가 싶었다.
낙강이 갈라진 물줄기를 거두어 절벽에 바투 붙어흐른다. 공사판 사이를 누런빛으로 흐르던 물은 경천대 절벽에 이르러서는 물의 자존심을 찾아서 옥빛을 띄었다. 물은 깊게 흘러 용바위에 한 번 부딪히면서 소용돌이치다가 다시 바위를 깎아나며 굽이쳐 흐른다. 경천대 천심절벽을 벗어나는 자리에 물은 범상치 않은 산 하나를 세워 놓았는데, 그 형상이 마치 물을 들이켜기 위해 부리를 물에 잠근 봉황과 같았다. 우담이 이 산을 두고 ‘봉산곡’을 지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봉황의 머리를 쏙 빼 닮은 산을 끼고 나가던 강은 모래톱을 오른쪽에 끼고 방향을 틀어 남으로 흘러갔다.
“칠백 리 낙동강에서 제일의 경치는 이 경천대일세”
경천대에서 경천대를 굽어보며 일갈한 방장의 이 한 마디 안에 경천대의 경치가 다 담겨 있다. 경천대의 풍광을 이렇게 표현한 데에는 건너편에 아름답게 펼쳐진 모래톱도 한몫했으리라. 강에다 배를 띄워놓고 한량질도 해 보고 싶었지만, 나는 이 모랫벌을 말을 타고 거들먹거려 보고 싶었다. 모래의 반은 산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그림자에 묻힌 모래는 아늑한데, 햇빛이 비친 모래는 화사했다. 그 아늑함과 화사함을 말을 타고 느끼고 싶었다. 그림자 진 쪽에서는 말을 걷기고 밝은 쪽에서는 말을 달리게 하고 싶었다.
산 그림자가 모래를 갉아먹는 걸 보고 나는 발길을 옮겨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경천대에서 상도 촬영장에 이르는 벼랑길이다. 암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었지만 송림을 뚫고 난 길이라서 그윽하다. 이 길을 불고 가는 겨울바람도 상쾌하게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 길지 않은 길이긴 해도 잠시 고졸(古拙)한 멋에 잠길 만한 오솔길이다. 이 오솔길 끝에는 구름다리가 놓이고 그 다리를 건너서면 바로 상도 촬영장이다. 나는 오솔길 위의 바위에 걸터앉아 촬영장 쪽을 바라보았다. 촬영장 초가엔 이엉을 잇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임상옥의 계영배(戒盈杯)를 떠올렸다.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戒盈祈願 與爾同死)’ 임상옥은 거상(巨商)이되 잡된 상인은 아니었다. 얼핏 ‘守分’이란 글자가 가슴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앞서 경천대의 의미를 접하면서 원효의 ‘爲斫支天柱(하늘 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를 기억한 바 있다. 원효는 스님이되 스님을 초월한 배포가 있었다. 나는 원효와 임상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분’ 앞에서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배포’ 앞에서 나는 주눅 들었다.
나는 경천대의 낙동강을 보러갔다가 엉뚱하게도 원효와 임상옥이 던져 준 화두에 갇히고 말았다. 이 화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취재 노트를 덮어버렸다. 덮인 노트 위로 노을이 졌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