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르는 집배원 김동영(글/이미홍_객원기자)
올해는 가을이 언제였나 싶게 여름 내내 질척거리던 비가 가을에 들어서도 추적거리며 내리더니 반짝 가을해가 들었다가 일찍 추위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아직 겨울 초입인데도 예년에 비해 그 추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괜히 몸부터 움츠러든다. 그리고 한 해를 넘기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좋지 않은 소식들이 우리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한다. 이렇게 추운 계절이면 마음이 가난한 이나 몸이 가난한 이들은 사람들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시절이 수상하고 사는 게 불안하면 추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손길도 자연 소홀해지기 마련인 듯, 우리 사회의 온정 정도를 체크하는 사랑의 온도계가 3.5도로 예년의 7분의 1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낮다고 한다. 그럴수록 추운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목말라하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한 그릇의 우동일 수도 있고 내복 한 벌일 수도 있고 담요 한 장, 연탄 백장일 때도 있고 그냥 따뜻한 관심과 뜨거운 밥 한 그릇일 때도 있다. 마음과 몸이 가난한 이를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는 건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마음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우리는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작지만 마음을 나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일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행복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 안동우체국 봉사단체 행복나르미의 김동영(44)씨는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바른생활맨 동영씨의 가난했던 어린시절
안동우체국에서 집배 일을 하는 김동영씨는 안동시 성곡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성곡동 일대가 개발이 한창이라 주민들이 다들 보상을 받아 마을을 떠났고, 골프장이니 문화단지니 하며 한참 개발 중이다. 그렇지만 윗대부터 성곡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긴 했지만 가진 거 없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겨우겨우 살았던 터라 성곡동을 떠날 때 동영씨네는 보상은커녕 그냥 살던 집만 비워주고 시내로 이사를 나와야 했다. 없는 사람들에게 개발은 그래서 결국은 삶의 터전을 비워주고 고향 땅을 떠나야 되는 고달픈 일일 뿐이다
동영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의 기억과 맞물려 있다. 도시락을 싸간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점심 한 끼 건너뛰는 정도는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시집올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둘째 여동생을 낳고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급기야는 식구들 끼니를 챙기는 것도 못하게 되었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형제들은 도시락 한 번 제대로 싸가지 못하고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안주인이 살림살이를 챙기지 못하니 많은 식구에 내 땅 한 평 없는 시골 생활은 아버지와 식구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입에 겨우 풀칠을 하는 수준이었다. 육남매 중 장남이었던 동영씨는 덕분에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동영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해 취직을 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다른 형제들도 제 살 길은 각자 자신이 찾아야 했기에 다들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들도 초등학교만 마치고는 집안일을 돌보거나 어린 나이에 각자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동영씨가 안동으로 내려온 것은 97년 말이었다. 그동안 서울 생활을 하던 와중에 할머니의 중매로 지금의 아내 순란(40) 씨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안일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에 아예 안동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집사람이 절 뭘 보고 결혼을 결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고맙지요 뭐. 그때는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처지에 몸도 성치 않은 어머니에 형제 많은 장남이다 보니 감히 결혼하자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내 처지에 쉽게 결혼하기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 선을 보고 속으로 아내가 맘에 들었어도 결혼하자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집사람이 절 좋게 봤는지 결혼하자고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그때는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착해 보여서 속일 거 같지는 않아서 결혼해 줬지 싶어요. 제가 딴 짓 하거나 하지 않고 착하기는 하거든요.”
동영씨가 착하고 반듯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바른생활맨이라는 그의 별명이 잘 말해준다.
오랜 고생으로 지병을 얻어 앓으시던 아버지는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동영씨는 성곡동에 우편물을 배달하던 집배원 아저씨로부터 우체국에 집배원 자리가 났는데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집배원 일에 지원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안동 시내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98년1월 2일부터 안동우체국으로 출근을 했다.
골목길 누비는 우체국 생활 12년째
98년 1월 2일 안동시 태화동우체국에서 첫 집배원 일을 시작했다. 태화동에서 서후로, 그리고 금곡, 법상으로 지점을 옮겨가며 근무를 하다가 지금은 정상, 정하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집배일의 특성상 구역 담당자가 아프거나 일이 생겨서 출근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항상 두 지역을 두 사람이 한 조로 묶여 근무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통상구역이라고 한다. 동영 씨는 정상·정하동과 법상, 금곡동이 통상구역이라고 한다. 평일에는 오토바이로 요일을 정해 번갈아 이 두 지역을 오가며 일반우편물을 배달하고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는 우체국 택배 차량으로 택배물품을 배달한다. 아직도 여전히 오토바이는 집배원들과 애환을 함께하는 애마다. 아무리 근무환경이 좋아졌어도 골목골목을 누벼야 하는 집배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아무래도 오토바이가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저는 이 일이 좋아요. 이제 12년 됐는데 고향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안동 관내는 훤하죠. 한 가지 우리 같은 집배원들은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요. 우편물이 많이 몰릴 때나 바쁠 때는 아무래도 서두르게 되다보니까 사고가 알게 모르게 많이 나거든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전국적으로 보면 사망 사고도 가끔 나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야 늘상 있다고 봐야죠. 그래서 우리는 한 달에 위험수당 35,000원이 더 나와요. 그런데 제 경험상 사고는 일을 조금 더 빨리 하려고 서두르다가 나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을 서둘러 끝내려고 하거나 조금 더 빨리 가려고 무리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우편물을 대충 입구에 던져 넣거나 하면 조금 빨리 마치거나 편하긴 할 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일에도 소홀하게 되고 사고도 나게 마련이거든요.”
그런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 덕에 그는 10여년이 넘는 집배원 생활 중에 오토바이 사고는 한 번도 난 적이 없다. 교통사고와는 다르지만 집배원들이 피할 수 없는 사고가 있으니 바로 우편물 배달사고다. 때로는 부치는 사람이 주소를 잘못 적는 경우도 있지만 손으로 쓴 주소를 잘못 읽은 집배원이 배달을 잘못하거나 비슷한 번지나 이름자를 잘못보고 배달을 하는 일도 있고 사람이 없어서 현관문 앞에 끼워놓고 온 우편물이 분실되는 사고까지 이런저런 배달사고는 집배원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동영씨의 경우에도 동호수를 적은 숫자 ‘3’자를 잘못 보고 배달해 등기가 반송되어 항의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다. 편지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고 사죄를 했는데, 편지를 주어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그 격려 답장에 고마움과 힘을 얻은 동영씨는 후에 상품권이 생겼을 때 상품권으로 보답을 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게 별 게 아니다. 민원이 발생하면 동영씨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우선 고객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일일이 전화응대로 사정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편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어느 쪽의 실수이든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응대를 하다보면 대부분의 민원은 원만하게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편지 드문 요즘, 옛날만큼 운치는 없지요
각종 요금고지서가 배부되는 매달 14일부터 20일까지가 우체국 집배원이 제일 바쁜 시기이다. 각 카드사나 통신사의 청구서를 비롯하여 각종 생활요금고지서가 몰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안 가진 사람이 드물고, 블로그니 메일이니 요즘은 사연들을 주고받는 통로들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제는 손으로 직접 쓴 사연 깃든 편지나 급전을 부쳐달라는 전보 같은 것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편물 겉봉에 손으로 직접 쓴 주소가 있는 건 그나마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들딸들에게 손수 농사지은 것들을 부쳐주는 택배 상자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요즘 고지서 다음으로 많은 것이 택배 우편물일 것이다. 배송업체들도 다양하고 민간택배 회사들도 많지만,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우리네 부모님들한테는 웬만한 시골 마을이면 다 있는 우체국 택배가 제일 확실하고 미더운 존재다.
그런데 부모님들의 정성과 손때가 묻어나는 택배는 때때로 집배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단다. 지방은 덜하지만 대도시에 근무하는 집배원들이 요즘 가장 힘든 일은 2 ~30㎏이 넘는 지방에서 온 택배를 배달하는 일이라고 한다. 쌀이며 고추며, 감자, 고구마에 무 배추, 아예 김치까지 담가서 보내는 우리네 부모님들! 덕분에 품목도 무게도 다양한 지방에서 올라오는 택배 짐들은 대부분 하나라도 더 보내려는 부모님의 마음까지 보태 대부분 용량 초과이기 일수라고. 현재 분리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이 30㎏까지 허용을 하지만 분리할 수 있는 건 20㎏으로 용량을 제한해서 그나마 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거운 택배를 들고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기진맥진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이쪽에서야 보내는 입장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그건 걸 잘 몰랐죠. 20㎏이라고 해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거든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배달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온몸이 흠뻑 젖기도 하고. 그런 걸 알게 되면서 한 번에 부치는 요량을 제한하기로 한 거죠. 그래도 도시에는 그런 무거운 택배가 지방에서 하루에도 몇 건씩 온대요. 특히 더운 여름철이면 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우리가 택배를 조금 부치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하니 이럴 때는 지방 우체국에서 일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죠.”
앞으로는 택배를 부칠 때도 한번 쯤 더 배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도 생각해 보고 무게도 포장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친정아버지도 경기도에 있는 언니나 남동생에게 살이며 고구마며 감자 상자를 종종 부치시는데 언니도 동생도 직장에서 늦게나 퇴근을 하는데다 아파트 고층에 살고 있다. 늦은 밤 시간이 되어야 택배 수령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같은 안동 관내라도 녹전, 임동이나 북후, 서후처럼 좀 먼 관내 지역은 상대적으로 배달하기에 힘이 드는 지역이다. 거리가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있지만 마을이나 집들이 골골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꼭 우편물이 없더라도 담당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 분들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 같은 경우 집에 들러 별 일이 없는 지 안부를 챙기다 보면 하루해가 짧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집배원이 어느 한 지역에 발령을 받으면 본인이 원하면 그 지역에 붙박이로 근무를 해서 나중에는 그 동네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집배원들이 훤히 다 알고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제는 바뀌어서 다들 순환근무를 하니까 관내 지역을 번갈아가며 근무하게 되어 있어요. 예전에 비해 시스템이 많이 간소화 되었고 인원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보충이 되어 옛날에는 격무로 쓰러지거나 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는데 요즘은 근무환경이 많이 좋아졌지요.”
어쩌다 인터넷이나 문자보내기에 익숙지 않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서신을 배달이라도 하게 되는 날은 집배원들도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편지봉투 겉봉에 정성들여 한 자 한 자 공들여 쓰여진 글씨를 발견할 때면 집배원들도 반갑다고 한다. 일률적으로 찍힌 고지서 봉투하고는 다른 사람의 흔적이 묻어나는 편지는 그렇게 편지를 중간에서 전달하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길안천 몰래 청소, 시민 제보로 딱 걸렸어
그가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체신청에서 2006년도 4월, 사랑나눔봉사단을 결성하여 운영하면서부터였다. 그전부터 주말이면 두 아들과 길안천이나 인근 야외로 나가 쓰레기 줍기 등 아무도 모르게 봉사활동을 해 오던 동영씨의 사연이 우연한 시민의 제보로 안동시청 게시판에 소개가 되면서 동영씨는 본의 아니게 잠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는데, 동영씨는 그런 주위의 관심들이 부담스럽기만 했다고 한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를 한 것뿐인데 그런 걸로 인사를 들으니 민망하고 한편으론 괜히 관심 끌려고 그런다고 할까봐 주말이면 으레 나서던 쓰레기 줍기 같은 일에도 오히려 제약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 동영씨의 몰래하던 일이 소개 되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이 이제는 고3 고1이다. 이제는 다 커서 아버지를 따라 나서지도 않지만 입시에 시달리는 고등학생이다 보니 동영씨도 이제는 시간이 나면 혼자 봉사활동에 나서는 편이다. 덕분에 한동안 주위의 과분한 칭찬도 듣고 우체국내에서도 평소에 워낙 보이는 대로 쓰레기도 줍고 청소도 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동영씨의 명성이 더욱 굳어진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안동우체국에 사랑나눔봉사단이 결성되어 출발할 때 동영씨가 그 선봉장을 맡게 되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게 슬고 닦고 청소에 앞장서고 궂은일이나 민원 해결에 솔선수범하는 동영씨의 진가를 인정한 인사였다.
“저도 그전에는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그러지는 못했어요. 저도 어렵게 컸고 평소에 그런 쪽으로 관심은 많았지만 시간 나는 대로 청소나 하고 우편물 배달하러 갔다가 어르신들 만나면 짐을 실어드린다거나 우편물을 읽어드린다거나 하는 건 있었지만 달리 봉사활동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봉사단 일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거죠. 그런데 봉사는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 중에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참가하다가 점점 봉사의 좋은 점을 알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일 때 정말 힘이 되고 기쁘죠.”
앞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강력한 카리스마 같은 게 필요한 데 제가 그런 게 약해서 욕심만큼 일을 많이 하지 못하는 거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데 다행히 자신들이 하는 봉사 일을 지지해 주고 같이 힘을 보태주는 동료와 후배들이 있어서 든든하다고, 자신은 이 일이 참 좋다며 웃는 동영씨는 천상 이 봉사단 일이 천직이다 싶다.
우편물 배달에 독거노인 안부도 살피고
집배원으로 결성된 사랑나눔봉사단이 하는 주된 봉사활동은 독거노인 방문과 산불감시 등이다. 집배 업무의 특성상 우편배달을 위해 매일 들르게 되는 담당구역의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하여 특별한 일이나 불편한 일이 없는 지 살펴보고 아픈데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못가는 환자가 있거나 하면 119를 불러준 일도 있고, 시골 마을의 경우 고지서 대납이나 장보기를 대신해 주기도 한다. 시골마을의 경우 3,40대 젊은이는 찾아볼 수 없고 60대만 해도 젊은 축에 끼는 현실이다 보니, 마을에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나 환자가 발생했을 때 노인들뿐인 상황에서 바른 대처가 힘든데, 집배원들의 경우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기 마련인데다 오랜 기간 그 지역을 담당하다 보면 어느 집에 할머니가 사시는 지, 어느 집에는 할아버지가 아프시다든 지, 어느 집이 빈 집인지, 마을 사정에 밝아서 독거노인의 경우 마을에 들렀을 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사정을 파악하고 도움의 손길을 주기가 쉬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봉사활동과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나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할 때 정말로 의미가 있고 그 파급효과 도한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업무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에게 무작정 강요할 수도 없는 게 또한 봉사다. 우편업무만 마치고 오기에도 빠듯한 데 독거노인 방문이나 다른 봉사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과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봉사에 대한 의지와 정성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집배원 모두가 봉사단원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은 봉사에 뜻이 있는 소수정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동영씨와 같이 봉사에 관심이 많고 뜻을 함께 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료와 후배들이 조금씩 늘고 있고 그 중 뜻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어서 안동우체국의 행복나르미 봉사활동은 전국우체국 중에서도 모범사례로 곱힐 만큼 잘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덕분에 동영씨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집배원대상’ 은상에 이어 정보통신부장관상과 경상북도지사상을 받기도 했다.
독거노인 돌보기와 산불감시 같은 행복나르미의 활동 이외에 동영씨가 맡고 있는 안동우체국 봉사단은 주말이면 남후에 있는 소망의 집을 찾아 청소와 목욕을 도와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부터 회원들이 매달 2000원씩 회비를 모아 불우한 이웃을 선정해서 매달 일정액을 지원해 주는 사업도 해 오고 있다. 지금은 시작할 때에 비해 회비를 내는 회원 수가 줄어 액수는 조금 줄었지만 꾸준히 참여하는 회원들의 정성으로 매월 일정액을 모아 불우한 가정을 선정하여 물품이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에는 회원들이 의욕이 넘쳐서 너도 나도 대상자를 추천하는 바람에 월별로 나누어 도움을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일회성 도움에 그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은 대상자 중에서 회의를 거쳐서 가장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되는 한 가정을 선정해서 일 년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올해는 시내에 사는 청각장애인 부부와 자녀 셋인 장애인 가정을 지원해 주고 있다. 다행히 장애인 부부가 남선에 있는 복지재단에서 일을 하고 받는 소득이 있어서 쌀이나 생활용품 등 실질적으로 살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매달 지원을 하고 있다. 연말이 되었으니 또 내년도 지원자를 선정하는 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려운 사람들은 많고 지원 액수는 많지 않고 해서 그중에서도 도움이 절실한 이를 선정하려면 또 며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을 해야 할 판이다.
소년소녀가장 돕고 싶은 행복나르미
개인적으로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고 말하는 동영씨.
“아무래도 제가 어렵게 자랐다 보니까 어려운 형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쓰이고 그중에서도 소년소녀 가장들은 어린 나이에 집안일이나 생계를 떠안아야 하니까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건 우리 우체국에서 하는 봉사활동과는 별개로 기회가 되면 제가 개인적으로 꼭 도움을 주고 싶은 부분이에요. 이 일을 맡아 하기 전에는 그냥 마음만 있고 감히 나서서 도와야지 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까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 형편에 맞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돈이 많거나 한 건 아니지만 소년소녀가장 돕기를 나름대로 시작하려고 하는 것도 꼭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제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은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우선 시작하려고 해요. 도배도 해 줄 수 있고 집 청소도 해 줄 수 있고 상담역도 하고 참고서 같은 학습용품 같은 것들도 구해줄 수 있고, 길은 많다는 걸 이 일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게 돼요.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제 마음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는 거 같고요.”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된 동영씨, 그러나 마음 하나 보고 가난한 육남매의 장남에게 시집 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시어머니 모시고 시동생들에게 맏형수 노릇하며 두 아들을 키워준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제 식구 거두며 살기에도 빡빡한데 한 푼이라도 아껴서 봉사활동 한다고 열심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내 입장에서는 간혹 섭섭한 일이 있게 마련이라 동영씨도 본의 아니게 아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일 하는 걸 나서서 말리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내 집 곳간이 채워져야 남에게 퍼 줄 것도 생기는 게 세상 이치이다. 하지만 그 곳간이 곡 재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을 줄 아는 마음과 나보다 없는 이웃을 살필 줄 아는 마음의 곳간에서 진짜 인심은 난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평범한 제 자신이 참 자랑스럽고 조금만 마음을 더 쓰면 나도 세상을 위해, 나보다 힘든 이웃을 위해 실제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혼자보다 둘일 때 그 힘은 더 커진다는 걸 아는 동영씨는 그래서 지금도 집배 업무를 마치면 그때부터 사명을 가지고 행복나르미 봉사단 일에 매달린다. 우체국의 행복나르미 일은 뜻이 있는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지만 봉사하는 일은 평생을 통해 계속하고 싶다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집배실로 들어가는 동영씨 뒤로 짧은 겨울 해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