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유물특별전-[선비 그 멋과 삶의 세계]전을 열면서(글/김순석)문중은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조상을 모신 피를 나눈 혈족집단을 이야기한다. 동성 친척이나 또는 일가와 같은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종가는 문중의 중심이 되는 맏아들 즉 종손 집안을 이야기한다. 전통사회에서 문중의 중심은 학문이 깊었거나 벼슬이 높았던 종가에 있었다. 전통사회에서 문중과 종가는 혈족의 결속를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구심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문중과 종가의 역할은 현저하게 약화되었으나 아직도 이 지역 이른바 명가의 종가에는 선조들의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러나 하나 안타까운 것은 그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된 보존 환경에서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시의 목적은 각 문중과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모아서 공개함으로써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나아가서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데 있다. 또한 지역 종가들과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민간에 소장된 자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보다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번 전시는 각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 가운데 초상화·서화·고문서류 가운데 명품을 모아 총 79점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주요전시 작품들
먼저 초상화류에는 고려말기 3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영정이 있다. 이색은 일찍이 원나라에 유학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이후 여말선초의 교학(敎學)과 국사(國事)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세종조부터 성종연간의 문신으로서 1467년(세조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였던 장말손(張末孫, 1431∼1486) 선생 영정도 전시되었다.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 선생은 문과 급제 후, 육조(六曹) 가운데 오조(五曹)의 판서(判書)와 좌(左)·우의정(右議政)을 역임한 명재상(名宰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으로 1604년(선조37) 호종공신(扈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에는 정탁의 곧고 강직한 성품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대표적인 산림(山林)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오로지 학문과 교육에만 전념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 선생의 초상화도 전시장에 나와 있다.
1733년(영조 9) 문과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767년(영조43)에는 참판(參判)을 거쳐 지중추부사를 지냈던 이산두 영정도 선보이고 있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시조작가로 잘 알려진 농암 이현보 선생 초상화도 전시장에 오면 만날 수 있다.
이 전시회에 전시되는 서화류 가운데 계회도(契會圖)라는 것이 있다. 계회도란 쉽게 말하면 계모임을 그린 그림이지요.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에 관청에 근무하는 관원들이 중요한 행사를 하고 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오늘날 기념촬영 사진을 그림으로 남긴 것이라고 될까. 이런 그림들을 기록화라고들 한다. 계회도는 참가한 사람의 숫자만큼 제작해서 한 장씩 나누어 가진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계회도로는 흥정당친정도(興政堂親政圖)와 산릉도감제명록(山陵都監題名錄) 그리고 종남동도회제명록(終南同道會題名錄) 같은 것들이 있다.
흥정당친정도란 1691(숙종 17)년에 경희궁 흥정당에서 행한 도목정사(都目政事)가 끝난 다음에 제작된 것이다. 도목정사란 지금 말하면 인사고과라고 할까. 국왕이 정기적으로 일년에 두 차례 관료들의 인사고과를 실시하였는데 이 인사고과 평점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국왕이 선온(宣 )을 한다. 선온이란 국왕이 신하들에게 술을 내리는 말하는 것이다. 산릉도감제명록은 명종의 비였던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장례를 주관하였던 관원들이 그 임무가 끝나고 난 다음에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종남동도회제명록은 1656년(효종7) 당시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영남출신 관원 12명이 모임을 가지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한 것이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유품 가운데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이라는 시화첩이 있다. 그 가운데 화산양로연도(花山養老燕圖)라는 그림이 있는데, 이 화산양로연도는 이현보 선생이 1519년(중종 14) 안동 부사로 재직할 때 부내의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청해서 양로연을 베풀었다. 특이한 점은 양반가문의 노인들 뿐만아니라 서민과 천민의 노인들까지 초청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현보 선생의 경로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그 밖에도 민화풍의 그림을 비롯해서 여러가지가 있다.
글씨로는 퇴계 이황 선생의 행초칠언 율시와 권두응 선생의 행초칠언 절구·한석봉 천자문 등이 있다. 서예작품 가운데 화산 권주 선생 종가에 소장된 동사별장·연행별장 등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고문서류로는 화산 권주의 부친인 권항 선생의 교지와 대산 이상정 선생의 교지 그리고 화산 권주 선생을 충청도 관찰사 겸 병마절도사로 임명하는 교서 등이 있다. 경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화회문기(和會文記)와 별급문기(別給文記)가 있다. 화회문기는 형제자매들이 재산을 나누는 분재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별급문기는 시아버지가 20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며느리가 봉양을 잘하고, 제사를 잘 모시어 가정을 화목하게 하였으므로 특별히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문서다.
위기에 처한 소장 자료들 조건없이 위탁
한국국학진흥원은 위기에 처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민간에 소장된 자료들을 수집·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다. 민간에 소장된 자료들은 지금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빈번하게 도난 당하거나 보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인 보존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채로 방치된 자료들이 많다. 자료는 적정한 온·습도의 유지와 정기적인 멸균 처리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렇게 소중한 자료는 어느 일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죠. 한국국학진흥원은 민간에 산재되어 있는 자료들을 조건 없이 위탁받아서 보관하고 있다. 자료의 소장자들이 연락만 주면 국학진흥원의 연구원들이 방문하여 목록을 만들고, 소독을 해서 그 자료가 필요로 하는 적정한 온·습도에 보관하게 된다. 나아가서 그 자료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파악해서 국내·외 학회에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귀중한 자료는 영인본으로 발간하기도 한다. 지금도 소중한 선조들의 유품을 가지고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에 빠져 계신 분들이 있으시면 국학진흥원으로 연락을 주시면 모든 것을 해결해 드릴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매년 주제를 바꾸어 특별기획전을 가질 예정이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지역 문중들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위기에 처한 민간 소장자료들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주제를 바꾸어 가면서 매년 문중유물특별기획전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