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그늘에서 피어나는 꽃-詩, 문학평론가 홍용희(글/김영희_객원기자, 사진/박영대_동아일보 사진기자)
회기역 경희대학교. 처음 가는 길이라 지하철 노선도를 꼼꼼히 살피며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했다. 지하철 역 이름에 학교 이름이 쓰여 있지만 바로 코앞에 학교가 있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고 또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속을 한 번 미룬 뒤라 늦기까지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안동사람을 만나고 취재를 한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만날 때마다 긴장이 되고 떨린다. 이번엔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문학평론가라니! 도대체 내가 문학평론가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눌 수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인터넷으로 사전 검색해 본 내용은 나를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문학평론가인 홍용희씨(45세, 임하면 천전동 내앞마을 출생).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랑을 향한 열린 언어 - 정현종론>으로 평론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해 「꽃과 어둠의 산조」,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 네 권의 평론집을 출간했고 ‘김지하 문학연구’로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제1회 젊은 평론가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문예진흥원 창작기금, 애지문학상, 시와시학 평론상,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주선한 사랑방의 소애씨를 속으로 야무지게 원망하며 교수님과 마주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와의 대화는 나를 순식간에 20여 년 전으로 데려가 국문학과 학생으로 만들어 놓았다. 문학수업을, 그것도 오롯이 혼자서 듣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수업 내내 ‘내가 좀 더 영민한 학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번민에 시달려야 했다. 자연스럽게 안상학 시인의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아배생각>의 해설을 쓴 인연때문이다. “안상학 시인이 서울에 와서 잠시 살았고, 시집 해설을 부탁해서 쓴 적이 있지요. 시를 잘 씁니다. 안타깝게도 쓰는 것에 비해 평가가 덜 된 시인이죠. 어쩔 수 없이 양반성품이고 지방에 살다보니 그런데 작품이 좋습니다.”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더니 외로워야 좋은 시가 나오는 법이라고 했다. 좋은 시인일수록 무식(?)해야 되는데 간절한 체험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문득문득 드러나는 것이 감동을 주고 진정한 울림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평론, 합리적인 사고로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것
평론이라는 것이 어렵게만 생각되는데 많은 평론을 썼을 뿐만 아니라 단행본으로 평론집을 출간하기까지 했다.
“문학평론이라는 것이 대중성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시대정신을 가장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사하는 것이 시예요. 시의 스펙트럼을 종합해보면 전위적인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시대정신을 읽어냄과 동시에 창작의 방향성을 시인들에게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시인들에게서 배우고 시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평론입니다. 시인의 시적 상상을 함께 꿈꾸면서 시인이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는 것, 이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닌가 해서 작품론도 쓰고 시사(詩史)랄까 시의 경향이랄까 이런 것에 대한 발언을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시사적 계보, 예를 들면 한용운, 이육사의 유형, 김소월, 박재삼, 유안진으로 이어지는 유형 등을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현장문학의 자리매김이랄까 역사 속에서 현재를 자리매김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얕은 지식이라 어쩔 수 없이 초보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진지하게 대답을 해 주셨다.
“시인의 역할 평론가의 역할이 있을텐데요, 시인이 의도를 가지고 쓰는 경우도 있겠지만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좋은 작품일수록 시인이 의식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잠재적 무의식의 언어가 발화될 때 나옵니다. 창작지점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선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몸이 아프다고 할 때 내 몸이지만 의사가 더 잘 아는 것처럼 내상이나 트라우마처럼 자신의 정신세계도 본인이 정확히 알지 못해요. 또 내면의 집단무의식 이런 세계는 본인이 객관화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전의식이라고 하는데 전의식의 지도를 읽어내고 지문을 읽어내는 것이 평론가입니다. 마치 무당처럼 자기검열에 의해 표현은 못하지만 그 멈칫멈칫한 분절음 사이로 스며나오는 어떤 상처들, 원체험 같은 것을 읽어내는 것이지요.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무의식의 작용을 감각화 하는 사람이 평론가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는데 꿈보다 해석이 좋은 것이 아니냐 말하기도 하는데 원래 꿈보다 해석이 좋은 거예요. 꿈은 간단하지만 해석은 풍부할 수밖에 없지요. 첫 시집은 대부분 자신의 상처를 넘어서는 작업이기 때문에 첫 시집이 대게 제일 좋습니다.”
시를 통해 미로를 걷는 즐거움, 해법을 찾는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열심히 안 쓴 시들,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내서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을 어렵게 하는 시들, 지나치게 난해하게 쓴 시들은 시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당치도 않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에 기대어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자람을 조금은 상쇄할 수 있으니까. 평론가는 시인과 독자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작품을 재단하고 엄정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따뜻하게 이해하고 더불어 꿈꾸며 작품을 풍요롭게 읽어내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그늘이 깊어야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요?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오랫동안 시를 바라봐온 입장에서 어떤 시를 좋아하고 어떤 시인을 좋아할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자꾸 바뀌듯이 좋아하는 작품도 자꾸 바뀌는데 80년대 학교 다닐 때는 이른바 실천문학을 좋아했고 지금은 이성복 같은 시인을 좋아합니다. 서정주도 좋아하고요. 요즘 주술공감이라는 말을 써 봤는데 공감을 주면서 그것에 의해 내 마음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 그런 시가 좋은 시입니다.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정갈해지고 정화가 되지요. 바로 주술공감의 힘을 가진 시이기 때입니다. 이런 작품들이 오래 살아남았는데 그것은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민족)의 무의식이 어떤 지점에 가 닿았을 때 나오는 작품들입니다. 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 이성복의 ‘남해금산’ 서정주의 ‘화사’ 정지용, 백석 등이 있는데 그 원점에는 김소월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김지하 전공인데 김지하의 일련의 시들에서 강렬한 철의 울림을 볼 수 있죠. 이육사의 시에서 보여지는 아주 강인한 결빙의 언어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시인을 좋아하기보다 각자 하나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화로 약속을 잡을 때 ‘작가도 아닌데…’하는 말로 살짝 거절을 하셨는데 그 말에서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평론이 시에 비해 열등하거나 미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원텍스트에 대한 갈망은 본능적으로 있다고 대답했다. 또 살아보니 평론가보다는 시인 체질이라 자신이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시단의 큰 상실이라고 농담삼아 말하며 크게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40대 이후로는 논리적인 발언보다는 시적 발화를 갈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시의 세계와 평론의 세계는 원시의 숲과 잘 다듬어 놓은 정원수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있어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평론을 접고 술 마시고 다니며 수련기간을 가지면서 논리를 다 잊어버려야 한다고.
그늘이 깊어야 좋은 시가 나온다고 했는데 너무 그늘 없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인생이 그늘 없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데 그늘 없는 인생이 있겠어요? 평론을 하면서 데뷔 이후 한 250여 편을 썼는데 우리 세대 중에서 제일 많은 편이예요. 상도 많이 받았는데 대게 65세쯤 되는 분의 경력의 상을 받았습니다. 양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결실이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문학은 그늘이 깊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내 몸의 그늘이 그런 작품의 그늘과 서로 공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게 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전은 오래된 미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의 평론에는 한문이 많이 인용되는데, ‘고전은 오래된 미래’이고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의 연속성을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 뜻을 이어보려고 애쓰고 있단다. 또한 거기에는 그가 안동출신이라는 점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한학자였고 어릴 때 명심보감을 읽고 자란 것 때문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의 자전적 연보에 따르면 그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자란 곳은 임하면에 있는 내앞마을로 의성 김씨 대종택이 있는 의성 김씨 집성촌이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문을 연 곳이다. 홍용희 교수의 집은 의성 김씨 집성촌인 빗골, 구뭇골을 지나 절골이라 불리는 곳에 있는데 서울에서 낙향하신 4대조 할아버지가 절을 부수고 그 재목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절골 옆 산줄기에는 고려말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풍산 홍씨 3세조 홍연(洪演)의 묘소가 있다.
그가 <안동문화예술기행>을 연재하고 있는 문화예술 종합계간지 《쿨투라》에 보면 내앞마을을, 홍유로 표상되는 풍산 홍씨의 높은 학문과 예술세계 백운정으로 표상되는 의성 김씨의 학문적 절도와 정신이 어우러진 유림의 요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마을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체득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학인의 꿈을 키웠던 유년의 내앞마을
고향 내앞마을의 풍경은 평생 그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서 지낸 유년의 기억들은 모두 차곡차곡 쌓여 그의 문학적 소양으로 내면화 되었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님과 떨어져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식구들을 데리고 인천으로 가는 바람에 그는 조부모와 시골에서 지냈다. 산 속 외딴 곳에 있는 그의 집은 큰 기와집이었고 집 주위로 열여섯 그루의 감나무가 울처럼 둘러쳐져 절경을 이루었다. 봄이면 하얗게 감꽃을 피우고 나무들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으며, 가을이면 일제히 단풍이 들어 발갛게 비치던 감이파리들과 밤마다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감들도 어린 그에게는 모두 감동스런 것이었다. 또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책을 읽곤 했는데 이황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 장면을 상상해 볼 때는 마을의 전경과 어우러져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 하나 그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백운정으로 물의 소용돌이로 인해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모래밭과 솔숲은 정겹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로 기억된다고 했다.
그가 5학년까지 다녔던 천전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가 되어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섰지만 임시정부 국무회의 의장을 지낸 김동삼 선생을 비롯하여 독립지사 이상룡, 류인식 등이 중심이 되어 1907년에 창설한 협동학교가 그 전신이다. 학교는 작고 아담했지만 그 내력으로 인해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고 특히 도서실에는 어른 키보다 높은 책장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는 부지런히 책을 빌려다 읽으며 막연하게나마 문학에 대한 윤곽을 느끼게 되었다.
5학년 때 드디어 인천으로 전학을 왔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좋았지만 큰 규모의 학교는 공포스러웠고 안동사투리는 도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그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 갔다. 거기에다 늘 바닷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도무지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시인 나혁채 선생님이었는데 시를 고쳐주기도 하고 가끔 칭찬도 해 주었다. 그 무렵 시를 쓴다는 핑계로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월미도, 호구포, 소래 등을 찾아 적막한 갯벌의 냄새와 풍경들을 만나는 아픔을 즐기곤 했었다고.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면서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당시는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주도하던 시대였고 창작을 하기 보다는 술집을 전전하며 말을 더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창작의 성과물이 축적되지 않으면서 그 빈자리에 평론이 스며들고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며 현대문학연구회 활동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되었는데 이 활동이 비평 공부의 중요한 토양이 되어 주었다고. 그리고 95년, 신춘문예 본선에 오른 지 네 번째 만에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에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시 <안동문화예술기행>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해 보면, 그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문화종합계간지 《쿨투라》에 2009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안동기행으로 ‘나의 고향, 그 낙원의 노스탤지어를 현실로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현재 여정은 하회마을을 시작으로 병산서원을 지나 내앞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안동공부가 곧 자기공부죠. 고향에 대한 정서적이고 깊은 이해를 위해 안동문화예술기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 입장에서 안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답사기가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제 안동 이야기를 한다면 때로는 소설적으로 때로는 에세이적으로 때로는 과거를 현재에 살려내는 글쓰기를 통해 묻혀 있는 역사적인 울림을 드러내는 것에 중요성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동문화예술기행을 통해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안동을 좋아하고 찾아가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정서적으로 친숙하게 만들어서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말에 걸맞게 미래지향적인 가치로서의 안동으로 인식하게 하고 싶습니다. 《쿨투라》는 시, 소설, 음악,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문학지보다 훨씬 많이 읽히는 잡지입니다. 그들이 안동기행을 통해 받아들이는 모습이 미래의 안동이 될 것입니다.”
안동문화예술기행을 연재하면서 안동에 대해 한 가지 서운하고 안타까웠던 일이 있는데 소중한 일을 소중하게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쿨투라》에 강진문화예술기행이 먼저 연재가 되었는데 강진군청에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어서 멋진 연재가 되었었다. 안동은 시스템이 더 잘 되었으리라 기대를 하고 안동시청 문화관광과에 얘기했더니 일일이 어떻게 다 신경을 쓰겠냐고 거절을 해서 멋진 안동풍경을 담지 못하고 스냅 사진에 만족해야만 했다. 많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지 말고 좀 더 높은 안목을 가지고 문화예술을 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안동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을 것이고 여전히 안동인의 품성을 지니고 더 진한 향기를 위해 정진할 것이며 또 어느 때에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살았던 어린 시절의 감성과 삶의 깊은 그늘이 공명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그의 시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