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내마을을 나서며(글/사진/김복영_본지 발행인)
경북도청이 들어설 풍천면 갈전리 진내마을,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낮은 야산에는 산자들의 집을 내려다보며 죽은자의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요즘 그 죽은자들의 집에 일제히 문패가 붙었다. 이름을 쓰지 않고 오직 번호로만 표시된, 가로 한 뼘 반, 세로 한 뼘 남짓한 크기의 하얀 푯말이다.
통정대부의 집에도 근위장군의 집에도 검산처사의 집에도 모두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의 문패가 붙었다.
웃자란 잡목 숲 잡초 속에 누워있는 무명씨, 유택의 절반을 도로에 내주고 가까스로 덤불 속에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또 다른 무명씨도 같은 문패를 얻었다.
살았을 때 언감생심 문패는 꿈도 못 꿔본 무지렁이도, 솟을대문 높이고 청지기 부리던 나리님도, 모두 차별 없이 문패 하나씩을 받았다. 생전의 감투 따위는 따질 것도 없고, 양반 상놈 묻지도 않고, 노비 상전 구분 없이 모두 공평하게 하나씩 얻었다.
참 도청이 좋기는 좋다.
도청 덕에 비로소 평등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
마을 곳곳에 펼침막이 걸렸다. 문장은 달라도 내용은 같다. ‘섭섭하지 않게 보상하라’는.
그런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지금까지 한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아왔으면서도 보상금 투쟁 같은 것 해 볼 건덕지도 없는 사람들, 제 땅 한 평 없이 남의 집 농막살이 하던 사람들에게 골목만 나서면 보이는 저 펼침막이 오히려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원래 가진 것 없었으니 마음 쓸 것도 없다며 초연한 척 할까?
뒷산 덤불 속에 묻혔다가 도청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온 무명씨들,
그들은 보상을 제대로 받기나 할까?
양지바른 산자락, 묵은 묏벌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이 처연하다.
2011, 4, 10. -彷杖-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