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축산으로 구제역 위기 넘긴 온혜농부 이태식(글/이미홍_객원기자)
온혜 토박이 농부
안동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인 이태식(54) 씨는 도산면 온혜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으로 소를 키우고 있는 농사꾼이다. 가톨릭농민회 일로 이런저런 행사에 종종 얼굴을 내밀기도 해서 어떤 이들은 그를 농사꾼으로보다 농민들을 대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만난 이태식이라는 사람은 국방부 군인들이 한겨울에 속에 받쳐 입을법한 누비조끼를 체육복 위에 껴입고 밭에서 일을 하다 흙먼지 묻은 장화를 털며 오토바이로 우리를 맞아들인 농사꾼 이태식이라는 사람이었다.
한창 일할 시간이라 부인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얼른얼른 물어보라며 서둘다가도 손수 일회용 커피를 타다 주고 또 묻는 말에는 성실히 답을 해 주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 괜히 바쁜 시간 붙잡고 앉아 한가하게 남들 다 해대는 구제역 타령 또 한다고 역정 내고 밭으로 가 버려도 이쪽이 할 말이 없게 이맘때 농촌 사람들의 바쁜 마음을 알기에 아마도 그의 이름 뒤에 붙은 직함이 아니었더라면 미안해서 돌아 나왔을 지도 몰랐다.
안동시 도산면 온혜가 고향인 그는 중고등학교를 외지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온혜에서 나고 자라 팔남매를 대신해서 스스로 뒷산의 굽은 소나무가 되어 고향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팔남매 중 다섯째였던 태식 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중풍(치매)으로 쓰러지시고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게 된다. 외지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형들을 대신해 홀로 되신 어머님을 도와 농사를 짓기 위해서 그렇게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군에 갔다 와서 스물여덟에 중매로, 이북에서 월남한 부모님이 안동에서 자리를 잡은 덕에 인연이 닿은 지금의 부인 주춘희(50)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노모(86) 모시고 아들 딸 삼남매를 낳고 이렇게 농사지으면서 잘 살고 있다며 웃었다.
“첫째 놈은 군에 갔다 와서 복학했고, 둘째하고 셋째는 딸인데 둘째는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고 막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어요. 내가 아이들한테 대학갈 때 그랬어요. 안동을 벗어나는 건 안 된다, 아버지 농사지어서 셋 다 학교 시키느라 힘드니까 안동을 벗어나는 건 안 된다고 미리 못 박았지. 다행히 다들 아비 말을 잘 들어줬어요.”
구제역이 뭐길래 농촌을 한바탕 휘젓고 갔어요
요즘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시달려 못살겠다고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며 곤혹스런 진심을 얼핏 내보인다.
“구제역이 뭔지 농촌을 한바탕 휘저어 놓고 가니까 이웃 간에도 이래저래 말이 많았고 그거 다 지나가고 나서도 아직 얼마간은 서먹하고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다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지 여기저기 언론 쪽 사람들이 소 키우는 죄로 나를 붙잡고 한마디씩 물어보는데 안 그래도 공무원이고 농민들이고 서로 신경들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어서 괜히 취재 온다고 하니까 걱정부터 되더라니까.”
그렇지 않아도 안동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이라는 직함까지 달려있어 이런저런 농민회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입장이라 그냥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한 말도 와전이 되고 친한 기자라 터놓고 대담하는 와중에 섭섭한 속내까지 터놓았다가 몽땅 기사로 나가는 바람에 때 아닌 관심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축산농가라고 구제역이니 보상이니 말들이 많고 본인에게도 다들 축산에 대해 한 마디 해 달라고 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는 태식 씨다. 우선 구제역 발생지인 와룡 서현단지에서 가까운 데다 당국의 대처가 늦어 본격적인 방역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료차가 드나들었던 인근 축산 농가들이 대부분 구제역의 피해를 입은데 비해 동물사료를 쓰지 않는 태식 씨네 우사는 구제역의 여파 속에서도 드물게 안전했기 때문이다.
유기농 축산으로 구제역 고비는 넘겼지만
“내 본업은 농사지. 그전에는 주로 고추농사하고 담배농사를 많이 하다가 94년부터 유기농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유기농법으로 쌀농사 하고 고구마, 고추농사 위주로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서울 쪽에 있는 성당들하고 직거래를 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게 되면서 그쪽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한우를 원하는 수요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침 성당 쪽에서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어려운 농가에 송아지 한두 마리씩을 입식시켜 주는 사업이 있어서 신청을 해서 소를 입식하고 축산을 시작하게 된 거지. 2006년에 송아지하고 암소 서너 마리로 집 마당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감당이 안 되서 2008년도에 대출을 받아서 건너편 산등성이 땅에 우사를 지어서 지금은 100평 크기 축사에 올해 낳은 송아지 여덟 마리까지 해서 40두 정도 키우는데, 소가 100두 이상 되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200두는 전업 축산농가라고 할 수 있지, 나처럼 3,40 마리 키우는 사람들은 부업으로 키우는 경종농가라고 제대로 된 정부축산지원금 같은 것도 잘 못 받아요. 나 같은 경우는 사실 농사지어서 축사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지 뭐. 소를 키워 한 마리씩 팔면 한 번씩 목돈은 만질 수 있지만 나야 어디까지나 쌀농사 고추농사가 주 종목이라고 봐야지요. 다행히 유기농법을 하고 있던 차라 축산도 유기 축산으로 가닥을 잡은 덕에 이번 구제역 파동 때도 나야 동물사료 안 쓰니까 사료차가 들락거릴 필요도 없고 산 속에 독립된 우사에 다른 사람은 일체 출입하지 않고 나 혼자 아침저녁으로 소독하고 왔다 갔다 하는데, 축산 하는 방식이나 환경 자체가 발병 가능성이 애초에 거의 없었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구제역이 안 걸렸다고 피해가 덜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구제역 여파로 가축 거래 자체가 몇 달 동안 안 되다 보니까 소득이 없어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축사를 지을 때 받은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한 상황에서 축사에 들어가는 돈이 줄기는커녕 구제역으로 인해 이동이 제한되다 보니까 오히려 오르기만 했다. 살 처분 작업이 이루어지고 남은 가축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백신접종을 하기로 하면서 안동지역이 제일 먼저 1차 백신접종 작업을 한 결과 그중 일부분에서 백신부작용으로 죽어가는 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앞으로 6개월마다 지속적으로 백신 접종을 해야 하는데 백신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서 있지 않아 그것도 문제라고 한다. 실제로 태식 씨네 농장에서도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백신 접종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앞으로는 각 축산 농가에서 직접 소들에게 백신접종을 해야 한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다 큰 소들이야 괜찮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송아지들이나 새끼를 밴 예민한 암소 같은 경우에는 옆에서 잡아주는 이들 없이 태식 씨처럼 혼자 주사를 놓아야 하는 일이 솔직히 부담이 된다고 했다.
축산농가에 온 서글픈 봄
2010년 9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구제역이라는 태풍을 맞았다. 그중에서도 확실하지 않은 정보가 마구잡이로 확산되는 바람에 구제역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안동은 축산 농가는 물론이고 공무원을 비롯해서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온 시민들이 매달리고도 그 후 서너 달을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크게 몸살을 앓아야 했다.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자부심도 안동한우의 명성도 타격을 입었고, 지역 경제도 사람들도 한때 휘청했다. 그리고 봄이 왔고 벚꽃이 핀 이즈음 농촌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고 축산종가들도 몸살을 털고 추슬러 축사를 다시 손보고 있다. 아직 보상 문제가 남아 있고, 백신 접종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하지만 가축 이동 제한도 풀렸고 우시장도 다시 문을 열었다. 한 고비는 넘었지만 풀어가야 할 숙제는 많이 남았다.
“축산농가의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우리나라 소가 엄청 많이 죽어서 살 처분 되서 묻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돼지는 많이 살 처분 됐지만 소의 경우는 구제역 파동 전에 양적으로 개체수가 108정도로 포화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구제역으로 묻힌 소가 4.5 정도 된다고 보면 돼요. 그러니까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우 값이 폭등하기 보다는 오히려 소 값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구제역 기간 동안 거래가 되지 못하고 묶여 있던 소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오히려 국내산 한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니까 호주산을 더 찾으니까 값이 떨어질 밖에요. 우리 같은 경우는 조합 차원에서 유기축산으로 키워서 믿고 직거래로 판매처가 확보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요가 있을 때 주문을 받아서 그때그때 도축을 하니까 크게 시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느 정도 안정된 가격에 공급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축산농가가 앞으로 문제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 사료 먹여서 단기간에 살을 찌워서 파는 비육우 위주의 축산 장려정책이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고 나는 생각해요.”
사람들은 풀 먹인 좋은 소가 귀한 줄 몰라요
“보통 소를 설 명절하고 추석 때 많이 내고 중간 중간 두 마리씩 이렇게 내는데, 올해도 원래는 구정에 한 세 마리 내고 4~5월에 한두 마리 내고 할 예정이었는데 설 때 못 내고 하다 보니까 경제적인 압박이 상당하더라고요. 애들 학비도 있고 대출금도 있고 하지만 어째요? 이래 살아가고 있니더. 거기다가 아직까지는 내가 농사지어 소먹이고 있으니까요. 농사를 한 2만여 평 넘게 짓다 보니까 아직은 농사에서 나는 소득이 더 많지요. 소 먹이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구제역 사태 나고 어제 처음으로 한 마리 도축했어요. 구제역 백신 이후에 한우에 대한 소비 심리가 전국적으로 많이 위축되다 보니까 축산 농가들이 어렵다고 협회 차원에서 소고기 좀 팔아 달라고 소비촉진운동 하러 서울에 올라가서 부탁도 하고 해서 이제 겨우 거래를 재개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어제 낸 소의 도축결과가 나왔다면서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보여주는데 2A라고 되어 있다. 2등급으로 나왔다는 통보란다. 유기축산으로 키운 태식 씨네 소는 잘해야 1등급이고 간혹 오늘처럼 2등급이 나올 때도 많다고 한다. 1등급이면 제일 좋은 거 아니냐 싶지만 그게 아니다. 쇠고기 등급은 1등급 위에도 A등급, A+, A++등급까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마블링이 많고 육질이 연해서 입에서 살살 녹는 바로 A부터 A++등급까지는 대부분 움직임을 최소화한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공간 안에서 동물사료를 먹여 단기간에 살을 찌운 비육우에게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먹는 이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1등급은 사실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은 우리 입맛이 어느새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지. 정부가 그런 쪽으로 한우를 개량해 와서 한우 자체가 타고난 조직도 그렇게 개량을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풀 먹인 소하고 사료 먹인 소가 있으면 풀 먹인 소의 소고기를 안 먹어. 사료 먹여 키운 고기 육질이 더 연하니까. 어느 게 우리 몸에 더 좋은 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거지. 그러니까 축산 농가들도 그런 쪽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오늘날 같은 사태까지 온 거지.”
태식 씨처럼 환경과 생태를 생각해서 넓은 공간에서 유기농 채소와 직접 배합한 유기농 사료를 먹여서 키운 소들은 상대적으로 등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마블링이 좋은 입 안에 살살 녹는 고기만을 찾는 간사한 우리의 혀가 불러온 현실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태식 씨는 고기만 파는 비육우 위주로 키우는 게 아니고 암소를 길러서 새끼를 낳아 키우는 번식우를 위주로 사육한다. 숫소를 살찌워서 고기로 파는 비육우에 비해 번식우는 암소를 잘 키워서 건강한 송아지를 낳게 해야 하므로 기간도 오래 걸리고 사육 조건이나 환경도 비육우에 비해 까다롭게 신경을 써야 한다. 새끼를 밴 암소들은 특히 더 예민해서 어쩌다 일이 생겨 매일 가는 태식 씨 대신 부인 씨가 가면 소들이 시끄럽게 반응을 해서 축사 일은 태식 씨가 전담하다시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매일 보니까 소들의 작은 변화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간혹 예민한 어미 소나 수송아지가 날뛰어도 대처할 수 있다고. 그래서 밖에 나가거나 어디 멀리 갔어도 밤늦게라도 꼭 집에 오려고 하는 태식 씨다. 한 번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술자리가 길어져서 늦었다가 소 한 마리를 잃고 나서는 아예 장거리 여행은 피하는 편이다. 2만 평이 넘는 농사일에 축사 일까지 해야 하다 보니 부부가 나란히 어디 여행가는 일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어쩌다 번갈아 따로 라면 몰라도 한 사람이라도 집을 지켜야 한다는 게 원칙이 되다시피 되었다.
앞으로 백신 접종을 6개월 간격으로 3년간을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자가 백신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대형 농장은 백신 비용도 자가 부담이라고 하니 축산 농가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접종시기를 놓치거나 접종을 소홀히 할 경우 문제 발생 소지는 언제라도 있어 얼핏 들어도 백신접종 대책에 구멍이 있어 보인다. 그 구멍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3년은 5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백신 접종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고 해도 발견이 쉽지 않은 문제도 있어서 축산농가로서는 앞으로도 몇 년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늘 신경을 써야만 되는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구제역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안심하고 있는 분위기라 본인은 오히려 내심 더 걱정이 된다는 태식 씨는 언제 다시 구제역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정부도 축산농가도 우리의 축산 정책을 되돌아보고 생태환경과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축산으로 방향을 바꿔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비친다.
자식같이 키운 소가 하루아침에 살처분되는 현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겪으면서 태식 씨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축산을 하는 농가들과 그렇지 않은 농민들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니 탓이니 내 탓이니 싸워도 축산 농가들은 다들 앞으로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앞으로 닥칠 문제들에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살 처분을 했건 용케 피해 갔건, 보상을 받았건 못 받았건 간에 크게 이해 못할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누가 보상을 얼마를 받았다더라 하는 소문만 알고 축산 현실은 모르는 동네 누구는 축산 농가 구제역은 보상을 해 주면서 왜 고추농사 탄저병은 보상 안 해 주냐며 대놓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는데, 그 앞에다 대고 축산 정책이 가지는 특수성을 일일이 설명해 준들 소용이 없을뿐더러 서로 감정만 상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내 코가 석 잔데 너나들이 하며 지내던 동네에서 이웃끼리 알게 모르게 골이 지는 게 참 마음이 아프지요. 내가 후배 놈은 500미터 근방에 발생 농가가 있어서 예방적 차원에서 소들을 전부 살 처분 했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축사에 붙어살면서 키우던 소들을 다 묻고 이 친구가 거의 공황상태가 올 정도로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닐 정도가 됐어요. 그리고 ‘우리 집 소는 죽어도 못 묻는다고 구제역 검사조차 거부하고 만약 우리 소가 구제역 걸리면 보상도 필요 없고 내가 소하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고 자식같이 키운 소가 혹여 산 채로 땅에 묻게 될까봐 기를 쓰고 검사를 거부하는 70대 노인의 눈물을 보면서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지 못한다는 거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이 갈등은 봉합이 되겠지만 서로가 주고받았던 상처는 오랫동안 마음 속 아픈 앙금으로 남을 것이다.이게 다 정부나 관계 기관이나 언론이 정확한 정보나 왜 그런 정책이 필요한 지 축산농가와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없이 정치 논리에 따라 높은 분들 말씀 한 마디에 정책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탓이라, 속은 상한데 시청에 들어가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공무원들 보면 또 고생하는 데다 대고 따지지도 못하겠고 이래저래 속만 상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100% 보상이라고 하고 구제역 사태가 끝났다고 선포를 했다.
생태를 살리는 농사가 사람을 살리는 농사
태식 씨가 일찌감치 유기농으로 길을 잡고 뒤늦게 시작한 축산도 당연히 유기축산을 택한 것은 가톨릭농민회 농목회에서 농대 출신의 교수님으로부터 생태를 죽이는 교육이 아니라 살리는 교육을 받은 영향이 컸다고 한다. 생태를 살리는 농사가 사람을 살리는 농사라는 걸 유기농을 하면 할수록 절감하게 되었고 때문에 2006년 축산을 시작하면서 암송아지를 입식하고 유기농축산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마리 수가 늘고 2008년 축사를 지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유기농법으로 조사료를 만들고 배합하는 법을 배우고 생태축산에 관해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서 2009년 경북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축산 인증을 받았다. 유기농축산은 유기농산물을 이용한 조사료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데 쌀겨와 보리겨에 영양제와 미생물 등을 혼합한 사료를 사료배합기에 넣어 그때그때 일일이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공이 들어야 하지만 그 대신 그만큼 건강하고 안전한 축산방법으로 이번 구제역 파동에도 태식 씨 자신의 축사는 물론이고 외부인의 출입이 있었던 한두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기농축산 농가가 큰 피해 없이 지나간 것을 보고 유기농축산 소가 면역력이 강하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다는 태식 씨다.
“구제역 파동 지나고 정부에서도 축산정책을 재점검한다고 하고 축사 기준을 높여서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꾼다고 하고 경상북도 차원에서도 안동시에서도 앞으로 친환경생태축산을 한다고 하는데, 말로는 친환경축산을 내세우면서 축산 현실은 동물사료를 먹이는 비육우 위주 정책, 육우를 소규모 축산 농가를 없애고 200마리, 300 마리 이상 대형 축사 위주로 나아가 기업형 축산으로 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같으니, 말처럼 제대로 된 생태축산이 가능할 지 의문이에요.”
생태 축산 유기축산이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그걸 실제 정책에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효성 있게 추진하느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기축산은 조사료뿐만 아니라 소들에게 적정한 공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유기축산은 대형축사 위주, 비육우 위주 축사에는 흉내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먹이를 만들어 먹이고 키우는 전 과정이 손이 많이 가고 번식우의 경우에는 기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그만큼 많아진다. 하지만 유기축산으로 키운 소는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인정을 받고 안정된 판로를 보장받는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지원은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구제역과 같은 사태는 앞으로 언제 또 우리에게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유기축산이 그에 대한 대책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태식 씨.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쉽지는 않지만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서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축산농가 기리 순환시스템을 만들어서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농산물로 혼합사료를 만들어 지원을 해 주고 지역 단위 차원에서 축산 농가끼리 연결하여 함께 유기축산을 한다면 지역축산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정부 정책도 그렇지만 이미 단시간에 사육할 수 있는 동물사료 위주 비육우 사육에 익숙해 있는 축산 농가들의 의식전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먹을거리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의식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질서를 어긴 인간에 대한 경고
집에서 1㎞ 정도 떨어진 맞은 편 산중턱에 위치한 축사는 비스듬한 양지쪽 언덕에 자리 잡고 앞뒤로 넓은 밭자리가 있어 풀이 무성할 때쯤이면 소들이 풀 뜯고 뛰놀기 딱 맞게 생겼다 싶다. 먼지 덮인 카세트에서는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세상에 나온 지 한두 달 고만고만한 송아지들은 따로이 마련된 공간에서 따로따로 제멋대로들 놀고 있다. 주인을 알아보는 어미 소들은 태식 씨가 우사 가까이 가자 칸막이 사이로 머리를 디밀어 옷깃에 비비적댄다. 털 색깔이 짙고 눈이 맑은 암소들은 한가로이 거닐다 우리를 보고 혹은 기웃거리기도 하고 혹은 소리 내어 음메 울음 울기도 한다. 무엇보다 축사가 확 트여 있어 답답하다는 느낌이 없고 깨끗해서 태식 씨가 우사에 들이는 정성을 엿볼 수 있었고, 왜 이 농장을 구제역이 침범하지 못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축산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태식 씨네 농장이었다.
“소는 원래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반추동물이다. 그런데 동물배합사료를 먹이면 그대로 소화가 다 되어버리니까 되새김질을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소는 먹이를 먹고 비스듬히 앉아서 천천히 되새김길질을 할 때가 가장 평화로운 시간인데, 그럴 시간이 없이 자꾸 동물사료를 먹여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살만 찌우니까 병이 안 생 길수가 없는 거지. 미국에서도 예전에 초지에서 풀 먹여 키울 때는 광우병이 없었는데 가둬 놓고 동물사료 먹이면서 광우병이 번지기 시작한 거거든. 자연의 질서를 어긴 인간이 광우병이니 구제역 걸린 소고기를 먹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하니까 이제 그 벌을 받는 거지.”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찌 그리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지……, 애초에 주어진 자연의 법칙 그대로 가축을 기르기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는 농사꾼 이태식의 말을 되새김질 해보며 축사를 내려왔다. 태식 씨는 우리를 앞서 오토바이를 타고 부인 춘희 씨가 있을 밭으로 바삐 달려가고 있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