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천년을 쇠하지 않게 하는가? -검제 의성김씨 학봉종택을 가다(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송야천변의 버드나무와 노오란 금계국
안동 내 의성김씨는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데, 동측에 임하 천전리 내앞마을이 있고, 서측에 서후 금계리 검제가 있다. 내앞마을 의성김씨의 중흥과 검제 의성김씨의 시작에는 학봉 김성일이 중심에 있었다. 호국영령 선양의 달 6월, 나는 임하에서 의성김씨의 발자취를 엿본 후 순례길을 서후 금계리 검제로 향했다. 검제로 가는 길은 안동시내에서 풍산쪽으로 난 34번 국도를 따라, 송현동 안동버스터미널을 지난 후 송야천교(솔밤다리)를 지나자마자 서의문 앞 송야사거리에서 북측 송야천변 924번 도로를 이용한다.
송야천은 안동시 북쪽 북후면 옹천리까지 연결된 하천이며, 하천 주변의 나지막한 산사이로 흐르는 지류 하천이 송야천에 합수한다. 금계리를 흐르는 지류 하천도 송야천으로 흐른다. 마을 진입도로 924번 지방도로는 서후면 교리 들녘을 흐르고 있는 송야천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진입도로는 교리의 북측 끝에서 송야천과 헤어진 후 금계리를 흐르는 지류하천을 따라 금계리와 서후면소재 앞을 지난다. 이파리와 가지가 풍성한 버드나무가 도로를 따라 줄서 있는 송야천변 도로가에는 초여름의 녹음이 짙어가고 있었다. 차 창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송야천변 버드나무는 바쁜 일상으로 잊고 있었던 고향의 능수버들이 생각나게 한다.
금계리 주민들은 금계리의 시작을, 즉 마을의 입구를 버드나무가 끝나는 지점부터라고 한다. 버드나무 길을 벗어나면 노란색의 금계국이 노란색의 색채와 꽃향을 발하면서 순례자를 금계로 손짓한다. 노란색의 금계국은 꽃말이 상쾌함이고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꽃이다. 요즘 6월부터 8월까지가 금계국의 제철이다. 학봉 김성일선생이 태어난 천전리 길가에도 금계국이 한창이다. 도로변의 노란 금계국은 임하 천전리에서 의성김씨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 서후 금계리까지 오는 순례자의 동무가 되어 지루하지 않게 한다.
금계리 방문자나 순례자는 진입도로 좌우의 금계국을 바라보면서 금계리로 접어드는데, 주변 경관은 안동의 동측 임하에서 느꼈던 환경과 사뭇 다르다. 금계리 주변의 지형지세는 안동의 다른 지역과 달리 나지막하고 몽글몽글한 산들이 마을과 가옥의 뒤를 감싸 안아 평안하고 안정감을 갖게 하는 후견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금계에는 나지막한 산자락을 따라 밭을 일궜고 넓지 않은 평지에 논을 일구고 있다. 대여섯 남짓한 가옥들은 논과 산자락 사이에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작은 마을을 만들고 있다. 이들 가옥은 양명한 곳에 터를 잡고 나지막한 산자락에 기대어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집안의 기운을 복 돋우고 있다. 그리고 가옥과 가옥으로 구성된 작은 마을들이 모여 지금의 금계라는 큰 마을을 이루었다. 즉 열두 검제다.
금계리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금계 지형은 천전리나 하회리처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지 않고 나지막하면서 몽글몽글한 산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가옥과 마을은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들을 검제지 볼 검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산 끝자락에 있는 가옥들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자연의 자양분을 먹기 위해 인간의 어머니인 자연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삼신할머니의 점지를 받고 10달을 보낸 후 세상 밖으로 나와 자연으로 부터 모유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유아기를 벗어나면서 모유를 끊고 또 다른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받아먹으면서 성장해왔다.
의성김씨 학봉종택의 주변 경관과 연혁
안동시내에서 봉정사 입구를 향한 924번 도로와 하천이 금계리 중앙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금계리 로의 진입은 924번 지방도로에서 시작한다. 도로 옆 하천은 송하천보다 작고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하천변에는 갓 모내기를 한 논이 있으며, 논과 산자락 사이에 전답과 가옥들이 터를 잡고 있다. 가옥은 학봉종택을 비롯하여 간재종택, 광풍정, 소계서당 등이 있는데, 학봉종택을 중심으로 마을 초입부에 간재종택이 있고, 서후면소재지 쪽으로 소계서당, 광풍정이 있다. 소계서당은 최근 학봉종택을 이건하기 전까지 학봉종택이 있었던 곳으로 현 종택에서 서북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학봉종택의 솟을대문은 멀리 소계서당을 바라보고 있다. 검제에서 학봉 김성일의 삶은 안동권씨 권덕황의 무남독녀와 결혼을 한 후, 장인 권덕황이 세상을 뜨자 나이 45세이던 1582년 처가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부터이다. 학봉종택은 김성일의 맏손자인 김시추가 권덕황의 집 근처에 풍뢰헌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학봉종택을 풍뢰헌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종택 터는 남측의 하천보다 낮아 침수가 잦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학봉의 8세손 김광찬이 1762년 종택을 200미터 정도 떨어진 현 소계서당 터로 이건하였다.
그 후 10세손 김진화가 1842년 원주판관에서 은퇴하고 돌아와 종택을 확장하였다. 1936년에 학봉의 11세손 김흥락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림들이 힘을 모아 8칸 규모의 소계서당을 현 종택 터에 창건하였다. 1762년에 현 소계서당 터로 옮겨지었던 종택을 200여년이 지나 1964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비용을 절약하려고 사랑채는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소계서당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1936년에 현 종택 자리에 지은 소계서당을 종택의 사랑채로 쓰기로 하였다. 종택은 정침과 사당을 중심으로 운장각, 풍뢰헌, 솟을대문의 대문간을 새로 짓고, 창고와 곳간의 부속채도 개축을 하였다.
학봉종택은 지방도로에서 북측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진입하며, 진입로 좌우에는 최근에 모내기를 한 논이 있다. 서측에는 바깥마당 앞 논과 알실마을 길 너머에 소계서당이 있다. 현재 소계서당은 북측에서 남측으로 흐르는 지맥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학봉종택은 소계서당과 달리 동쪽에서 서측으로 흐르는 지맥이 종택 뒤에서 벌어져 종택의 안채를 감싸 안은 듯하다. 땅이 갖고 있는 굴곡을 따라 담장을 쌓은 것은 기존의 직선의 담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본 채 뒤의 담장은 눈에 뜨이는 곳이 아닌데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한 것으로 보아 종택에 살고 있는 종손과 후손들의 가치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종택은 이와 같은 유연한 곡선 외 정면과 측면, 사당의 외곽담장을 곧은 직선으로 표현했다. 담장은 같은 높이로 축조한 담장보다 유연한 곡선을 첨가할 때 직선과 곡선의 가치가 높아진다.
근래에 축조한 정침 부엌의 배면 담장과 서측의 경사면에 축조한 외곽담장은 경사면을 따라 담장을 축조하였는데, 경사면의 고저차를 해결하기 위해 담장의 용마루에 단을 두어 축조했다. 여러 단으로 구성된 담장의 지붕 선은 기와의 검은색과 수키와의 흰색 아귀토가 선과 점의 조화를 이루면서 계획된 리듬을 표현한 조형물로서 강한 인상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현재 학봉종택은 이와 같은 담장이 정침과 사당, 운장각, 풍뢰헌의 외곽을 감싸고 있으며, 외곽담장 안쪽에는 건물에서 외곽담장을 연결하거나 사당처럼 삼면을 감싼 후 외곽담장과 연결하여 외곽 담장 내 공간을 구획하였다.
종택의 배치 및 외부공간 꾸미기
학봉종택은 외곽담장으로 감싸인 종택 내부영역과 문간채 밖의 외부영역으로 나뉜다. 외부영역은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데, 그 중에 최근까지 솟을대문 앞까지 논과 밭이었다. 근래에 학봉종택의 문화유산 가치를 재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종택을 방문하기 때문에 종택에서는 주차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주차장을 조성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주차 라인을 그려 놓은 모습은 솟을대문의 대문간채와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주차장 북측 산자락에는 전통건축물의 형태와 기법을 따른 콘크리트 구조를 한 ‘학봉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에는 학봉선생의 애민 애국의 학자로서 명신으로서 구국의 일생을 기념하는 전시관이다. 기념관 입구의 벽면에는 패널 하나가 걸려 있는데, 진주 촉석루를 배경으로 하고 다음과 같은 시구가 쓰여 있다.
촉석루 삼장사
촉석루 위에 마주 앉은 세 장사,
한 잔 술 비장한 웃음으로 남강 물에 맹세하네.
남강 물 쉬지 않고 도도히 흘러가듯,
저 강물이 마루지 않는 한 우리의 넋도 죽지 않으리.
윗글을 통해 우리는 진주성에서 왜적을 대하고 있던 의연한 학봉선생의 심정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글귀의 행간에는 퇴계선생의 학맥을 이었던 유학자로서 당대의 진정한 선비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종택의 정침은 안채를 중심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으며, ‘ㅁ’자형 안마당을 중심으로 북측에 안채를, 전면에 사랑채를 꾸미고 좌우에 실을 꾸며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안마당은 좌우 긴 장방형 구조를 하고 있다. 바닥과 기단은 시멘트와 사괴석으로 쌓고 마감해서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추측컨대, 관리의 편의를 위하여 바꾼 것으로 판단된다. 안마당에서 기단과 각실 앞에 있는 디딤돌도 기계로 켜 사용하고 있어 또한 아쉽다. 잔 다듬질이라도 조금만 했더라면, 가옥의 이미지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깊이감이 더 있을 터인데…….
정침은 사랑채가 동측으로 돌출하여 본채 평면이 날개집 모양을 하고 있다. 정침의 동측에는 1987년 완성한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콘크리트구조의 전통건축물 운장각이 있다. 사당은 운장각 뒤편의 경사면에 있으며, 운장각 남측으로 풍뢰헌이 있다. 그래서 사당의 선조들은 앞의 건물에 있는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채의 넓은 사랑마당 너머 조경수 사이 외곽 담장 앞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이 화장실은 사랑채와 풍뢰헌 이용자들 이용하고 있다. 사랑마당은 대문간채, 사랑채, 풍뢰헌, 외곽담장으로 감싸여 있는데, 현재 마당은 전체 잔디를 심어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 맞은편 외곽담장 앞에는 조경수와 조경석을 놓고 많은 정성을 드려 꾸며 놓았는데, 정리가 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마당은 원래 백토가 깔려 있었는데, 현재 잔디를 심어 관리를 하고 있다. 잔디는 밟거나 볼 때 좋지만 관리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마당은 부분적으로 잔디를 심고, 조경수를 속아내어 사랑채 정면이 어느 정도 열리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된다.
정침의 서측 열에는 남북으로 길게 조성한 부속채가 있는데, 창고 및 곡간, 방앗간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부속채와 정침은 현재 연결되어 있는데, 과거 부속채는 초가지붕으로 서로 떨어져 있었다. 두 채 사이마당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전면에 판문을 달아 연결하였다. 연결부분에는 방과 대문간을 꾸며 놓았다. 부속채는 현재 창고와 화장실, 욕실 등을 꾸며 사용하고 있다. 부속채의 북측 산자락에는 장독대를 꾸며 안채 부엌쪽에서 사용하기 편하도록 했다. 장독대 뒤로는 여러 단으로 꾸민 토석담장을 쌓아 안채 배면 영역과 부속채 배면 영역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그리고 담장 너머에는 소나무가 종택을 감싸 안으면서 굽어보고 있다.
안채의 주생활문화 엿듣기
안채는 장방형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방, 대청, 부엌 및 기타 실로 구성되어 있다. 종택의 평면은 일반적인 실 구성과 달리, 가로로 부엌 1칸, 안방 2칸, 대청 3칸을 일렬로 배열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전통가옥은 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방이나 기타 실을 꾸민다. 이와 같은 실 배열로 학봉종택의 대청은 사랑채와 연결된 세로열의 실이 정면 1칸을 가리게 된다. 이로 인하여 대청은 입면상으로 2칸이 되어 안방과 대청이 대칭적 구성을 하게 된다. 대청 상부는 가구가 훤히 보이도록 열어 놓았으며, 가구가 오량구조를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육간대청 바닥은 우물마루 구조다. 특히 측면 2칸을 건너지른 장귀틀과 직각으로 건 동귀틀이 시원스럽다.
‘6간 대청’하면 우리는 종가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넓은 공간을 마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 나는 안동살이 첫해 되던 6월에 학봉종택으로 순례 길을 떠난 적이 있다. 종택에는 상을 치른 흔적 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삼년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이런 와중에 차기 종손과 종부의 환대를 받았다. 당시 나는 점심으로 국시를 대접받았는데, 나 외에 다른 분들도 있었다. 면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밀가루를 반죽하였는데, 밀가루 반죽은 넓은 대청마루에서 여럿이 했다. 당시 한쪽에서 종부는 바느질을 하면서 대소가 여인네들과 지난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가까운 과거에도, 아주 먼 과거에도 그러했겠지? 대청은 이와 같이 종가의 작은 삶부터 큰 행위가 녹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대청은 일상의 삶뿐만 아니라 먼저 간 선대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최근 음력 4월 29일에도 학봉종택의 종손과 종부, 후손들은 선대 학봉 김성일선생과 공동체로서의 동질감을 공유했다. 이런 모습은 2010년, 2009년, 내가 안동살이 전, 내가 전통건축을 알기 전에도 종택의 종손과 후손들은 대청에서 선조와 화답을 나누며 소통을 했다. 만남과 대화, 소통은 오늘의 종손이 주관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차기 종손이 종손의 위치에 올라 주관을 한다. 이런 모습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이와 같은 종가문화는 종가를 지속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대청에 모인 후손은 과거 선대들의 삶과 가치관, 그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앞으로 삶의 지표로 삼아 종택의 가풍을 만들어간다.
어느 선대의 기일 날 대청에 모인 종손, 차기 종손, 종부, 이외 후손 등은 안채 뒤편의 사당에서 위패를 모셔온다. 이때 종손은 위패를 대청의 동측 띠살 두 짝 여닫이문을 통해 모셔온다. 특히 학봉선생을 모셔올 때는 학봉선생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 6칸 대청이 턱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대청 마루귀틀 끝 기단 위에 쪽마루를 덧달아 놓았다. 학봉선생 기일에는 마루를 덧달아도 공간이 부족해서 안마당에 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대청 앞에 덧 달은 쪽마루는 제례 외에 안살림을 하는 안주인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이용하여 식자재를 건조하는 공간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안방은 종부가 사용했으며, 차기 종부는 대청에서 사랑채와 연결된 열에 방과 아궁이를 꾸며 사용했다. 이 아궁이 아래칸은 책방을 꾸며 사랑채에서 사용하였다. 며느님 방과 책방 앞에 쪽마루를 덧달아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고 있다. 이쪽마루는 안채와 사랑채간 동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덧달았다고 한다. 맞은편은 안방의 아궁이간과 고방 2칸이 있는데, 고방간은 현재 입식부엌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으며, 중문간 서측의 방과 통하도록 하였다. 중문간 서측 방은 안살림을 돕던 여인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중문간 동측이 사랑채인데, 중문간 옆의 2칸 방은 원래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사랑채에 앉아 종택의 삶 엿 보기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정면에 툇간을 꾸몄으며, 지붕이 홑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면 툇간에는 정면으로 마루 귀틀을 돌출시켜 계자각 난간을 덧달아 사랑채의 정면 전체에 꾸몄다. 그래서 사랑채 툇마루의 오르내림은 좌우측 계단 1개소를 꾸며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의 난간은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사랑방에서 볼 때, 외부 경관을 짜임새 있고 정제된 모습을 만든다. 사랑방의 아랫방은 종손이 사용하였고, 윗방은 차기 종손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사랑대청은 정면에 네 짝 들문을, 사당과 운장각 쪽 각 칸에는 판문을 달아 삼면이 열리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북측 판문은 사당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한다.
근래 2008년 학봉종택에는 학봉 김성일 선생 14대 종손 김시인 옹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때 사랑 대청에 빈소를 차리고 문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종택은 문중과 유림인사 등이 참여하여 종택의 가풍에 따라 7일장을 치렀다. 그리고 사랑채 윗방의 좌측 책방에는 제청을 마련해 상을 치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장례문화는 현재 사라지고 있는데, 학봉종택은 종가의 중요한 종가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종가의 장례는 선대와 현손이 헤어지는 슬픈 일인데, 이는 종가가 존속하는 지금껏 해왔던 일이다. 돌아가신 선대의 자리는 그 자손이 채워 종가를 꾸려왔다. 그래서 종가는 3년 상을 치르면서 슬픈 상처가 아물 쯤에 돌아가신 종손의 위패를 사당에 모신다. 이때 사당에는 기존의 4대조 위패가 있는데, 네 분 중 가장 위선대 위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종택은 신임 종손이 자동적으로 종손의 직위를 물려받고 종가의 큰 행사를 주관한다. 이상의 제례를 고제라고 한다. 따라서 고제는 종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으로 중요한 의례 중 하나다. 학봉종택의 고제는 장방형의 넓은 사랑마당에 서행했다. 따라서 학봉종택 종손에게 사랑마당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종가의 사당은 정신적으로 종가의 구심점이다. 학봉종택의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 북측 산락에 있다. 종택의 사당은 일반적인 종가의 사당처럼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가구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 안에는 불천위 학봉 김성일선생의 위패를 모셔놓았다. 과거 김성일선생 이후 많은 자손들이 사당을 오가면서 선대의 가르침을 통해 각자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채에 앉아 집안의 대소사를 논했을 것이며, 풍뢰헌에 앉아 학문을 연구하면서 후손 양성을 했다. 현재 풍뢰헌은 1990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열에 툇마루를 꾸여 놓았다. 실 구성은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1칸에 온돌방을 꾸며 놓았다.
다양한 종가의 의례 및 강학을 통해 종가문화 교육을 받은 학봉종택의 후손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출되었다. 배출 인문들은 나라가 어려운 국난에 빠지게 되면 뜻을 세우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정도를 걸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의성김씨 학봉종택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통해 삶의 진리를 찾는다. 문화유산은 물리적으로 오래되고 고귀한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그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정신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의성김씨 학봉종택은 정신적으로나 인물사적으로 가치가 높으며, 이들 가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현재 종택은 진행형이며 과거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문화와 종가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