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카운슬러, 안동건강가정지원센터 최정희 상담팀장(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우리마음의 상처, 대화로 풀어내기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를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 번은 교류분석 이론 중 스트로크라고 했다. 이 이론에서 스트로크는 ‘어루만지다’ 혹은 ‘쓰다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어릴 때에는 쓰다듬어 주거나 어루만져주는 직접적인 스킨십을 통해, 성인이 되어서는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거나 긍정해주는 반응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트로크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인 동시에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자극이기도 하다. 때문에 스트로크의 결핍은 나와 타인과의 갈등을 야기하고 원만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크건 작건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문제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생활 속에서 그러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딱히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감정 쯤 겪고 사는 게 삶이라고, 술잔에 기울여진 그 날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사라지는 숙취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관계의 문제에 대해, 그것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과음을 잘못한 날에는 한마디로 토사곽란이다. 단순한 숙취로 끝날 수 없을 것이다. 고민과 갈등이 있는 삶은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왜 상처를 숨기는 것에 그리도 관대할까. 내가 타인으로부터 최상의 상태로 인정받기 위해서 나의 상처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트로크 이론대로라면 우리는 꾀나 어긋나 있는 이기적인 존재인 것이다.
여기에 아주 간단한 해답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말하지 않고서는 병이 된다면 그저 말하면 된다. 화를 누그러뜨리고 잘 모르고 있던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대화이다. 누군가가 내 얘기를 경청해 준다는 안정과 위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충고로부터 얻는 해방감은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누군가를 찾는 인간의 본연이고 그것의 수단은 대화이다. 먼저 갈등이 있는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잘 되면 좋지만 잘 안 되는 경우는 싸움으로 번진다. 그래서 우리는 제 3자를 찾아야 한다. 믿을 만한 사람, 적절한 질문으로 현답을 찾아주는 사람, 바로 상담가다.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해주는 직업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신병자’라는 엄연한 표준어가 용례에서는 사실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욕에 가까운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과에 가면 큰 일이 나는 줄 안다. 혹은 상담실 근처에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사회생활에서 도태되거나 내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 불안정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우리는 상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해와 편견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상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좋은 상담실을 한 군데 소개해 보고자 한다. 안동대학교 생활과학관에 숨어(?)있어 개소한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안동건강가정지원센터(센터장 현은민)다. 다양한 가족사업을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안동건강지원센터 최정희팀장의 바쁜 일정을 틈타 캠퍼스를 거닐었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2009년 5월 개소한 안동건강가정지원센터는 안동대학교의 산학협력기관으로 선정되어 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건강가정기본법에 의해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는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사회가 우리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정문제의 해결을 위한 좋은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아기 엄마들 사이에 많이 알려진 가족 돌보미 서비스부터 문화, 교육, 상담이라는 세부적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가족들에게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성과 양성평등에 대한 열린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가족이 함께 가족의 건강함을 위해 교육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매월 셋째 주 수요일 패밀리 데이를 정해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활동이 있다. 교육 분야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한 부모, 예비 부부, 군인가족, 노년 부부 등의 다양한 가족을 대상으로 각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 가정에 맞는 좋은 교육 내용들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특히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바쁜 맞벌이 부부와 아빠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 구성은 문화생활의 기회가 적은 안동의 지역적 한계에서 볼 때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체험활동을 가장해 교육의 효과를 보고자 하는 경우가 불가피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대놓고 하자니 안동 아빠들, 참여를 안 한다. 그래서 가끔 교육을 위해 아빠와 함께하는 매직쇼 라든가 만들기 등의 체험 후 은근슬쩍 양성평등이나 성에 대한 교육을 슬며시 시작하면 안동 아빠들 원하지도 않는 교육을 억지로 시킨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안동에 살다보면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안동 사람들은 직접대화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쑥스러운 대화는 가급적 하지 말자는 주위라고나 할까. 안동이 상담문화에 있어서 상당히 후진적인 성향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는 최정희 팀장의 일침이다.
상대의 아픔에 귀 기울이기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분야로 최정희 팀장이 담당하고 있는 ‘상담’이다. 물론 최근 지자체에서도 가정폭력상담소나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을 통해 상담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보다 복합적으로 가정 전반의 문제라든가 개인의 고민과 상담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동건강가정지원센터는 분명 전문성과 메리트가 있다.
상담은 꽤 구체적으로 이뤄진다. 개인과 집단으로 나누되 집단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여러 팀을 구성한다. 물론 팀 구성은 적절한 인원이 모여야 만들어 진다. 작년에는 한 달 평균 100건 정도의 상담을 했다는 최정희 팀장은 올 해는 상담 건수가 그 반에도 못 미쳐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인력부족인 것 같다. 상담 전문가가 실 업무까지 동반하고 있으니 저절로 상담시간이 줄어들었다. 아직은 사업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터라 공동 모금회를 통해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업신청에서 보고까지 준비해야 할 서류, 책임자 입장에서 팀을 조직하여 다뤄야하는 스케쥴까지. 이제는 보도자료니, 결제서류니 말만 들으면 척척해낸다니 실무자로 단련된 상담가의 안타까운 토로다.
하지만 성과는 눈부셨다. 안동시청에서 지난 2010년 1도시 1특성화 지원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던 농촌 어르신 행복만들기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남겨 올해도 같은 사업안을 가지고 공동 모금회에 지원을 했었다. 다행히도 지원을 받게 되어 총 13회기에 걸쳐 어르신들의 집단미술치료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농촌 어르신들의 자아존중감이 사후 긍정적으로 변화된 결과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내년에는 우리 마을도 해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는 성과가 아닌가 싶다.
대외적인 프로그램 외에도 찾아가는 상담도 있다. 영양 사동으로 상담사를 출장(?) 보냈던 경우는 조손가정의 아이를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요청이 들어와 기획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산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상담사에게 직접 상담비를 마련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최정희 팀장이 맡고 있는 상담 중에는 이혼조정상담이 있다. 지금은 법원에서 부부를 센터로 보내지만 전에는 최정희 팀장이 직접 법원으로 가서 판사 옆에 앉아 조정상담을 했다. 그래서 나오는 유급으로 상담사의 상담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최정희 팀장의 개인 급여지만 더 나은 상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아낌없이 살림에 보탰다고 한다.
반응도 좋고 또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으나 열악한 예산구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상담을 통해 도움을 주려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최정희 팀장의 답답한 심정이 느껴졌다.
인터뷰 당일에도 이혼조정상담을 하러온 한 부부가 있었다. 가정의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대게 가정 폭력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최정희 팀장은 가능한 이혼을 하지 않도록 상담하지만 폭력의 정도에 따라서, 행위자와 피해자의 의지 여부에 따라서 건강하게 이혼을 하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시민에게 개방된 상담, 편하게 받으세요
최정희 팀장에게서 은근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데, 그것은 아마도 가정폭력에 대한 집단 상담의 중요성 때문에 최정희 팀장 상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정폭력의 가해자 또한 어린 시절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상담 시 우리가 흔히 부르는 가해자를 행위자로 지칭하고 있는 점이 신선했다. 지역의 인근 교도소와 가정 폭력 부부의 집단 모임을 통해 피해자가 아닌 행위자를 위한 집단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행위자를 위한 상담 역시 진보적인 상담 변화에 대해 긍정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현재 센터에서는 개인 상담의 경우 평일 오전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방문하면 되고 집단의 경우 일정 수 이상이 모이면 꾸려진다. 요즘은 학교 등 기관에서 집단 요청도 들어오는데 방학이 끝나는 8월부터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자아를 높여주면 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완화된다는 최정희 팀장의 얘기에 학교가 아이들 문제를 예전처럼 ‘일부 학생’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상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폭이 넓어져 가고 있는 변화로 보였다.
현재 안동대학교에 위치한 센터는 6월 중순 안기동 구 동사무소 자리로 이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무료로 상담이 가능하고 이제는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자리로 옮겨갈 예정이니 많은 안동 사람들이 그 곳을 ‘쉬운 곳’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우리 남편이 바뀌었어요
1952년생 최정희 팀장은 결혼 전후 3년간 예천의 감천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교사생활을 그만뒀던 이유는 남자 선생들의 흡연 때문이었다. 임신한 여교사가 있건 없건 간에 담배를 피워대는 남자 교사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화가 났고 그런 환경에서는 차라리 교사생활을 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단 삼일이 지나 그렇게 쉽게 결정했던 것에 후회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정희 팀장에게 더 중요했던 이유는 양성평등의 문제였다.1970년대의 고용구조는 여성에게 불리했다. 상대적 소수자였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평가받고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될 게 없는 시대였다. 어쩌면 최정희 팀장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만큼 그녀에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여성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더 컸을 것이다.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뒤에도 가정을 꾸리고 그녀는 한동안 학교에서 상담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5년 5월 대구의 여교수 몇 명이 애린회라는 여성 모임을 만들었다. 배경은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는 여성을 돕자는 취지였다. 최정희 팀장 역시 1987년부터 지금의 ‘여성의 전화’ 의 전신이기도 한 ‘애린회’ 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많은 여성의 사회적 문제와 부딪히면서 최정희 팀장은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1년 대학원을 진학했다. 이 후 1994년부터는 ‘여성의 전화’ 차기대표활동을 했고 1997년부터 2000년도 까지 대표를 역임하게 된다.
2009년 안동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상담팀장직이 공석이 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여성에 대한 문제, 가정과 가족에 대한 사회적 문제에서 많은 사례를 통해 30년 가까이 상담을 해왔던 그녀가 상담의 오지인 안동에 왔기 때문이다. 사실 상담은 센터의 이름보다 상담가의 상담 자질을 보고 가는 경우가 더 크기 때문에 최정희 팀장의 탄탄한 이력에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안동건강가정지원센터의 팀장으로 1년여 간 근무하면서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큰 딸은 결혼해서 서울에 자리 잡고 살고 있으나 그녀의 본가인 대구에는 남편과 아들, 두 부자가 살고 있다. 주말마다 보기는 하지만 주중에 모든 살림을 남편과 아들이 도맡아 한단다.
한 학년 선배이면서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난 그녀의 부군은 울진 남자다. 7남매의 맏이에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터라, 결혼 당시 여자를 옷에 장식하는 브로치쯤으로 생각했다는 그녀의 남편은 10년여 간의 훈련(?)을 통해 이제는 다림질도 수준급일 만큼 주부가 다 되었다고 한다. 여자를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던 부군도 특이하지만 그런 남편을 훈련을 통해 변화시킨 최정희 팀장 역시 대단해 보였다. 그런 기술은 살짝 부럽기도 했다.
이해와 공감으로 건강한 가정 만드세요
최정희 팀장은 늘 자녀에게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삶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공부할 시기에 공부해라 어디 대학가라는 말 대신 ‘행복’만 강조해 다른 것에 신경을 못 써준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비춰졌다. 딸이 고3일 때 그녀도 함께 석사논문을 준비하느라 여느 집 고3처럼 챙겨주지를 못했다. 하지만 장성한 자식들에게서 엄마가 그렇게 키워줘서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다니, 그녀가 자신의 일에서 이뤄낸 것들 또한 그 행복에서 기반을 찾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상담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조를 통해 시작된다.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삶도 행복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에게 상담의 기술은 없지만 상담의 자세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갈등 관계에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상담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여긴다면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동에서도 지금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등 곪을대로 곪은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데 지역 정서상 쉬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원인을 찾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쉬쉬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할수록 상담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단순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가지고 상담실 문을 두드려 본다면 보다 쉬운 발걸음이 될 것이다. 급속도로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있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일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움직여 보자.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