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라지고 없는 풍경들...(글/임세권)용상다리
겨울방학이 끝나고 3월 개학이 되면 아직 쌀쌀한 이른 아침 아이들이 얼금얼금한 나무틈으로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다리 위를 곡예하듯이 달려 학교로 간다. 왼쪽 미루나무 숲이 있는 정상동 아이들은 이 너른 강을 건너 용상동으로 학교를 다녔다. 봄날 아침 강변에 나와 이 다리가 만드는 풍경을 보면서 강가에 사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었다. 이제 다리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 용정교가 걸렸다. 미루나무 숲 뒤로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다리 저 뒤에 보이는 야산 중턱도 모두 아파트로 덮여 버렸다. 자동차로 용정교를 건너노라면 이 사진의 풍경이 생각난다.
강변벚꽃길
그 때 낙동강 뚝길은 정말 걸을 만 했다. 4월이나 되어야 피기 시작하는 벚꽃은 서울보다도 더 늦어서 촌사람 차별하는 것 같았어도 이르나 늦으나 화사하기는 마찬가지니 크게 억울할 것은 없었다. 온 안동사람들이 어린 아이들부터 늙은 노인들까지 뚝길로 모여들었다. 강뚝 아래에는 노란 장다리꽃이 제주도 유채꽃 부럽지 않게 강바닥을 물들여 놓곤 했다. 이제 벚꽃길은 찻길과 이런저런 건물들로 강과 가로막혀 좁은 골목길처럼 되어 버렸다. 장다리꽃이 피던 강바닥은 저 뚝길 만치나 높아져서 넓은 강변도로가 생기고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들로 강으로 내려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변에는 꽃길도 가꾸고 자전거도 탈 수 있어 사람들이 모여든다.
신덕 옹기가마
80년대 말 쯤으로 기억되는 어느 봄날, 따스한 봄볕에 옹기가마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아침 햇살에 붉은 살결을 드러낸 옹기들은 얼마나 따스하게 보이던지. 조선왕조 후기 박해를 피해 이곳 임하면 신덕의 산골까지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옹기를 구워 목숨을 부지했다. 그것이 수백년을 지켜오다가 이제 옹기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고 생업으로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몇 년전 다시 찾았을 때 옹기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임동 중평리
저만치 마을 뒤로 우뚝 솟은 다릿발 위로 상판이 걸리고 자동차들이 내달린다. 임하댐에서 가장 긴 다리, 중평교가 건설되던 88년 봄 임동면소재지 중평동에서 만났던 풍경이다. 그 때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에 실패하고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그 어지럽던 87년 겨울의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였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저 뒤의 다릿발 중턱까지 물이 차오를 땅에 노 부부가 마늘을 심고 있다. 지금 그 자리에 다시 가면 오직 푸른 물결만 바람에 출렁일 뿐, 땅과 마을과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