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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가도에서 들여다본 독일의 중세(글/사진/임세권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7월 16일, 여행 22일째 아침. 호텔은 싼 만큼 작고 어수선했으나 아침에 현관을 나서니 정면으로 극작가 호프만(E.T.A. Hoffmann, 독일 후기의 낭만파 소설가)을 기념하여 지은 호프만 극장이 있고 그 옆으로 우거진 숲 사이로 옅은 안개가 흐르는 공원이 보여 기분으로는 일류 호텔이다. 호텔 뒤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레그니츠 강이 흐르는데 강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운하처럼 이용을 하고 있어서 밤베르크에 리틀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기도 하다.
밤베르크는 인구가 8만 명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약 천 년 전에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인구의 8할이 가톨릭 신자인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도시이다. 천 년 간 만들어진 성당이 대략 70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톨릭의 전통이 얼마나 강한 지역인지 짐작할 만하다.

아침을 안상준 교수 집에서 먹었다. 안 교수는 밤베르크 시청 광장에 붙은 2층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뒤쪽 창문으로 경사가 급한 이 지역의 전적 지붕들이 내다 보였다. 지붕들은 오랜 시간들이 쌓인 듯이 적당히 세월의 때를 이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창밖의 낡은 지붕들이 오랜만에 마주 앉은 안교수 부부 그리고 이제 겨우 세 살을 넘긴 솔이까지 모처럼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커피와 빵과 샐러드의 간단한 식사였지만 정말 맛있는 식사였다.

작은 베니스 밤베르크
시청 광장에는 주로 시장이 서서 과일이나 채소 등을 구입하는데 편리했다. 시청사 맞은편에는 백화점도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하게 생각되었다. 출근하는 대학도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고 밤베르크의 모든 곳을 15분 안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공해도 없고 사람도 차도 많지 않아 한적하고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위에 뜬 시청사가 가르는 성과 속의 세계
하루의 일정을 그냥 안 교수에게 맡기기로 했다. 유모차에 올라탄 솔이까지 동행한 안 교수 가족과 함께 먼저 밤베르크 대학으로 향했다. 안 교수가 연구하는 오토 프리드리히 밤베르크 대학은 일정한 공간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도시 중심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자리 잡고 있어서 돌아볼 만한 캠퍼스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의 거리가 그대로 대학가를 이루고 있어서 밤베르크는 대학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안 교수 연구실은 ‘역사와 지구과학 학부’라고 동판이 붙어 있는 건물의 2층에 있었는데 옆에는 중세사 주임교수 클라우스 반 아이켈스의 방이 있었다. 그는 머리는 반백이었지만 얼굴은 아직 50이 안되어 보였고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미남자였는데 독일 중세사를 연구하는 안 교수에게 무척 호의적이라고 했다.

대학을 나와 시내 중심가를 거쳐 레그니츠 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강을 건너는 다리 한 가운데 섬처럼 지어진 오랜 건물이 지난날 밤에 보았던 구시청사였다. 이 건물은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였는데 이 건물을 기준으로 강의 서쪽 언덕 위로 구시가지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현재 밤베르크의 중심가가 조성되어 있다. 중세의 구시가지 지역에는 귀족과 성직자들이 살고 동쪽의 신시가지 지역에는 평민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성직자와 일반 평민들이 시청사의 위치를 서로 자기들 지역에 지으려고 대립하다가 결국 강의 중심에 세웠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중세에도 평민들이 교회세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을 건너 서남쪽을 보면 밤베르크에서 가장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웅장하게 올라앉은 성이 보인다. 높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밋밋한 언덕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성은 밤베르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그것이 바로 알텐부르크 성이다. 이 성은 1109년에 피난처로서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지게 되었는데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밤베르크의 주교들에게 아주 좋은 거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553년 Second Margrave War(2차 제후전쟁) 시기에 알프레드 알치비아데스 폰 브란덴부르그-쿨름바흐 후작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단 하나 남은 중세 건축은 33미터에 이르는 13세기의 첨탑의 일부이다. 19세기인 낭만주의 시기에 알텐부르크 성은 다시 재건되었다. 호프만은 1812년에 성의 탑 중 하나로 은둔해 들어갔다고 한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엄청난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 산기슭은 귀족들의 주거지였음을 보여준다. 뙤약볕을 천천히 걷다보니 길은 어느새 캄캄하게 느껴지는 깊은 숲으로 접어들었다.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길이 뚫리면서 성벽과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 내부에는 당시 귀족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건축이라든가 웅장한 성벽 등이 볼거리였다.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경관은 땡볕에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다. 성에서 동북쪽으로는 산 바로 밑에 서있는 대성당과 그 아래로 펼쳐진 밤베르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유럽 중세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서쪽으로는 울창한 삼림이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노랗게 익은 밀밭이 완만한 경사지에 펼쳐져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밤베르크 시가지에서 눈을 오른쪽으로 옮기자 아름다운 마을 풍경 뒤로 고층의 현대식 아파트가 건설 중이었다. 그 아파트는 전체 경관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독일도 할 수 없는가? 하는 실망감에 마음이 상했다.

천사 그림을 대신한 미카엘 수도원의 약초 천정화
다시 성 밑으로 내려가서 대성당과 성 미카엘 수도원, 그리고 또 몇 군데의 성당을 둘러보았다. 밤베르크를 대표하는 성당으로는 물론 밤베르크를 상징한다는 네 개의 첨탑을 가진 대성당을 꼽을 수 있다. 이 성당에 붙은 두 개의 궁전과 궁전에 붙은 장미정원이 유명한데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성 미카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의 성당 천정에는 다른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천사들의 벽화 대신 식물 그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림들은 마치 식물도감에서 보는 것같이 정교한데 모두 약초들이며 대략 600여 종이 된다고 했다. 이 성당에서는 약초가 천사였다. 성당의 중앙제단 뒤에는 오토 성인이 잠들어 있는 관이 있는데 관 아래쪽에 관을 관통하는 통로가 있다. 통로는 아치형으로 어른 하나가 허리를 구부리고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데 이곳을 통과하면 모든 병이 치유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우리도 신앙심은 별로 없지만 하나님께서 차별을 하실 것 같지는 않으니 한 번씩 통로를 빠져 나왔다.

수도원 앞 정원에는 지금도 많은 약초들이 재배되고 있는데 약초를 설명한 안내판에 시편 104장 14절이 써 있었다.
“가축들을 위하여 풀이 나게 하시고 사람들이 가꾸도록 나물을 돋게 하시어 땅에서 빵을…….”
중세의 수도원은 병을 치료하는 역할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농민들은 병이 나면 치료받을 병원도 없고 하니 삶의 모든 고난을 신께 의지하였을 테고 그래서 성당이나 수도원은 병을 고쳐주는 유일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얼굴이 언뜻 비쳤다. 다시 보니 아이들은 모두 인형이었는데 마치 길 가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보니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창가 장식을 집안에서 보도록 하지 않고 밖에서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이것도 남을 위한 하나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시내로 들어와 집으로 가는 도심 한복판에서 안교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자동차들이 바쁘게 오가는 길옆으로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그 뒤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건물들이 보였다. 이 동네가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 헤겔이 살던 곳이라 했다. 헤겔은 1807년부터 1808년까지 저 앞에 보이는 회색 건물에 살면서 밤베르크 차이퉁이라는 잡지의 편집장 일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관념론을 대표한다고 하는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이 이곳에서 쓰여졌다고 한다.
밤에 밤베르크의 유명한 훈제맥주를 한잔 했다. 내가 술을 못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도 술과 관련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오르지 않지만 아내는 술깨나 하는 집안 출신이니 이따금씩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안 교수 가족도 있으니 독일의 유명한 흑맥주 생각이 난 모양이다. 밤베르크는 유명한 라우흐비어 즉 훈제 맥주의 고장이다. 훈제 맥아를 사용해서 만든다고 하는데 독일에서도 밤베르크에서만 주조한다고 하는데 술잔에 코를 갖다 대니 마치 훈제 연어 같은 냄새가 났다. 골목에서 지나친 한 맥주집은 400년이나 된다고 했다.

3.25리터의 포도주로 살려낸 성곽도시 로텐부르크
다음날 아침 안 교수 가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로 출발했다. 뒷자리가 좁아 안 교수 세 식구가 앉아 가기에는 좀 불편할 듯 했는데 아직 솔이가 세 살짜리 아기이니 그런대로 견딜 만해 보였다. 내비게이터에 로텐부르크를 입력하고 시키는 대로 따라갔더니 안 교수가 방향이 이상하다고 했다. 반대편으로 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다시 지방도로 내려가서 내비게이터를 살펴보니 같은 이름의 다른 도시를 찍었다. 독일에서는 그런 실수가 종종 있다고 했다. 사흘 전 다카우 수용소를 찾을 때의 실수가 생각났다.

밤베르크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의 길은 독일에서는 고성가도(古城街道)로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이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시작하여 독일의 바이로이트, 밤베르크, 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 하이델베르크로 해서 만하임에 이르는 긴 길이다. 이 길에는 유난히 옛 성곽도시들이 많이 있어서 고성가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제 밤베르크에서 시작하여 로텐부르크와 하이델베르크까지 가게 되니 고성가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세 도시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로텐부르크로 가는 지방도로로 내리면 이내 맞은편으로 중세의 분위기가 풍기는 성곽도시가 보인다. 아니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아니라 몇 백 년 전에도 지금 저 모양 그대로였을 것이다. 로텐부르크는 지금까지 거쳐 온 여느 옛 도시와 달리 완벽하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안에는 수백 년 전 옛 길과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현대적인 건물이나 조형물이 들어설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이런 도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독일 사람들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이 아름다운 성곽 도시의 40퍼센트가 파괴되었다고 했다. 물론 지금 은 도시 어느 곳에서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전쟁의 참화가 이 도시를 비켜가지는 않았으나 시민들은 아름다운 옛 도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구해냈다. 이 도시와 관련된 대표적인 이야기도 전쟁에서 도시를 구해낸 이야기이다.

신교도와 구교도의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1년 신교도측인 로텐부르크를 점령한 구교도 측의 틸리라는 장군은 이 성을 불태우고 신교도들을 모두 처형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틸리 장군을 위한 연회가 있었는데 시의원 한 사람이 3.25리터의 잔에 가득 채운 와인을 장군에게 바쳤다. 기분이 좋아진 장군은 이 술잔을 단숨에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성을 불태우지 않고 신교도 처형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자리에서 시장을 지낸 느슈라는 사람이 단숨에 술잔을 들이켜 버렸다. 틸리는 약속대로 성을 그대로 두고 물러났고 로텐부르크는 30년 전쟁의 불길을 면하게 되었다. 매년 6월에 있는 마이스터트룽크 축제는 이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고 축제 시 느슈 시장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공연된다고 한다.

물이 없는 해자를 가로지른 돌다리가 성문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성문은 안으로 들어가면 둥글게 원형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통과해서 다시 안쪽 문을 지나야 하는 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차는 성안 중심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았으나 시청 광장 옆으로 동서로 벋은 넓은 길 옆에 차를 댈 공간이 있어 다른 차들 사이에 겨우 끼워 넣었다. 이미 열두 시가 넘었다. 근처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이곳은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중간에 잠시 들려가기로 한 곳인데 와보니 그렇게 스쳐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곳이다.

시청사 앞은 마르크트 광장이라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광장 주위로 골목들이 사방으로 뚫려 있다. 광장 주변과 골목에는 가지각색의 인형이나 먹을거리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골목길의 상점 간판은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골목을 연상케 할 만큼 예쁘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유독 크리스마스 풍의 디자인들이 많았다. 알고보니 이곳은 크리스마스 박물관이 있을 만큼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시청사에는 60미터의 높은 종탑이 있는데 올라가면 동화 속의 마을 같은 로텐부르크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오르지 않기로 했다.

시청사 옆의 좁은 길을 내려가면 성 야콥 성당이 있다. 성당은 공사 중이었고 공사를 위해 막아놓은 판자벽에 2011이라는 숫자를 크게 써넣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2011년에 다시 문을 연다는 말이겠다. 포스터에 작게 쓰인 짧은 영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로텐부르크의 성 야콥 성당은 700년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보물을 미래를 위해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사장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지금은 공사 중이오니 불편하시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사 중이긴 했으나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그리고 오후 2시에서 4시까지는 일반에 개방하고 있었는데 2시가 되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입구에서 내부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유명한 조각들도 많은데 아쉬움이 컸다.

형벌박물관에서 단원의 서당그림을 보다
로텐부르크에는 박물관이 많았는데 그 중 형벌박물관이라는 곳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래 위층의 넓은 전시실에는 중세 시기의 여러 형벌도구들과 형벌과 관련된 고문서나 그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진열된 유물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것들이었는데 보는 사람들은 코미디를 보는 듯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바닥과 팔걸이 등에 온통 뾰족한 못을 박은 쇠로 만든 의자, 마녀 재판과 관련된 필사본 문서, 팔이나 다리 또는 머리를 묶어놓는 나무나 쇠로 만든 형틀, 쇠와 가죽으로 만든 정조대도 있었다. 가죽제품이야 그런대로 견딜 수 있다고 하지만 쇠로 만든 정조대를 어떻게 다리 사이에 장착을 하고 있었을까? 푸줏간에 매달린 고기처럼 쇠갈고리에 걸려 있는 사람들의 고판화도 있고 돼지 항문에 머리를 바짝 들이밀고 있는 죄수 그림도 있었다. 당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힘들었을까마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 그들을 들여다보니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박물관에 오니 안상준 교수의 해설이 빛이 난다. 지금까지 20여일을 까막눈으로 보고 다닌 것이 아쉽기 짝이 없었다.

한쪽 벽에 정말 눈길을 끄는 진열장이 있었다. 인형을 사용한 디오라마 전시장이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 풍경이었다. 오른쪽 교단에는 선생님이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를 옆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고 선생님 왼쪽에는 두 팔을 수평으로 들어올린 아이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런데 삼각형으로 쪼개진 장작의 뾰족한 모서리가 무릎 밑을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그냥 벌이라기 보다는 고문에 가깝게 보였다. 교실 뒤에는 조교처럼 보이는 선생님이 책상에 엎드린 아이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내려치고 뒤쪽 구석에는 벽을 보고 한 아이가 서 있다. 나머지 아이들은 책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힐끔 힐끔 벌서는 아이들을 쳐다본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표정과 몸짓이 너무 재미있어 그 앞에 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깔깔대며 벌 서는 아이들에게 연신 손가락질을 해댄다. 진열장 앞에서 나는 김홍도의 풍속화에 나오는 서당 풍경이 생각났다.

성벽 위로 올라 성 안과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는 서둘러 로텐부르크를 떠났다. 이제 하이델베르크로 간다. 차 유리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한 밤이었고 빗줄기는 세차게 차창을 때려 댔다. 내비게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골목길을 찾아들어 안 교수의 유학시절 친구인 베르너 봄 교수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중세사 교수로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벽에 붙은 서가와 탁자 위의 책들, 서가에 걸린 그림들이 젊은 학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안 교수 식구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몇 년 안본 사이에 태어난 솔이를 처음 보고 특별히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차를 한잔 마시는 사이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우리 숙소를 예약해 주었는데 숙소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문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묶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덕분에 우리는 비까지 오는 밤중에 호텔을 구하느라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안 교수 가족들과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낭만
7월 18일 토요일이다. 지난 밤 세차게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치고 깨끗한 하늘이 좁은 게스트 하우스 마당 위로 걸려 있었다. 나에게 하이델베르크는 ‘황태자의 첫 사랑’이라는 영화로 각인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 보았는지, 중학교 때 보았는지 기억이 없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하던 황태자가 하숙집 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 뒤로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한 두 번 더 본 듯한데 이 영화의 ‘드링크 송(축배의 노래)’과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우리 함께 즐기자)’는 대학에서 합창을 하던 시절 줄기차게 부르던 노래들이었다. 영화에는 에드먼드 퍼덤이라는 배우가 나왔으나 노래는 마리오 란자가 불러 유명했다. 당시 마리오 란자는 트럭운전사로 일하다가 클래식 가수로 출세를 하게 되었으나 서른 여덟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클래식 쪽에서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나 할 수 있을까? 어쨌든 하이델베르크는 나의 대학시절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라는 노래로 머리 한쪽에 기억되고 있었다.

숙소를 나와 바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들어갔다. 이 대학 역시 캠퍼스가 일정한 구획 안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도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간 대학 문은 하이델베르크 성벽에 붙어 있었다. 성벽은 무척 두터워서 그 안에 학생식당이 있었고 내부를 들여다보니 일반인들도 식사를 하는 듯 했다. 거리 여기저기에 대학의 도서관과 성당 등이 있어 기웃거리다가 유명한 대학 감옥을 들어가 보았다. 감옥은 중세 대학이 완전한 자치를 구가하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그냥 관광지의 구경꺼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감옥으로 쓰던 좁은 방안에 가득 쓰인 낙서들은 그냥 무대미술로 꾸며진 듯 보일 뿐이다. 그러나 1386년에 처음 세웠다고 하니 대학의 역사는 거의 730년에 이른다. 대학을 끼고 이리저리 돌아가는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그 많은 세월의 무게가 대학 뿐 아니라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거리 곳곳에 묻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검색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현대의 여느 대학과 다를 바 없으면서도 대학의 외관은 여전히 수백 년 전의 그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들이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이델베르크의 몇군데 명소를 돌아보다가 명품가게들이 즐비한 하우프트 스트라쎄 대로변에서 계획에 들어있지 않던 박물관을 보게 되었다. 쿠르펠찌쉐스 박물관이라고 붙어 있었는데 나중에 한국어 안내서를 보니 선제후 박물관이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이곳은 하이델베르크의 역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뜻밖에도 학교 다닐 때 책에서 보았던 고인류 화석 ‘하이델베르크 인’의 턱뼈가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고고학 자료를 비롯 중세 및 근현대 미술, 중세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미술품들이 잘 전시되어 있고 어린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촬영금지로 유물은 물론이고 내부 모습을 하나도 남기지 못해 아쉽다.

시간의 자국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고성의 성벽
하이델베르크 구경의 클라이막스는 누구에게나 하이델베르크 고성일 것이다. 하이델베르크를 상징한다는 성령교회의 뒤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산을 향하여 올라가면 성으로 오르는 계단이 시작된다. 몇 발자국 오르다보니 계단마다 숫자를 써 놓았다. 몇 백 개의 계단이지만 숫자를 헤아리면서 올라가면 힘이 덜 들 것이라는 생각에서 써놓은 듯 했다. 사실 이런 것은 별 것 아닌 것도 같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가위 바위 보라도 하면서 숫자를 세면서 올라가면 또 다른 추억도 생기지 않을까?

계단의 끝에 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성은 1225년 처음 축조되었다고 하는데 여러 시기의 증 ․ 개축을 거쳐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등이 두루 섞여 있다. 대체로 수백 년씩 짓고 고치고 하면서 완성된 유럽의 옛 건축들은 이처럼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현재의 성의 모습은 중심 건축물인 하인리히관과 프리드리히관을 제외하면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는 17세기 전반 30년간의 종교전쟁으로 상당부분 파손되었고 그후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상속권 분쟁으로 다시 전쟁에 휩쓸려 파괴되어 다시 복원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문화재의 원상복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원상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파괴되지 않게 보호하여 현재의 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게 조치하여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유적을 대하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과거의 역사에 대한 외경심이 생기게 된다. 이는 우리의 문화재 보존 정책이 배워야 할 점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옛 유적의 터에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짓는 건축물들은 그냥 21세기 초반의 건축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프리드리히관 지하에 있는 세계 최대의 술통을 보고서다. 최근 우리나라 여기저기서 세계 최대가 많이 등장했다. 세계 최대의 북, 세계 최대의 옹기 독, 세계 최대의 종, 이런 걸 기네스북에 올리기 위해 만든다니 도대체 기네스북이 무엇이길래 가뜩이나 가난한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하듯이 시민 세금을 물 쓰듯이 써서 이런 경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이델베르크의 세계 최대의 술통은 수백 년간 술을 빚어왔고 실제로 사용된 역사적 유물이다. 그것은 세계 최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 필요에 따라 사용해 온 것이다. 세계 최대의 목적이 그냥 세계 최대일 뿐이라면 그것은 넌센스 코미디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현대와 중세의 만남, 프랑크푸르트
이제 적당할 때 하이델베르크와 작별해야 한다. 일찍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서 쉬고 다음날 귀국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 시내까지는 대략 90킬로미터 정도이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의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 것은 세시 반이 좀 지나서였다. 우리에게 프랑크푸르트는 관광의 대상이 아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장이 있는 곳이고 파리 드골 공항에서 빌린 차를 반납해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다행히 비행기 시간이 저녁 7시 45분이니 다음 날 점심 때까지는 여유가 있다. 그 시간을 별다른 계획 없이 그냥 산보하듯 돌아다니기로 했다.

예약된 이비스 호텔은 마인 강변에 있었는데 호텔 앞길이 공사 중이라 호텔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길 한쪽에 차를 대놓고 예약 확인을 한 후 직원 안내를 받아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방에 짐을 풀어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강변은 넓은 공원으로 되어 있는 것이 서울의 한강이나 비슷했는데 다른 점은 숲이 우거져 있다는 것이다. 시멘트 바닥을 만들어놓고 코스모스로 생색내는 한강변과는 크게 달랐다. 숲이 우거진 공원에서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강은 한강처럼 넓고 수량도 풍부했다. 그리고 보니 이 강은 밤베르크 근처에서 레그니츠 강과 합류한 후 서쪽으로 서쪽으로 흘러 이곳까지 와서 프랑크푸르트를 벗어나 마인츠라는 곳에서 라인강과 합류되는 524킬로미터나 되는 라인강 최대의 지류였다.
강을 따라 걷다보니 보행자 전용의 현수교가 강 건너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리 중간 중간에는 멋진 미술작품들이 복제된 대형 간판들이 걸려 있었는데 강 건너 있는 슈테델 미술관의 전시회 안내판이었다.

다리 중간에 서서 시내쪽을 돌아보니 왼쪽으로는 초현대식 원형 빌딩이 하늘을 받치는 기둥처럼 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대성당의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슈테델 미술관을 돌아보고 그 옆으로 있는 영화박물관도 겉핥기나마 둘러보고 다시 강을 건너 대성당을 향해 걸었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13세기에 건립되었고 고딕 첨탑은 15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으며 그래서 카이저 돔이라고도 부른다. 탑은 공사 중이어서 중간 아래쪽에 흰색 포장이 치마처럼 둘러쳐 있었다. 박물관은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니 성당의 첨탑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고고학 정원’이라는 옛 유적이 있었다. 지하의 유구를 발굴하여 현장을 그대로 보존 전시하고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오랜 역사 유적이라고 했다. 로마시대 목욕탕의 흔적과 앞에 있는 대성당의 기초 부분도 드러났다. 1953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1973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오랜 역사를 몸으로 증언해주고 있었다.

대성당 옆에 있는 구시청사 앞을 들러 다시 강변길을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은 남은 음식을 처리할 겸 호텔방에서 해먹기로 했다. 이제 자동차에 실려있는 짐들을 다시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지고 갈 것은 트렁크로 옮겨야 한다.

7월 19일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 오전 시간이 여유가 있어 다시 시내로 나가 어제 시간이 늦어 보지 못한 괴테 하우스를 둘러 보기로 했다. 이제 아홉시가 좀 넘었는데 문 여는 시간은 열시란다. 어제 보았던 대성당 옆에 있는 구시청사 앞으로 해서 시가지를 어슬렁거려 보았으나 마침 일요일이어서인지 거리는 한적했고 문을 연 상점도 없었다. 다시 괴테 하우스로 갔다. 시간이 좀 남았으나 젊은 학생들이 몇 사람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열시가 되어 매표소 문이 열렸다. 이 집은 괴테의 생가라고 하는데 괴테의 서재라든가 생활하던 방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대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교한 연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괴테가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해주던 작은 인형극 무대와 원고를 쓰던 책상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책상은 정교하게 짜인 조립식이었는데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여 사진으로 대신한다. 이거 그대로 모조해서 하나 갖고 싶다. 지적재산권이 걸리긴 하지만 장사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쇼핑 한번 못한 26일 여행의 끝
괴테하우스를 나와서 귀국 전에 쇼핑을 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문 연 상점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쇼핑은 사고 싶은 것이 보일 때 그때 당장 사야 한다는 교훈을 또 다시 얻게 되었다. 정오에는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주차장에서 차를 뺐다. 일곱시 반 비행기니 공항에는 다섯시 정도까지 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마땅히 세운 계획도 없고 갈만한 곳도 생각나지 않고 쇼핑도 안되니 일단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쇼핑한다고 몇 군데 더 왔다갔다 했더니 시간도 많이 지났다. 자동차를 반납하는 컴퓨터에서 프린트 된 렌트카 대리점 주소를 내비게이터에 입력하고 또 우리의 친절한 안내자 내비양의 안내대로 차를 몰았다. 파리 공항에서 차를 받은지 오늘이 24일째, 그간 사고 한번 없이 우리 두 가족을 잘 모셔 준 것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말이 그렇지 프랑스 깊은 산 속에서 고장이 난다든지 복잡한 이태리 도시 한 복판에서 접촉사고라도 나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난감했을까? 이렇게 고마워하면서 차를 모는데 멀리 작은 마을이 보이는 벌판 한 중간에서 내비게이터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인가 하나 없는 벌판에서 무슨 자동차를 반납하란 말인가? 뭔가 주소에 착오가 있지 싶었다. 앞에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서 몇 사람에게 프린트한 종이를 보여주며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주변을 빙빙 돌기를 한 20분쯤 되었을까, 길 가에 ‘홀리데이 인’이라고 쓰인 호텔이 보였다. 아 저 호텔에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무작정 호텔로 들어가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에게 자동차 회사 이름을 대고 혹시 아는가고 물었더니, 이런 황당할 데가, 이 호텔에 사무실이 있단다. 반갑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여 사무실을 물었더니 지금은 사람이 없고 전화를 해서 연결해 줄테니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전화에서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르노 리스카를 반납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차를 호텔 주차장에 놓고 인수증에 싸인하고 그냥 가란다. 모두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생각보다 너무나 어렵게 찾았고 또 예상보다 너무 간단하게 반납처리가 되었다. 반납 시 차량 체크가 전혀 없었기에 나는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하여 자동차 부분 부분을 모두 사진으로 남겨 놓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로 공항으로 갔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역으로 나오니 이제 집에 간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보다 말다 하는 사이 잠이 들었다.
7월 20일 오후 1시, 26일 만에 인천에 도착하여 그대로 안동으로 향했다.

에필로그
생전처음 한 부부 만의 관광여행이었고 나도 처음 하는 유럽에서의 렌트카 여행이라 긴장과 걱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실수도 있긴 했으나 별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음은 같이 간 사람의 협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긴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여행은 짧고 여행기는 길었다. 처음에는 자동차 여행에 초점을 맞추려 했으나 쓰다 보니 생각대로 되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처음 다녀본 곳이지만 우리 안동에서도 내가 간 곳의 대부분은 많은 분들이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상하게 써 보아도 나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읽는 사람들은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특별히 감사를 드린다. <안동>

임세권 교수의 25일간의 유럽자동차여행기는 이번 호에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