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출신 민속학자,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관장(글/천남희_경기도 하남 사는 안동사람, 객원기자)천진기(51세) 관장은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13대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세간에서는 우리나라에 민속학과가 개설된 32년 만에 이 학과를 졸업한 최초의 박물관장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2회 졸업생이다. 졸업 후 영남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석사를 받았으며 중앙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졸업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한 것이 그에게 있어서 꼬리표가 아니라 간판이라고 말하는 천진기 관장, 이제는 더하는 것 보다 빼는 것이 훨씬 쉬워서 덧셈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고 뺄셈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그를 만나봤다.
“촌놈이 여 와서 앉아 있으니까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나요?”
그가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이다. 그리고는 내 고향과 아버지 함자를 먼저 물어봤다. 취재를 하러 간 내가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다. 서울 한복판에 내놓아도 다 찾을 수 있다는 우리 남매들의 닮은 얼굴로 그는 단번에 나를 알아본 것이다. 사랑방에서 연락 받은 후 같은 성씨라 먼 친척뻘이겠거니 생각했던 내 짐작과는 달리 그와 나는 7촌간으로 조카와 아지매로 불러야 할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도 나도 서로만 모를 뿐 나머지 가족들은 서로 자주 왕래하는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가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이 된 경사도 나 혼자만 모르고 온가족이 다 알고 있었으니 출가외인이란 말이 딱 그 짝이었다. 어쨌거나 얼떨결에 7촌 조카를 취재 하게 된 것이다.
그의 근무지인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은 때가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 날이다. 우산을 쓴 사람이나 쓰지 않은 사람이나 옷 젖고 발 젖기는 매 한가지로 도로를 걷는다기 보다는 작은 여울물을 건너는 모양새였는데 그 물들과 계속되는 빗물이 모여 다음날 서울도심을 누렇게 덮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취재하는 내내 물동이로 들이붓는 듯한 빗줄기에 그는 박물관 유물들이 혹 침수되지나 않을까를 염려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갈 먼 길을 걱정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던 비를 맞고 경복궁 안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을 때 다행히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다. 선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경내 건물들과 깔끔하게 가꾸어진 정원들이 비에 씻겨 그 청아함을 맘껏 뽐내며 대리석의 차가움을 잠시나마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다. 그날이 마침 화요일이라 박물관은 휴관일이었는데 외국인 몇 사람들이 그곳을 찾았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석동 마일 출신의 안동 촌놈일시더
그의 고향은 안동시 석동동 마일리이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필자의 조부모 산소가 그곳에 있기에 성묘 때 어른들을 따라 몇 번 가 본 기억이 있다. 송천에서 안동대학교 뒤 쪽으로 높은 산 몇 개를 넘어 도저히 인가라고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곳에 10여 채의 집이 있었다. 그곳이 마일리, 어른들은 ‘묄’라고 불렀다. 안동의 청학동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될 것 같다. 그의 선친은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서 일 년 농사를 지어 번 돈으로 그의 큰아버지가 그곳에 논을 살 때 그의 선친은 용상에 밭을 샀다고 한다. 당시 그곳의 논 값과 용상동의 밭 값이 같을 때였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늘 ‘논을 팔아 밭을 사는 양반 쌀밥대신 조밥을 드려라’고 말씀하셨단다. 딸 여덟에 끝으로 얻은 아들 둘의 교육을 위해 시내로 나오려고 미리 준비 해둔 것이다. 딸 여덟을 낳을 때 까지 항상 웃음과 사랑으로 어머니를 위로해 주신 분이지만 늦게 얻은 아들들이 낙동강을 건너 이십 여리를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마일이라는 곳이 자연생산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일정 이상의 인구가 늘어나면 알아서 밖으로 나와 줘야 서로의 경제생활이 유지되는 곳이었다.
그의 선친이 농사를 안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친척들을 배려하고 자식 공부를 시키려고 나온 것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블루오션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그의 사촌들은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한 사람의 운명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한다. 그가 돈을 벌지 않고도 대학원까지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미리 터를 잡아 준비해 놓고 ‘하는데 까지 해 보라’는 그의 선친의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선친의 선견지명으로 그의 안동시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안동 동부초등학교와 안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구미에 있는 금오공고에 입학했었다. 당시 안동시내 각 학교에서 한 명씩만 추천 받아서 들어갔었는데 혼자만 뽑힌 것이다. 가입학을 하고 훈련을 받았는데 적성에 맞지 않더란다. 그래서 중간에 자퇴서를 내고 다른 학생들보다 한 달 늦게 경안고등학교에 재입학했다. 3년 내내 앞선 성적으로 공부하던 그는 같은 성적의 한해 선배가 경희대학교 치의예과를 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당연히 그곳에 갈 것으로 생각하고 예비고사를 쳤었다고 한다.
안동대 민속학과 졸업은 내 최대 간판
“제가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거든요. 특별히 꿈도 없었고. 지금은 강의도 다니고 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때는 그냥 막연히 선배가 하는 대로 따라하면 당연히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험성적 7,8점이 모자라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려고 하는데 선친이 안동에도 대학이 있는데 시험이라도 한 번 쳐보고 가라고 해서 안동대학교에 원서를 썼고 전국에 유일한 학과 민속학과에 지원을 했죠. 본고사 치고 나니까 등록금을 안내도 되니 선친이 등록금도 안내도 되는데 한 학기 다녀보지 하시길래 다니게 된 겁니다. 계속 다닐 거였으면 교육과를 갔겠지요. 그래서 들어갔는데 한 학기 공부하며 신나게 놀다보니까 더 공부하기도 싫고, 그냥 즐겁게 학교를 다니다보니 어느새 졸업을 했더라구요.”
박물관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영남대학이나 중앙대학 출신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안동대학 민속학과 졸업생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고 한다. 그가 민속학과에 들어간 것은 전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학과라는 그래서 민속학과에서 1등을 하면 전국에서 1등 한다는 생각의 어린마음에 약간의 장난기였지만 다른 학과를 선택했으면 아마 명퇴를 걱정해야 될 나이라며 그때 민속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학문적인 것은 어렵지 않더라구요. 원서 강독을 많이 했었는데 제가 영어를 좀 했었거든요. 그때 영어로 된 원서를 많이 봤는데 지금까지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막상 졸업을 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 아무 할 일이 없는 겁니다. 끝에 얻은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 곁에 두고 싶어 가까운 대학을 권했던 아버님도 군대까지 갔다 와서 일없이 놀고 있으니 내쫒아야겠다 싶으셨는지 나가서 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대요. 그래서 어차피 시작한 공부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1년 반 동안 공부해서 대학원에 진학한 겁니다.”
안동이라는 문화적 배경, 민속학이라는 블루오션
어릴 때 낙동강에 목욕하러 가면 운동화 신은 친구들의 뿌연 발과 검정고무신 신은 그의 새까만 발등이 비교되어서 부끄러웠지만 그의 선친은 그렇게 아껴서 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해 준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 국립민속박물관에 임시직 자리가 있다고 하여 서울로 올라 왔다. 그때가 1988년 8월이었는데 하루 6,400원을 받으며 30개월 동안 일용직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학예사 시험을 치렀는데 총점에서 1등을 하고도 떨어졌다고 한다. 과락에 걸린 것이다. 다음해에 또 시험을 쳐서 1등을 했고 다행히 과락이 없어서 합격을 했다. 정규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학예사로 갔지만 사람들이 그를 지방대학 출신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두 번이나 1등한 경력과 중앙박물관에 민속학 전공자가 당시에 그와 부장 두 사람밖에 없어서 쓰임새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안동 촌놈이 좀 또릿또릿 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중앙박물관 가서 6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많이 쓰였지요. 학예사 초임에 특별전도 맡아 하고 중요한 일도 많이 했어요. 신라 토우, 조선 풍속화 등의 실물을 직접 보면서 고고학이나 미술사에도 눈을 뜨게 되었고 그렇게 6년을 유물관리부에서 근무하다가 아무래도 전공을 찾아가야겠다 싶어서 국립문화재 연구소로 옮겼습니다. 무형문화재 연구실에서 5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거기서도 처음 하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을 맡아서 했습니다. 제가 많이 게으르지만 그래도 일에 대한 겁이 없어서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이 일은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내가 참 잘하고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그 자신감으로 시험을 칠 때마다 통과될 수 있었지 않나 싶어요.”
사실 남들이 지금까지의 그를 두고 굉장히 성공이 빠르다고 얘기 할 때 나름대로 인정을 하는 바이지만,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직급이 바뀔 때마다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기 때문이란다. 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속학과 졸업이라는 블루오션이고 안동이라는 문화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민속박물관에 임시직으로 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안동양반이라 불렀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안동 최고 상놈입니다’ 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이미 안동문화를 바라보고 있는 외부인들에게는 안동문화라는 배경 속에서 민속학을 공부한 그에게 어디가도 기죽지 않는 상황을 마련해 주었단다. 지금 민속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 문화재 연구소에서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출신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만약에 민속학과가 안동이 아닌 다른 지방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재원들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그의 말에 이견을 달 수가 없었다.
“가문의 백도 없고 집안에 돈도 없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이 천진기가 문화재 관련 기관장이 된 것은 안동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민속학이라는 블루오션의 학문과 민속학과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지도, 그리고 나의 자그마한 노력이 보태져서 이루어진 성과라면 성과지요.”
국립 민속박물관장이 된 것이 그는 비록 자신의 작은 노력의 성과라고 하지만 20년 넘게 중앙박물관과 문화재 연구소, 민속박물관 등을 전전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승진을 위해 시험을 준비한 그의 노력이 어찌 작다고만 할 수 있으랴.
열두 띠 풀이 동물민속 박사님
사실 그는 박물관장이 되기 전부터 세간에 열두 띠 동물민속을 전공해 매년 한해의 띠 풀이를 하는 민속학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가 말하는 또 다른 그의 블루오션이다.
“전공을 띠 동물을 하니 매년 정초마다 언론에서 자료도 가지러 오고 나를 많이 인용해 주고 써 주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띠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평생 자신의 수호동물로 여기면서 그 동물의 좋은 점을 취하려고 하고 자라면서 그 동물의 특징을 내면화 하면서 그 습성까지 닮으려고 하지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한해의 운세나 평생의 운명을 점치는 문화적 요소가 되었지요.”
아직도 결혼을 할 때나 장을 담글 때 날을 가려잡는 풍습이 우리네 삶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띠 동물을 연구한 덕분에 그가 세간에 많이 알려졌고 별정직 고위공무원인 박물관장 공모에 임명되는데도 일조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박물관이 이제는 과거형이고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접촉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바꾸어 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민속박물관이 과거형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 내려와 있고 그 현재도 현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이어지는 문화적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전시회, 그런 의미에서 먼 과거형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에서 시작해서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맥락 있는 전시회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개개의 유물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면서 썼는가 하는 족보가 필요하다며 유물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라든지 문화적 맥락을 찾는 전시를 하면 일반인들에게 더 친밀하고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여’ 하면서 부채만 부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문화를 중심에 놓고 이웃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전시와 조사와 방문활동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사회의 다문화정책에 관해서도 좀 색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문화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요. 결혼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에게 자꾸만 우리 문화를 가르치려고만 노력하는데 우리문화는 그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야만 그 사람들 이해해 주고 감싸 줄 수 있는 겁니다. 다문화교육이라는 것이 그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면서 우리 문화와 다른 세계 여러 나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 두 사람이 우리 문화를 배우는 것 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갈등의 폭을 더 좁힐 수 있다고 봐요. 우리 민속박물관에서는 우리의 것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문화와 인류문화의 보편성을 이해하고 다른 문화의 차이점과 우리문화의 독창성을 이해하는 쪽으로 서서히 변화와 방향을 모색하여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담당하려고 합니다.”
문화의 차이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이나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들이 한 번 쯤은 되새겨 볼 이야기였다. 학교에서나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부적응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라는 시각으로 다가간다면 훨씬 더 쉽게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가 박물관장이 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또 한 가지 있다. 현재 국립 민속박물관은 경복궁 경내에 있는데 경복궁 복원사업이 끝나는 2030년까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간 관람객 수가 230만 명이며 한국 전통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 60여 년간 남의 빈집을 옮겨 다닌 것이다. 이제 국격에 맞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나보다. 그는 우리의 민속문화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을 찾아 제대로 집을 한번 지어볼 생각이라며 그 문제는 시일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늘 안동사람
그는 요즘 ‘버림의 행복론’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일상적인 삶은 쉼 없이 이런저런 물건을 끌어들이는 덧셈의 연속인데 비움의 삶으로 방향을 바꾼 그의 인생에 그 책이 많은 도움이 된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동에 있는 어머니를 서울에 모시는 일로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부터 그는 움켜지는 삶보다 버리는 삶이 훨씬 더 쉽고 편함을 깨달았다. 어릴 때 부모는 그의 든든한 백이었고 이제는 그가 마지막 든든한 백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쉽게 문제가 해결 되었단다. 지금 팔순을 훨씬 넘긴 그의 노모는 유료 경로당에 다니면서 노래교실, 수지침 등을 배우면서 서울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처음 ‘나도 안동사람이다’로 그가 거론 되었을 때 누군가는 ‘그 사람은 늘 안동사람이었지 뭐 새삼스럽게 안동사람이로’ 했더랬다.
“난 한 번도 안동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안동에 꼭 살아야만 안동사람이 아니잖아요. 항상 안동을 생각하고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고 안동사람의 생활 습관과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 그게 안동사람 아닌가. 가지고 있는 연락처 중에서 3분의 2가 안동사람이면 지금도 안동사람이지 뭐, 그니 늘 안동사람이 맞지요.”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엔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막연함으로 방황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후배들은 여러 훌륭한 선배들을 롤 모델로 삼아 열심히 공부해서 20~30년 후에는 선배들보다 훨씬 훌륭한 민속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을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어 했다.
취재 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할 때쯤 그에게 파마를 한 듯한 굽실굽실한 머리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관장님, 머리는 파마 하신 거예요?”
“파마를 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왜요, 요즘 남자들 많이 하던데요”
“난 안동사람이잖아, 안동사람이 뭔 파마를 하노?”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