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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1호 이발관과 이발사 송창수(글/이미홍_객원기자)

안동시 이발관 허가번호 1번, 동문이발관
대한민국 어느 동네를 가든 어지간한 크기의 동네라면 동네 마다 꼭 있기 마련인 것이 목욕탕과 미용실과 이발관이다. 목욕탕이 동네사람 모두가 이용하는 곳이라면 미용실은 여자들의 공간이요, 이발관은 남자들의 공간이다. 미용실에 아줌마들의 수다가 있다면 이발관에는 남자들만의 이발관 문화가 있다. 이발관은 단순히 이발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가 있고 경제가 있고 술과 담배가 있다. 세발과 면도와 포마드가 있고, 때로 남자들만이 아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법흥 삼거리에서 삼산우체국 방향으로 나 있는 경동로에 위치한 안동시 동문동 190-2번지에는 안동시 이발관 허가 번호 1번인 안동의 첫 번째 이발관 동문이발관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 이발관을 지키고 있는 이발사 송창수(71)씨가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 겨울이 시작되는 쌀쌀한 동문동 거리에 오가는 사람도 드문드문한 오후 두시 무렵, 이발관이라는 표시로 으레 있기 마련인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채 세로로 세워져 돌아가고 있는 이발관 간판등과 동문이발관이라 써진 문을 밀고 들어서니 가운을 입은 송창수 이발사와 점심 먹고 바둑이나 한 판 둘 요량으로 마실 온 동네 단골 한 분이 난롯가에서 우리를 맞았다. 손님이 없어 그런지 난로 온도는 낮게 맞추어져 있었는데 그 난로 옆 소파에 앉은 손님은 우리가 찾아온 용건을 이발관 주인보다 더 궁금해 했고 용건을 알자 이 동문이발관과 송창수씨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잘 안다며 적극적으로 참견하고 싶은 의향을 내비쳤고 우리는 속으로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객과 더불어 두서없이 동문동이발관 역사를 앞뒤로 더듬어 보며 송창수씨의 50년 이발사(理髮史)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들의 아지트 동네 이발관
송창수씨의 역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이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고객을 위해 빗, 가위, 헤어드라이기, 면도기 등을 이용하여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하며 과년된 이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사람들, 이발사. 프랑스어로는 남성헤어드레서라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 이라는 말이다. 이발사라는 말에는 남성 전용이라는 말과 더불어 ‘면도’라는 말이 늘 같이 붙어 다닌다. 원래는 고객의 머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발사와 면도를 담당하는 면도사가 나뉘어 이었지만 지금은 이발사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다 한다.

서양에서 중세기 이발사는 대개 외과의를 겸업으로 하거나 목욕탕을 부업으로 하였다. 이발사가 칼이나 가위 같은 섬세한 도구들을 가지고 이발과 면도 같이 피부에 직접 닿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과의를 겸할 만큼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발관 간판이 적색, 백색, 청색인 것도 알고 보면 외과의라는 표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새로 알게 된 상식도 하나 짚고 넘어가자. 목욕탕 겸업은 지금도 목욕탕이나 온천 안에 이발관이 같이 있는 곳들이 더러 있는 것을 보면 그 태생 역사가 그렇게나 깊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도 고종 32년인 1895년 김홍집내각에 의해 을미사변이라는 피의 역사를 뒤로 하고 성인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한 단발령이 내려진 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반대도 심했지만 고종과 태자의 머리를 이발한 1호 왕실이발사 안종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이발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무릇 대한의 남아라면 누구나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부터 백발이 되어 저승 문턱을 넘기 전까지 수도 없이 드나들어야 했던 공간인 이발관과 수많은 이발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서양에 수많은 세빌랴의 이발사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수많은 동네의 이발사들인 효자동이발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발관과 이발사의 수만큼 많은 단골이발관과 단골이발사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날 시내 가서 아버지를 찾을 수 없으면 단골 이발관 두어 군데를 들러 보면 찾곤 했던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서 일찍이 멋쟁이로 통했던 외삼촌과 꼬장꼬장 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셨을 증조부까지 내가 아는 남자 어른들은 다들 단골이발관이 있었다.
동문이발관과 송창수이발사 이야기도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 시작은 이랬다.

“없는 형편에 기술이나 배워볼까하고 시작했죠”
“58년도였을 거예요. 내가 2남 2녀의 맏이였는데 당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까 취직을 했지요. 그때는 다들 사는 게 고만고만해서 같이 졸업한 친구들 여럿이 나처럼 일자리를 찾아 취직을 했는데, 어떤 친구는 구두점에, 어떤 친구는 세탁소, 어떤 친구는 가구점에 그리고 저는 이발소에 들어갔어요. 다들 사환으로 들어가서 심부름부터 시작했죠. 월급이라고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삼 시 세 끼 먹여주면 다행이었죠. 아침은 집에서 먹고 가고 점심 한 끼에 명절에 옷 한 두 벌 얻어 입는 게 다였어요. 명절에 떡값이라도 받으면 그야말로 횡재한 거 같았죠. 그래도 다들 그만둘 생각도 못했어요. 없는 처지에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하는 형편이었고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요.”

1942년생 송창수씨와 그 친구들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때는 휴전이 된 지 불과 몇 년 밖에 안 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가진 건 없고 믿을 건 몸뚱이밖에 없었다던 그 시절에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가난한 집 아들들이었던 열여섯, 열일곱 그들은 당장 자기가 먹을 밥을 벌어야만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말고 다르게 살 방도도 알지 못했다. 공부를 더 할 욕심을 부릴 생각도 한 번 못 해 봤고, 6년이나 남의 밑에 있으면서 밥만 얻어먹고 일을 배우면서도 불평할 줄 몰랐고 기술을 배울 기회를 가진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죽어라고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다. 그래서 면허증을 띠서 허기도 면하고 장가도 가고 아이들도 키워 시집 장가보냈다. 송창수씨 또래들도 다들 그렇게 기술을 배워 장가가고 집 사고 아이들 키우고 그렇게 살았다.

“일을 배우기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이발소에 조수로 들어가서 대 여섯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일을 6년 정도 배웠어요. 수도가 없을 때라 양동이에 물 길어 나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바닥 쓸기, 머리 감기기, 손님 부채질하기, 선배 이발사 조수로 난로에 고대기 적정 온도로 데우는 것을 하면서 서서히 선배들 어깨 너머로도 배우고 끝나고 남아서도 배우고 해서 면도도 배우고 바리캉으로 학생들 까까머리 미는 법부터 시작해서 커트 배우고 하는 식으로 해서 기술을 배웠죠.”
그리고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고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 여기 동문이발소 사장님께서 같이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때부터 여기서 이발을 시작했던 게, 사장님께 이발관을 이어받아 오늘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인민군들이 물러가고 휴전될 무렵이었는데 그때 당시 사장님이 안동에서 처음으로 이발소로는 1호로 허가를 내서 이발관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내가 어렸을 땐데 내가 동부초등학교 옆 동네인 신세동이 집이다 보니까 이 이발관이 문을 열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다른 데 취직할 때도 저는 이 동문이발관에 손님이 많은 걸 보고 이발소에 취직을 했고, 이발사가 되어 여기로 옮기고 나서 다른 데로 안 가고 여기서 지금까지 계속 하게 된 것도 있어요.”

잘 자라 가정 꾸린 남매와 먼저 간 아내
68년도에 결혼을 했다. 남매를 뒀는데 첫째인 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지금은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있고 둘째인 딸은 결혼해서 안동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부부가 같이 늙어갈 일만 남았다 했는데, 2003년 사고로 아내를 먼저 보냈다. 한동안 어찌 살까 맥도 빠지고 막막하기만 했는데 산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지금은 아내와 살던 용상 집에서 이발관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생각보다 혼자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이발사 면허를 땄던 64년도 무렵, 당시 공무원 월급이 2500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 이발사들은 다들 월급제가 아니라 일당제로 받았는데, 그때 일당 70원 정도를 받았다고 하니 한 달이면 그 수입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는 시절이 어디든지 월급제가 별로 없었고 이발사는 특히 더했는데, 이발 업계는 99%가 일당제였는데, 그중 기술이 더 좋은 사람은 좀 더 받고, 그 날 받은 손님이 더 많으면 일당을 또 조금 더 받고 하는 식이었지요.”

이발사들이 실력이 늘어서 한창 잘 나갈 때는 여기저기서 끌어가려고 해서 실력 있는 이발사들은 좀 더 보수가 좋은 곳으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돈 조금 더 받는 것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집에서 가까운 동문이발관을 떠나지 않고 그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동문이발관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전 사장님이 이발관을 그만둘 때 그에게 이발관 인수를 한 것은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발관 손님이 점점 줄어가고 면도 사들이 그만두고 이발사들이 하나 둘 더 큰 이발관으로 옮겨가고 두 셋 남아있던 이발사들을 내보내고 종내에는 그 혼자 이발관을 운영해 나가게 되었지만 그의 하루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이발관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손님들 이발하고 면도하고 깔끔한 뒤마무리까지, 손님이 적다고 불평하는 일도 서비스를 소홀히 하는 일도 없었다.

1963년 조발일절 40원
당시 이발 요금 이야기를 하던 그가 미용실이나 이발관에 가면 한쪽 벽에 걸려있기 마련인, 세면대 위 벽에 걸린 자격증이 들어있는 오래된 액자를 내렸다. 64년에 발급된 이발사 면허증을 꺼내자 뒷면에서 안동시(63년 1월 1일 안동읍에서 안동시로 승격됨)에서 배포한 63년 이용요금 보수협정표를 달력 뒷면에 옮겨 적은 가격표 두 장이 나왔다. 1월 20일자로 작성된 처음 것은 이용사협회에서 제시한 것으로 보였는데 면도까지 포함해서 조발(이발)일절에 55원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열흘 지나서 시에서 조정해서 다시 내려 보낸 가격표에는 조발일절 40원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이발사들은 화폐개혁도 되고 물가에 비해 이발료가 너무 싸다고 올해부터는 이렇게 올려 받겠다 하고 시에 통보를 했는데, 당시 시민들의 반발이 심하자 시에서 다시 40원으로 내려 받으라고 한 모양이다.
“그때 물가는 폭등하는데 이발요금은 몇 년째 그대로니까 이용업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 받아가지고는 우리 이발사들 못 먹고 산다 해서 올리기로 결정을 했는데, 자세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요새 말로 하도 항의를 하니까 당시 안동읍사무소에서 이렇게 올려 받으면 서민들이 못산다고 다시 내리라고 한 모양이에요. 말하자면 권장가격 같은 건데 당시에는 권장가격이라고 해도 관에서 하는 말에 따라야지 별 수 있나요? 그래도 시간 지나고 조금씩 올려 받는 곳도 생기고 해서 나중에 요금이 조금씩 오르기는 했어요. 그래도 다른 건 물가가 오르면 따라 올라도 별 말이 없는데 이발 요금은 한 번 가격이 정해지면 여간해서는 올리기가 어려워요. 서울이나 대구 같은 대도시는 만 원도 받고 그러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발요금 8000원 받는데 이래 받은 지가 10년도 넘었어요. 전에는 그래도 매년 물가 인상에 따라서 가격 조정을 해서 조금씩 올려 받고 했는데 이제는 워낙 미용실에 손님을 다 뺏기고 손님이 없다보니 요금인상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거지요. 변두리나 시골 같은 경우는 7000원 받는 곳도 있고 그래요.”

버스 요금, 목욕요금처럼 이발요금도 누구나 이용하는, 서민들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다 보니 그때 당시 갑자기 이발요금을 이렇게나 많이 올리면 어쩌느냐고 손님들하고 이발사들 간에 실랑이가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뉴스에서 미용실 커트 비용이 비싸진 이유가 담합 때문이었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네에겐 머리카락 자르는 비용 한 푼도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8000원이 동문이발관 공식요금인 셈이지만 오래된 단골손님 중에는 7000원을 주고 가시는 분도 있다. 그러면 그는 그냥 단골손님이 주는 대로 받는다. 몇 십 년을 먼 길 찾아와 주는 단골손님들이 고마워서다.
“제가 오래 겪어봐서 아는 데 여기 이분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나이 드신 분들이 눈 어둡고 계산 어두우신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일절 한 푼 속이는 일 없고 손님 중에 누구는 더 있다고 더 잘 해주고 누구는 덜 해주고 그런 게 없어요. 교과서처럼 원리원칙 지키고 365일 한결 같아요.”
손님이 없을 때면 간혹 들러 바둑 한 판 두기도 한다는 연배가 비슷해 보이시는 동네 단골손님의 평이다.

75년 처음 그가 이발관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이발사에 면도사에 머리 감기는 아이까지 직원만 6명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문동 일대에 군청을 비롯해서 법원, 검찰청, 세무서에 법흥동에 교도소까지 주요 관공서가 밀집해 있어서 일대가 안동시내에서 요지에 속했고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바로 앞에 동부초등학교까지 있어 선생님들에 학생들까지 이발관이 항상 손님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이곳 동문동 일대가 한창 잘 나갈 때는 경찰서(현 중앙파출소)에서 용상다리 건너기 전까지 이발관이 8개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고생들까지 이발관으로 머리를 깎으러 오곤 했으니 이발관이 얼마나 문전성시를 이루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던 것이 이발관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지금은 조그마한 이발관이 3개 있는데 그나마 손님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동문이발관의 손님들은 별 변화가 없다. 이발관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3,40년 된 단골손님들 이다 보니 어쩌다가 들른 바쁜 손님이나 간혹 지나가는 손을 빼면 정기적으로 이발관을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발을 하는 주기로 보면 못 해도 40년, 30년, 20년, 적어도 10년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이발관을 찾기 마련이라 단골손님들과 송 이발사는 알게 모르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딱히 말이 필요 없는, 서로 편한 단골손님-단골이발사 관계가 되었다. 이발뿐아니라 그 손님이 젊은 시절부터 승승장구 잘나가던 시절에서 퇴직하고 자식들에 얹혀사는 지금 모습까지 때로 원치 않아도 저절로 손님들의 희로애락과 인생사를 보고듣기도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에 대해 손님들에게 뭐라 말을 보태거나 옮기거나 한 적이 없다. 그저 손님들이 이야기를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묵묵히 들어주거나 같이 침묵하거나 하며 물 흐르는 대로 응대를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발사의 본분을 지키려 애쓰며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익숙해져서 일까? 연세가 높으신 단골손님이 이발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보이시면 혹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고, 정기휴일도 아닌데 이발관 문이 닫혀 있기라도 하면 송창수씨에게 뭔 일이 있나 걱정해 주기도 한다.

호시절엔 직원만 대여섯명
“70년도 중반에서 80년대 들어설 무렵까지만 해도 이발관이 꽤 잘 됐지요. 그러다가 미용실이 생기면서 젊은 손님들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면도사들이 없어졌지요. 단속도 있었고 손님이 줄어드니까 자연 이발사들이 면도까지 하게 된 거지요. 그리고 차츰 직원을 두고 하는 이발관도 없어졌고요. 이발사 혼자 해도 될 만큼 손님이 즐었다는 이야기도 되지요. 저도 한 명 한 명 직원을 내보내고 마지막까지 있던 직원이 그만두고 이렇게 혼자 이발한 지가 한 15년 정도 되나 그래요.”
이발관 풍경도 이발 기술도 많이 변했다. 요즘은 이발할 때 면도까지 하는 손님은 나이 드신 분들 중에 더러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손님들이 자동면도기에 익숙하고 특히 요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발만 하고 머리에 멋 내기로 포마드 같은 것을 바르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도 이발의 기본인 커트 기술과 남자어른들의 머리는 아직도 기본 스타일이 정석이다. 오랜 단골손님들은 아직도 면도까지 이발사가 알아서 해 주고 멋 내기로 폼까지 잡게 해 주는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는, 단골이발관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즐길 줄 아는 멋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용실에 손님을 뺏긴데다가 인근에 있던 교도소며 법원이며 검찰청이 이전을 하고 군청은 시청에 통합이 되고 초등학교는 학생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하면서 동문동 일대는 잘 나가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게 조용한 동네가 되었고, 화려했던 동문이발관의 전성기도 갔지만 빨갛고, 하얗고 파란 동문이발관의 표시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발사 송창수씨의 이발 인생은 지금도 계속 현재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물건도, 그 자체가 역사인 동문이발관
동문이발관의 모든 것들이 최소 30년은 된 것들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손에 드는 거라 그나마 주기적으로 새로 장만하는 게 이발사의 애장품 1호인 가위다 보니 가장 최근에 장만했다는 가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난로에 달구어 파마머리에 사용했던 고대기 에서부터 110볼트용의 드라이어기에 조니 뎁이 출연했던 영화 스위니토드에 나왔던 면도칼을 닮은 그야말로 칼에 가까운 길쭉하게 생긴 면도칼부터 그 면도칼을 갈던 가죽까지 어떤 것은 40년 된 것도 있었고, 30년, 20년, 10년 이발관 제일 아래 칸 서랍장에는 안동의 1호 이발관답게 오래된 역사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었다. 버리고 치웠는데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들이 그렇게 구석에 숨어있었다. 그나마 값이 나가거나 역사가 깊은 것들은 이용업회 사무실에서 전시한다고 가져가고 남은 것들이 별로 없다고 하는 데 만지고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 자체로 동문이발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다. 동문이발관의 오래된 집기들은 한편으로는 이발관이 보기보다 위생 점검 주요대상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지금은 손님에 비해 한없이 널찍하게 보이는 세면대도 이발관 안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옷장도 일정 면적 이상의 이발관이 갖추어야 하는 위생 점검 기준에 따라 반드시 규격에 맞게 구비를 해야 해서 규격이나 조항이 바뀌거나 추가되면 거기에 맞게 시공을 해야 해서 제일 처음에 했던 것에 그때그때 증축이나 재시공을 한 것들이라고 한다. 세면대는 세 번에 걸쳐 다시 규모에 맞게 타일공사를 한 것이고, 옷장은 70년대에 짜 넣은 것으로 40여년이 넘은 것인데, 당시에는 물자도 귀하고 해서 합판을 눌러서 짠 옷장이라 크게 가격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동문이발관을 이용해 본 손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저 문을 열고 겉옷을 벗어 걸어 놓은 경험이 있는, 53년 문을 연 이래로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손님들의 손때가 겹겹이 묻은 그 자취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념비적인 옷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옷장 이야기를 하고 얼마 안 있어 거짓말처럼 나이가 좀 있으신 손님 한 분이 들어오더니 “오셨니껴?” 하는 이발사의 인사말에 눈인사를 하더니 별다른 말도 없이 곧장 그 옷장 앞으로 가서 겉옷을 벗어 옷장 문 하나를 열고 옷을 걸고 옷장 문을 닫고 의자로 가서 앉았다. 적어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손님이거나 한두 번 온 손님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넌지시 동문이발관에 다니신 지 몇 년 정도 되나 물어보니, 집이 녹전인데 지인 따라 우연히 와서 이발 한 번 하고는 몇 년 째 단골로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마침 장날이라 시내에 볼일 보러 나온 김에 이발하러 왔다며 어떻게 깎아 달라는 말도 없이 머리를 맡기고 눈을 감는다. 송창수씨도 어떻게 해 드릴까요? 라는 의례적인 물음도 없이 가위를 들고 말없이 이발을 시작한다. 일단 이발을 시작하면 가위질 한 번에도 집중해서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자연 옆에서 조심스러워 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송창수씨의 성정을 잘 아는 지 옆에서 내내 이야기를 거들며 동문이발관 역사를 주억거리시던 단골손님이자 바둑 친구도 그가 가위를 들고 손님 앞에 서자 슬며시 엉덩이를 들더니 다음에 보자며 자리를 비켜준다. 적어도 한 시간은 입이 궁금해도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할 걸 생각하니 차라리 집에 가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게 낫다 싶으신가 보다.

“손님이 많건 적건 내 사전에 대충은 없어요”
아무리 바빠도 손님 한 사람 이발 하는 데 보통 한 시간은 잡아야 한다는 송창수씨는 그래서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손님이 이발관 앞에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한 시간 두 시간씩 기다리고 있어도 급하게 마무리를 하거나 얼른얼른 대충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받아 일당을 더 챙기거나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한 손님 당 한 시간은 기본이다 보니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가지 하루 종일 풀타임으로 해도 하루 최대 열세 명 정도였다고 한다. 때로는 손님이 마음이 바쁘거나 기다리다 못해 “거, 그만하면 마무리 다 됐구먼!” 해도 할 거 다 해야 하는 그 교과서 같은 변함없는 성실함에 손님들이 결국은 손을 들고 포기하거나 그의 단골이 되거나 했다. 지례에 계신 김원길 시인의 부친이시기도 한 올해 아흔 하나 되시는 김구직 선생은 그런 동문이발관의 단골 중에서도 대표적인 오랜 단골이시다. 이틀 전에도 오랜 만에 나오셔서 이발을 하고 가셨다고 하신다. 그 아드님이신 김원길 시인과 안동문화회관에 계시던 이진구 전관장님도 단골이시고 안동시내 관공서에 계시다 퇴직하신 분들 중 이름을 알만 한 이들 중에도 단골이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조용한 골목길 안에 허름한 외관의 이발관이지만 아직도 장날이나 일요일이면 이발관을 찾는 단골들이 있어 동문이발관의 송창수 이발사는 오늘도 한결같은 얼굴로 이발관 문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나이 드신 단골손님들이 모처럼 마음먹고 찾아왔다가 행여나 헛걸음 하고 돌아가는 수고를 하는 일이 없게 늘 문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려준다. 손님들이 오지 않는 날도 있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단골손님들을 기다려주는 송창수 이발사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고 웃음이 있다.
비슷한 무렵에 이발을 시작해서 연배가 비슷한 이발사 동료들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이들이 다들 가고 지금 일곱 명인데 그중 자기네 동네에서 작은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이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아직도 넷이나 된다고 한다. 나이 들어도 기술이 있으니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을 한다.

가위 놓는 날까지 언제나 그래왔듯 순리대로 살것
그는 매일 아침 자전거로 이발관으로 출근을 한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저녁 7시가 되면 이발관 문을 닫는다. 정기휴일인 매주 월요일에는 때로는 지인들과 때로는 혼자 등산을 간다.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가 있냐는 질문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같이 산에 다니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송창수씨는, 자신이 가진 기술로 아직도 밥 벌어 먹고 살며 친구들과 차 한 잔 즐기고 산에 다니는 여유도 누릴 수 있어 좋다고, 이 나이에 기술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별 다른 욕심 없이 그저 물 흐르듯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저 물 흐르듯 순리대로 어느 날 가위를 놓는 날까지 이렇게 이발사로 살다가 가면 되지 않겠느냐며 우리를 건너다본다. 그리고는 이내 손님의 머리카락과 가위를 잡은 손끝에 시선을 집중한다.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를 뒤로 하고 이발관 문을 열고나오니 어느새 숨었는지 해는 넘어가고 보이지 않는데, 차가운 동문동 거리에 아까는 낡게만 보이던 이발관 간판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보인다. 아마도 이발관을 지키는 송창수 이발사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