톳재비시장 열리던 날(글/편집실)
외국의 벼룩시장을 둘러 본 사람들은 더러 쓸만한 물건을 구해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저런 물건을 내다팔까 싶게 낡은 물건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물건에도 ‘사연’을 담아 파는 것, 그게 바로 벼룩시장의 매력이다. 파는 본인은 구구절절 역사가 깊은 물건이고 자신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라도 보는 사람의 눈과는 다를 수 있는 법, 장사꾼이 아닌 이상 어차피 내놓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 없게 된 물건이라 팔리지 않아도 손해 볼 건 없다.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물건’으로 다시 쓰이는 모습이 11월 26일 토요일 오후 2시 문화의 거리에서 펼쳐졌다. 바로 ‘톳재비시장’이다. ‘톳재비’란 도깨비를 뜻하는데 도깨비처럼 톳재비시장은 오후 2시에 시작해 해지기 전 5시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도시의 프리마켓(자생 예술시장)이나 벼룩시장처럼 나눔시장이 흔하지 않은 안동에서 이 행사를 이끈 사람은 안동 톳재비시장 추진위원회의 강서구, 김수형, 박명배 씨다. 지역 문화계와 시민운동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들은 시내 신한은행 앞에서 맘모스제과 사거리까지의 중앙통 문화의 거리를 젊음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리로 만들자는 목표 아래 이 행사를 기획했다. 사람이 붐비고 문화가 숨 쉬고 경제가 활력을 얻는 것이야 말로 대자본에 맞서 서민경제가 살아나는 방법이고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옛 안동버스터미널 자리에 홈플러스가 입점 준비를 서두르는 이 시점에 소박하지만 작은 시민문화운동은 그래서 더 의의를 갖는지 모른다.
지난 10월 8일 첫 번째 톳재비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시장에 자신도 함께 전을 펼친 김수형 씨는 “안동투어코스에 톳재비시장 둘러보기가 필수코스가 될 수 있도록 활성화 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동의 새로운 문화 및 풍물명소로 관광자원화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내년부터는 매월 1회씩 정기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건강한 소비문화와 물품의 재활용 취지를 공감해 이모와 함께 참가한 이정인(길주중 1)양도 안 쓰는 샤프와 볼펜, 지우개, 문구류를 들고 나와 새로운 경험에 신기해했다.
“처음엔 조금 부끄러웠지만 나중에는 재미있었어요.” 흔치 않은 경험에 신이 나 소감을 밝힌 정인이는 이날 만원의 용돈도 벌었다. 다음에 참가해서는 판매액의 얼마간을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하거나 구세군 냄비에 넣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벼루를 들고 나와 그릇과 프라이팬으로 물물교환 하고, 몇 년간 농속에 잠자던 코트를 들고 나와 단돈 2천원에 팔기도 하고 영어교재테이프를 돌려듣던 카세트테이프를 내놓은 대학생 등 다양한 물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4륜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가죽잠바의 할아버지는 본인을 가죽잠바 마니아라 밝히며 헌옷과 가방, DVD를 구입해갔다. 그가 쓴 돈은 5천원. 태교책을 1~2천원에 구입해간 주부와 500원짜리 노트와 100원짜리 샤프를 구입해간 초등학생. 작은 돈에도 흥정이 오가고 근처 상가에도 피해를 안 끼치며 오히려 상가 상인들도 돗자리의 물건을 고르는 모습은 작은 축제문화가 형성된 것처럼 흥겨운 모습이었다. 하 많은 축제가 넘쳐나는 와중에, 소박하게 헌 물건을 들고 나오고 또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연스런 풍경, 그런 틀에 박히지 않은 자발적인 축제가 규모는 작아도 진정한 축제 같았다.
톳재비시장 참가 자격 및 물품에는 제한이 없으나 미성년자는 보호자를 동반하여야 하고 새 물건이나 법에 저촉되는 물건, 위험물, 주류 등은 제한한다. 가로세로 2m 짜리 돗자리 하나 들고 사전에 이메일로 신청하면 참가가 가능하다. 참가자 이름과 전화번호, 참여물품(대략 주된 물품이나 종류, 예를 들면 의류, 악세사리, 책 등)을 간략히 적어 이메일 tjb2222@daum.net로 신청하면 된다.
안동 문화의 거리에서 매월 한 번씩 자신의 물건에 대한 오랜 역사를 읊어대는 모습과 누구나 어울리는 재미있는 톳재비시장이 서더라, 하는 소문이 파다해져서 안동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