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발견된 신간회 안동지회 사진(글/김희곤)지난 연말에 75년 전의 안동 사진이 몇 장 발견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은 일이 있었다. 영주 안정면의 배흥교회(담임목사; 곽교진)에서 사진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근대 사진자료가 상당수 전시되고, 특히 신간회 안동지회와 안동청년동맹 사진이 있다는 소식에 안동문화방송 보도진과 더불어 현장으로 달려갔다.
비록 시골이기는 하지만 교회는 80년이나 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교회의 1층 별실에 초등학교 교실 한 칸 정도의 전시장이 마련되었고, 사진들이 벽면을 따라 전시되었다. 주로 초기 교회 관련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안동의 신간회지회와 안동청년동맹 관련 사진이 여섯 장이나 눈에 띄었다. 이 사진은 예천 상동교회 담임목사(이교남)의 부인이자 선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덕순 선생이 수집한 것인데, 전시회를 위해 내놓은 것이었다. 사진자료를 소개하고 필자에게 제공해 주신 이분들에게 감사 드리면서 이번 호에는 우선 신간회 안동지회 관련 사진 석 장을 소개한다.
신간회안동지회는 1927년 8월에 결성되었다. 서울에서 그 해 2월 15일에 신간회가 결성된 이후 지방마다 지회가 결성되었는데, 안동지회는 전국 지회 가운데 두 번째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신간회안동지회 결성식이 1927년 8월 26일에 안동 보광학교(普光學校)에서 열렸다. 이 학교는 고운사 주지 이만우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지방학림을 계승한 것으로, 화성동의 옛날 안동교육청 자리, 즉 현재 경북상호신용금고 자리에 있었다. 서울에서 홍명희가 축하 내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열린 창립대회에서 유인식이 회장에 선출되고, 다음해에는 정현모,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이운호가 회장을 이어나갔다.
야유회 사진
먼저 야유회 사진부터 살펴보자. 사진 중심부 위쪽에 "新幹會安東支會園遊會(신간회안동지회원유회)"라는 글과 함께 "1927. 10. 9."이라는 글이 찍혀져 있다. 왼쪽 위 부분 구석에 아래쪽으로 "石門亭(석문정)에서"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넣은 글씨로서 당일 행사내용과 일자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즉 신간회안동지회를 결성한 지 한 달 반 정도 지난 가을날, 일요일을 택하여 풍산 막곡의 석문정에서 야유회를 가졌고, 그 날을 기념하여 찍은 사진임을 알려주고 있다. 안동시내에서 송야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km 남짓 가다보면 왼쪽은 낙동강 절벽이고, 오른쪽이 가파른 벼랑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 벼랑 위에 석문정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33명이다. 대개 젊은 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유인식과 같은 고령의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표정들이 무척 밝다는 것이다. 야외 나들이를 가진 자리라서 그런 것도 같은데,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개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게다가 단풍든 나뭇가지를 들고 있거나 머리에 쓴 사람도 10명이나 된다. 흑백사진이라 단풍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지만, 한껏 멋을 부린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이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술을 한 순배 돌린 뒤였을 것이다. 뒷줄 중간에 어깨동무하고서 눈을 지긋이 감은 사람은 그저 한 두 잔 마신 정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옷차림을 보니 양복을 입은 사람이 14명이나 되는데, 춘추복이나 추동복을 갖추어 입었다.
신간회안동지회 2회 정기대회 회의장면
다음 사진은 신간회안동지회 제2회 정기대회 회의장면이다. 그 모습을 알려주는 《조선일보》 1928년 2월 1일자와 2일자 신문을 보면, 이 회의가 열린 곳이 보광학교 대강당이며, 1월 28일(18일로 기재되었으나 28일이 옳을 것 같다) 오후 1시부터 열렸다가, 다음날 오전10시에 속개되었으니, 이틀 동안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또 각 구역별로 25개소의 반(班)이 설치되었는데, 그 대표 111명 가운데 65명이 출석하여 개회되었고, 보통회원과 방청객 2백여 명도 참석한 것으로 보도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대단한 성황이었던 셈이다.
강당의 앞쪽 위에 회순을 기록한 종이를 붙였다. 개회·개회사·회원점고·임시집행부선거·축전축문낭독·내빈축사·전(前)회록보고·각부경과보고·임원개선·본부대회출석대표원선거·예산안통과·토의사항 등이 적혀 있고, 폐회 순서가 끝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토의사항으로는 가·나·다 순서를 붙이면서 유지방침·회원모집·연회비징수·의연금수집·회관문제·반(班)조직체·회원교양문제·봉건적관념퇴치·미신타파·O의폐지·문맹퇴치·OO대회건의안작성 등을 게시하였다.
따라서 신간회안동지회가 무슨 안건을 다루고, 또 어떤 방향으로 활동을 펼쳐나가려 했던가 하는 의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신문기사에는 게시된 회순에 없는 大會宣言(禁)이란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본래 대회선언을 발표하려 했지만 일제경찰에 의해 금지되었다는 말이 된다.
회의장 중간에 전등이 매달려 있고, 오른쪽으로 난로의 연통이 추운 겨울을 말해준다. 앞쪽 칠판에는 이름들이 가득 적혀 있다. 우선 칠판을 자세히 보면 좌우 두 쪽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것도 각각 두 장 혹은 석 장의 나무판이 합쳐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에 검게 칠하여 흑판으로 사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 칠판이 허옇게 변색되면 다시 칠하여 사용하였다.
오른편 흑판에 신임임원 명단이, 왼쪽에는 본부대회대표회원 명단이 분필로 기록되어 있는데, 서체로 뛰어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당시 안동의 사회운동을 이끌던 인물들의 이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앞쪽 중간에 서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정황으로 보아 신임회장을 맡은 정현모이거나 부회장 권중렬, 혹은 간사를 맡은 인물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첫날 개회사를 맡은 전임회장 유인식의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그는 바로 이 회의에서 정현모를 비롯한 차세대에게 운영권을 물려준 뒤, 정확하게 석 달 뒤인 4월 29일에 작고하게 된다.
신간회안동지회 2회 정기대회기념촬영
세 번째 사진은 아래편에 "신간회안동지회제2회정기대회기념촬영 1928.1.29"라고 기록된 점으로 보아 정기대회 이틀째 날에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빛의 방향으로 보아 정오를 지나 오후로 접어든 시각에 찍은 것이고, 그렇다면 오전 10시에 시작한 회의가 아마 한낮을 넘어서면서 끝을 맺은 뒤, 기념 촬영 순서를 가진 것 같다.
보광학교 건물 앞으로 80명 가까운 인물이 자리잡았고, 왼쪽 모퉁이에 아이들 몇 명이 사진촬영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전반적으로 옷차림새가 야유회와 사뭇 다르다. 가을철에는 양복차림이 많았는데 비해, 대개 엄동설한을 맞아 흰색 한복을 두툼하게 갖추어 입었다. 또 20명 정도가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모습도 그러하다. 그리고 역시 20명쯤, 즉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안경을 쓰고 있다. 당시 시력문제 보다는 멋으로 쓴 맛보기 안경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안동의 최고 멋쟁이 인텔리들이 모인 것이라는 느낌도 들게 한다.
건물 중간 기둥에 간판 윗 부분이 조금 보인다. 오직 新이라는 글자 한 자만 보이지만, 그것이 신간회안동지회 현판임을 추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겠다. 대청에 유리창문을 달았고,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뒤편으로 법흥동으로 내려오는 영남산 자락이 나무가 없어 속살을 훤하게 드러내고 있고, 그 뒤로 낙동강 너머의 용상동쪽 산 능선이 보인다.
회의가 열린 1928년 1월 28일과 29일은 구정을 갓 지난 1월 6일과 7일이다. 요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즉 정초 첫 주말에 이틀 동안 신간회안동지회 제2회 정기대회가 안동시내 서부동에 자리잡은 보광학교 강당에서 열리고, 그것을 마무리하면서 찍은 그 날의 모습을 되살려 보았다. 75년 전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