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야동 영호초등학교의 마지막 겨울(글/사진/백소애_편집기자)
옥야동의 겨울
대설이 지났지만 아직 안동에 눈 소식은 없다. 알 수 없는 사람 속처럼 날씨는 변덕스럽고 계절은 앗차 하는 순간 바뀌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겨울도 생각만큼 길지 않을 것이고 추위는 사람만큼 혹독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독 게을러지는 계절,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계절, 가까운 곳으로 길을 나선다. 이제는 ‘영호길’로 불려지는 ‘옥야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호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인근 동네는 영호길, 영호새싹길로 불린다.
개량한옥 사이사이로 골목길의 정취가 많이 남아 있는 동네 옥야동의 자연마을은 옥야동의 원마을로 이 마을에 안동부의 옥(獄), 즉 감옥이 있었다고 하여 불린 옥거리, 옥리와 1946년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생긴 새장터와 신시장, 안동부의 옥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옥안마와 옥내리, 그 외 진터, 진장촌, 학교마와 학교동 등이 있다. 1942년까지만 해도 학교마, 학교동 마을에는 과수원과 뽕나무밭이 넓은 들을 이루고 있었으며 곳곳에 민가가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안동여고, 영호초등학교가 자리하면서 자연스레 학교마라 불리게 되었다.
시래기와 무가 곳곳에 널린 동네
골목 이곳저곳에는 시래기가 걸려있고 실에 꿰인 무가 옥상 빨랫줄에 걸려있다. 재작년 겨울인가 나는 거실에 앉아 아빠와 함께 무를 손질했었다. 납작하게 자른 무를 바느질하듯 하나하나 꿰어 엽전 꾸러미처럼 만들었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이내 지겨워져서 하다만 기억이 난다. 나머지 무는 아빠가 홀로 꿰었었다. 고추꼭지 다듬는 일, 마늘 까는 일, 콩나물 다듬는 일처럼 지루한 일은 조금만 돈을 들이면 가공된 것을 먹을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인가, 나는 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들이 그런 일을 하는 건, 늙어 인내심이 는 게 아니라 그저 아끼고 내 가족 먹일 것에 대한 정성인 게다. 이른 후회란 없다. 늦은 후회만 남을 뿐.
환영의 꽃목걸이처럼 꿰인 무는 꼬들하게 말린 후 짭쪼름한 반찬으로 밥상머리에 오르리라. 무가 널린 옥상의 겨울 빨래는 늦은 오후의 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널려있고 낮은 담장에는 철조망 덩굴이 설치되어 있다. 자루에 무언가를 넣고 골목길을 걷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을 본다. 좁은 골목에서는 좀 더 밀착된 생활공간을 볼 수가 있으나 사람이나 집이나 겨울나기가 춥겠다는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골목끝집에는 자전거 한 대씩 세워져 있고 까많게 시든 열매는 담벼락에 세발낙지처럼 달라붙어 있다. 이태 전 길가다 우연히 보았던 구멍가게는 아들의 연락처만 남긴 채 문이 굳게 닫혀있다. 연로했던 할아버지의 영원한 부재를 미루어 짐작해볼 뿐이다. 해가 들지 않는 좁은 골목은 마치 해질녘처럼 어두웠다. 큰 골목에 주차된 차들은 정물처럼 고요했다. 시래기는 가정집, 식당집, 점집 할 것 없이 모두 걸려있다. 이 21세기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무청은 말려서 엮여서 식탁위에 오른다. 내가 우리 엄마 나이대가 되어도 시래기를 엮어 말릴까? 아마 시래기도 가공된 식품으로 사먹을 것 같다. 이 풍경 또한 언젠가 잊혀질 풍경이 될 것이다.
영호초등학교 정문 옆의 대영슈퍼는 슈퍼와 문구를 함께 하고 있다. 20년간 장사를 했다는 여 사장님은 학교가 떠나면 장사도 장사지만 허전할 거라고 말한다. 각종 뽑기와 빨간색 돼지저금통까지 슈퍼에는 본래의 슈퍼 기능보다 문구점의 공간이 더 커보였다. 주로 동전 장사를 많이 하는지라 사장님은 흰 면장갑을 끼고 앉아있다. 미닫이문을 닫고 나가는 아이에게 미처 잔소리를 끝내기도 전에 아이가 다시 돌아와 덜 닫힌 문을 닫고 간다. 이렇게 익숙해진 것들과 곧 이별을 해야 하는 건 슈퍼집 사장님도 매한가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아이를 마중 나온 자가용이 한 대 교문을 비집고 들어서 있고 공을 차는 아이들 몇, 한쪽에서 족구를 어른들의 함성이 더 큰 오후다.
안녕, 영호초등학교
옛날에는 시장과 학교가 있는 곳은 인구밀집지역으로 아이들은 물론이고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서부시장과 영가초등학교, 구시장과 안동초등학교, 신시장과 영호초등학교가 그러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촌이 인구밀집지역이다. 안동초등학교는 전교생 320여명에 불과하다. 7학급의 영호초등학교도 전교생이 60여명으로 이제 내년 3월이면 옥동으로 이전, 재배치된다. 옥동8주공 건너편 공터에 학교부지가 마련되었고 한창 공사 중이다. 아마도 학교 이름은 옥동초등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942년 5월 1일, 4년제 안동공립고등여학교가 옥야동 382-2번지에 개교를 한다. 이후 안동여중, 안동여고로 개편되고 1972년에 안동여고가, 1974년에 안동여중이 지금의 법상동으로 옮겨가고 1973년부터 영호초등학교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 오른쪽으로는 안흥동, 왼쪽으로는 옥야동, 위로는 신시장이 위치해 있다. 영호초등학교는 1973년 7월 4일 안동북부국민학교로 개교 후 1975년에 안동영호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현재 총 60여명의 전교생이 있다. 아마도 내년 초 졸업식에서는 이 교가가 마지막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영남산 뻗어 내린 기름진 이 땅 낙동강 맑은 물이 옥토 이뤘다 이 고장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빛나리 길이길이 영호초등학교”
교목은 늠름한 기상과 끈기와 인내를 뜻하는 향나무, 교화는 깊은 사고력과 고고한 인품을 뜻하는 목련이다. 다른 무엇보다 학교의 교훈이 마음에 든다. “행동은 바르게, 생각은 슬기롭게, 몸과 마음은 튼튼하게”
하교를 미루고 운동장을 배회하고 있는 6학년 민우랑 4학년 종헌이를 만났다. 성이 다르니 형제는 아닐테고, 궁금해서 던진 질문에 맹랑한 대답이 돌아온다.
“둘이는 무슨 사이야?”
“짜증나는 사이요.”
몇 반이냐고 묻자 한 학년 당 학 학급밖에 없다고 한다. 맞아, 전교생이 60여명이었지. 민우는 옥야동 영호초등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고 종헌이는 옥동으로 학교를 옮긴다.
학교 운동장에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지겹지 않은 적이 없었던 낮은 단상이 보이고, 화단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독서하는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 아래에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학창시절에 우리는 ‘독서는 마음의 한식, 분식’이라 바꿔놓고 낄낄댔었다. 흙먼지도 일지 않는 한산한 운동장을 둘러보고 나온다. 폐교가 되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이전의 역사만 폐기시키지 않는다는 것일뿐, 모교가 그리운 졸업생들에겐 아쉬움이 많을 것이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안동시 영호6길 26, 옥야동 영호초등학교의 마지막 겨울을 갈무리하고 운동장을 나섰다.
떡볶이 보살의 추억
내 중학시절 짝꿍의 어머니는 ‘점집’마니아다. 어느 날 만난 친구가 자기 엄마가 용한 도사 한분을 알고 있다면서 그 이름하야 ‘떡볶이 보살’이라 했다. 이름이 좀 ‘없어 보여서’ 난 콧방귀를 뀌었는데 친구는 엄마가 말할 정도면 틀림없으니 언제 한번 들러보라고 했다. 오래전 나는 영호초등학교 부근을 걷다 떡볶이 보살이 생각나 물어물어 가본 적이 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혹시나 싶어 영호초등학교를 벗어나 제일호스상사에 이르니 거짓말처럼 ‘떡볶이 보살’간판이 보였다.
어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그 점집에는 그냥 옆집 아줌마같이 평범하게 생긴 ‘떡볶이 보살’이 있었다. 당시 내 생년일시를 읊더니 무슨 노래를 불렀는데, 친구가 미리 언질을 주기를 그 노래가 점 친 내용이니까 귀 기울여 잘 들으라는 거였다. 처음 방문한 점집에 눈이 휘둥그레져 불상이며 촛대며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불시에 떡볶이 보살은 무슨 판소리 같은 노래를 읊었다.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다시 한 번 말해달라는 용기도 나지 않았다. 당시에 아이팟이 있었다면 녹음이라도 했을텐데, 어쨌든 결론은 공부를 너무 안했다는 거고(그러기도 드물다고 했다. 나도 심하게 동감했다.) 패션이나 의료계, 방송계 쪽으로 나갔어야 한다고 했다.(저런.) 그런데 마지막에 떡볶이 보살은 별로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오히려 떡볶이 보살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치는 발언을 했다. 이런 거 안 봐도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고 바꿀 수 있으니까 젊은 사람이 무엇이든 연연하지 말고 열심히 부딪쳐보라고 말이다.
나는 떡볶이 보살께 복채 만원 드리고 박카스 한 병 얻어 마시고 마루에서 수다를 잠시 떨다가 돌아왔었다. 내가 신발을 찾아 신고 그 집을 나설 때,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라던 떡볶이 보살은 툇마루에 나물을 널고 있었다.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아저씨도 함께 말이다. 그 순간 떡볶이 보살이 진정 도인으로 느껴졌었다.
그 오래 전 떡볶이 보살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살아온 나는 다시 그 집 앞을 지나면서 감회에 젖었다. 아직도 점을 치고 있나부다, 건강은 괜찮으신가 부다, 다행이다, 하고. 날 기억하지도 못할 떡볶이 보살의 안부를 챙기며 옥야동 구석구석의 찬바람을 더 느끼고자 길을 걸었다.
실내포장의 정겨운 알림사항
2007년 12월에 준공된 옥야경로당에서는 열댓 명의 어르신들이 담소며 윷놀이며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일찌감치 점심을 드시고 나왔다는 할머니 한분이 이른 귀가를 하신다. 빨간 벽돌 2층 경로당은 일년 열두 달 심심한 어르신들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오꼬시, 뻥튀기 간판이 있는 골목을 지나니 실내포장마차들이 죽 있다. 순아 실내포장, 들국화 실내포장에는 배추전, 도리뱅뱅이, 동태찌개, 똥집 같은 메뉴가 적혀있다. 가게 출입문에는 ‘막걸리 있습니다’는 글이 적힌 걸로 보아 메뉴에 없는 막걸리를 찾는 손님들에게 알리는 공지 혹은 주머니가 얇아진 늙수그레한 손님들을 유혹하는 문구임에 틀림이 없다. 맞춤법이 틀렸지만, 정겨운 글씨다. 실내포장 좁은 골목 틈에는 취객을 위한 간이변기가 있다. 맞은편 안동상회 앞에 쌓아놓은 연탄을 보니 겨울채비를 제법 든든하게 한 것 같다.
골목을 가르는 자전거 페달소리
서늘한 날, 파는 골목 텃밭에 머리를 박고 서 있다. 쉬 버리지 못하고 집 마당 안으로 들이지도 못하는 화분과 물건들이 골목에 나와 있다. 화장실 환풍구는 오래된 달력으로 막아놓고 깨진 화분에는 막걸리 빈통이 버려져 있다. 기차선로 둑 비탈에는 무단 경작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서 있고 어둡고 한적한 풍경은 낯선 외국 땅에 와 있는 황량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옥야동 골목길, 할아버지의 자전거 페달 소리가 경쾌하다. 나는 최영미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할아버지는 계란 한판 사들고 꿈의 페달을 밟고 할머니가 계시는 아늑한 집으로 가리라. 이 겨울은 생각만큼 길지 않을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