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화음, 채영이네 가족중창단(글/이미홍_객원기자)

가족.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 그래서 가끔은 그 이름의 무게가 구속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면 의지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어떤 멕시코 작가는 가족을 달팽이집에 비유했다고 한다. 지고 다닐 때는 짐이지만 눈비가 오거나 위험에 처할 때면 숨을 수 있는 곳이 되어주기도 하는 달팽이 집. 그 집 안에서 달팽이는 위안과 휴식을 얻고 또 다시 집을 지고 길을 나선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노래 구절이 있다. 이승환의 ‘가족’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인데 가족에 대한 느낌들이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밤늦은 길을 걸어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오면 언제나 나를 맞는 깊은 어둠과 고요히 잠든 가족들 ~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했죠. ~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는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람.”


그리고 여기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삼대가 하나가 되어 한 마음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진짜 가족이
있다. 작년에 열린 제5회 전국 봄나들이 동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채영이(13)네 가족 이야기다.




전국 봄나들이 동요제 대상 수상한 채영이네 가족
채영이네 가족은 안동이 낳은 한국현대음악의 선구자 소천 권태호 선생을 기념하여 한국음악협회 안동시지부가 주관한 전국 봄나들이 동요제에 지인들의 권유로 우연히 가족이 다함께 나가서 대상을 받게 되었다. 맏며느리 김경준(44) 씨는 뜻밖의 상이라 기쁨도 컸다고 한다.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첫째인 남편과 나,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채영이 우리 세 식구와, 둘째인 서방님과 동서, 4학년 1학년인 조카 녀석 둘까지 삼대 아홉 식구가 함께 참가를 했는데 생각밖에 영예의 대상을 안은 거예요. 상도 상이지만 이번 노래자랑에서 식구들이 얻은 게 참 많아요. 노래자랑대회에 참가한다고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온 식구가 모여서 복닥거리며 머리 맞대고 연습하고, 대회 참가한다고 같이 어울려 다니던 과정부터 부모님도 그렇고 저희도 가족이 새롭게 느껴지고 참 좋았어요. 거기다 대상까지 받게 되어 너무 기뻤죠. 상금도 50만원이나 받았고요. 가족이 같이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거, 나 혼자 잘해서 개인으로 나가 1, 2등을 하는 거랑은 또 다른 뿌듯함이 있더라고요.”


처음 가족이 함께 무대에 선 건 사실 교회행사였다. 온 가족이 같은 교회를 다니다 보니 교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서 삼대 가족이 같이 노래 한 곡 하면 좋겠다고 다들 권해서 어찌어찌 식구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간신히 입을 맞춰보고 노래를 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은 거였다. 그리고 그때 이 가족의 노래를 들은 지인들이 떠밀다시피 적극 추천을 해서 가요제에 아홉 식구가 정식으로 참가를 하게 된 거였다. 처음에 화음을 맞췄던 ‘참 좋은 말’ 이라는 곡과 소천 선생의 ‘봄나들이’ 두 곡을 아홉 사람이 파트와 화음을 나누어서 한 달간 연습을 했다. 노래에 자신도 없고 시간도 없다는 둘째 시동생과 동서를 설득한 건 장남인 영일(44) 씨와 맏며느리인 경준 씨의 몫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 겸 가족화합 차원에서 꼭 참석해야 한다고 온 가족이 같이 해야 의미가 있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두 분 어른들은 처음부터 너무 좋아하셨고, 직장이 있어 바쁜 둘째네가 문제였는데, 좋은 일이니까 싫다 안 하고 또 기꺼이 협조를 해주니까 고맙더라고요. 우리 동서가 또 한 노래하거든요. 서방님이 쑥스럽다고 조금 버텼지만 결국은 대의에 따를 수밖에 없었죠.”
둘 다 직장 일 하랴 아이들 챙기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자 둘째네 식구들도 적극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노래패 활동 경험이 있는 동서는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른이신 두 분 할아버지 할머니의 노래실력이 탄탄해서 위로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두 형제네, 그리고 채영이와 조카들까지 삼대의 노래가 어느 한 세대에 기울지 않고 골고루 중심을 잡으며 화음이 맞았다. 그렇게 다함께 연습을 한 점이 대회당일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었고, 함께 대회에 참가한 다른 가족들보다 돋보였다고 한다. 심사평도 그렇고 지인들도, 주위에서도 보기 좋았다고 응원을 해주었다.



안동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초대에 기뻤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대상을 먹은 노래자랑 참가는 가족 모두에게 참 좋은 기억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기간 동안 나누었던 토닥거림, 연습 또 연습 뒤 함께 먹는 밥 한 끼, 누군가의 실수로 웃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 잡고 씨름도 하고, 아파트라 아홉식구가 채영이 방 방문을 꼭 닫고 연습을 하면서도 혹여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 항의라도 있을까 마음 졸였던 시간들, 그러다가 어느새 하나하나 맞아가는 화음에 기쁨의 소리도 질렀던 순간들을 함께했다. 각자 살기 바빠 무심해지기 마련인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무엇보다, 때론 노래 한 곡이 이럼 힘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낀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유명세도 얻었다. 덕분에 안동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행사에 초청을 받아 기념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개개인이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가정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가족건강지원센터의 메시지를 대표해줄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족 대표로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노래 한 곡 같이 한 것이 가족에게 이런 덤까지 얹어준 것이다.




성가대 활동이 가족들 노래실력의 밑바탕
삼대가 함께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며 주말마다 찬송가를 부르는 생활에 익숙해 있다는 것 외에도 알게 모르게 늘 노래를 가까이 하며 지내온 환경이 있었다.


채영이네 할아버지 권정국(71) 씨와 할머니 이정옥(64) 씨가 만난 것은 1967년, 강원도 태백의 교회 성가대에서였다. 이정옥 씨의 친정아버지께서 당시 태백에 있는 광산 일을 맡아 하게 되면서 태백에 있는 교회 성가대와 주일학교 교사로 있던 정옥 씨와 당시 광산회사인 강원산업에 근무하면서 역시 성가대 활동을 하던 정국 씨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교회 성가대가 맺어준 인연인 셈이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삼남매를 낳고 부부는 76년 3월, 안동으로 왔다. 정국 씨가 안동교회에 전도사로 부임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권정국 씨네 가족은 다들 어려서부터 교회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으며 삼남매 모두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고서는 배우자에 그 자녀들까지 그런 생활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생각건대 아마도 그것이 이 가족이 가족노래자랑에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으뜸 노래 실력 채영이 덕에 구경가본 방송국
채영이가 아무래도 노래 쪽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끼를 이어받은 거 같다는 게 엄마 경준 씨의 말이다. 엄마 아빠 둘 다 매주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거 말고는 그리 노래에 썩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채영이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였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안동MBC방송국 어린이합창단 활동도 했지만 어린이합창단의 경우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지 못하고 짜여진 프로그램대로만 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서 채영이는 합창단을 그만두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선생님 추천으로 기독교재단 주최의 교회노래자랑에 대표로 나가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이후 조금씩 노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위에서 추천도 하고 해서 크고 작은 어린이 노래자랑이나 동요대회에도 참가를 하기 시작했고 여러 번 수상도 했다. 그러다가 어린이노래자랑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KBS 한국방송의 ‘누가 누가 잘하나’에까지 나가게 되어 으뜸상을 수상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온 식구가 함께 방송국 구경도 했다며 할아버지 이정국 씨의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 채영이 덕분에 내가 KBS 방송국을 밟아보게 된 거라. 옛날 군사독재 시절에 친구들하고 방송국 구경 왔다가 문전에서 쫓겨나다시피 돌아가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 채영이가 1등을 하고 그덕에 방송국 구경까지 했으니 좋지, 안 좋아?”


사실 대회에 따라다니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장거리 운전에 먹을거리, 대회에 입고 나갈 입을 거리 챙기는 거에 노래 연습 봐주기까지, 채영이가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다 보니 엄마가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채영이가 원하는 일이라 본인이 하고자 하는 한은 열심히 따라다니며 지켜봐 줄 생각인 김경준 씨.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어린이 노래자랑이 어떤 게 있고, 어느 대회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언제 열리는 지 그런 것도 잘 모르고 그랬는데, 우리 채영이가 노래하는 걸 본 교회 성가대 선생님이나 주위 분들이 먼저 알고 어떤 대회가 언제 있는데 채영이 실력이면 입상도 가능하니까 경험 삼아 한 번 참가해 보라고 권하고 여러 가지 정보도 주고 그래서 참가를 하게 된 것도 있어요. 그런데 채영이가 의외로 무대 체질인지, 기본 실력이 정말 있는 건지 나가는 대회마다 입상권에 들어서 2등도 하고 1등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자신감이 붙어서 아무래도 노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대회에 나가볼 생각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사실 뒤에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선구자’ 할머니는 ‘고장난 벽시계’
이정옥 할머니는 노래지도 자원봉사를 몇 십 년 째 해오고 계신, 이제 막 재능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채영이는 예외로 하고, 알고 보면 이 집안에서 제일 노래 실력이 짱짱한 현역이시다. 처녀 적에 성가대 활동을 할 때부터 주일교사를 하며 아이들 노래 지도를 하기 시작해서 성가대 활동과 노래교실 자원봉사도 햇수가 오래되었다. 지금도 YMCA에서 노인교실 노래 지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지금 자원봉사를 나가고 있는 곳은 와룡인데 와룡교회 건물을 빌려서 1주일에 한 번씩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교회성가대에서는 찬송가를 부르지만 노인교실 노래지도는 대중가요가 대세다. 그래서 가족들 중 그때그때 유행하는 대중가요를 실제로 가장 많이 알고 불러온 이는 이정옥 할머니다. 노래교실에서 사골국처럼 오래 사랑받아온 노래들도 부르지만, 요즘은 할머니들도 감각이 남다르고 개성 있는 분들이 많아 너무 오래된 노래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교실 메뉴도 한 해 한 해 업데이트를 해 줘야 해서 수시로 새로운 곡목들이 추가가 된다. 할머니들도 유행을 탄다는 말이다. 요새는 나훈아의 ‘고장난 벽시계’ 나 신유의 ‘시계바늘’, 류기진의 ‘그 사람 찾으러 간다’ 같은 노래들이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있다. 새로운 곡을 가르칠 때면 악보를 구해 미리 익히고 노래방에 가서 한두 시간씩 노래연습도 하곤 하는 데 그럴 때면 권정국 할아버지가 동행을 해서 번호도 눌러 주고 노래에 대한 감상 겸 평도 해주고 한단다.


“노래방에 가면 정작 할아버지는 선구자 같은 가곡이나 한 두 곡 부를까 본인은 노래를 잘 부르지 않으면서 날 더러 노래 부르라고 선곡한 번호 눌러주곤 해요. 그래도 더 젊었을 때는 피아노 반주도 해 주고 그랬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둘이서 노래방 가서 한 두 시간씩 노래하고 들어주고 그랬는데…, 전에는 새로운 곡 악보 구하면 꼭 노래방 같이 가서 연습했는데 햇수가 지나면서 요새는 노래방 안 가고 가요채널 보고 들으면서 익히기도 하고 악보 보고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잘 모르면 리듬 익히려고 테이프 틀어놓고 몇 번씩 다시 듣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고도 노래가 완전히 익지 않아 시간이 부족하거나 할라치면 사실은 가르치는 이 사람도 이 노래가 처음이라 서투니 같이 배우며 불러보자 하며 터놓고 처녀 적 동무들과 하듯 같이 노래를 부른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그것이 흉이 되지 않는 것은 연륜이 주는 편안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채영이
집안에서 노래로는 채영이가 으뜸이라는 게 할아버지 말씀이다.
“우리 채영이가 아주 쪼그만 할 때부터 뭘 해도 잘하고 열심히 했어. 그림도 열심히 그려서 대회 나가면 1등하고 수영도 1등 하고 학교 들어가서는 공부도 잘하고. 그런데 아직 어려도 따로 음악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노래를 하는 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음악 쪽으로 재능이 있어. 앞으로 저 스스로 할 나름이지만 지가 하고 싶다고 하면 성악가든 가수든 앞으로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나는 봐.”
할머니는 “음악 쪽으로 나가도 좋지만 아직은 어리고 자라면서 꿈은 또 어떻게 변하고 어떤 가능성이 더 있을지 생각도 자랄거니까 아직 한참 지켜봐야 지 뭐.” 하며 채영이를 건너다보며 웃는다. 이에 엄마 경준 씨가
“우리 채영이는 노래 자랑 나가서 상 받고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음악가보다는 공부를 잘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아빠 영일 씨가 한 마디를 거든다.
“요즘은 노래를 더 하고 싶다고도 해요. 아마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나 친구들한테 인정을 받고 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노래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그런 거 같더라고요. 아직은 공부보다는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놔두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아빠는 맘속으로 조용히 채영이를 응원하는 편인가 보다. 그런 영일 씨를 향해 할아버지가 건네시는 한마디, “사실 나야 손녀니까 그저 지켜볼 뿐이고 부모인 얘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만 재능이 있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끝까지 가봐야 알지만, 한 가지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뒤에 그 부모들의 말 못할 희생과 뒷받침이 따랐다고 봐야 돼요. 음악도 공부도 마찬가지로 힘든 길이지만 어떤 길이든 채영이가 원하는 길을 잘 가도록 부모가 도와줘야지.”


사실 요즘 채영이네 식구 모두 채영이의 방송국 노래자랑 출연 후 방송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KBS 누가 누가 잘하나’에 나가 1등상을 받고 나자 채영이는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의 축하인사를 받았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엄마 아빠도 여기저기 축하인사를 받았다. 그전에 그림대회나 글짓기대회나 화랑문화제 같은 데 나가서 상을 받았을 때는 주위에 친한 이들 몇몇 말고는 모르고 지나가기 마련이었는데, 방송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낀 시간들이었다. 채영이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이 아는 분들이나 친구들의 입에 한번 쯤 더 불리어지고 기억되는 걸 보면서 아무래도 노래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노래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정받는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어렴풋이 알았다고 할까? -조금은 딴 이야기 같지도 하지만, 왜 수많은 아이들이 아이돌을 꿈꾸며 연습지망생을 뽑는 그 많은 오디션에 몰려드는 지 알 것도 같은 대목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만큼 이제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살짝 생긴 거 같다고 엄마가 슬쩍 귀띔한다.
“얼마 전에는 엄마, 여기저기 대회에 많이 나가지 말고 제대로 연습해서 큰 대회만 나갈까? 그런데 나가서 전보다 더 못하면 어쩌지? 하더라고요. 지 딴에는 노래는 하고 싶은데 더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나 봐요. 그래서 저도 힘들면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나가기 싫은 건 아니고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좋은데 실수할까봐 그만두지는 말라고 했어요. 실력이 있어도 실수할 수 있고 1등 아닌 2등, 3등도 좋고 미끄러져도 하고 싶은 걸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게 좋다고요. 중학교에 가서도 노래를 계속하고 싶다고 하면 성악을 전공하든 뭐든 진로를 고민해서 택할 문제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 보라고 하고 있어요. 엄마 입장에서 따라 다니면서 알아보니까 공부도 힘들고 모든 분야가 다 힘들지만 음악 쪽에서 성공하는 것도 그 과정이 참 힘들고 어렵더라고요. 주위에서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채영이는 음악 시킬 거지요?’ 하고 물어들 보는데 아직 그런 걸 선택하고 할 시기는 아니라고 봐요. 우리 채영이는 아직은 노래를 잘하는 초등 5학년생이고 앞으로 채영이가 더 잘하고 좋아하는 또 어떤 것이 나올 수도 있겠죠.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보다 노래를 더 잘할 수도 있고,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요.”


올해도 노래자랑 대회에 나갈까 말까 하는 문제를 두고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이랄 수도 있는 고민을 하면서 채영이는 아마도 또 한 뼘 훌쩍 자랐을 거 같다. 인정받는 기쁨 뒤에 따르는, 그 인정받은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욕심, 그리고 어떤 때는 그것이 부담이 돼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 봤으니까,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그만큼 자랐을 거다. 콩나무를 따라 올라가 거인과 상대하면서 어느새 용기와 자신감이 훌쩍 자란 잭처럼 아이들은 때로 하룻밤 사이에도 마음이 몇 뼘씩 자라기도 하니까. 지금 이 가족들이 해 줄 수 있는 건 그런 채영이를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채영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그 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일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쁨
“2011년 작년 한 해 제일 좋았던 건 온 가족이 봄나들이 가족동요제에 나간 거지. 준비하는 기간부터 좋았어요. 노래하고 같이 모여 차타고 오고 가고, 같이 밥 먹고. 꼭 상을 받으러 나간 건 아니지만 대상을 받으니 그예 더 좋았고, 그리고 그걸로 가족건강지원센터 행사에 식구들이 같이 초청받아 가서 축하공연 한 게 좋았지. 그리고 채영이가 누가 누가 잘하나 에 나가 1등인 으뜸상 받은 거 그게 나한테는 큰 선물이었고.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지난 칠순에 자식들하고 손자손녀 온 가족 다 같이 제주도 여행 간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됐어요.”


본인의 칠순 잔치보다도 온 가족이 자식들에 손자 손녀 앞세우고 참가한 가족노래자랑 참석을 제일 좋았던 일로 꼽으시는 할아버지. 바라는 거 없다는 할아버지를 졸라 받아낸 할아버지의 솔직한 바람은 지금도 주일마다 교회에서 보고, 가까이 살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다들 자식들 건사하며 사느라 바쁜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날을 정해 작년 가족노래자랑 연습 때처럼 그렇게 온 식구 같이 모여서 차타고 바람도 쐬고 맛있는 밥도 같이 먹고 하며 사는 거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이 바라시는 것도 아마 이런 것들일 터이다. 그저 자주 얼굴 보여주고 식구끼리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 그런데 우리는 매번 주머니가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하고 밥 한 끼 먹는 것에도 인색하게 굴기 십상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 입에 밥 떠먹여 넣어주는 부모가 되고 나서도 자식인 우리는 또 내 어머니 아버지하고 밥 한 끼 먹으러 가기가 쉽지 않다.


왁자지껄, 즐거운 삼대의 행복한 계획
그저 바람일 뿐이지만 이루어지면 더없이 좋을 거라는 할아버지. 올해 노래자랑에도 참가하실 거냐는 물음에 아이들이 하자면 나는 한다며 할아버지가 웃으신다.
“지난번 행사에 초청받아 가서 노래 한 곡 부르고 맛있는 밥도 얻어먹고 돈도 받고. 노래 자랑 참가한 것 하고 초청공연 한 그 두 번의 그 행사 때문에 다들 즐거워하고 가족들끼리도 더 가까워지고 무엇보다 어른들이 좋아하시니까 저는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할아버지 말씀에 대한 영일 씨의 이 말은 곧 동의한다는 말이었나 보다.
그때 사람들이 가족들 화음이 너무 듣기 좋다고 앵콜곡을 요청했는데 가족들이 시간이 없어 다른 곡을 따로 연습해 가지 않아서 앵콜에 응하지 못한 게 한이라며 다음에는 앵콜에 대비해서 예비로 몇 곡 더 연습해 두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아무래도 이 집 식구들 온 가족이 같이 모여 왁자지껄 노래 연습하며 입 맞추는 재미를 알아버린 것 같다. 


노래자랑 참가의 전제는 가족노래자랑이고 어머니 아버지 가족, 첫째네 가족, 둘째네 가족 이렇게 삼대, 세 가족이 어우러져서 화음을 이루어 노래 부르는 것이 강점이니까 한 가족,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게 기본이다. 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는 것이 각자 화음을 나누어서 맡은 역할과 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님하고 동서는 하이 소프라노, 채영이 아빠는 베이스, 아버님은 테너, 그리고 채영이하고 조카들은 맑고 고운소리에 서방님은 기본은 하시고 나는 노래할 때는 식구들 전체 화음 속에 적당히 묻혀서 가고, 대신 노래자랑 참가 신청서부터 끝날 때까지 총무겸 매니저 역할, 이렇게 각자 자기 몫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올해도 뭉치려면 다 같이 뭉쳐야죠.”
알고 보면 볼수록 이 가족 겁이 없다. 아무래도 2012년 봄나들이 대회에도 나갈 생각들인 것 같다. 할아버지야 당연 그러하시리라 짐작했지만 본인은 그저 대세에 따랐을 뿐 굳이 먼저 나서서 노래하자 나서지는 않았을 것 같은 사람 마냥 가만히 있던 영일 씨가 선뜻 입을 연다.
“다른 거는 잘 모르겠고 봄나들이는 작년에 한 번 나가봤으니까 올해도 또 한 번 나가봐야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툭 말을 던지는 것을 보고 이 집 식구들 올해도 또 한 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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