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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같은 글쓰기, 소설가 유경한(글/김영희_객원기자, 사진/박영대_동아일보 사진기자)

화제가 된 ‘어느 무명작가의 아내’ 이야기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유경한(57)의 장편소설 <겨리>가 한솜미디어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3년 동안 공을 들인 역작이었기에 내심 기대가 컸지만 이전의 소설들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아내는 ‘남편의 눈물을 보고야 말았습니다’로 시작하여 ‘어느 무명작가의 아내’라고 끝을 맺은 짧은 글을 인터넷 게시판 다음 아고라에 올렸다. 그것이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소설도 함께 주목받기 시작해 3쇄를 찍어 무명작가에서 유명(?)작가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런 드라마틱한 일이 알려지면서 유경한 작가는 각종 언론과 방송매체에 소개되는 유명세를 치렀다.
유명세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해 얻은 것도 많지만 곤혹스러운 일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느 유명 방송사에 25분 정도의 분량으로 출연했는데 4일 동안 집에서 함께 기숙하며 촬영을 했다. 그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방송된 내용을 보고는 얼마나 부끄럽고 낯이 뜨거웠는지 아직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독자나 시청자에게 극적인 것을 보여주려 하다보니 자극적으로 편집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굶어죽을 지경은 아니었는데 저를 죽을 지경까지 나락에 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게 하거나 실수했던 부분만 내보내기도 하고 동정심만 유발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내만 고생시키는 못나고 무능한 작가로만 비춰져 일부 시청자들의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느 언론이든 그런 부분이 있다보니 다시는 안 하겠다 다짐을 했습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휴먼다큐를 찍자고 하는 걸 철저히 뿌리쳤습니다. 출판사에도 제 전화번호를 절대로 가르쳐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요. 사랑방 편집실에 소애씨 전화가 왔을 때 출판사에서 제가 안동사람인줄 아니까 전화로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안동사람으로서 차마 그것까지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마 이것이 저의 마지막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향 매체와 얘기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고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자랑거리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이름, 무명작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통해 그에게 일어났던 일을 어느 정도는 알고 또 소설 <겨리>를 미리 사서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간의 일을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들어보았다.
“인터넷에 책 리뷰가 100여개 달렸는데 우신 분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이 소설을 쓰다가 엄청 운 적이 있어요. 저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 잘 울지 않아 곤란을 겪은 일도 있었는데, 그랬던 제가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엄청 많이 울었어요. 그런 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나. 우리 집사람은 제가 글 쓰는데 근처도 안 오는 사람인데 그날은 봤었나 봐요. 새벽 한 두시 되었는데 제가 하염없이 우는 것을 보고나서 나름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나 봐요. 제가 뭐 때문에 울었는지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죠. 책이 나오고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제가 울던 생각이 많이 났나 봐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인터넷에 올렸지요. 인터넷을 잘 하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제가 우는 모습에서 느꼈던 굉장한 충격과 가슴 아픔, 무명작가의 아내로서 느꼈던 것을 넋두리 하듯이 썼는데 그게 9만 9천 8백명, 거의10만 명이 조회를 했어요. 또 댓글이 천 몇 개가 붙어 있어요. 악플도 수십 개 있지요. 그 내용이 아직도 인터넷에 그대로 있는데 그걸 클릭 한번으로 차마 날릴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한테 그만큼 애정을 보냈던 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없앨 수가 없었죠.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저에게 별별 일이 다 생겼죠. 저는 그걸 가지고 기가막힌 기회가 왔다 발판이 되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얼굴이 뜨겁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그 일로 무명작가를 벗어났다기 보다는 다른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도 오고 하니까 좀 나아진거겠죠. 때로는 순수치 못한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출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안동사람으로서 얼마나 고지식하겠어요. 그런 시류에 편승해서 같이 깨춤 추고 안하죠. 저는 무명이 몸에 너무 익숙하고 무명체질인 사람입니다. 사실 무명은 부끄러운 것이고 무명작가에 대한 자긍심은 없지만 또 무명이라 해서 주눅이 든다든지 그런 것은 없지요.”

무명작가에게 이런 기회를 준 아내 김윤금(52) 씨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아내에게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는 것은 그걸로 인해 그가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왜곡보도나 인터넷상의 악플도 그렇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독자들의 후속작품에 대한 독촉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악플을 다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반면 그에게 직접 격려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오는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서 그동안 출간된 소설들을 모두 찾아서 읽었다는 사람도있고 서울에 출장 왔다가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책을 이십 권, 삼십 권 살테니 어서 다음 작품을 내놓으라는 사람도 있다. 장편 한 권을 쓰는데 보통 2-3년이 걸리는데 이제 일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작품을 재촉하니 그것이 작가로서 가장 힘든 점이라고 했다. 이제는 진짜 족쇄를 찼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다행이 지금 시작하고 있는 소설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내용인데 장성한 아들과 늙수그레한 아버지 간에 서로가 기대는 사이에 대해서 깊은 인생의 얘기를 해보고 싶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기다리고 있는 독자를 생각해서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우문이지만 <겨리>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냐는 질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엄혹하고 암울했던 1970년 대. 그 시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으로서 청춘의 덫이었던 그 시대를 회상했을 뿐이라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항상 꿈꾸는 게 연애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조정래 씨나 황석영 씨도 연애소설을 써 본 최인호 씨를 부러워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작가가 된지 십오 년 정도 되었는데 저도 이쯤에서는 연애소설을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뜨거운 연애소설을 쓰려고 <겨리>를 시작했는데 쓰다보니까 페이스를 잃어버렸어요. 절절한 사랑보다는 억압받던 독재시절에 악전고투했던 젊은이들의 내몰림, 저항, 소외가 주가 되어버렸나 봐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 황순원의 소나기가 교과서에 나오죠. 그걸 봤던 그 시절의 사춘기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 정서를 쉽게 잊을 수 있을까요. 저에게도 오랜 세월 마음속의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아름다운 자양분을 주었던 것이 소나기였습니다. 소설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4-5년 전 우연하게 TV에서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를 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영혼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남녀 간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이튿날도 멍했지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다 봤어요. 다 보고도 마음의 진정이 안돼서 DVD를 사서 혼자서 또 한 번 봤어요. 그걸 어떤 사람들은 불륜소설이라 하지만 저는 아무리 봐도 불륜이 아니었거든요. 그때 ‘나도 이제 때가 왔구나 연애소설을 써야겠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겨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에게 무명작가를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었고, 그의 바람대로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면서도 첫사랑을 향한 뜨겁고 지극한 한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 아름다운 소설이 되었다.
그의 책에서 주인공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지만 또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는데 작가 소개란에 독특한 이력이 쓰여 있는 것이다.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잊을 수 없는 경아’ 외 다수의 노래를 취입했다는 것과 그룹사운드 ‘해일과 SUBWAY(서브웨이)’ 리드보컬이었다는 부분이다.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책 이야기 못지않게 신나게 설명을 했다.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앨범 취입한 안동소년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던 사람이 소설을 쓴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력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넣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책 판매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겠죠. 어느 날 지하철 1호선을 탔는데 노래하는 소설가라는 광고물이 걸려 있더라고요.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요. 안동에서 대중음악을 했던 사람이 두 명 있는데 저보다 3,4년 선배이신 임재우 씨죠. 아마 그분도 저처럼 노래한다고 안동살림깨나 거덜냈겠죠. 그 선배의 뒤를 이은 사람이 전데 안동연탄 김대진 사장이 안동MBC 2대 사장할 때 제가 활동했습니다. 오랫동안 무명가수였죠. 요즘 TV에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 하던데 제가 젊은 시절에 활동하던 모습과 거의 같아서 가끔 봅니다. 오랫동안 무명가수 활동을 했고 오랫동안 무명작가 생활을 했으니 무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죠.”

고향은 하회, 낙동강 백사장에 깃든 추억
그는 하회가 고향이고 동부초등학교와 안동중학교를 나왔고 교감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는 길안초등학교, 금소초등학교 영양, 봉화 등지를 전학 다니다가 5학년이 되면서 중학교 입시를 위해안동에 정착했다. 당시는 안동중학교가 상당한 명문이었는데 예천에 있는 그의 친구는 안동중학교 학생이었다는 이유로 동네 후배의 이상형이 되어 결혼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안동중학교 25회 졸업생이 480명인데 저는 같은반 했던 친구들도 잘 몰라요. 동창회 가서 느낀게 뭐냐면 40년 만인데도 제 이름을 대면 친구들이 거의 다 기억해요. ‘중학교 때 낙동강 백사장에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부르지 않았느냐’고요. 중학교 때 낙동강에서 날렸죠. 영호루 밑에 소풍 가면 노래를 잘 불렀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학교 다닐 때 공부에 정진하지 않고 신변잡기를 더 했구나 생각을 해요. 돌이켜보면 노래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았겠죠. 사춘기였던 중학교 2학년 때 공교롭게 안동MBC가 개국을 했어요. 남진 나훈아 그 시절이었어요. 시험방송을 했는데 아침부터 종일 대중가요를 틀어 주었어요. 트랜지스터는 제 방에 하나 있었으니까 학교만 갔다 오면 라디오를 들었어요. 학교에서 접하지 못했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같은 가사가 생경하기도 했지만 관심이 가던 때였죠. 마음에 두었던 여학생을 떠올리기도 했겠지요. 처음으로 대중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유난히 대중가요에 관심을 가졌던것 같아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학교에 계셔서인지 교육에 대한 욕심이 있어 그를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 보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그만 바람이 나고 말았다. 서울이라는 넓은 바다에 오니까 안동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회가 있었고 마음속으로 꿈꿔왔던 것을 발산하게 된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우연히 신인가수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지구 레코드사로 달려가 응모해 합격을 한 것이다.
“신인가수 모집에 응모한 게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바로인데 그해 17살 끝자락에 음반을 냈죠. 그 안동 시골소년이 서울 한복판에서 최고 메이저레코드회사인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수많은 억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냈죠. 지구 레코드사에 픽업이 되었는데 정작 음반은 오아시스에서 냈어요. 당시에 이은하가 저와 비슷한 나이에 음반을 내고 인기가 있었는데 남자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저를 찍었나봐요. 나이도 어리고 노래도 제법하고 학생이고 인물도 조금은 된다고 생각했던지 마케팅하기 좋겠다고 여겼던 같아요. 당시 명동에 허바허바사장이라고 유명한 사진관이 있었는데 스틸 사진을 찍어서 레코드사에 갖다 줬더니 미남이라고 하더라구요. 안동MBC에 제 노래가 나오고 대안극장에 쇼도 오고 하니까 안동 친구들은 난리가 났죠. 이듬해 또 하나 음반을 냈는데 성공은 못했어요. 그랬더니 레코드사에서 이제 자유롭게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짤린거죠.”

낮에는 학생 밤에는 가수
레코드사에서 실패를 하고 나왔지만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열여덟 살의 만용이 그를 홀로 서게 만들었다고 했다. 혼자서 해보겠다고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밤무대에 나갔다. 당시 가수 최희준씨가 세운상가에서 아마존이라는 비어홀을 했는데 거기에 출연하고 명동과 무교동에도 출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었을 때는 극장에서 쇼를 하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보컬그룹을 하나 만들었는데 지하철이 막 개통할 시기라 ‘SUBWAY’라는 이름을 썼다. 당시 일했던 을지로 풍전호텔 나이트클럽이 요즘 드라마 무대로 나오고 있다. 당시 그의 밴드는 서울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부산 극동호텔에 전속으로 스카우트 되어 오랫동안 부산에서 활동하며 제주도나 일본까지도 가서 공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서울에서 가수를 한다고 학교를 등한시하며 사는 동안 안동에서는 아비 얼굴에 먹칠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더구나 서울에까지 유학을 보내 좋은 대학 가기를 바랐더니 홍익대에 지원을 하자 아버지의 실망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반대는 말할 수도 없었죠. 갑자기 올라오셔서 기타를 박살내고 가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그때 제가 대중음악을 안 하고 유학 값을 했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겠죠. 아버지가 ‘후회하지 않냐’고 늘 물었는데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는데 지금도 그래요. 제가 지지리 사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저는 후회하지는 않아요. 우리 가족들은 제가 가슴이 아프겠지만... 우리 시골집이 부자였어요. 호의호식 하고 살았을텐데 고생하고 살았구나 애통해 하겠죠. 하지만 저는 죽을 때도 힘겹게 산 것에 대해서 후회안할 것 같아요. 비록 무명이었지만 대중가수였다는 것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가수 생활을 오래 하면서 결혼도 하고 어느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결혼은 꽤 일찍 했는데 여자를 사귀고 흔한 말로 사고를 쳤지만 오히려 손자를 끔찍이도 아끼는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두 아이를 남겨놓고 아내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밤무대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어서 그는 그렇게 사랑했던 음악을 접고 하회로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그만둔 음악이어서인지 아직도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예전의 팀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다시 모인 쎄시봉 친구들의 공연을 TV에서 지켜보면서 마음이 짠했다고.

하회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장래를 모색하다가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공연을 갈 때마다 눈여겨보았던 자동차들에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세계자동차 박람회를 열 정도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을 때였는데 우리나라도 막 시작이 될 무렵이었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자동차 사업은 승승장구였다. 당시 서초동 검찰청 앞에 꽤 큰 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사업체도 여러 개 거느릴 정도였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80년대 후반쯤 자동차 잡지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 쓰는 것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던 터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자동차 이야기만 하다가 점점 자동차 외적인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일본으로 취재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것이 글을 쓰는 시발점이 된 것이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서 제 자신을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고 말하는데 30대 초반이고 사업이 잘 되다보니까 거칠 것이 없었죠. 아무리 좋은 차도 브레이크는 있어야 하죠. 장애물이 나오면 속도도 늦춰야 하고 때로는 서기도 해야 하는데 저는 장애물이 나왔는데도 장애물인지 몰랐죠. 막 달려나간거죠. 그러다가 자동차 사업을 완전히 접고 잠수를 했죠.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 바로 그쯤인데 제 인생에서 아주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 사람입니다. ”
그것이 그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되었는데 잠수를 하면서 세기문학에 소설을 응모하여 하여 신인상을 받은 것이다. 등단이 굉장히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처음 출품한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게 되고 출판사의 작품 의뢰까지 받게 되었다. 참 행운아라고 했더니 정작 자신은 아니라고 했다. 너무나 야속한 것이 가수도 그렇고 소설가도 그렇고 너무 쉽게 길을 열어주고는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가혹할 수가 없었다고.

“출판사에서 제게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등단이라는 것이 저를 또 만용케 만들었나봐요.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책 쓰는 것 자체는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이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출판사에서 제 원고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훌륭치 못한 사람이지만 악전고투를 하며 힘겹게 탈고를 해서 출판의뢰를 했을 때 선선히 계약하자 했던 것이 제겐 힘이 되었어요. 그 덕분에 출판사는 많은 손해를 입었지만. 그리고 또 우리 집사람이 남편이 무명작가 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잘 될 것이다 기다려주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된 밑거름이죠.”
재태크를 위한 경제서적이나 자기계발서적, 몇몇 유명작가의 소설만 팔리는 때에 자신의 소설로써 주목을 받은 오랜 무명작가인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브랜드 지향적인 점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것을 벗어나야만 무명에게도 기회가 오고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고 사람들은 휴머니스트가 될 거라고 했다.

우직한 안동사람의 정서 간직하고파
“안동은 역시 안동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고마운 경험을 했는데 제 책이 12월 말에 출간되어서 지방까지 배부가 되려면 1월이나 되어야 할 땐데 12월 31일날 안동MBC에 제 책 출간 소식이 뉴스로 나왔어요. 너무 놀랬죠. 저는 거기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말이죠.”
안동에서의 추억은 참 많지만 안동사람이라면 다 알테니까 더 얘기할 필요도 없고 아직도 안동에 친구들이 많아서 자주 왕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안동사람들은 어디에 있든 많이 오염이 안 되고 시류에도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 독특한 정서가 있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다고 할까.

“사랑방 홈페이지를 둘러보다보니까 겸암에 대해서 나온 게 있더라고요. 제가 겸암파라서가 아니라 서애 류성룡 선생이 18년인가 영의정을 했어요. 동생이 18년 영의정을 하는 동안 형된 죄로 하회 밖으로는 한발짝도 안 나가고 내 동생이 못하는 거 한다고 고향을 돌보고 부모님을 모시고 집안을 건사하면서 살았어요. 요즘 형제들 때문에 망조든 사람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잘난 형은 바로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또 더 나아가 그것은 겸암 할아버지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그 속에 흐르는 안동이라는 DNA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전업작가라고 하면서 안동에 이런 잡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죄송하고 민망하다고 하면서 안동사람들이 다시 움켜잡을 수 있는 마음의 울타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오이도 바닷가 찻집에서 한낮에 시작된 얘기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는데 과연 TV다큐 제작진에게 출연제의가 올만 하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의 생각과 진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인데 작가의 관용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랄뿐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