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용원 시인의 고향 평은을 찾아서(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고향을 주제로 작가를 찾아보는 일은 막연하기 이를 데 없으나 또 작가의 고향을 뒤로 하고 작가이야기를 하는 것은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혼자만의 중얼거림으로 끝나더라도 그 헛돌기를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한창 영주댐으로 언론에 오르던 평은을 고향으로 둔 시인, 영주 평은은 석용원 시인의 고향마을이다. 들과 물길이 조화를 이뤄 굽이져 흐르는 고향을 기억하는 시인에게 그 고향 내성천이 댐으로 변한다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시인이 살아계신다면 평은의 수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추측하기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그나마 다행하게도 석 시인의 고향은 토지만 잠기고 가옥들은 그대로 남는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
평은에서 들길을 걸으며 곧 수몰지로 불릴 아니 물길이 될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묘했다. 이곳이 풍요로운 들이 된 것도 내성천의 물길에서 가능했을 것인데 들도 물도 더 큰 물살에 잠기게 된다니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잃는 일만 아픈 것이 아니다. 그 들에서 땀 흘리며 살았을 마을의 역사가 잠기고 그 역사를 안은 사람들이 떠나가야 하는 탈향과 이향이 아프다. 태어나서 자란 집을 떠나야 하고 잊히지 않을 마을 추억들이 수장될 이곳은 아직 겨울잠을 덜 깬 아기꿈처럼 편안하다. 찬 겨울바람이 맹렬하게 불어오고 갔을 터이나 며칠 전 폭설은 너무나 포근하게 들과 물을 감싸 안고 있다. 아픔을 잠시 위로하는 눈이 내렸을까 싶을 정도로.
안동에서 영주 가는 4차선 국도는 도시경계를 더욱 가까이 당겨놓아서 이 인근으로 발길을 내는 일은 옆집을 방문하는 정도로 가깝고 가볍다. 안기동을 지나 고개를 넘어 약간 달리다보면 봉화로 접어드는 예고개가 나오고 좀더 지나면 평은터널이 나오면 바로 평은리가 시작되는 진입로가 나타난다.
들어서자마자 금광1리와 평은리로 이정표가 나눠진다. 완전히 물속에 잠긴다는 금광1리 쪽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평은리는 토지만 잠기고 집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금광1리의 지은 지 오래지 않은 면사무소, 잘 다듬어진 평은초등학교, 파출소, 우체국, 버스정류장, 그리고 골목골목 이어진 아담한 집들, 몇 푼 안 되는 밥값도 카드로 결제해주는 수정식당과 거기서 먹었던 맛있는 밥도 내성천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 한다. 멀리 흘러가는 내성천의 물길, 그 물길을 따라 너른 들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는 일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평은면으로 길을 옮겨간다. 영주댐이 들어선다는 이곳은 과연 물길과 들판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올 연말까지 집을 비워야 한다는 금광1리 쪽으로 가보니 이미 떠난 집도 제법 보인다. 도로보다 푹 내려간 길가에 있는 집들은 사람들의 온기가 없다. 느릿느릿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들어가기도 하는 빈 집이 되어 있다. 일주일 전 폭설이 내린 영향으로 봄날처럼 따스한 기온에도 골목마다 눈이 수북하게 남아있다. 시골 오가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으니 눈은 내린 자리에서 굳어지고 있다. 댐 공사차량 덤프트럭들이 제일 열심히 오가고 있을 뿐이다.
금광1리 마을길을 돌아봤다. 이미 도로 쪽으로는 빈집이 많다. 올해 말까지 집을 비운다고 하는데 이미 살 곳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제법이다. 그래도 마을 안쪽으로는 빈 집이 없다. 살 때까지 살 작정이신지, 그러다 물이 들면 물을 피해 산으로 오르는 건 아니실지. 평은버스 정류장에는 버스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버스가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으니. 일요일이다보니 우체국도 굳게 잠기고, 면사무소도 조용하나 안으로 형광등이 밝게 켜져 있다. 쉬는 날이지만 바쁜 업무가 남은 모양이다. 면사무소 앞 껑충한 소나무는 그리로 물이 드는 것을 알고 있을까. 산 밑으로 파출소를 아주 야무지게 지어놓았으나 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마침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한참 찍고 있는데 큰 쟁반을 들고 배달 다녀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뭐 하려고 찍냐” 하시길래, 시인의 고향을 찾아왔다고 답하며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으니 가능하다고 해서 따라 들어간 곳이 수정식당이다. 반찬이 11가지가 넘으니 십일첩 반상이 된다, 궁중밥상 부럽지 않은된장찌개백반. 황송하게 받아서 먹고 또 먹었다. 처음 보는 반찬이 있거나 특별하지는 않았으나 푸짐하게 인심 넉넉한 밥상이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식당을 다녀간 사람들의 명함을 일일이 꽂아둔 벽면에는 기름먼지가 앉아있고, 화장실에는 휴지와 물을 아껴쓰라는 손그림이 친절하게 그려져 스토리텔링이 이뤄지는 식당이었다. 이 식당 역시 수면으로 잠길 대상이다.
2.
석용원 시인의 고향마을을 찾기 위해 먼저 가야할 곳은 석씨집성촌이었다. 누군가의 설명에 따르면 면사무소 마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금광1리를 샅샅이 헤맸으나 쓰레기 버리러 나오신 아주머니께 여쭈니 이곳이 아니라며 평은으로 가라고 하신다. 이 마을 역사를 처음 연 사람들이 석씨로 나오기 때문에 나름의 인지도가 있었을까, 훤하게 잘 설명해주신다. 그래서 말씀대로 다시 오던 길을 되밟아가기 시작한다. 길을 모른다는 조바심 보다는 평은면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마음이 더욱 여유를 부른다. 조만간 물이 모이면 다시는 밟을 수 없는 땅이 된다는 사실 탓인지 길을 잘못 드는 일이 불편하지 않다.
평은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달려가봤다. 솔직히 물구경 들구경 산구경에다 바람맞이하느라 그냥 달린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막바지 길로 접어들어 마을에 이르니 그곳이 귓골마을이었다. 물길이 함께 흐르는 제방둑을 따라 들어가다 길이 끝나는 곳의 마을. 이곳 역시 몹시 아름다운 곳이다. 마침 마을노인회관에는 몇 분 할매가 계신다. 노인회관 방은 따뜻했고 동네어른들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석용원 시인의 고향이어서 찾아왔노라고 하니 존재감이 없다. 다만 석씨들이 모여사는 평은 쪽으로 가야한다고 알려주신다. 그냥 돌아나오기 섭섭하여 물이 들어서 어쩌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뱉았더니 농담으로 질문을 피하신다. 그러면서 물이 들어와 차오르기 시작하면 키가 큰 나는 옆에 앉은 할머니 보다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을 끝는다. 그 말에 고운 할머니는 응수를 하지 않으신다. 대신 듣고 있던 내가 할머닌 물고기들이 태워주기 때문에 걱정없다고 맞받았다. 말을 보태놓고 봐도 씁쓸하다. 고향마을에 대한 아쉬움이 이렇게 해서 풀릴 수 있으랴. 마음도 가슴도 너무 아픈 질문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도 말을 좀 보탰지만 대부분 침묵으로 아픈 말을 삼가고 계셨다.
평은리 사람들이 영은이라고 부르는 동네는 고 석용원 시인이 태어나 살던 마을이다. 현재 석씨종친회 회장을 맡은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소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도 공부를 잘 했고, 똑똑했으며 특히 시를 잘 썼다고 하신다. 회장님께 어린시절에 주로 뭘 하고 놀았냐는 질문에 회장님은 늘 함께 어울렸지만 특별히 놀이를 즐기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어린나이에도 방에서 독서하고 대화하고 그리하셨을까. 왠지 석용원 시인은 그랬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편견일 수 있지만. 그런데 주변에서 자주 어울렸던 사람들은 석용원 시인의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회장님의 집 건너편이 석 시인께서 태어나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집 크기는 눈대중으로도 규모가 있어 보이나 현재 그곳에 사는 사람이 농사를 크게 짓는지 마당에는 농사에 필요한 도구며 여러 가지 시설이 갖춰져 있다. 두 마리 개만 빈 집을 지키고 있고 인기척이 전혀 없어서 밀리는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눈 녹은 물이 마당을 질펀하게 만들고 비 오듯 지붕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집안은 개 짖는 소리 말고 아무 소리가 없다.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다가올 농사철을 대비해 뭔가를 준비하는 공간인 것 같다. 한쪽으로 스러진 돌담에는 품위 있는 집안 내력이 숨어있는 듯 했다. 본채는 붉은 벽돌 건물로 완전히 ㄱ자 구조로 연결해 본채 자체만 해도 좁은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거기다 바깥채가 따로 있었던 집 구조다. 바깥채를 따로 손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어서 옛날 가마솥 아궁이도 살아있다. 가마솥은 두 개나 걸려 있다. 성냥도 옆에 있고 땔 나무도 옆에 갖다둔 걸로 봐 사용 중임에 틀림없다. 아마 그 가마솥은 석 시인이 어린시절에도 함께 있었지 않았을까. 낡은 바깥 화장실도 그랬던 게 아닐까. 집주인만 만난다면 쉽게 해결될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적어도 물이 들기 전에 한번 다시 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회장님은 석용원 시인은 소학교를 마치고 형을 따라 서울로 학교를 다니러 갔고 돌아와 평은에서 교사로 지내기도 했다는 기억을 더듬는다. 옹기종기 낮고 아담하게 앉은 석씨 집성촌은 촌마을이 그렇듯 고불고불 돌아들고 굽이쳐 들어서는 골목이 아담하다. 도로가 계획이랄 게 없이 자연스레 만들어져 굽어지는 맛이 있다. 이 동네는 사과농사를 주력으로 하는 듯, 내가 찾아간 그날은 트럭으로 사과를 실어내고 있었다. 한창 사과를 고르고 있어서 몇몇 집은 바쁜 일손을 쫒느라 분주하다.
이 동네는 석조건물로 웅장한 교회가 마을 안에 같이 있다. 정확하게 웅장하기 보다는 맵씨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석 시인의 기독교 세계를 일찍 열어준 장본인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인지 막연하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건물의 위용이 느껴진다. 시골마을에 석조교회당은 나름의 근엄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그 길 사이로 낮술로 불콰한 아저씨들이 손에는 막걸리 병을 나눠들고 어디론가 바삐 가고 계시는 동네.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는지 잘 모르지만 이미 입춘도 지났으니 슬슬 농사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거기다 협업이 필요한 농사일에다 동성으로 이뤄진 마을이다보니 그 알음알이가 남다를 것은 뻔하다. 설 쇠고 대보름까지 명절분위기가 이어졌던 옛날 풍경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인다. 귀로만 듣던 일을 잠깐 구경한 셈이다.
3.
평은대교는 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지 못한다. 대교이나 한 줄씩 차례로 오가야 하는 다리이다. 댐공사를 위한 현장사무실에는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라는 간판글이 크게 걸려 있고 일요일이라 이곳 역시 조용하다. 가까이 중앙고속도로 다리 난간이 퍼렇게 보인다. 면사무소 옆으로 바짝 붙은 간이건물벽에는 ‘댐주변지역개발촉진지구 댐범국회통과’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수몰민대책위원회가 걸어둔 것인데 살던 마을을 떠나 다시 새롭게 터전을 일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일임은 분명하다.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은 너무 헐렁해져 있다. 지붕의 기와도 줄이 맞지 않아 언제 흘러내릴지 모른다. 문살에 발라둔 문종이도 다 떨어져나가고 버려진 물건들도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바람도 이곳에서는 사정없이 마음대로 불다가 가는가, 사람의기운이 없는 집은 이미 집이 아니다. 바깥과 별로 다르지 않고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빈집인 모양이다. 사람은 다 떠나가도 뿌리박은 나무는 그대로 남아 수중식물로 변이를 할 것이다.
잎을 떨군 나무만 보고 나무의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석용원 시인이 살았다는 집 마당에는 꽤 오래된 나무가 있으나 나무 이름을 알 수 없다. 이제는 무너져가는 돌담을 보니 한때 단정한 돌담이 서고 그 위에 기와를 얹었을 것인데 기와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무너지고 있는 돌들이 괴여 있다. 여름에 무성했을 잡초와 눈으로 덮인 담장은 한 때 담이었음을 기억이나 할 지 모를 일이다. 추측컨대, 본채는 ㄱ자로 사랑채는 一자로 마당을 두고 마주 앉은 집을 둘러싼 돌담과 돌담을 감싸는 기와가 나란했을 것인 석용원 시인의 집은 이 동네에서 아주 너른 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평은을 고향으로 둔 시인의 자취를 찾아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