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서 본 안동, 화성동 골목길(글/백소애_편집기자)
도시의 숨어있는 정취, 골목길과 바보
서울이라고 못난이가 없을 리야 없겠지만 대처에서는 못난이들이 거리에 나와 행세를 하지 못하고, 시골에선 아무리 못난이라도 마음 놓고 나와 다니는 때문인지, 못난이는 시골에만 있는 것처럼 흔히 시골에서 눈에 뜨인다. 그리고 또 흔히 그는 태고 때 사람처럼 그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런 눈을 가지고, 자기 동리에 처음 들어서는 손에게 가장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아주는 것이다. (이태준 소설 <달밤> 중)
도시에서는 행세도 못할 못난이가 시골에서는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아준다는 것, 도시문명에서 소외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대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잠재적 못난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활개 치며 다닐 수 없고, 이웃과 가족이 있는 곳, 현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골에서는 순박한 사람으로 존재가 가능하다. 도시의 못난이는 현대화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며 시대에 뒤처지는 인물이다. 이태준 작품의 <달밤>에는 근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채 소외되는 바보 ‘황수건’이 등장한다. 황수건은 근대적인 삶을 살기를 소망하지만 근대적 사회에서는 원치 않는 인물이다. 그가 바라는 근대적 삶이 도시에서 어엿한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말이다.
모던한 도시에서 ‘골목길’은 존재 자체로 그 역사를 가늠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토박이들이 드물고 골목길 자체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정비되지 않은 골목길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을까.
도시에도 왜 바보가 없겠나, 사람들이 보지 않을 뿐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사물을 보는 폭도 주위에 대한 따뜻한 시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골목길과 바보는 오래전부터 동네에 계속 있어왔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소도시 안동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백하건데 이태 동안의 골목길 기행을 하면서 골목골목 우리 이웃들의 삶에 천착하지 못했다. 또 그 골목길의 역사와 변화, 현황 등에 대한 기록도 게을렀다. 그냥저냥 골목풍경을 스케치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문패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을터, 좀 더 섬세한 시각으로 골목을 들여다볼 것을 다짐하며 새해 첫 골목기행의 장소 화성동으로 가본다.
잿골, 화성동
행인의 발자국에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피해 발걸음을 뗐다. 화성동(花城洞)은 서구동(西區洞)의 관할구역에 속한다. 서구동에는 화성동을 포함 안흥(安興), 대석(大石), 옥야(沃野), 광석(廣石), 당북(堂北), 법상(法尙), 금곡(金谷)동을 포함한다.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어 화성동(花城洞)이라 하였고 잿골 들머리에 있었던 화산학원(花山學院)의 ‘花’와 잿골의 ‘城’을 합성해서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총 면적은 119,811㎡이며 300가구 내외 정도에 68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화성동은 조선 후기 안동부 서부 지역에 속했던 곳으로 잿골 또는 꼬재, 성지동(城池洞)이라 하였다. 산중턱에 살던 사람들이 법상동에서 재를 넘고 다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옛날에는 옥정동까지 법상, 화성동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재를 넘어 다녔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法尙洞)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동 일부를 분할하여 일본식 지명인 법상정1정목(法尙町1丁目)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화성동이 되었고,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함에 따라 안동시 화성동이 되었다.
옛날 이곳에 제남루(濟南樓)라는 종루가 있었는데, 당시 안동의 수령이 이 제남루 앞에 많은 백성들을 모아 놓고 죄인을 다스려 백성들에게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교훈을 일깨웠다 하며 종루가 있는 거리 곧 종로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중앙파출소에 이르는 통로를 말한다.
안동교회와 경상북도유교문화회관 사이로 오르는 화성길 좌우로 화성아랫1, 2, 4길이 세로로 늘어섰고 화성아랫3길이 가로로 놓인 택이다. 그리고 한블럭 가서 화성아랫길 금명로를 거쳐 오르면 화성윗길이 나온다.
경상북도유교문화회관은 화산학원이 있던 터다. 이곳은 지역에서도 역사적 상징성을 띠는 중요한 장소이다. 화산학원은 안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학문을 가르쳤던 교육기관으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이후 안동교육청이 들어섰고 후에 그 터에 경북상호신용금고가 새로 지어진 후 다시 권택근 성형외과가 들어서고 지금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경북유교문화회관으로 바뀌었다.
1909년에 설립된 100년 넘은 역사의 안동교회와 경북유교문화회관 사이의 골목길로 접어들기 전 목성교 사거리로 이어지는 큰길가에는 안동교회와 경북유교문화, 대원사와 천주교 안동목성성당이 자리해 있다. 전국에서도 드물게 개신교, 유교회관, 불교, 천주교 건물이 나란히 위치한 곳이라 이곳에는 종교타운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문화예술공간과 전시시설, 문화보급시설, 공원과 산책로 등이 들어설 이곳에는 총 사업비 170억원(국비 36억 5천만원과 지방비 133억 5천만원)이 책정되었다. 안동시 종교타운 조성사업이 시민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들인 예산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법상동과 화성동의 경계 법상화성길
수제비로 유명한 향나무집 입구에는 신축빌라가 들어서 있다. 마당에는 덜 녹은 눈이 보인다. 그 옆 화성경로당 문 앞에는 어르신들의 신발이 줄줄이 놓여있다. 신발은 누구의 신발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모양이 모두 비슷비슷한 효도화다.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 경로당은 요즘처럼 기름값이 비쌀 때일수록 더 인기다. 집에 있어도 무료하니 또래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 경로당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화투며 윷놀이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화성동과 법상동의 경계길은 법상화성길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늘진 골목에는 어김없이 덜 녹은 눈이 지키고 있다. 눈은 마치 중간 가르마를 탄 것처럼 골목 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쩌면 날이 확 풀리는 3월까지도 녹지 않고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 일대에는 신축원룸이 많이 들어 서 있다. 임대를 알리는 알림판 옆에는 명품 브랜드명을 딴 고급스런 이름으로 지은 원룸이름들이 걸려 있다. 원룸의 1층은 주차장, 출입구에서부터 번호를 눌러 보안을 강화한 곳이 많았다. 반들반들한 대리석의 원룸과 빨간벽돌 2층집, 개량한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우편함, 담장에 박아둔 깨진 유리병, 나무로 짜여진 대문, 뚫린 통풍구로 보이는 쌓아둔 연탄, 녹슨 물받이가 골목풍경의 정취를 더한다. 어느 집 대문에 부착된 배달음식메뉴판이 재미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메뉴에 상관없이 집으로 배달되는 문화라고 한다. 집집마다 하나 이상은 있을 배달음식집 메뉴판은 야식문화에 일조하고 있음이다. 쓸모가 없어진 전선줄을 엮어 빨래줄로 쓰는 것인지 골목 끝집 담벼락에는 빨래집게가 걸려있다. 볕 좋은 날은 이불 하나쯤은 널 수 있을 공간이 되어 보인다.
갈래길에서 여자 아이 하나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걷는다. 더딘 발걸음의 친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이는 한참을 뒤돌아보더니 아쉬운 모양으로 길을 내려간다.
화성윗길에서 내려다본 안동시내
법상화성길을 직진하여 계속 오르면 영남방송 고객센터가 나온다. 영남방송은 1997년 안동유선방송을 인수하여 1998년 영남방송이란 이름으로 개국했다. 정확한 명칭은 2008년에 변경한 ‘(주)씨제이헬로비전 영남방송이며 화성동에 고객센터가 안막동에 방송국이 위치해 있다. 영남방송을 지나면 바로 금명로로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는 명륜동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대구교육대학교 안동부설초등학교가 위치해 있고 왼쪽으로는 나이야가라식당이 있었던 운안4거리가 나온다. 직진하여 계속 오르면 화성윗길이 나온다. 부설초등학교 바로 옆에는 디자인 미술 전문학원인 공간 클릭전원미술학원이 있다.
화성윗길 영화주택쪽으로 오르니 학교 테니스장쪽으로 빠져나오는 길로 안동여중 아이들 한 무리가 왁자지껄 내려왔다. 화성윗길 언덕의 집인 40여 세대의 영화주택은 일정한 모양으로 성냥곽처럼 나란히 계단식 언덕에 위치해 있다.
맞은편으로는 공터와 밭, 비닐하우스가 있다. 언덕의 공터 작은 비닐하우스 중에는 주차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보인다. 눈비를 피해 차가 한대씩 주차되어 있다. 화성윗길 언덕에서 내려다본 안동 시내는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 듬성듬성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였다. 앙상한 나무 때문인지 전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응달진 골목에는 싸개로 덮은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오르는 산등성이에 겨울바람이 제법 맵다. 안동여중 아이들이 내려온 길을 더듬어 본다. 언덕배기 한 켠에 덩그마니 있는 낡은 옛 화장실은 마을의 당집처럼 서 있고 어디선가 갖다 놓은 4인용 의자가 어울리지 않는 비비드한 색감을 하고 공터를 지키고 있다. 동네를 잇고 있는 전선은 오선악보처럼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에 걸려있고 그 아래를 지나는 여중 아이들은 추위에 자라목처럼 고개를 묻었다. 오리털파카로 보온을 더했지만 얇은 레깅스의 교복치마는 무척 추워보였다.
부설초등학교 앞을 가르는 금명로
금명로의 낙타고개를 걸어본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곳이다. 낙타 등허리처럼 굴곡이 심한 곳이라 걷기에 멀지 않은 구간임에도 진이 빠지기 때문이다. 금곡동에서 명륜동으로 이르는 금명로 인근에는 안동여중, 안동여고, 경안고, 경안여중, 부설초등학교등이 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부설초등학교 앞은 한산하고 주로 학원차와 마중나온 학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정류장은 노랗게 칠해져 있다. 지금은 고교생인 된 조카녀석이 초등 저학년 때 매일 마중 갔던 학교 풍경과 지금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보였다. 무엇을 잊었는지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오르는, 자기 덩치만한 가방을 어깨에 맨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근처에는 전당포가 있었는데 간판 이름은 ‘돈 워리’다. 인근의 낮은 집 옥상에는 뚜껑 대신 덮어놓은 양은대접이 염려스러워 그 위에 벽돌 하나 더 얹어놓은 장독이 있다. 명륜길로 빠져나가는 길은 가톨릭상지대학교로 진입하는 길과 시청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 신안동 안막동으로 빠져나가는 북문마트 사거리다.
법상동 명륜동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선 화성동에 을씨년스런 겨울이 가고 있다. 금명로가 금 그어놓은 것처럼 사람들의 발걸음은 화성아랫길에 대부분 머물다 만다. 가파른 흙길을 걷다 깨진 화분을 밟아도, 한데서 얼음장처럼 차갑게 놓여있는 들마루에 잠시 앉아있어도 계절만큼 시리지 않은 골목 곳곳의 풍경을 볼 수 있는 화성윗길도 잊지 말자.<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