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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에서 1박 2일′ 저우리 민박집 주인장 박재숙(글/이미홍_객원기자)

저우리 마을의 건진국수 할머니
안동에서 풍천방면으로 가다가 광덕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들면 바로 보이는 마을 저우리, 저우리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길손의 눈길을 잡는 길가에 세워진 소박한 간판이 하나 있다. ‘박재숙 농가민박’. 그리고 그 밑에 손칼국수, 손두부라고 적혀 있고 또 그 아래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그리고 마당 한 켠에는 집 지킴이인 듯 마당을 지키고 있다가 주인을 부르는 우리를 앞질러 현관입구에 먼저 가서 다리를 깔고 앉는 ‘똘이’가 있고, 문 앞에 쳐진 그 여름 차양막 너머로 어서 오시라는 말을 건네며 문을 열고 나오시는 박재숙 할머니(68)가 있다.

예전에 어쩌다 한 번 멋도 모르고 취재에 응했는데, 그 뒤로 방송국이고 잡지사고 얼마나 전화를 해대는지 산에 가도 전화가 오고, 들에 가도 전화가 오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해서 사실 웬만하면 이제 취재를 안 하려고 거절을 하는데, ‘어찌 알고 아는 분들 통해 물어물어 일부러 이래 또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는 주인장 재숙 씨다. 또 이렇게 취재를 요청한 우리를 향해 그렇게 투정 한 마디를 섞어 반겨주셨다.
한 번은 많은 이들이 보는 알만한 여성잡지사에서 직접 취재도 아니고 ‘안동맛집기행’ 기사를 내면서 『대한민국 누들로드』라는 책에 나온 걸 보고 안동지방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건진 국수를 기사로 쓰기로 했는데, 기사를 잘 내줄테니까 잡지를 일 년 동안 구독하라고 해서 알았다 했는데 나중에 온 잡지를 보니 한 페이지도 아니고 페이지 한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내놓았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은근히 이왕지사 취재를 할 거면 제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말을 제대로 할 줄 아시는 분이시다.

인사를 하자마자 물 한잔 마시라고 내주고는 이내 국수를 밀기 시작하면서 자식들 이야기며 손님들 이야기며 이러저런 이야기를 넋두리 삼아 쉬엄쉬엄 건네며 두 손은 부지런히 국수 밀 채비를 하고 있다. 미리 밀어놓을까 하다가 이왕이면 국수 미는 것도 보고 싶다는 우리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국수를 미는 그 모습이 비오는 출출한 날이면 국수 밀어 칼국수를 해 주던 우리 엄마 모습과 꼭 닮았다.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살림에 다섯 아이들과 시아버지까지 여덟 식구 끼니를 책임지셨던 엄마는 국수를 밀어서 칼국수를 자주 해주셨는데, 특히 여름날이면 다른 집보다 유난히 높은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 국수를 미는 일이 많았다. 국수를 밀 때면 어김없이 둘째딸이었던 나를 옆에 불러 앉혀 놓고서는 국수를 밀기 시작하셨는데, 국수를 미는 동안 국수가 눌러 붙지 않게 하기 위해 사이사이 밀가루를 뿌리는 일은 대개 내 담당이었다. 그리고 국수의 크기가 점점 커져서 엄마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가 되어 마루 가득 차오르면 국수가 바닥에 붙지 않게 밀가루를 묻힌 고사리 손으로 국수를 말고 다시 펴는 일을 거들기도 했다. 그리고 나면 국수를 접어 곱게 썰고 남은 꼬랑지가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물론 내 손에 쥐어졌다고 온전히 내 몫이 된 적은 없지만 말이다. 번번이 동생들 손에 반 이상이 가긴 했지만, 국수 삶는 솥에 불을 때면서 구워먹는 국수꼬랑지는 국수 미는 날이면 맛볼 수 있는 우리들만의 간식이었다.

건진국수는 오랜 시간 공들여 밀어야 제 맛
“우리 애들도 내가 해 주는 건진국수 좋아들 하지요. 손주 손녀들도 좋아하고. 전에는 자주 와서 국수 먹고 가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주말에 민박을 하니까 애들이 할머니 집에 손님 있냐고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한대요. 이제는 전화해 보고 와요. 나는 괜찮은데 민박하는 손님이 있으면 저들은 불편한가 보더라고. 우리 아들은 청주에 연구원으로 있고, 딸 하나는 경기도에서 수학교사를 하고 막내딸은 인천에서 방과 후 영어를 가르치고 다들 자기 밥벌이들 하면서 좋은 배우자 만나서 가정 이루고 잘들 살고 있어요. 그래서 자식들 걱정은 크게 안 해요. 저들이 걱정해서 어쩌다 연락이 안 되면 이웃으로 면소로 연락하고 난리지요. 한 번은 파출소에 연락해서 순경이 아무 일 없냐고 왔다 가기도 했어요. 엄마랑 연락이 안되면 바로 그 사단이 나요. 내가 이렇게 손님 받고 한다고, 애들이 엄마 이제 힘든 일 그만하고 쉬엄쉬엄 지내라고 그래요. 그러면서도 며칠 전에는 딸이 전화해서는 대뜸 엄마가 해준 마늘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해서 좀 부쳐달라고 해요. 그래서 오토바이 타고 장에 가서 마늘종다리 두 단 사 와서 버뜩 해서 택배로 부쳤어요. 그게 자식이고 엄마죠. 그래도 혼자 있으면서 놀면 심심하니까 여름에는 이렇게 국수 만들어 팔고 겨울에는 손두부 만들어 팔고 그러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면서 살면 재미있잖아요.”

손국수는 얇아야 맛있다며 긴 암반 위에 미리 해 놓은 반죽을 올려놓고 손으로 치대고 주무르기를 한참 하더니 홍두깨를 반죽 위에 올려 국수를 밀기 시작한다. 두 팔을 연신 홍두깨 길이만큼 폈다 오므렸다 하며 반죽 위로 슥슥 턱, 슥슥 턱, 문지르기를 반복한다. 여름에는 반죽을 더 되직하고 야물게 해야 해서 아무래도 국수반죽 밀면서 밀가루도 더 자주 골고루 뿌려져야 하는 게 요령이라며, 콩가루의 비율을 알맞게 잘 섞어야 국수가 더 얇게 잘 밀린다고 한다. 스르르 턱턱, 스르륵 턱턱. 홍두깨로 반죽 미는 소리 틈틈이 이야기 한 자락 듣다보니 어느새 반죽이 한 가득 얇게 펼쳐져 있다. 차곡차곡 길게 접어서 칼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국수면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밀어서 곱게 칼질해 만들어낸 가지런히 놓인 국수가락 앞에서 한 끼 식사를 위해 우리네 어머니들이 들였던 정성을 생각하는데, 어느새 손으로 술술 풀어헤쳐진 국수가락이 끓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금방 삶아 찬물에 건져내고 희고 노란 지단 붙여 오이채에 김가루까지 고명 곁들여 정성들여 준비해 놓은 육수를 부어 낸 건진국수는 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감칠맛이 있었다. 상에 같이 낸 겉절이와 물김치, 고들빼기, 쌈장과 밭에서 뜯어온 채소들까지 소박한 경상도 시골 밥상의 정겨움에 국수가 후루룩 시원하게 잘도 넘어갔다.

검무산 자락 오미동서 시집온 박재숙씨
박재숙 씨의 고향은 저우리 마을에서 고개 두어 개 넘으면 닿는 곳인 현재 도청을 짓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검무산 자락의 재령박씨 집성촌인 오미동 마을이다. 학암 김중휴 선생의 고택인 학암종택이 있는 마을이기도 하지만 나름 유서 깊은 양반문화를 자랑하는 재령박씨 집성촌이다 보니 문중 재사며 재령박씨 고택들도 적지 않다. 재숙 할머니도 자라면서 마을에 내려오는 선비문화와 가풍을 알게 모르게 몸으로 익히고 배우며 자랐다.

얼마 전에 도청소재지 공사로 문중에서 이장 작업을 하던 중에 400년 넘은 미라가 나온 곳이 바로 재숙 할머니네 집안 어른 무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린 이가 바로 재숙 할머니라는 사실이다.
“그 날 문중에서 도청 이전 때문에 집안 조상들 무덤 일곱 기를 이장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친정 남동생이 와서 이장작업을 돕고 있었는데, 친정 집안 언니 동생들이 그 구경 한다고 멀리서 와서 우리 집에 묵고 이장하는 데를 갔어요. 그런데 그 미라가 나온 거예요. 꺼내는데 보니까 산소 바닥 맨 밑바닥에 두꺼운 오동나무관이 있는데 그 위에 회장석을 50㎝정도 두께로 두껍게 바르고 그 위에 숯을 덮어 놓았어요. 그렇게 삼중으로 방비를 단단히 해 뒀으니 시신이 고대로 미라로 보존이 된 거지요. 치아하고 수염까지 그대로인 게 만져본 이들 말로는 피부도 딱딱하지 않더래요. 그런데 그걸 보고 나는 이걸 어디에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일꾼들은 방송국에 알리고 어쩌고 하면 이장 작업 중지하고 촬영한다, 발굴한다, 전문가 오고 결정 날 때까지 기다리고 하다보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고 하세월이라 일정에 맞추려면 안 알리는 게 낫다고 하는 거예요. 문중 사람들도 이장은 급하고 하니까 의견이 분분하고요. 그래서 내가 동생한테 그랬어요. 그래도 이건 알리는 게 맞다 하고요. 그리고는 안동MBC 방송국에 전화를 했지요.”

이게 맞다 싶으면 그냥 하고 마는 재숙 할머니는 그래서 방송국으로, 그리고 방송국 말 듣고 안동대 박물관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방송에서 우리는 재령박씨 문숙공파 문중 묘에서 발견된 명종 때 사헌부 감찰을 지낸 박대임 선생으로 추정되는 410년 된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이미 관 위에 덮여 있던 숯을 걷어내고 관을 무덤 밖으로 꺼내 관 뚜껑까지 열어본 상태였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확인을 거쳐 미라의 사진을 남기고 나머지 이장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문중의 작은 이야깃거리로 남고 그냥 역사 속으로 묻힐 수도 있었던 일이 재숙 할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발 빠른 대처도 대처려니와 조상과 역사에 대한 안동의 보통 할머니들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시골에서 민박집 하며 칼국수 만들어 파는 안동의 보통 시골 할매 재숙 씨의 진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것도 못해서 시집가서 쫓겨나고 싶냐?”
신랑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시집을 왔다. 고개 넘어 스물 둘에 시집을 와 올해로 육십 여덟 닭띠니 시집온 지 어느덧 마흔 여섯 해가 지났다. 삼십여 년을 함께 산 남편을 쉰다섯 되던 해 먼저 보낸 지도 어느 덧 십 년 세월이 더 지났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셨던 건진국수를 먹으며 자랐다. 자라면서는 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가 국수를 밀고 육수를 우리고 고명을 얹어 할아버지 상에 올리는 것을 보고 배웠다. 바느질에 못지않게 부엌살림을 익히는 일이 그 시절 시집가기 전 처녀들에게는 절대절명 당연한 일이었기에 재숙씨는 처녀 적부터 여름이면 건진 국수를 만들어 집안 어른 상에 올렸다고 한다.

“우리 할매가 음식솜씨가 좋았는데 더운 여름 날 저녁이면 이 건진국수를 자주 해 주셨어요. 놀다가 들어와서 할매가 해 주신 국수 먹던 기억이 나요. 우리 할매, 어매한테 국수 미는 법이며 육수 내는 거, 살림살이 어렸을 때부터 심부름하며 다 배웠어요. 우리 때는 그래 안하면 시집가서 시어른한테 쫓겨난다고 그랬어요. 우리 어매 말이 툭하면, 이것도 못해서 시집가서 쫓겨나고 싶나? 그러시며 바느질이며 국수 삶아 어른 상에 올리는 일이며 장 담그는 법까지 일일이 가르치셨지. 그때는 다들 그렇게 배워서 시집왔어.”

육남매 중 둘째딸이었던 재숙 할머니는 스물 둘 되던 해에 그네가 살던 버스도 다니지 않던 오미동 마을에서 고개 너머 이웃 마을인 양수장이 있는 큰 마을인 광덕면 저우리로 시집을 왔다. 시집오고 얼마 안 있어 인근 마을보다 전기도 먼저 들어오고 해서 그때는 친정동네서 시집 잘 갔다고 했다고 한다.

시집을 오니 시어른이 둘째인 남편 몫으로 지금 집터 자리에 맞춤한 기와집을 한 채 지어서 살림을 내주셨다. 재숙 할머니 기억에도 시집올 그때 당시로는 시댁이 제법 잘 살아서 배곯을 걱정은 없었다고 한다. 많지는 않았지만 분가할 때 집에 달려 준 토지로 논 두세 마지기하고 뽕밭이 있어서 신혼 시절 살림살이는 제법 넉넉했다. 집에서 좀 멀기는 해도 논도 토질이 좋은 일등 답이라 쌀농사가 잘되어 밥맛이 좋았는데, 그래서 지금도 논을 팔지 않고 논농사를 지어 가을이면 삼남매에게 쌀을 부쳐주고 남은 쌀로 손님상에 밥을 해 낸다. 그런데 시집살이가 매섭긴 했지만 한 동네서 그늘이 되어주시던 시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로 시름시름 아픈 남편과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삼남매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짓고 있는 농사만으로는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하기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농사만으론 힘들어 화장품 판매원으로 자식 건사
그래서 재숙 씨는 돈을 벌러 나섰다. 그때 재숙씨가 눈을 돌린 것이 방문화장품 판매였다. 틈틈이 아이들을 돌보고 농사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싶어 당시 아모레 화장품 대리점을 찾아가 교육을 받고 하회 인근 마을을 돌면서 방문화장품 판매를 시작했다. 마을 여자들이 다들 바빠서 자주 시내에 나갈 기회도 적고 풍산 인근에 제대로 된 화장품 가게도 없어서 재숙 씨의 화장품 판매는 시작부터 벌이가 쏠쏠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 사정이나 이웃의 경조사도 서로 얼추 꿰고 있어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주는 심부름도 하고 단골 되는 이들에게는 마사지도 배워서 해 주고, 그렇게 십오 년 넘게 화장품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하회 마을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화장품 판매를 하다 보니 재숙 씨는 항상 곱게 화장한 얼굴로 다녀야 했는데 그때 단골이었던 할머니들이 지금 재숙 씨를 보면 그 곱던 얼굴도 나이를 먹었네하며 안타까워들 하신다. 그때는 일이라 늘 곱게 단장하고 나서야 했고 지금은 덜 꾸미고 그저 편하게 사는 것뿐인데,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재숙 씨의 한창 때를 기억해 주시는 그 분들이 고맙고 만나면 서로 반갑다. 서로 얼굴을 알고 사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재숙 씨네만 남고 시댁 식구들이 다들 도시로 이주를 해서 명절에나 만날 수 있어서 오래 한 마을서 산 마음 알아주는 푸근한 이웃이 재숙 씨에게는 더 반갑다.

지금의 집은 집 바로 옆으로 도로가 날 때 보상을 받아서 새로 지은 것이다. 집이 너무 오래되고 낡아 집 바로 옆으로 도로 공사가 시작되면 집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집이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보상 대상이 안 된다는 관계자들에게 허술해서 무너지기 직전의 집을 보여주고 두 번 세 번 찾아가 설득을 해서 보상을 받았다. 그래봤자 집 일부하고 딸린 땅 조금 밖에 들어가지 않아 보상액은 많지 않았지만 재숙 씨는 큰맘 먹고 일단 일을 저질렀다.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금의 양옥집을 짓고, 뒤이어 집에 딸린 토지를 일부 용도 변경해서 뒤쪽에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조립식 숙소 건물까지 지은 것이다. 그게 지금의 박재숙 농가민박이다.

옥연정사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농가민박
“우리 아저씨가 나하고 한 살 차인데 내 나이 오십 넷, 오십 다섯에 돌아가셨지.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병으로 오래 고생하다 가셨어. 벌써 십 년하고도 사년이 더 됐네. 우리 아저씨는 평생 일하고는 거리가 멀게 한량으로 살다 가셨어.”
시댁 식구가 칠남매인데 시누이 넷에 삼형제 중 둘째였던 남편은 몸이 약해 젊었을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고 결국은 쉰다섯에 위암으로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재숙 씨는 아이들 건사하랴 남편 병시중 들랴 돈 벌랴 정신없이 살아냈던 시간들이었다.
“우리 아저씨 돌아가시고 아이들 다 외지에 나가 있고, 혼자 농사지으며 지내니까 무료해서 농가민박을 시작하게 됐지. 농사는 원래 짓던 거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내가 할 줄 아는 국수 직접 만들어 한 두 그릇 팔고 그러면서 조금씩 시작하게 된 거지. 국수를 일일이 손으로 직접 밀어서 하는 이런 거는 사실 젊은 사람들이 하기에는 조금 힘든 일이잖아요. 크고 거창한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우리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되는 것 같고 심심하지도 않고 돈도 벌고. 그렇다고 식당을 하자니 힘에도 부치고, 그러다가 하회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농가 민박을 겸해 하게 된 거지요,”

옥연정사 가는 길에, 지인들끼리 안동말로 속닥히 부용대 왔다가 하는 식으로 한 열 명, 대여섯 명 이렇게 길가 간판을 보고 전화를 주고 오는 손님들이나 주말이면 민박 손님들 한 팀이나 두 팀 이렇게 받으면 딱 알맞다는 재숙 씨다. 그런데 얼추 국수가 다 밀어졌다. 손님이 많을 때면 홍두깨보다 더 크게 밀기도 하지만 지금은 우리 일행 두 명에 재숙 씨까지 세 명이고, 보아하니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적당한 크기로 민 듯 했다. 얇디 얇게 밀린 국수 가락을 곱게 접어 칼질을 하는 그 손길이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 그대로다.
“가족 단위나 몇 사람씩 한 팀이나 두 팀, 이렇게 오면 딱 좋은 데, 단체로 대학생 팀이나 일본이나 중국 단체관광객이나 부녀회, 이런 데서 한 번씩 오면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혼자서 다 대접하기 힘들어서 동네 사람을 사서 해도 너무 힘에 부쳐서 되도록 단체 손님은 안 받으려고 해요. 단체 같은 경우는 꼭 건진국수를 먹고 싶다고 사전에 예약을 하고 오시는 분들이 있을 때는 할 수 없이 미리 국수를 여분이 남게 밀어 놓지요.”
적적해서 시작한 일이 커지는 것도 원치 않고 돈 버는 데 연연하고 싶지도 않다.
“국수를 미리 밀어 놓으면 편하긴 해도 아무래도 쫄깃한 맛이 금방 한 것 보다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은 예약을 하고 오셔야 좋아요. 예약을 하시면 오시는 시간에 맞추어 한 두 시간 전에 국수를 밀어 놓거나 국수 미는 과정을 보시고 싶다 하시면 재료 준비를 다 해 놓고 오시면 바로 밀어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예약 안 하고 들어오셨다가 그냥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다행히 고 바로 전에 밀어놓은 국수가 남아 있으면 운 좋게 드시고 가실 수 있는 거고요.”

아직도 우리네는 예약문화가 익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만 해도 그냥 지나다가 되면 먹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일단 가보자 하며 나서는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국수에 조밥에 쌈까지 해서 한 그릇 잘 먹고,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이 뒤쪽 창고 쪽에 옛날 앨범을 찾으러 간 그 사이 지나가던 부부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거실에 앉는다. 예약을 하고 오셨냐니까 그건 아니란다. 얼결에 객인 우리가 더 당황해서 주인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한참 만에 돌아온 주인장 재숙 씨 말씀이 안 그래도 손이 드는 걸 보고 알고 있었다 한다. 그래도 잠시 기다리면 되지 싶어 기어코 먼지 쌓인 앨범을 찾아 가지고 오는 참이란다.

들어오자마자 물부터 끓이고 계란지단 곱게 부친다. 다행히 취재를 간 우리 때문에 밀어놓은 국수도 있겠다 밑반찬도 준비해 놓았겠다 급할 게 없었다는 말씀, 그런데다 손님도 가만 보니 지나다 불쑥 들어온 이 치고는 이 집이 처음은 아닌 듯 재촉하는 법도 없이 느긋하게 기다리며 요즘은 손두부는 안 하느냐며 주인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지나가다 국수가 된다 하면 먹고 가고 아니 된다 하면 그냥 갈 요량으로 부인과 하회 쪽으로 길을 나선 김에 들른 듯하다. 여름에는 손두부가 물러 맛이 겨울만 못해 특별히 주문을 받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는 말에 아쉬움을 표하며 건진 국수 한 그릇씩을 뚝딱 비운 부부는 잘 먹었다며 곧장 일어서 길을 나선다. 굳이 맛있었다 표시 한 마디 없이 ‘다음에 또 옴시더!’ 하는 한 마디가 인사인 전형적인 경상도 아저씨네 부부다.

주인도 손님도 무뚝뚝하니 별 말은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 어느덧 하나 둘 단골이 생겨난다니 참 신통하다. 살가운 마중도 배웅도 없지만 재숙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국수에는 정직한 손맛과 마음이 다인 정성이 배어있다는 것을 상을 차려내는 재숙할머니를 보면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두르지 않고 조근조근 차려내는 밥상, 시끄럽지 않지만 한마디씩 건네는 평안한 말솜씨, 시골스런 찬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박한 건진 국수 한 그릇이지만,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매달고 직접 밀어 끓여주는 재숙할머니의 정성어린 밥상을 받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살다가 문득 그 밥상이 생각날 것 같다. 그때 떠올리는 건 어쩌면 건진 국수의 고소한 면발이 아니라 그 국수 위에 얹힌 정갈한 고명일지도 모른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그 정성 말이다.

“요즘은 바이오 산업단지에 가스 공사에 직원 분들이 한 사십 분 정도 계시는데 그 분들 중에 한 분이 왔다 가고는 이야기를 한 분 두 분 데리고 오더니 이제는 점심 먹으러 많이들 와요. 이 국수는 미리 해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고 온다 하면 사람 수에 맞추어 국수를 밀기 때문에, 한 번은 토요일에 멀리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한 열 대여섯 명이 못 드시고 그냥 가셨어요. 토요일, 일요일은 아무래도 미리 재료 준비를 좀 해 놓아야 해요. 새로 옥연정사 쪽으로 연결되는 자전거 도로가 생겨서 이 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국수 먹으러 들어오는 분들도 더 생겼어요. 국수 한 판 이빠이(가득하게) 밀면 스무 그릇까지도 나오는데 다행히 국수 밀어 놓은 거하고 육수하고 있으면 한 그릇 말아 드리고 아니면 못 드리고 그래요.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가 아니라 있으면 드리고 없으면 못 드리는 거예요. 남은 국수는 냉동실에 금방 넣어 얼려 두는데 보통 그날이나 다음 날이면 다 나가요. 오래된 단골 분들이 들르셨다가 그냥 가실 때 제일 미안하지요. 그래 제가 그러니 전화 한 통 하고 오시지 그러셨
냐고 그랬어요. 그래도 절대 미리 많이 밀어놓고 그러지는 않아요.”
유명하다는데 가면 먹을 수 있겠지 싶어 오시는데 고맙고 죄송하지만 그래도 안동 칼국수 박재숙표 건진 국수의 맛은 그 자리에서 밀어서 금방 삶아 대접하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름 한철이지만 외국 단골손님도 있어
아무래도 손님이 많을 때는 여름에 뮤지컬 ‘부용지애’를 공연 할 때라고 한다.
“매년 일본에서 오는 단골 여자 손님 같은 경우에는 원래 고택체험도 하고 하느라 옥연정사에서 묵었는데, 옥연정은 고택이라 운취도 좋고 주인도 좋고 다 좋은데 화장실이 본채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밤에 화장실 가는 게 많이 불편했나 봐요. 한 번은 김장담그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일본에 가서 김치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며칠 김장을 배우러 왔어요. 여러 날 묵으면서 김장담그는 걸 배우느라 우리 집에서도 하루 묵었는데 하루 지내 보더니 그 다음부터는 안가더라고요. 그리고는 매해 우리 집으로 와요. 그런데 나는 일본말을 모르고 통역은 없고 할 수 없이 저가 한국말을 해야 하니까 서로 답답해 하다가 내가 심심해서 티비 보고 있으면 자꾸 티비 끄고 나보고 자기랑 이야기 하자고, 일본말 하나라도 배우라고 그래요. 손짓발짓 하다가 안 되면 나는 티비 보고 저는 자러 들어가지요.”

가을에 탈춤축제 할 때도 손님이 적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부용지애는 하회마을을 주 무대로 하여 하회 부용대에서 하는 축제라 연출하는 팀에서부터 무대 조명 하는 팀들까지 그 팀들 전부가 하회 인근 마을에서 숙식을 하니까 마을로서는 제일 큰 손님이란다. 그런데 사실 그런 단체 팀을 받으면 그 팀들은 많은 인원들이 장기간 투숙이라서 부용지애 하는 기
간에 숙박을 원하는 다른 관광객 손님들을 못 받으니까 그만큼 손해라고. 그 사람들은 주로 잠만 자고 특별히 주문하는 경우가 아니면 숙식은 단체로 하회에서 담당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회 마을을 주축으로 하는 일이라 하회 인근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협조를 한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농가민박에 묵었던 어떤 팀이 행사기간 내내 숙박하면서 전기며 물이며 실컷 써 놓고는 행사 끝나고는 계산을 제대로 안 해주고 가버려 손해는 물론이고 속을 어지간히도 끓였다고 했다. 공연이며 촬영을 하는 사람들 사는 세계가 그렇게 일 할 때는 모여서 해도 일 끝나면 각자 뿔뿔이 헤어져서 지 팔 지 흔드는 그런 세계라는 걸 부용지애 몇 번 하는 요 몇 해 사이에 재숙 할머니는 물론이고 이 시골 동네 어르신들도 얼추 알아차린 눈치다. 기본 방 값에 인원 수 대로 계산을 하기로 해도 젊은 사람들이 단체로 들락날락 하니 솔직히 누가 얼마나 와서 자고 갔는지 알 길도 없고 물을 얼마나 더 썼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을에서 하는 행사가 잘돼야 서로 좋은 일이라 푸대접 할 수도 없단다. 그렇지 않아도 부용지애 할 때는 다가오는데 걱정이라기에 숙박비를 인원수대로 받지 말고 애초에 방 한 개에 얼마 하는 식으로 미리 선불로 받으시라고 하니, 마을 사람들 하는 대로 할 생각이라고, 그래도 사람 인심이 영 야박하게야 할 수 있나 하신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 하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마당으로 나와서 사진을 찍으며 자전거 길이 생겨서 옛날에 타다가 안 타던 자전거를 요즘 타고 다니는데 들바람도 좋고 공기도 좋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요즘은 급할 때 말고는 웬만한 볼 일은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한참 자전거길 예찬론을 펼치시는 재숙할머니 옆으로 쓱 하고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잠시 멈춰서더니 차 안에 있던 건장한 젊은 남자 두 사람이 할머니 오랜만이라고, 또 왔다고 인사를 한다. 재숙할머니가 안면이 익은 듯 인사를 받자 이따가 부용대 갔다가 나오는 길에 들르겠다고 하고 휙 하니 달려간다. 작년에 묵었던 바로 그 팀이지 싶다고 한다. 아마도 예의 그 숙박 때문이지 싶다는 재숙 할머니는 그러나 우리한테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언제였나는 듯 무심하게 그러라고 하고 보내고는 웃으신다. 닥치는 대로 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민박은 주말에 한해 방 두 개에 딱 두 팀만 받는다. 주로 가족 단위가 많고 잠자리와 경상도 시골 밥상 그대로의 저녁과 아침 두 끼를 제공한다. 간혹 전화로 까다롭게 주문을 하는 이도 있지만 막상 와서 시골 입맛 그대로인 밥상을 받고도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소박하지만 재숙 할머니의 깔끔한 손맛과 정성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옛날 안동 양반가 사랑 할아버지 조석 공양이 참 조심스럽고 대단했잖아요. 음식이 너무 차가워도 뜨거워도 안되니까. 그래서 여름에 국수를 드릴 때도 찬물에 한 번 넣었다 건져서 한 김 식혀서 갖은 고명을 한 건진 국수를 한 거예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께 올리던 그런 정성으로 하자고 혼자 속으로 그래요. 그전에 대갓집에서는 육수를 낼 때 은어를 한 번 달여서 그 물을 육수로 했는데, 나는 닭이나 다시마 멸치에 무를 넣고 육수를 내요. 닭국물 육수 같은 경우에는 닭이 흐물흐물해 질 때까지 푹 삶아낸 물을 식혀 육수를 만들어서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쓰면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깔끔해서 손님들이 좋아하죠.”
현관에서 바로 들어가는 오른쪽 방은 주말이면 민박을 받지만 평일에는 지금 도청이전 때문에 신축중인 도청 공사 총감독 되는 이가 하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민박을 한다는 걸 보고 찾아왔는데 거절하기가 힘들어 뜻하지 않게 하숙까지 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숙은 안 하려고 했는데 집이 대전이라 주말에는 집에 가고 밤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고 아침만 주면 된다고 잠시간이라도 하숙을 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럼 그래 보소 했는데, 사람이 점잖고 부딪힐 일도 없고 주말이면 방 비워주니 민박 손님 받는데 지장도 없고 해서 공사 끝날 때까지 있기로 했지 뭐. 일 때문에 며칠 안 들어왔는데 오늘 쯤 올 모양이라 청소라도 해 놓아야지요.”

저우리 테마마을 체험관 생기면 꼭 놀러오시소
안동국수에는 밀가루와 함께 콩가루가 들어가는 데 때문에 재숙 씨는 논농사와 더불어 콩 농사도 직접 짓는다. 기실 국수에 들어가는 콩가루의 양보다는 겨울에 만들어 파는 손두부 때문에 콩 농사는 필수다. 작년에는 겨울에 손두부 만드는데 콩이 모자라 동네 콩을 많이 사다 넣어야 했다. 두부 만드는 일에 비하면 국수 미는 일은 일 축에도 끼지 못할 만치 그 과정이 고되고 추운 겨울에 밖에서 작업해서 나무 해다가 가마솥에 끓여야 해서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그래서 손두부는 주문을 받아 만드는데, 작년 같은 경우 콩 값은 올랐는데 두부 한 판 가격은 차마 못 올리고 그대로여서 고생만 많이 하고 돈은 많이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국수는 혼자 밀어서 팔면 되지만 손두부는 만드는 과정서부터 혼자 하기 힘이 드는 작업이라 날을 잡아 일손을 사서 하는데 이문이 적어 같이 두부를 만드는 동네 분들한테 미안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콩 값 오른 만큼만 두부 한 판 값도 올려 받기로 했다 한다. 콩 서 되를 해야 두부 한 판이 나오는데 지금까지는 한 판에 만 오천 원을 받았다고 한다. 콩 값하고 두부 만드는 아주머니들 인건비 제하고 나면 남는 이문이 있을까 싶다. 다행히 저우리 테마마을 마을체험관이 좀 있으면 문을 열게 되어 올 겨울부터는 동네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같이 본격적으로 두부 만드는 일을 하기로 해서 혼자 밑지고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앞으로 제대로 시설을 갖추고 따뜻한 실내에서 두부를 만들 생각에 재숙 할머니는 지금 한껏 꿈에 부풀어 있다.

“테마마을체험관이 개관하면 국수도 만들고 손두부도 만들고 김장도 담그고 할 거니까 우리 저우리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들러서 체험도 하고 두부도 사 가고 해요. 아니면 건진 국수 생각나거든 그냥 우리 집에 들러서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가고.”
저우리에서 국수 한 그릇 들고 가든지~ 하며 어설픈 간판 하나 세워놓고 무심히 지나가는 길손들을 낚는 박재숙 씨의 농가민박이다.
언젠가 손자가 물었다.

“할머니는 언제 일어나요?”
그니가 대답했다.

“나는 날 새면 일어나!”<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