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벽화의 거리(글/백소애_편집기자)
안동시내 대구은행 통로 남문로를 걷다보면 지난 5월 15일 문을 연 홈플러스 안동점 시계탑이 보인다. 우뚝 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폼은 안동시외버스터미널이 송현동으로 옮겨간 후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다. 북적이는 홈플러스와는 달리 인근의 건물에는 빈 점포가 눈에 띈다. 구시장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번듯한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 불편한 진실 앞에 안동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할 듯싶다.
한산한 기차역 광장 벤치에는 낮잠을 즐기는 아저씨가 길게 누웠고 담소를 나누는 택시기사 몇이 둥그렇게 앉아있다. 기차역은 예전과 비교해 외관상 크게 차이가 없다. 기차역 광장에만 들어서면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설레곤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상행선 기차를 탔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제천까지 가면서 열차 한 칸에 혼자서 앉아 갔으니까. 자가용이나 빠르고 편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기차를 타고 보는 풍경은 고속도로의 빠르게 지나가는 삭막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게다가 고속도로 타이어소음은 도저히 들어줄 것이 못된다. 기차를 타면 항상 기차가 비트박스를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리드미컬하고 여유가 있다. 기차표도 스마트폰 하나로 예약이 되는 세상에선 ‘기차’라는 단어 자체가 낭만이 되곤 한다.
기차 탑승객들의 출구 쪽 역전파출소, 영호렌트카, 전현직 철도종사원과 그 가족을 위한 장소인 철우회관을 지나 경계 담장으로 이어지는 경동로를 걷는다. 이곳 200여 미터의 담장에는 옛 흑백사진을 그림으로 옮겨 넣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추억의 완행열차’와 ‘그땐 그랬지’를 주제로 옛 추억의 사진 이미지를 벽화로 옮겨놓았다.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지쳐 잠든 아주머니들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지하철 승차권 같은 비둘기행 기차표를 입에 문 아줌마, 입을 벌리고 잠든 촌로, 등에 업힌 손주에게 가락국수를 먹이는 할머니까지, 벽에는 갖가지 사연의 흑백사진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기찻길 옆 벽화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아련한 감정에 젖곤 한다. 발걸음도 천천히 걷게 되고 옛 사진에 담긴 고단한 서민들의 애환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고 연민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5남매를 거두느라 엄마는 절약이 몸에 배였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나? 10분 이상 정차했던 제천역에서 굵다란 가락국수를 먹다가 기차를 놓쳤던 기억이 난다. 원흉은 아마 뜨거운 걸 늦게 먹었던 나였던 거 같다. 역무원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을 때는 이미 5남매 모두의 기차표를 다 끊지 않았던 것이 뽀록난 후였으니까.
이 벽화는 코레일 경북본부 안동역이 역 환경 개선사업으로 기획했고 안동시의 지원으로 서양화가 김종한 씨가 시공했다고 한다. 가까이에는 신세동 길섶미술로도 있으니 거리 곳곳 그림을 입은 담장으로 인해 안동이 벽화의 명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랑로’로 불렸지만 지금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도로명 체계에 따라 ‘경동로’라 불린다. 풍산에서 청송, 영덕까지 동서로 관통하는 국도 34호선 도로이다. 안동에서 본 경동로 주소가 영덕까지도 이어져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벽화는 신중앙밧데리까지 이어지는데 흑백사진 외에도 통기타를 치는 학생들, 연인, 군인 등 기차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금성슈퍼 골목의 상록길에는 인적 하나 없이 조용하다. 보여줄 게 많은 민속품점 사장님은 액자와 서각을 걸어두고 손님을 맞는다. 잠겨 있지 않은 자전거가 담벼락에 기대 쉬고 있다. 맞은편 수도식육식당의 담에는 뻥튀기 기계에 놀란 아이들의 그림이 깜찍하게 그려져 있다.
신중앙밧데리에서부터 낙원수석, 계림식당으로 이어지는 경동길에는 민속품, 고서화, 고가구, 골동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담벼락에는 낡은 문짝이 세워져 있고 설치미술처럼 장독이 쌓여있다. 고택 매매 안내 간판, 장독, 빈 수레와 솥뚜껑, 여물통과 요강, 함지박이 구분 없이 쭉 나열되어 있다. 야외 박물관이 따로 없다. 낡은 문짝고리 하나도 ‘물건’이 되는 거리 같았다. 제대로 정비를 해서 안동의 민속품 거리로 만들어 입소문을 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어딘지 후미진 골목 같은 느낌이 드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동부주유소를 지나 시내에서 안동댐으로 갈 때 항상 거쳐야 하는 법흥육거리로 닿는 굴다리를 걷는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무단히도 많이 걸었던 길인데 굴다리 안에도 벽화가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장면과 멀리 영덕에서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를 싣고 오는 상인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다.
이 일대는 신라 시대에 법흥사(法興寺)가 있어서 법흥동이라 불렸다. 굴다리에서 왼쪽편의 임청각 쪽과 오른쪽길인 지금의 가람1길과 2길은 모두 법흥동에 속한다. 법흥석물 아래60여 호의 주택이 이웃해 살고 있는 가람1길과 2길이 있다. 기차역과 이웃해 주택이 많지는 않고 텃밭이 자리 차지를 많이 하고 있다.
법흥육거리에서 육사로 쪽으로 걷는다. 붉은벽돌 2층집 신흥노인회관을 지나 코레일 차량사업소를 지난다. 사업소 입구의 폐타이어에는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다. 타이어가 화분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봄에 활짝 폈던 벚꽃 대신 녹음이 짙다. 할아버지 한 분이 거랑 옆 텃밭에 앉아 고추모종을 돌보고 있다. 가문 날이 계속되어지고 있다.
유월이지만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늘이 파랗고 그보다 더 파란 지붕을 한 가람길의 정갈한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곧 장마철이 되면 지붕걱정, 물받이 걱정이 시작되겠지. 마당에 널어놓은 말라버린 조기 같은 양말 한 짝만이 바람에 춤을 춘다. 나는 봄과 여름의 경계를 계속 걷는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