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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달린다, 실버라이더 채대진, 권금희 부부(글/이미홍_객원기자)

문경소년의 오토바이 사랑
열다섯, 광산이 잘 나가던 시절이라 소년이 살던 고향 문경 산양에는 그때에도 광산에서 번 돈으로 번쩍거리는 새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가난한 중학생 신분으로는 감히 생각도 해볼 수 없었던 오토바이 앞에서 소년은 언젠가는 꼭 저것보다 좋은 오토바이를 타고 말 거라고 다짐을 했다. 이상하게 소년은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에 끌렸다. 같은 탈 것이라도 소년은 신형 자동차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부웅~ 부웅~ 힘차게 엔진을 울리며 달려 나가는 신형 오토바이 소식에는 저절로 눈이 갔고 타고 싶어 몸살이 났다. 남의 오토바이를 몰래 끌어다 타다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위험하다고 말리는 가족들의 걱정도 그에게는 성가실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소년의 꿈은 구체화 되어갔고, 군대에 갔다 오고 어른이 된 소년이 취직을 해서 월급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도 오토바이를 산 것이었다.
그것이 어른이 된 소년 채대진이 제일 처음 산 오토바이, 비록 50CC 소형 오토바이였지만 그에게는 첫 번째 오토바이였기에 나중에 125CC 오토바이로 갈아탈 때까지 출퇴근을 같이 하며 많은 정을 쏟았었다.

바람을 가른다, 실버라이더
안동시 용상동의 한 아파트, 폭염이 아스팔트 위에 지글거리던 수요일 한 낮, 그곳에서 채대진(67), 권금희(61) 부부를 만났다. 바이크 타고 전국을 누비는 그 이미지 때문인지, 아직은 젊고 활기 넘쳐 보이는 두 분 얼굴을 보니 실버라이더라는 말이 그 순간 참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이웃이야기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빼고 그냥 채대진, 권금희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요 며칠 전에 SBS라디오 ‘언제나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부 실버라이더라고 출연 요청이 와서 서울 갔다 왔어요. 처음에는 안동까지 와서 우리 부부가 같이 오토바이 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는 걸 내가 그냥 올라가겠다고 했어요. 뭐 집에까지 와서 요란하게 그러는 걸 우리 집사람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번거롭기도 할 거 같고 해서요. 가서 보니까 나만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리 또래 중에서 몸짱으로 유명한 사람하고, 자전거로 기인열전에 나온 사람하고, 철인3종으로 유명한 사람, 그렇게 같이 나오는 거더라고요. 라디오라 크게 긴장 안하고 그냥 내가 오토바이 타는 이야기 하고 왔어요. 별로 크게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또 굳이 숨길 것도 없는 게, 그냥 나는 오토바이가 좋아서 타는 거니까요. 요즘은 집사람이 같이 타니까 더 좋지요.”

“천성이 갑갑한 걸 못 견디는 걸 어떡해”
1974년, 당시 제대하고 일자리를 찾아 안동으로 와 주물공장에 다니던 채대진 씨는 지인의 소개로 당시 한국벨트공장에 다니던 권금희 씨와 선을 보고 그 해 말에 결혼을 했다. 대진 씨 나이 스물아홉, 금희 씨 나이 스물네 살이었다. 올해로 결혼한 지 38년인데, 그때 이미 대진 씨 옆에는 그림자처럼 오토바이가 함께 있었다. 아마도 선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고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할 때 대진 씨가 오토바이 뒤에 한두 번 태워줄 때만 해도 금희 씨는 오토바이가 대진 씨에게 그렇게 중요한 지도 두 사람의 인생에 그토록 오래 같이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몇 번의 데이트 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그때 당시 다들 그랬듯이 셋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꾸렸다. 주물공장을 그만두고 군청에서 일을 하다 당시로서는 월급이 더 많은 재생공사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의 입장에서 월급 몇 만 원의 차이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무원들의 급여나 연금, 퇴직금 등 제반 조건들이 좋아져서 후회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진 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직장의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여건이 좋았다고 한다.

“답답하게 매여서 상사 눈치 봐 가며 빡빡하게 일하는 건 싫더라고.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이 운행이라 운행이 없는 시간에는 시간 여유도 있고 일이 조절이 가능해서 싫증내지 않고 퇴직 때까지 할 수 있었지. 그때도 중간에 한번 씩 답답하면 120CC 오토바이 타고 나가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125CC 타고 출퇴근 하고 하다가 그거 팔아버리고 한동안은 오토바이 안사고 안탔어. 나중에 꼭 제대로 된 놈으로다가 큰 오토바이 사서 타고 다녀야지 하고 그때부터 별렀지.”

“마누라 몰래 장만한 오토바이, 1년을 속였지”
그랬던 그가 말 그대로 본격적으로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것은 9년 전 퇴직을 앞두고 큰마음 먹고 혼다코리아 골드윈1500CC를 장만하면서부터이다. 그전까지는 아이들 키우면서 생활에 매이다 보니 마음은 굴뚝같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예 눈을 감고 일부러 오토바이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었다. 그러다가 아이들도 어느 정도 학교를 마치고 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혼다코리아를 구입했다. 아내 모르게 중고시장을 오랫동안 알아보고 다녔다. 누가 오토바이를 내놓았다는 소리가 들리면 대구도 가고 충청도도 가고 서울도 갔다. 그렇게 여러 번의 장고 끝에 손에 넣게 된 혼다 1500! 그러나 아내 모르게 무려 거금 1700만원을 주고 장만한 보물이건만 집에 가지고 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지인이 근무하는 임하파출소였다. 파출소 부지 창고 한 구석에 고이 모셔놓고 주말이면 임하지소로 달려갔다.

“한 일 년 신나게 타고 다녔지? 주말이나 노는 날 되면 오토바이 타러 가고 싶어 곧 몸살이 났어. 불과 십여 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안동에 그런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지 않았어. 한두 대 가지고 있는 이는 있었지만 시내에서 내놓고 타고 다니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러다가 내가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닐 무렵부터 한 두 사람 연결이 되면서 ‘안동 라이더스’ 라는 모임도 생기고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 동호회도 생겼어. 지금은 회원이 28명으로 늘었어. 그래도 동호회 안에서도 또 친한 또래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하고 자주 라이딩을 나가지.”

부인 금희 씨에게 들키기까지 거의 일 년여를 그렇게 파출소 신세를 졌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결국 잡히는 법, 결국은 금희 씨 귀에도 소식이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다들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던 거더라고요. 주위에서도 알고 심지어는 우리 아들도 알고 있는데 나만 몰랐어요. 이웃에서 보고, 누구 아버지 커다란 오토바이 타고 가는 거 봤는데 모
르고 있었나, 하는 소리 듣고 나서야 알았어요. 처음에는 싸웠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좋다는데, 그리고 일은 벌써 저질렀고요. 싸우다가 제가 졌지요.”
금희 씨 말에, 능청스런 표정의 그가 말한다.
“이왕 들킨 거, 하루는 친구들하고 영덕까지 갔다 오려고 하는 데 같이 한 번 가볼래? 하고 넌지시 물어봤어. 그때 벌써 친구 서너 명이서 부인도 태우고 가고 그랬거든.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선뜻 따라 나서더라고. 그래 타보니까 생각보다 좋거든. 그러니까 그담부터 같이 타러 가고 그러더라고.”
예의 바이크 예찬론을 펼쳐놓는 것에 한 술 더 떠 남편 잘 만나 그런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금희 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하루 이틀 들은 공치사가 아님을 알겠다.

부부 라이딩 모임 후 함께 즐기게 된 금희 씨
그렇게 해서 비록 추후인가지만 암묵적으로 부인의 허락도 떨어졌고 대진 씨는 안동의 라이더스 동호회인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에도 들어가 회원들과 함께 불영계곡도 가고 얼음골도 가고, 호미곶도 가고, 영덕, 포항, 울진, 영양 등 동해 일대와 경북지역은 이웃집 다녀오듯 수도 없이 라이딩하는 코스가 되었고, 전국 라이더 모임에도 참여를 해서 경남 밀양, 충무, 해남 땅끝 마을. 강화도에 이어 제주도까지 그야말로 바람을 가르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웬만한 가까운 곳은 당일 코스가 기본이지만 중장거리 전국 라이딩 투어의 경우 1박 2일을 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그야말로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라이딩도 하고 멋진 풍광 속에 낯선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기분도 맛보고 색다른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인종도, 생김새도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그저 바이크를 좋아한다는 것, 혼다를 탄다는 것, 그 하나 만으로 모든 게 통한다.

처음에는 오토바이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던 금희 씨가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서 한두 번 혼다 뒷자리에 타다가 조금씩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재미에 빠져가다 결정적으로 그 매력에 빠져든 것도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전국라이딩 모임에 다녀오고 나서 부터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좋아한다는 거 한 가지만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하나가 돼서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팔십 가까운 할아버지도 계시고, 젊은 사장님도 있고, 대학생들도 있고 연령대 상관없이 서로 어울리고 정보도 교환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고 하는 것도 좋은데, 다양한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하는 게 좋더라고요. 회원들하고 오토바이 타고 제주도 가서 일주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트레스 안받을만큼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라이딩
그리고 일 년 전, 드디어 혼다 1800을 장만했다. 가지고 있던 1500CC를 판 돈에 개인택시해서 번 돈까지 3000만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했다. 자가용 한 대 값이다. 남들이 차를 바꿀 때 대진 씨는 그 돈으로 오토바이를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이번에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느새 함께 라이딩을 즐기게 된 금희 씨의 동의하에 당당하게 구입을 했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꿈 꿨던 혼다 1800을 드디어 품에 넣게 된 것이었다. 아마도 혼다 1800을 타고 첫 라이딩을 하는 날 대진 씨의 어깨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7년 전에 퇴직을 하고 나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 같은 경우는 운전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택시영업 면허 취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용이(영업용 운전 3년 무사고 자격)해서 개인택시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6년이 넘어가네. 택시 영업이라는 게 하루 종일 택시 안에 갇혀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고 피로하기도 한데, 나는 한 번씩 쉬는 날이면 바이크 타고 휙 나서면 자유롭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마음이 탁 트이고 시원하지.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주말에 오토바이 동호회 정기적인 모임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마음 통하는 사람들끼리 라이딩하고 싶으면 번개 투어를 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오토바이 타고 나르지.”

사실 택시업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또 요즘은 불경기이기도 하고 워낙 자가용이 많고 대중교통이 갈수록 발달하다 보니 큰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대진 씨가 개인택시를 하기로 한 데에는 어딘가 매여서 일하거나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을 채워야 하는 일은 곧 죽어도 못하겠기 때문이라 했다.
“사실 퇴직을 하고 처음에 주위에서 학원차량 운행하는 일을 주선해줘서 해 봤는데 내가 딱 하루하고 그만뒀어. 학원 차는 분 단위로 시간을 맞춰야 되고 아이들 등하교 시간, 학원 수업시간 딱딱 맞추어서 안동 시내 골목골목을 다녀야 하는데 하루 하고 내가 그만둔다 그랬어요. 그렇게 숨도 못 쉬고 매일매일을 짜여진 시간표대로 쳇바퀴 돌듯 돌 생각하니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은 게 매이는 거 싫어하는 나한테는 운전이 맞겠다 싶어서 그길로 개인택시 신청을 했지. 돈은 조금 덜 벌지 몰라도 마음이 편하잖아.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는데 가끔 술 먹고 진상 부리는 손님이나 요금 때문에 실랑이 하는 손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고 서고 싶으면 설 수 있는 택시가 내한테는 딱이라. 내가 스트레스 안 받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타고 싶은 오토바이 타면서 지낼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하는 일에도 불만이 없어. 내 힘닿는 날까지 택시 운전도 하고 오토바이 타고 라이딩도 하면서 사는 거지.”

택시기사가 하루에 10만원을 벌려면 250㎞에서 300㎞를 운행해야 한다고 한다. 한 시간에 보통 25㎞를 운행한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딴 짓 안하고 쉬지 않고 택시운전을 하루에 최소 10시간 꼬박 해야 기름 값 제하고 1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창 자랄 애들이 있는 젊은 가장들은 그야말로 딴 짓 할 시간조차 없이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린다는 이야기 끝에 그래도 자신은 자식들도 다 키웠고 오토바이가 있어서 숨 돌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환하게 웃는 대진 씨다.

인생 별거 있나? 좋은 거 같이 하면서 사는거지
번개투어 신청이 오면 대진 씨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오는 대로 무조건 콜이다. 택시 운전은 4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데, 다른 사람들은 주로 주말에 쉬다 보니 같이 라이딩을 하려고 회원들이 번개투어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운전을 하고 있다가도 택시를 세워두고 바이크 점검하고 얼른 장비부터 챙기고 본다. 라이딩을 할 때는 라이딩 재킷에 헬멧, 장갑, 부츠까지 안전을 위해 제대로 복장도 갖추어 입고 바이크에 오른다. 번개투어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복장과 장비는 언제든 오토바이 뒤 보관함에 챙겨 놓는다. 번개같이 라이딩에 임하는 대진 씨의 자세다. 금희 씨도 요즘에는 부부동반으로 가는 정기적인 라이딩 모임에는 대부분 같이 참석을 하다 보니 기본 복장이며 헬멧을 세트로 갖추어 입고 따라나선다.
“좋아하는 거 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지. 이 나이에 더 욕심 부린다고 사람 욕심이 끝이 있어? 그래서 번개신청이 오면 나는 그 길로 차 세워놓고 오토바이 타고 나르는 거야. 남들이 뭐라던 크게 신경 쓰지도 말고 돈 조금 적게 벌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겁게 살자는 게 내 모토야.”

그런데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는 자고로 약간의 수고로움과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기 마련, 대진 씨네 애마 혼다 1800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관 문제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오토바이의 경우 중고 가격도 웬만한 차 한 대 값인 2천만원 대를 가다 보니 무엇보다 오토바이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어떤 사람들은 차 두 대가 들어가는 차고를 둘이 빌려서 비싼 임대료를 반씩 나누어 내면서 보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승용차가 아닌 오토바이를 위한 차고를 따로 만들거나 컨테이너를 빌려 보관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몸들 되시겠다. 그러니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넘어질세라 매사에 조심조심하는 대진 씨네야 말해 무엇 하랴 싶다.

“내 생각에는 돈 좀 있으면 서로 얼마씩 내서 어디 허름한 땅 구해서 창고 하나 지어서 공동으로 오토바이 보관도 하고 돌아가며 관리도 하고 하면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더 경제적으로도 이익이고 친목도 더 되고 여러모로 더 나을 거 같은데, 그건 그냥 내 생각이지 뭐.”
길안 가는 길목인 건동대 앞에 늙으면 텃밭 삼아 나물이나 갈아먹으려고 사놓은 땅 한 마지기가 있는데, 거기에 컨테이너 하나 사서 갖다 놓을까 싶다가도 그 외진 곳에 컨테이너 하나 달랑 갖다 놓았다고 안심하고 있을 수도 없을 거 같고 고추 심고 깨 심어 먹는 데 그 덩치만 큰 거 갖다 놓으면 농사는커녕 흉물 되기 딱 좋을 거 같아 그도 그냥 포기했단다.

“저 오토바이가 우리한테는 귀중한 재산이에요. 어디 약간 긁히거나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흠집이라도 나면 큰일이거든. 신주 모시듯 모신다고 봐야지. 그래서 지금도 주차장에 못 두고 따로 보안장치가 돼 있는 아는 사람 창고에 매달 몇 만원씩 보관료를 주고 맡기고 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타겠다는 거 보니까 참 다들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나중에는 웃음이 다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큰 오토바이 타는 게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 생각되니까 반대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안 나겠더라고요. 그리고 소형 오토바이보다 오히려 위험하지 않으니까 같이 한 번 타보자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오토바이가 1800CC라 워낙 덩치도 있고 넓어서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바람을 느끼며 달리니까 속도 시원하니 뚫리는 맛도 있고, 집안에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싶어 따라다니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솔직히 당신도 좋으니까 군말 안하고 같이 타는 거지 뭐. 당신 친구들 중 누가 이 나이에 우리처럼 부부가 같이 저런 멋진 오토바이 타고 여행 다니고 그러는지? 돈 많다고 다가 아니지. 우리 나이에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거 당신은 내 덕에 누리고 사니 행복한 거지 뭘!”
이런 웃음 섞인 투닥거림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졌겠는가? 투닥투닥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 속에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어떻게 대진 씨가 금희 씨를 세뇌를 시켰는지, 금희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남편의 취미를 받아들이고 같이하게 되었는지가 슬쩍슬쩍 엿보인다.

평소엔 택시, 쉬는 날엔 오토바이
오토바이를 타고 라이딩을 하다보면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한다. 갑작스런 소나기로 라이딩을 중지하고 몸을 피하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배에 싣고 건너다가 뱃멀미를 만나 된통 고생을 하기도 했다. 5월과 9월 봄, 가을에 정기적인 전국라이더 모임이 있는데, 전국을 돌아가며 개최를 하는데, 전 라이더 인들이 기다리는 축제이자 절기상 멋진 경치와 따뜻한 날씨, 맑은 바람이 더해져 라이딩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데 때로 날씨가 심술을 부려 라이딩이 중단되기도 하는데, 이제는 그런 우연도 자연의 일부로, 라이딩 하는 즐거움 중의 하나로 생각하게 되더라는 금희 씨다. 바람 따라 달리며 투어 중에 헬멧 속에 장착된 헤드셋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부간의 정도 자연스레 깊어져 가는 것 같다고.

“모임에 가면 별별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서로 비교하는 법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이 그저 같이 공감대를 느끼고 즐겨요. 그러니까 저도 차츰 비교하는 것도 스스로를 볶는 것도 덜하게 되더라고요. 오토바이 이상하게 개조를 해서 머리, 꼬리 달고 오는 사람도 있고 오토바이 튜닝(개조)에다 복장까지 개성적인 사람도 많고, 일본에서도 오고, 교포들도 있고, 그런데 그런 게 아무 문제가 안돼요. 그 사람들이 전 국토를 돌면서 장소를 바꿔 만나는데, 그럴 때면 그곳 동호회 사람들이 아무래도 준비에 더 신경을 쓰죠. 앞서서 안내도 하고. 사람들이 안동에서도 한 번 하라고 하는데, 그 덩치 큰 오토바이가 한 번 움직이면 한 번에 300대 400대가 모여서 이동을 하는데, 한 곳에 모여서 행사를 할 만큼 넓은 숙소를 마련하는 것도 그렇고 라이딩할 장소도 그렇고 여건이 쉽지 않아서 아직은 개최를 미루고 있어요. 축제를 즐기려고 모이는데 숙소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숙소 때문에도 못하고 있어요.”
안동사람으로서 안동 자랑도 하고 싶고 한 상 멋들어지게 마련해서 오는 손님 잘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들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라는 대진 씨와 금희 씨다.

언젠가 할리 데이비슨 타고 신나게 질주해볼 것
“사람들이 잘 모르고 큰 오토바이 탄다고 하면 무조건 부웅~부웅~ 하면서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 내면서 다니는 줄 아는데 그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고 이건 별로 안 시끄러워. 할리 타는 사람들은 오토바이 달릴 때 나는 그 굉음을 즐기는 사람들이거든. 그 사람들은 혼다처럼 조용한 건 심심해서 못 타는 거지. 사실 나는 호기심이 좀 많아서 나중에 할리도 한 번 타고 굉음을 내면서 한번쯤 질주해보고 싶기도 해. 다들 말려서 그렇지.”
같이 회사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 중에 어떤 이는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로 개인택시가 그래도 괜찮으니까 개인택시를 일단 신청하라고 해도 그동안 실컷 해서 이제 운전은 안 하고 싶다고 퇴직금으로 다른 일 한다고 벌려놓았다가 잘 안돼서 택시 일을 하고 싶어도 신청 기간(영업용 3년 무사고 운전직으로 퇴직한 경우 1년 이내)이 지나버려서 못하고 후회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 사람도 회사에만 다니다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하다가 일이 잘 안되니까 쉬다가 학원 차량도 하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데, 우리 나이에 퇴직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고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아닌데, 그렇다고 마냥 놀 수도 없어. 돈이 많다고 매일 놀기만 할 수도 없어. 사람이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뭔가 벌이를 할 수 있는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우리 나이에는 중요하거든. 친구 중에 공무원 은퇴하고 연금 나오겠다 취미 생활하고 여행 다니고 하며 지내면 되지 무슨 다 늙어 고생 하냐고 하던 친구가 요즘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 해. 친구 중에 어떤 이는 자식들이 다 잘 돼서 용돈만 받아쓰며 살아도 된다고 하는 이도 있어. 우리 나이 되면 자식들 다 잘 키워 놓은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자식들 용돈만 쳐다보고 살 수는 없잖아. 답답하고 자식 돈도 눈치 보이는 법이거든. 내 손으로 벌 수 있으면 버는 게 좋고, 조금 벌더라도 일이 있다는 게 좋은 거니까. 그러니까 사람 일은 끝까지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라. 자기 분수에 맞게 만족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

“가장이 즐거워야 가정도 편해요”
어떤 이들은 다 늦은 나이에 커다란 오토바이 몰고 폼 잡고 다닌다고 철없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진 씨는 나이 들어 그동안 가장 노릇 하느라 참다가 퇴직하고 이제야 내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사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다. 가장인 대진 씨가 웃으니 가족들도 따라 웃을 일이 생기기도 한다.
대진 씨는 첫 직장이었던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금희 씨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일을 찾아 여러 일을 찾아서 했다.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일이 없을 때는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당시 한창 건설 중이던 안동댐(외자를 유치해서 71년 착공해서 76년 완공한 수력발전소)공사 현장 일도 했다. 그러다가 안동에서 의성을 오가는 완행버스기사로 일하다가 대진 씨의 성실함을 좋게 본 아는 분의 소개로 군청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게 될 때 시군통폐합이 되었다. 비정규직이었던 대진 씨는 다행히 당시 월급이 더 많은 자원재생공사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다가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했다. 그리고 개인택시를 신청해서 퇴직 1년 후인 6년 전부터 지금까지 개인택시 일을 하고 있다. 퇴직 후 개인택시 일을 시작하기 전 준비를 하며 쉬는 기간을 빼고는 한 번도 쉴 틈 없이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서 벌어먹으며 살고 있다.
“잘 했니 못 했니 해도 내 딴에는 그동안 내 자식들 내 마누라 위해 살았으니까. 내가 애들을 좋아해서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 50CC 오토바이 탈 때에도 그 작은 오토바이 뒤에 애들 둘하고 마누라 태우고 영덕까지 갔다 오고 그랬지. 나처럼 애들이 다 클 때까지 25년을 한 해도 안 빼고 식구들하고 텐트 들고 캠핑 다닌 사람도 우리 또래에서는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

삼남매 중에 첫째와 둘째 아들은 장가를 갔고 막내인 딸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지 분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막내 시집 보낼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크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집도 있고 많지는 않지만 퇴직하고 나오는 연금에 개인택시 일은 체력이 다할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낙천적인 대진 씨는 남들처럼 그렇게 노후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 사는 거 제각각인데 내 능력껏 살면 그뿐인 거다. 아옹다옹 하느니 그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하고 싶어 하던 일을 찾아서 하는 게 나이 들어가면서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진 씨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 중 제일은 하고 싶은 거 하며 즐겁게 사는 거다. 그래서 그는 퇴직을 하고 육십하고도 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평생의 소원이던 혼다1800을 거금을 주고 장만했고, 때로는 바가지도 긁지만 그래도 대진 씨에게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여전히 고운 금희 씨를 뒷자리에 태우고 오토바이 타고 전국을 달린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오직 오토바이 뿐인 줄 알았던 대진 씨는 오토바이 말고도 새로이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한 둘이 아니다.
“혼다골드윈만 타다가 오토바이 굉음이 화려한 할리를 한 번 타 봐야지 하던 차에 지인 중에 할리울트라1700을 타는 사람이 있어서 한 번 타 보라고 해서 타 봤는데 소리와 튀어나가는 힘이 내가 타던 거와 다르다 보니까 아찔해서 못 타겠더라고. 그래도 한 번 타고 나니까 또 타고 싶은 미련은 남지만 우리 나이에는 안전한 게 좋다 싶기도 하고 할리까지 감당하려면 자금도 감당이 안 될 거 같고 해서 그만 단념했지. 그런데 아는 사람이 또 경비행기를 타는 걸 보니까 그걸 타 보고 싶어서 알아보니 그거는 경비행기 자격증이 필순데 자격증 시험이 만만치 않아 안 될 거 같고, 강변에 내려앉는 행글라이더 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그거는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애. 댐 선착장에 가서 모터보트 보면 나도 빨리 모터보트 면허 따서 저것도 한 번 몰아봐야지 싶고.”
옆에서 금희 씨가 저 양반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안 된대도 그런다’며 손사래에 고개까지 살래살래 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진 씨는 이미 마이웨이 모드다.

“나는 관심 가는 거는 언젠가는 한번 씩 다 해보고 싶고 배워보고 싶어. 이 나이에 주저하고 겁낼 게 뭐 있다고? 나는 탈거만 보면 직접 배워서 나도 해 보고 싶은데, 나처럼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거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이에 상관없이 뭐든지 한 번 배워보고 시도해 보다 보면 재미도 있고 사는 활력도 찾고 하는 거지. 점잖 떨고 앉아 있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데 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미나게 살면 되지 사는 거 뭐 별 거 있어?”<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