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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역 연극에 대한 단상 -안동지역단체의 창작극을 중심으로(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가? 연극은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연극이 지니는 많은 매력 중의 하나는 ‘관객들과 매우 밀접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실제 생활보다 더 질서 있고 조화된 연극의 세계에 심취되면서 그 연극적인 감수성을 충족시키게 된다. 사람들은 연극적 경험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규명해 가는 즐거움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작품을 해석하며 즐기는 재미도 무척이나 쏠쏠하다. 최근 안동에서는 연극을 보는 즐거움으로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버릴만한 세 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그것은 <웅부안동전>, <부용지애>, <왕의 나라>이다.

마당극 <웅부안동전>
<웅부안동전>은 남자 예술단인 닭개비단과 여자 예술단인 해당화단의 갈등을 토대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닭개비단과 해당화단의 갈등 속에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닭개비단의 단장 아들인 선어대 도령과 해당화단의 딸인 제비원 낭자의 사랑이 그것이다.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현감의 등장,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을 위해 두 예술단은 서로 화합하여 두 사람을 돕게 되고 결국은 웅부안동은 평등과 화합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줄거리를 즐기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진정한 연극의 재미는 줄거리를 즐기면서 주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한 지적작용을 할 때 느끼는 것이다. 주제란 극을 공연하는 진정한 목적과 극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를 포함한다. 관객들은 스토리 속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강조되는 부분과 아이디어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에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고안된 여러 가지 장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웅부안동전>에는 관객들과 공유할 만한 주제가 없다. 관객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이 연극에는 강조되는 부분이 없고 오직 진부함이 존재한다. <웅부안동전>에는 닭개비단과 해당화단의 갈등의 원인이 없다. 남자 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남녀 간의 사랑으로 갈등이 해소된다는 아주 쉬운 갈등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연극을 하는 목적의식 없이 공연된 연극이기 때문에 갈등의 양상도 단순할 수밖에 없고 스토리의 진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진부함은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제공할 뿐이다.

<웅부안동전>이 관객들에게 주는 지루함은 배우들의 미숙한 연기에서도 느껴진다. 안동지역민들이 배우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미숙한 연기가 토닥여지는 것은 아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아마추어라는 미숙함을 깨고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 관객들에 대한 예의이다. 학교 연극반에서도 연극을 창작하고 공연하지만 미숙함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이 연극은 안동지역민들의 발표회로 기획된 것이 아니고 유료공연으로 기획된 공연이다. 유료공연을 할 때는 그 금액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어느 가수의 이야기처럼 ‘본전 생각나게 하는 공연’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느 정도 완숙해졌을 때 공연을 해도 될 텐데 이 공연은 그런 면에서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연극은 관객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 사이사이에 춤과 노래를 삽입하고 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빵빵 터지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장면에 관객들은 재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춤과 노래는 관객들에게 연극이 가지는 진정한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오락성을 제공할 뿐이다. 연극에 삽입되는 노래와 춤은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팸플릿의 연극 소개 글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경치 좋고 인심 좋고 먹거리 많은 동네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남녀 간의 갈등,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횡포, 그들은 따르는 자들의 오만……. 지금 우리는 사랑으로 남녀평등을 이루고 정의와 화합으로 부정부패를 막아내야 한다.”는 거창한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횡포도 그들을 따르는 자들의 오만도 읽을 수 없다. 단지 현감이 등장하여 해당화단 단장에게 딸인 제비원 낭자를 자기에게 주면 예술경연대회에서 일등을 하게 해 준다고 회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을 가지고 가진 자들의 횡포로 읽어내기는 현감이 가진 캐릭터가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제비원 낭자를 차지하기 위해 보여준 현감의 모습에서 춘향전에서 등장하는 사또를 읽을 수 있는데 현감의 횡포가 제대로 형상화 되지 못하여 춘향전의 사또의 이미지 보다 훨씬 약화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남녀평등을 이루고 정의와 화합으로 부정부패를 막아내야 한다’는 것은 민중들의 단합된 힘으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해 나가자는 의도이다. 그러나 이연극 공연 속에는 이러한 의도는 전혀 드러나고 있지 않다. 선어대 도령과 제비원 낭자의 혼인이 어떻게 남녀평등을 가져오는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아내는 것인지에 대한 극적 형상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웅부안동전>은 ‘마당극’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이다. 그러나 야외공연장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춤과 노래를 추며 공연한다고 해서 ‘마당극’이 될 수는 없다. 마당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마당정신’이다. 마당정신에는 사회비판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마당극은 공동의 문제를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하려는 철저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연극이기 때문에 관객들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연극 속에서 사회비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사회공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공유의식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 연극에 마당극이라는 이름을 달아놓은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당극에서는 관객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연극을 볼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반응과 개입을 계획하고 유도하도록 기획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당극이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즐거움은 연극을 통하여 공동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진정한 재미가 빠진 연극은 마당극이 아니다.
연극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배우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히고 관객들과 몇 번 대사를 주고받는다 해서 한 편의 제대로 된 연극이 탄생되는 것은 아니다. <웅부안동전>은 ‘관객들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되어져야 한다.

실경수상 뮤지컬 <부용지애>
하회는 아름다운 경치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하회마을 강 맞은편 부용대에 오르면, 강이 마을을 감싸며 돌아 흐르는 풍경과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품 듯 펼쳐지는 만송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부용지애>공연은 부용대 강 건너편인 만송정 앞에서 이루어졌다. <부용지애>공연은 ‘실경수상 뮤지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과 부용대를 무대배경 삼고 있다. 그러니까 부용대는 무대 뒷배경이 되고 만송정 앞 강위에 설치된 무대가 주무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뮤지컬’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설레는 일이다.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연극적 체험과 더불어 음악의 선율과 노래를 풍미할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이점을 제공한다. 특히 <부용지애>는 실경수상의 시각적 효과를 담보하고 있기에 음악의 선율과 배우들의 노래는 관객들에게 한층 더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부용지애>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코 부용대의 활용이다. 64m나 되는 부용대 절벽을 스크린으로 사용하여 무대배경으로 활용함으로써 스펙터클한 연극의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다. 처음장면인 임진왜란 전쟁에서 그림자 연극처럼 처리된 스크린, 거북선의 등장,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 폭포, 그리고 허도령이 하회탈을 만들 때 나타난 하회탈 하나하나의 모습은 연극에 대한 재미를 더해 주고 연극의 환상 속으로 관객들을 인도하고 있다. 부용대에 스크린으로 폭포가 나타날 때는 부용대 절벽과 이 폭포의 화면이 묘하게 결합되어 마치 진짜 폭포가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될 정도이다. 또한 서애가 하회마을로 돌아온 후 벌어지는 마을축제에서 강에 작은 꽃등들이 둥둥 떠내려 오는데 이 또한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환상적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실경수상’ 의 연극만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느껴졌다. 이것은 또한 하회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해지는 연극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강 위에 무대를 만들고 부용대를 무대배경으로 활용한 것은 멋진 무대연출이다.

그러나 무대연출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장면은 임진왜란 장면이다. 스크린에 비쳐진 전쟁 장면은 그림자 연극처럼 인물과 사물이 단순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림자 연극이 주는 간결함과 산뜻함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성을 제공하여 전쟁을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도 아니다. 완성되지 못한 그림처럼 어설프고 성글다. 이러한 무대배경에서 보여지는 배우들의 세련되지 못한 전투의 몸짓은 이 장면의 완성도를 더욱 삭감시켰다고 할 수 있다.

<부용지애>는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배경설화인 허도령 설화의 모티브를 주된 줄거리로 삼고 서애 류성룡과 그의 친형인 겸암 류운룡의 나라와 하회마을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극 안에 병치시키고 있다.
막이 열리면 임진왜란의 전쟁장면을 배경으로 선조임금과 서애 류성룡이 등장한다. 선조임금은 왜적의 침입에 대해 자신의 무능력함을 한탄하고 서애 류성룡은 이순신의 기용을 주장한다. 다음 장면은 평화로운 하회마을이다. ‘축복받은 하회 땅’을 주제로 한 노래 속에 마을 사람들의 즐겁고 정겨운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허도령과 김씨 처녀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 다음 장면은 겸암이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허도령은 ‘이 난세에 공부가 무슨 소용입니까?’하며 고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도령과 김씨 처녀와의 사랑은 무르익고 언약식이 행하여진다. 서애가 고향에 돌아오고 마을에서는 서애를 환영하는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하회마을에 역병이 돌고 김씨 처녀는 역병에 걸리게 된다. 허도령은 김씨 처녀를 살리기 위해 하늘의 계시를 받아 탈을 만들기 시작한다. 몇 달 만에 깨어난 김씨 처녀는 허도령을 찾게 되고 결국 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뜨리게 되고 둘은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위의 줄거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용지애>는 허도령과 김씨 처녀의 사랑이야기와 서애와 겸암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같은 비중으로 병치시키고 있다. 이것은 하회마을에서 서애 류성룡과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하회마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도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극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욕심을 부리려다가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연극이 되고 말았다. 즉 서애 류성룡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고 허도령 설화가 가지는 참된 의미를 천착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용지애>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서애을 통하여 관객들은 그가 생전에 임진왜란을 겪었다는 것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느꼈던 고뇌와 회한 그리고 이를 통하여 체득한 교훈은 드러나지 않는다. 7년간의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적 역사는 서애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가 임진왜란 동안에 겪은 상황을 『징비록』이라는 책으로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애가 가지는 하회마을에 대한 애착도 파편화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귀향 장면에서 겸암과 부르는 ‘나의 영원한 하회여 천년이 지나도 그 이름 빛나리라’는 이중창 속에 잠시 드러날 뿐이다. 또한 역병이 돌고 허도령이 탈을 만들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서애의 귀향 장면 뒤에 배치시켜 놓음으로 인해 서애는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허도령 설화는 많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파괴해서 맞이하는 허도령의 죽음은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지닌다. 우선 허도령의 죽음은 신적 질서에 입각한 금기를 깨트림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이것은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탈에 신성성을 부여함으로써 탈의 힘을 믿는 원동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신의 금기의 파괴에 따른 죽음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금기의 파괴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항변의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든가 항변의지는 곧 하회탈이 가지는 비판정신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부용지애>에서는 김씨 낭자가 허도령을 믿지 못하여 일어나는 비극으로 파국을 가져옴으로써 허도령 죽음의 의미를 희석시켜 버렸다. ‘내가 사랑을 믿지 못하여 당신을 죽게 했다’고 김씨 처녀가 애절한 노래를 부르며 흐느끼지만 허도령과 김씨 처녀의 안타까운 사랑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지는 못 한다. 관객들에게 사랑의 극적 환상에 빠져들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구성전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용지애>는 ‘실경수상’이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사용하면서도 어떠한 메시지도 관객들에게 전해 주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연극에서 관객들의 의식을 내재화하지 못한 연극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감동의 감도는 약화된다고 할 수 있다. <부용지애>는 뮤지컬이 가지는 즐거움 즉 시각과 청각을 통한 즐거움과 내러티브를 통한 즐거움을 함께 선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다.

<왕의 나라>
안동은 고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안동과 고려와의 인연은 고려건국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태조 왕건이 안동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으로 안동의 삼태사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안동은 도호부로 승격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동의 삼태사 즉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는 안동의 주요 성씨로 자리 잡게 된다. 공민왕의 안동 몽진은 안동지역에서 큰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홍건적을 피해 온 몽진이긴 하지만 몇 달 정도를 함께한 경험은 지역 주민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국가적인 전란으로 인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왕이 몽진하였다는 사실은 안동지역에 커다란 자부심과 함께 설화적 상상력을 높여 주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다.

<왕의 나라>는 이러한 고려와 공민왕의 안동몽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왕의 나라>는 안동민속촌 성곽에서 공연되어졌다. 안동민속촌 성곽은 수년 전 드라마 사극을 위해 세워졌는데 작년부터 <왕의 나라>공연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성곽을 활용한 무대배경은 <왕의 나라>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성곽을 둘러 싼 산들과 나무들이 무대를 웅장하게 하면서도 아늑하게 느껴지게 하는 효과를 자아내었다.

<왕의 나라>는 스펙터클한 공연이다. 무대의 규모도 그러하거니와 300명 가까이 되는 배우들의 출연은 볼거리의 장광을 제공해 준다. 첫 장면에서도 삼태사들이 진짜 말을 타고 등장하여 그 장엄함을 자랑한다. 이 연극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안동몽진의 과정을 주된 스토리로 하여 왕의 호위무사 홍언박과 여랑 사이의 사랑을 사이사이 삽입하고 있다. 홍언박과 여랑은 반란군과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안동의 호족인 손홍량이 이끄는 군사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안동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내용이다.

<왕의 나라>는 화소가 풍부하지 않다. 화소라는 것은 줄거리를 작게 나누는 단위인데 화소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은 이야깃거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공민왕의 안동몽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화소가 풍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연극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인물들의 노래와 부차적 인물들의 춤과 마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장면마다 등장하는 많은 배우들의 춤과 마임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주인물들의 노래는 수준급이어서 많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주된 화소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삽입하여 연극이 주는 재미를 반감하고 있다. 첫 장면의 삼태사의 등장은 공민왕의 스토리와 관련성을 가지지 못하여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삼태사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안동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역사적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삼태사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이 연극에서 등장장면은 프롤로그로 보기에도 어색하다. 왜냐하면 뒤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여기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민왕의 몽진과정에서 과거 고려에 대한 회고나 회한 속에 삼태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이 장면은 개연성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에 개연성이 없는 삼태사의 등장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또한 삼베짜기와 차전놀이 장면의 삽입도 부자연스럽다. 물론 주된극이 전환될 때 간주극 형식으로 이러한 장면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간주극도 앞 뒤 상황에 맞게끔 들어가야 한다. 안동몽진 과정에서 강이 가로막혀 사람다리를 만들어 노국공주를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바로 뒤에 배치되어 있는 삼베짜기와 차전놀이 장면은 설득력이 없다. 단지 이러한 장면들은 안동의 이것저것을 보여주기 위한 무리한 욕심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공민왕이 안동에 도착하여 벌이는 잔치장면에서 안동마을 사람들로 상정된 배우들이 관객석에 술을 주며 돌아다닌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연극에 끼어들 틈을 제공하지 않고 벌어지는 이런 극적행동은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관객의 개입은 억지춘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극적 전략 중의 하나이다. 즉 극의 스토리와 구성을 바탕으로 하여 틈을 비워두어야 한다. 하회탈춤에서 자연스럽게 관객을 개입시키는 것은 연극에 이러한 틈이 극의 구조 속에서 전략적으로 비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왕의 호위무사인 홍언박과 여랑 사이의 사랑은 이 연극이 가지는 주제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하지 못하고 있다. 홍언박과 여랑 사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사랑이 축조되어 나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줄거리를 산만하게 만들 뿐이다. 차라리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을 부각시켰다면 공민왕을 형상화하는데 더 큰 기여를 하였으리라 예상된다. <왕의 나라>는 공민왕과 안동몽진에서 가졌던 당대 안동지역 인들이 가졌던 생각
과 태도에 초점을 더 맞추어야만 좀 더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민왕은 원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개혁의지를 지닌 왕이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혀 그러한 개혁의지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불운의 왕이다. 그 개혁의 어려움 중의 하나가 홍건적의 고려침입이다. 공민왕의 안동몽진 때 전해지는 놋다리밟기 이야기는 안동지역민들이 왕에게 보여 주었던 충성심을 단적으로 말하여 준다. 개경함락과 몽진은 왕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와중에서 행해진 안동지역민들의 환대는 왕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공민왕과 안동지역민들의 관계를 의미있게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이 공연은 단지 스펙터클한 장광만 보여줄 뿐 관객들의 설득력을 얻는 공연은 되지 못할 것이다. <왕의 나라> 작년 공연에 관객들이 많이 왔다고 해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작년은 <왕의 나라>가 초연되었다는 점과 무료공연이었다는 점이 관객의 수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업그레이드 된 공연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관객의 외면을 당하는 공연이 될지 모른다.

이 공연의 단초를 제시해준 중국 장예모 감독의 인상시리즈는 거대한 산과 강을 활용한 무대 스케일이 가히 압도적이라고 한다. 소수민족의 삶의 애환을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이 인상시리즈이다. 인상시리즈는 그 지역에 맞게 전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디테일한 스토리 전개보다는 자연풍경에 빛과 색채 몽타주 등의 시각효과를 부각시켜 자연을 새롭게 형상화해내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그 지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주 디테일한 내러티브로 극적 형상화에 주력하는 등 공연마다 특색을 가진다. 결국 장예모 감독의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이 관객몰이에 성공하여 해당지역에 문화적,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왕의 나라>가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작품의 수준을 어떤 식으로든 끌어올리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쏟는 정성과 노력을 보게 될 때 관객들은 그곳에서 또 다른 감동과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공연의 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관객들의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고 관객들의 외면은 공연의 실패로 연결되는 것이 연극의 현실이다. 공연예술에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부분 중의 하나가 예술성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웅부안동전>, <부용지애>, <왕의 나라>는 안동에서 만든 연극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들 공연단체에서는 다각적인 홍보활동과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고 이는 안동의 연극인구를 확산시키는데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연극인구가 확산되었다는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연극문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이 연극들은 진일보한다는 생각으로 자기회전을 계속 해야 한다. 이러한 자구력이 쌓이고 쌓여 감동적인 작품이 탄생 되어질 수 있다.
내년에는 이 연극들이 한층 발전되고 세련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