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화사한 길거리 꽃아줌마 박자화씨(글/계화순)
마당 잔디밭에도 연두빛 새싹이 뾰족뾰족 돋아나고 아침에도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다. 봄이다. 영호학교 뒤쪽의 화랑로에도, 복개된 서문뚝에도서도 묘목장수들이 줄지어 선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작정한다. 당북 네거리에서 구시장쪽으로 걷는다. 이른 시간도 아니건만 내 예상과는 달리 난전에서 묘목이나 희고 붉은 영산홍, 시크라맨 등의 꽃이 핀 화분을 늘어놓고 팔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간판을 내 건 화원도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서문뚝에 와서야 연세 지긋한 아저씨 한 분이 묘목을 난간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잎이 없는 묘목이라 그 식물의 이름을 알 재간이 없다.
또 다른 난전이 있을까 해서 목성교쪽으로 길을 잡는다. 전국적으로 안동찜닭을 유행시킨 원조 점포들이 늘어전 찜닭골목으로 내려가는 비스듬한 도로변에 화분과 분재, 꽃모종들이 즐비한 난전이 섰다. 흰색, 주황, 분홍빛의 크고 작은 시크라맨 꽃모종이 한무더기, 잎이나 꽃의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통칭 영산홍이라 부르는 화분도 한 무더기, 이름을 모르는 화분들이 수십개 놓여진 난전에 왔다. 난전이니까 문을 열고 들어설 일도 없어 그냥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한다. 은은한 꽃향기가 기분좋게 유혹을 한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연세 지긋한 아저씨가 미리 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흰색, 분홍색, 보랏빛의 크고 작은 시크라맨 등이 꽃을 달고 있다. 잎들의 초록색도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싱그럽고 그 바람과 함께 향기도 다르게 전해진다. 분재도 있다. 소나무, 모과, 단풍, 소사……,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꽃보다는 분재를 더 좋아한다. 화려함보다는 묵묵함이, 한결같음이 마음을 끈다. 몇 년 전에는 그런 취향 때문에 분재를 키우기도 했었는데 애지중지 보살피던 느티나무가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활착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갖고 있던 분재들을 다 나눠주고 지금은 하나도 가진 게 없다. 수형좋은 소나무 분재를 오래도록 쳐다본다. 나보다도 먼저 와서 구경하던 아저씨가
"이거 심어주소. 어제도 가져갔는데 잘해주소……"
"꽃을 좋아하시나봐요?"
"사랑스럽쟎니껴? 오래도록 분재를 했드랬어요. 하다보이 너무 공도 많이 들고 이자는 귀찮아져서 이래 심어놓은 화분을 사 가니더."
"농사 지으세요?"
"아니요, 퇴직공무원이시더. 마당에, 거실에 화분을 갖다 놓고 물 주며 키우는기 참 좋아요. 거실에는 향기도 좋고 그래가 이 집에 종종 나오니더."
하얀 꽃잎에 보랏빛 테를 두른 듯한 꽃의 이름은 긴기화였다.
"이거 참 좋아요. 한 번 피먼 오래 가요. 한 두달 이상 가고 번지기도 잘 하고 향이 늘 나는기 아이고 아침 저녁으로 나요."
포트에 심겨져 있던 긴기화를 모양 좋은 화분에 옮겨심고 마지막으로 난석을 덮어주자. 포트에 있던 때보다는 훨씬 품위가 달라져 보인다. 다른 화분도-물론 식물이 심겨져 있는- 함께 오토바이에 싣는다.
"안 뿌러질라?"
"괜찮니더. 고비 가시면… 잘 키우시세이"
"얼매이껴?"
"자주 오시이 사만원만 주소"
오토바이를 보며 화분을 구경하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저래 꽃 좋아하는 영감하고 같이 살면 얼매나 좋을로"
"왜 영감님은 꽃 안 좋아하세요?" 내가 물었다.
"말도 마소"
손사레를 치며 머리까지 흔들며 말씀하시는 폼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제서야 난 주인아주머니께 책을 보여주며 취재나왔음을 말한다.
"별로 말 할 것도 없어요."
오늘 취재인물은 박자화씨. 이름도 모습도 꽃같다며 시작한다. 비탈진 곳에 자리한 가게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10년 정도. 처음엔 이불로 시작해서 옷도 팔아봤고 꽃을 팔다가 지금처럼 가게밖 도로변에 화분들을 내다놓고 본격적으로 판 것은 3년쯤 되었단다.
"이거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힘들어요. 꽃이 성질이 다 틀리지요. 향 다 틀리지, 이름 다 틀리지요. 꽃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나 뜻이 있었던 게 아이고 하다보이 여까지 왔지요. 봄 한철 장사래요. 내가 농장을 경영하는게 아이고 하우스에서 키워놨는거 가주 와서 파는거 뿐이예요. 물건은 서울에도 가고 대구에도 가고 장사되는 거 봐가며 가요. 여름 드러서면 디기 뜨거우면 식물들이 다 타서 안 되거덩. 첨엔 가게 안에서만 하다가 꽃이 좋아가 꽃으로 바꿔보이 넘 힘들어서 딴 걸로 바꿔볼까 생각중이래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꼬마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시크라맨을 사 갔고 한 아주머니는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며 5천원짜리 영산홍을, 60이 가까워오는 듯한 한 아저씨는 군자란을 사 갔다. 판매는 자화씨가 배달이나 옮겨심는 것은 남편이 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봄철인 때문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도 하고 사 가기도 한다.
"화분 선물 받으면 기분은 참 좋은데 일찍 죽던데……"
"농장에서 심을 때 흙을 다 채워놓으면 들고 날 때도 힘들고 어떻게 심어주느냐에 따라 다르고,
물건을 해 갖고 와서 화분 좋은 거에다 다시 심어주지요. 우리가 거름 넣고 심어주고 우리 화분 가가가 죽었다는 말 별로 못들어 봤지요. 조경은 조경업자가 하는데 심어달라 카먼 가서 심어주기도 하고 정원을 만드는 거는 안하고 그냥 파는 것 밖에 안해요. 전문지식이 있는 거트면 이래 얘기도 좀 하고 그럴텐데…"
"꽃 이름은 많이 아실꺼 아니예요?"
"꽃 이름이야 꽃 파는데 알아야지. 배아가지고, 꽃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 건 아이래요. 그냥 꽃을 좋아하다보이 하게 됐지요. 조화같은 것도 전문으로 망그는 건 아이고 띠 갖고 와서 팔아요. 주문하마 쪼매 만들기도 하고, 소품하고 종류가 많아요. 다 확실하게 시아려 보지는 않했으니까. 한 70종, 70종은 넘지 싶어요."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화씨는 시든 꽃잎을 따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영산홍 같은 것도 꽃이 질라 글 때 꽃잎을 따주마 다시 함 꽃을 볼 수 있어요. 시든거 가마이 나두면 벌로 커가 모양도 안 이쁘고, 이런 거 아는 사람 별로 없지요. 봄에 학교에도 많이 들어가요. 봄 한철 장사께네. 이래 길거리에 내 노이 우선 잘 보이께네 손님들도 많이 오시지요. 오늘 이래 조용하지만 보통은 이래 서가 얘기할 새가 없어요. 장날은 분산돼서 별론데 무신 날 바쁘지요. 어제 같은 날…… 많이 팔고 이문 적게 남기고 그러이 왔던 손님은 자꾸 오시지요. 취향이 다 틀리니까 올핸 시크라맨 저게 많이 팔려요.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거든요. 겨울에 잠깐 쉬고 나면 내년에 또 많이 번지고 저건 또 물을 싫어해요. 꽃이 피고 난 다음에 빨리 꽃을 따조야지 다음 꽃한테 영향을 안 주거든요."
봄 날씨의 특징이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변하고 오후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인다. 바람부는 방향에 따라 향기의 종류도, 강도도 달라진다. 아뿔사 갑자기 센 바람이 불어 그늘을 만들기 위해 펴 놓았던 파라솔이 소리를 내며 오른쪽으로 넘어간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양동이만한 콘크리트위에 파라솔 대를 세웠건만 파라솔이 너무 큰 때문일까? 이야기를 나누던 자화씨도 화분에 이식을 하고 있던 남편도 넘어진 파라솔 쪽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화분도 깨어진 것이 없고 그 아래에 있던 식물들도 가지 하나 상하지 않았다.
"이래가 안 될세."
남편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연두색 노끈을 묶음채 들고 나온다. 이쪽저쪽 살피며 단단히 고정시킬 기둥을 찾는 것이다.
"인자 아지매 유명인사 될따."
"맞아 안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 책 나오머 더 유명해질낀데 서울 가야 될 똥"
취재에 응하는 자화씨를 보고 손님인지 아니면 친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길쭉한 얼굴의 아저씨가 농담을 하자 자화씨는 역시 조금도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함이 없이 자연스레 받아넘긴다.
"이 분재가 안 나가요. 고단가거든요. 작년, 저작년 같으머 이래 있을 게 없었어요. 하마 우리가 삼년짼데…… 주문받고 구해놓지를 못해 못 팔았는데 올해는 그만큼 경기가 안좋다는 거지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자화씨한테만 듣는 얘기가 아니다. 제2의 IMF라는 말이 공공연히 들려온다. 특히 꽃처럼 생필품이 아닌 물건은 경기의 흐름에 아주 민감하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서울의 수입명품가게는 더 없이 호황을 누린다는 보도도 있기는 하지만, 봄 한철을 열심히 벌어 1년을 살아야 하는 그녀로서는 어쩌면 답답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꽃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취하게 만들건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