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수선공 김우년의 파란만장 구두클리닉(글/이미홍_객원기자)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 평생을 구두를 닦으면서 신을 섬긴 구두수선공에게 하나님이 말했다. 내가 내일 너를 찾아갈 것이라고. 구두수선공은 하루 온종일 하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밤이 다 가도록 하나님은 오지 않았다. 추위에 떠는 청소부와 누더기를 걸친 채로 아기를 안고 떨고 있는 젊은 새댁이 왔다갔을 뿐. 청소부와 젊은 새댁에게 따뜻한 한 잔의 차와 난롯불을 제공하고 추위에 떠는 아기의 맨발에 누군가 가져가지 않은 작은 구두를 선물로 신겨 보내고 나서도 하나님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실망한 늙은 수선공에게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낮에 찾아가지 않았었느냐고. 그 추위에 떨던 청소부가, 아기를 안고 울던 새댁이 모두 나였다고 했다. 춥고 가련한 이웃들에게 베푼 그 마음을 잘 받았노라 했다. 누군가의 발이 되어 온 세상을 디디고 다니며 누군가의 반짝반짝 기쁨이 되기도 하고, 빛바랜 슬픔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먼지를 가득 묻힌 고단한 삶의 증인이 되기도 하는 주인의 부지런하고 고단한 하루의 흔적을 묻히고 다니는 구두, 그런 구두를 닦고 손질하는 일을 하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늙은 구두수선공은 그 구두를 신고 다니며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구두는 닦는 것은 때로 사람을 닦는 것이 되기도 한다.
30년 구두 인생
김우년 슈즈클리닉. 안동시 중구동 일명 시청 골목. 안동시청 앞에서 목성교 방향으로 열 두어 걸음만 걸으면 닿는 거리에 30년 구두수선공 김우년(55) 사장이 하는 구두수선 전문클리닉이 있다. 수제 구두 좀 신어봤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아끼는 구두를 굽도 갈고 수선해 가며 오래오래 신는 사람들은 한 번씩들 들러봐서 알고 있는 곳이란다. 물론 중저가의 예쁘다 싶은 고만고만한 구두를 사서 신다가 낡으면 신발장 깊숙이 쳐박아두고 또 다른 구두를 사 신고, 구두를 닦는 일은 일 년 가야 서너 번이고 그것도 마트에서 산 구두약으로 한두 번 슥삭 닦아주면 그만인 나 같은 사람은 그 길을 수 십 번은 지나쳤건만 사실 잘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야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지만 말이다.
98년 목성동에 문을 연 이래로 김우년 슈즈클리닉이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지는 십사년 남짓이지만 그가 부친의 뒤를 이어 구두닦이 일에 뛰어든 것이 1983년 제대를 하고 나서부터이니까 구두수선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되어 간다.
“옛날에야 거리에 터를 잡고 구두를 닦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두수선도 단순히 길거리에 앉아서 구두 닦고 수선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제가 보니까 대도시에서 구두 세탁소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더라고요. 안동에는 그곳보다 한 5~6년 정도 늦게 생겼는데 그때 그걸 보고 제가 98년도에 지금의 가게 바로 저 건너편 목성인쇄소 1층에 슈즈클리닉을 열었어요. 그리고 2004년에 길 건너 지금의 자리로 옮겼죠. 이왕지사 하는 거 남들과는 아이템의 변화를 주고 차별화를 해서 구두 수선뿐만 아니라 염색 기술을 배워서 구두 염색하는 기계를 들여왔죠. 그때 대구 외에 경북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구두 염색을 했어요. 구두 세탁, 수선에 염색까지 저처럼 이렇게 하는 데는 지금도 별로 없을 거예요. 저는 구두 염색을 양화점에서 처음 가죽에 하는 그 도료로 그 방법 그대로 염색을 하거든요. 색이 바래고 낡은 구두도 감쪽같이 새 구두로 염색을 해 드리죠. 손님들이 새 구두 산 것 같다고 좋아하실 때 기분 정말 좋죠. 처음에는 구두 염색이라는 게 생소해서 잘 모르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구두 염색 때문에도 단골이 된 손님이 꽤 됩니다. 낡고 싫증 난 헌 구두를 새 구두로 리폼해 신으면 나름대로 멋스럽거든요. 보통 그런 구두는 가죽이 좋은 비싼 구두거나 손님이 아끼는 사연이 있는 구두인 경우가 많아서 그럴 때는 저도 공을 더 들이지요.”
전쟁고아들의 자립을 위해 자활원 연 아버지
그가 태어나서 여섯 살이 되던 1965년, 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한량으로 지내던 부친(김시현)이 교화사업에 뜻을 두고 자비를 털어 안동에 자활원을 열었다. 길에서 헤매던 부랑자들이나 구두 닦는 사람들,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사람들을 모아서 자활을 목적으로 같이 생활을 하면서 구두 닦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돈을 벌게 해 주자는 취지였다.
참고로 구두닦이 소년 일명 슈샤인-보이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구두닦이의 발생은 6.25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미군들의 군화를 닦아주기 시작하면서 이 땅에 구두닦이 소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혈혈단신 전쟁고아였던 그들은 미군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어깨에 구두통 하나만 둘러메고 따라다니며 미군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잔돈푼을 벌거나 먹을 것을 얻는 식으로 숙식을 해결했고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자 길거리 아무데서나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신사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점차 몫 좋은 곳에 자릿세를 내고 자리를 잡고 체계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되어 구두닦이는 어느새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밑천 없고 가난한 이들이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생계수단이 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우년 씨의 부친이 자활사업으로 구두닦이 일을 선택할 만큼 그 당시 구두닦이는 벌이가 좋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전쟁고아들이 많았어요. 그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구두 닦는 일 같은 것이다 보니까 우선 자활의 방법으로 구두닦이를 생각하게 된 거죠. 그때 부친이 지금의 목성동 천주교 자리인 목성동 산 밑 언덕배기에 사비를 털어 초가집 거처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자활원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생활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 형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한 식구들처럼 그렇게 지냈어요.”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잊어버리고 거리를 떠돌던 전쟁고아들, 출소한 후 사람들 냉대에 취업도 안 되고 부랑자처럼 거리를 배회하며 허송세월하던 사람들, 시내에서 그런 이들과 악다구니를 하며 고아원 아동보호소 거리를 전전하며 구두를 닦으며 살아남은 아이들, 그런 이들이 한 곳에 같이 모여 생활을 하니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렇지만 부친은 그런 이들에게 자활을 이야기 하며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구두를 닦아 일을 하고 돈을 모아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워서 언젠가는 독립을 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라며 구두닦이 하는 이들을 앞에 세워 구두 닦는 기술을 가르쳐 조를 짜서 구두 닦는 일을 하게 하고 그 수익 중 일부는 공동생활비로 충당을 하고 나머지는 독립채산제의 형태로 각자 통장을 만들어 저축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부친은 그 통장들을 관리하고 있다가 원생들이 독립을 해 나갈 때 주는 식으로 운영을 해 나갔다. 그러기 위해서 되도록이면 구두 닦는 일 외에도 취업이 용이한 기술을 배우게끔 했다. 그들 중 본인들 스스로 자립 의지가 강한 이들은 기술을 배우고 착실히 돈을 모아 독립을 해 나가서 가정을 꾸리고 성공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해나갔다가도 사회에서 제대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몇 번씩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고 우년 씨는 기억한다. 아마도 뿌리 없이 혈혈단신 혼자인 사람들이 실패하거나 힘들 때 스스로를 지탱해 줄 힘이 약하다 보니까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사람이 같이 생활하느라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곳이지만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 보니까 힘들고 지치면 그렇게 또 스스로 나갔던 자활원 문을 다시 들어서곤 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떠나고, 떠나고, 그리고 또 돌아왔다가 가고, 또 다른 이들이 오고. 자활원의 날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수십명 옷 손빨래, 고생은 어머니가 더 하셨죠
들쭉날쭉 나이 차들은 있었지만 다들 한창 때의 사내들인지라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드물 만치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부친은 그 거친 이들을 말로도 달래고 기도로도 달래고 같이 운동도 하고 의식주를 식구들과 차별 없이 같이 하면서 사람들을 다독여가며 생활을 했다.
“아버님이 매일 아침 6시면 기상을 하셔서 원생들과 함께 1시간 동안 아침 예배를 보셨어요. 목사님께 가서 성경을 배우셔서 원생들에게 좋은 말씀도 들려주시고 함께 자립의지도 키워주시고 기도하고 하는 생활을 하셨어요. 목사님과 장로님들을 초청하셔서 좋은 말씀들을 들려주시기도 하고요. 초창기에는 경험도 없고 다들 정말 힘들었다고 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그 많은 남자들 삼 시 세 끼 밥 해 먹이시고 빨래해 입히시고. 나중에 저희 집사람도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그 뒷바라지 다 어머님이랑 같이 하느라 고생 많았고요. 요즘 젊은 아가씨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요즘도 가끔 추운 겨울 날 매일매일 몇 줄기씩 빨래를 해 널던 장면이 생각이 나요. 그때만 해도 세탁기가 어디 있었나요? 다들 구두 닦고 험하게 지내다 보니 시커멓게 된 옷을 매일같이 일일이 손빨래를 해야 했으니 그 고생이야 말로 할 필요도 없지요. 밥도 큰 가마솥에 불 때서 했고요. 부친이야 사회사업 한다고 어디 가서 어깨 힘이라도 주고 명예라면 명예이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겠나 싶어요. 뒤에서 궂은 일, 고된 일은 도맡아서 다 하시면서도 한 번도 원망하거나 그 일을 그만두자 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가 오히려 더 사명을 가지고 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나중에 재활원을 나가서도 사람들이 무슨 날만 되면 술 한 병이라도 사 들고 어머님 뵈러 왔어요. 전쟁고아 출신들이나 일가붙이 없이 외로운 이들에게는 밥 해 먹이고 빨래해서 거둬주고 아프면 약 사주고 등 두드려 주던 우리 어머님이 부모님 맞잡이였던 거지요.”
그러다가 초기에 시작할 때 열 두어 명 남짓 했던 사람들 숫자가 하나 둘 늘어나 어느새 사십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사람 수에 비해 장소가 협소해 불편이 많았다고 한다. 주위에서도 부친이 하시는 일을 알고 도움을 주는 이들이 생겨났고 부랑아들이나 출자들 중 일거리나 숙식을 찾는 이들을 자활원으로 이끌어 주는 이들도 있었고, 무위도식하고 행패를 부리를 아들을 직접 데리고 와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촌부들도 있었다.
이래저래 살림살이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넘쳐났다. 형편에 맞추어 더 넓은 숙소를 마련하려고 동분하는 부친을 보고 마침 시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안동시에서 개인이 관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재활원 장소를 제공해 마련해 주었다. 그때 당시 신안동에 행려병자들이 지내던 적산가옥이 있었는데, 그곳을 재활원 부지로 내준 것이었다. 그때부터 신안동에서의 생활이 자활원이 사실상 문을 닫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자활원이 문을 닫은 지금 현재도 우년 씨 부부는 부친 때부터의 역사와 모친의 손때가 켜켜이 묻은 그 집에서 그대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낡고 오래된 옛집을 팔고 넓고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대신 과거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신안동 집에서 살고 있는 우년 씨의 고집을 어쩌면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늘상 그렇듯이 나는, 우리들은 사실은 잘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보이는 모습만을 볼 뿐이다.
환갑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80년 9월 30일 갑자기 부친이 운명을 달리하셨다. 우년 씨가 입대 날짜를 불과 팔 일 앞둔 때였다. 환갑잔치 때 쓰려고 매일 백 원씩 저축을 하던 부친이셨는데 환갑을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돌아서서 바로 입대를 했어요. 군에서 생각이 많았죠. 그전까지는 저는 이 일을 제가 이어받아 할 거라는 생각을 안했거든요. 입대하기 전에 잠시 교직에 있었는데, 아마 아버님이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길로 계속 갔을지도 모르고, 그때만 해도 제가 나름대로 야망이 컸던 때라 아무래도 교직보다는 다른 일을 했을 거 같아요. 당시에는 교직이 남자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거든요. 내심으로는 서울이나 대구로 가서 취직을 하거나 다른 사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라 뒤에서 몇 번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크게 내세울 것도 없는 이런 구두 닦는 일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부친 돌아가신 후에 아버님이 하시던 일을 형제들 중 누군가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들의 의견도 그랬고요. 누군가는 그 일을 주도적으로 맡아서 해야 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함께 이끌어가야 하는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요. 무엇보다 어머님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 하루아침에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며 그 일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하셔서 가족회의 끝에 제가 총대를 메기로 결정이 된 거죠. 무엇보다 그때 아내가 당신이 아버님과 어머님 이 그렇게 고생을 하시며 해 오신 일을 제대로 평가도 못 받고 이대로 그만두게 되면 두 분이 이 일을 시작하신 그 뜻과 고생이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며 당신이 두 분의 뜻을 이어가는 것도 당신의 역할이 아니겠나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대를 하고 총무 일을 맡아서 보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맡게 된 거죠. 그네들하고 똑같이 구두통 메고 손에 구두약 묻혀가면서 일했죠. 그러다보니 이 일이 제게는 어느새 천직이 되어버린 거죠.”
아버지가 평생을 쏟은 자활사업 뜻 잇기로 결심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에게 스승이었고 존경하는 어른으로 믿고 따랐던 부친에 비해 젊은 우년 씨는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온 스승의 어린 아들이었다가 크면서 동생 같이 지내온 존재였기에 그 의미가 부친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년 씨는 자신의 젊음과 아버지의 뜻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부딪혀갔다. 같이 나가 구두도 닦고 때론 같이 울고 웃고 싸우기도 하면서 그 일을 해 나갔다.
“제가 부친이 하시던 이 일을 이어받아 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원에서 지내는 이들 중에 그전부터 오랫동안 있어왔던 나이 많은 분들도 있었고 주로 전쟁고아들이나 출소자, 거처 없는 부랑자들이 많다 보니까 거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거친 사람들을 젊은 제가 통솔해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나는 나름대로 마음을 다했지만 때론 사람들이 내 뜻을 곡해하기도 하고 규율을 지키지 않고 반항도 하고 그런 일들도 있었어요. 서로 신뢰의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서로 믿고 함께 일을 해 나가면 그런 일들은 없어진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 딴에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물론 젊다 보니까 시행착오도 많았지만요. 그래도 그때는 제가 한창 때라서 그런지 겁도 없었고 의욕이 넘쳤어요.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차차 요령도 생기고 자신도 붙더라고요. 그분들과 같이 구두를 닦으면서 한편으로는 구두 닦는 나만의 노하우도 나름대로 개발해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고요. 제가 맡아서 하기 시작하면서 80년대 후반에 새로 들어온 원생들 중에는 주로 고아나 부모가 있어도 연락이 안 되고 방치되거나 해서 일정한 거처 없이 거리를 떠도는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런 아이들이 자활원에서 먹고 자고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 벌어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구두닦이였습니다. 부친이 시작하신 자활원은 정부지원을 받는 보육시설이나 요양시설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해서 그야말로 스스로 독립해 나가는 것을 지원하는 자활원이었기 때문에 원생들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구두를 닦은 수입으로 최소 생활비도 내고 저축도 하고 하는 식으로 운영을 했지요. 자활원에 들어왔던 원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일을 배워 독립을 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한 몫을 하는 걸 볼 때 제일 기분이 좋죠.”
위로 세 형님들도 아버지 계실 때부터 같이 구두 닦는 일을 배워 그들과 함께 섞여 일을 하며 우년 씨에게 힘을 보태줬다. 우년 씨는 남들이 뭐라 하건 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재활원 문을 닫지 않고 같이 구두를 닦으면서 그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더러는 구두닦이 일을 그만두고 기술을 배워서 다른 일을 찾아 나가고, 더러는 돈을 모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독립해 나가고, 구두닦이 벌이가 시원찮아지면서 사람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떠났다. 애초에 그네들의 자활이 목적이었기에 우년 씨도 잡지 않고 기꺼이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줬다. 그리고 우년 씨의 어머니이자 원생들의 어머니이기도 했던 모친의 별세 이후 남아있던 이들 중의 일부가 또 떠나갔다. 재활원 문을 닫기 10여 년 전에는 열 명 남짓한 이들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우년 씨는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문을 닫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도 사람도 변해갔고 구두 닦는 사람들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시내 몇 군데 오래된 터줏대감들이 하는 붙박이 구두수선집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이마저 자기 길을 찾아 떠나고서야 우년 씨는 비로소 그 오랜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그때 그 길로 들어선 걸 후회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아마 지금이라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또 한 번 아버지가 시작하신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는 비록 가셨지만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가 시작하신 그 일이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이렇게 흔적밖에 안 남았지만 그 뜻만은 지금도 재활원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 속에, 이 김우년 슈즈클리닉 속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전부 칠남매였는데 제일 맏형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다섯째였는데 제 위로 형님 네 분하고 누님 한분이 계신데 이상하게 이게 운명이었는지 아버님 일을 제가 이어서 하게 된 거죠. 아버님이 이 사업을 시작하시다 보니까 위에 형님 세 분도 같이 구두 닦는 일을 하시면서 아버님 일을 도우셨어요. 실질적으로는 저보다는 초창기에 아버님을 도와 일을 시작하신 형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바로 세 살 터울 위 형님은 지금도 시내에서 구두수선 일을 하십니다. 형제들 중에서 우리 두 형제만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죠. 저는 이곳 목성동에서 슈즈클리닉을 하고 우리 형님은 옛 시내버스정류장 앞쪽에 터를 잡고 구두 수선을 하시고.”
사제지간에서 부부로 맺어진 인연
우년 씨는 ’85년 10월에 한때 제자였던 일곱 살 차이나는 김선희(48) 씨와 결혼을 했다. 군에 가기 전 잠깐 실업계 여고에 재직했었는데 그때의 인연이 우연한 기회에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제대 후 부친이 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길에서 선희 씨와 재회를 하게 된 우년 씨, 선희 씨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우년 씨는 적극적으로 나갔고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희 씨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에 골인을 했다.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누가 구두 닦는 험한 일을 하는 사위에게 딸을 주고 싶겠어요.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에는 장인 장모님이 지셨죠. 속도위반요? 그건 상상에 맡기고요. 어쨌든 전 그때 제게 시집와 준 제 아내한테 지금도 고마워요. 시집와서 새색시가 시어머님 도와서 그 많은 사람들 밥 다 하고 빨래하고. 아이 가졌을 때도 그랬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죠. 그래서 저는 집사람이 노래방 한다고 하다가 말아먹고 또 레스토랑 한다고 말아먹고 그래서 둘이 그 빚 갚느라 고생하지만 밉지 않습니다. 노래방을 할 때는 청소년 출입 안 시키고 건전하게 장사 잘 한다고 모범업소 상도 받고 그랬어요. 레스토랑 할 때는 본전 생각 안 하고 좋은 재료 쓰고.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장사를 하니까 망하고 말았지요 뭐. 그래도 이왕 벌어진 거 화내면 뭐합니까? 저도 고생 했는데. 그래 뭐라 안 하고 열심히 같이 빚 갚아나가고 있어요. 이제는 얼추 다 갚아가는 것 같네요. 덕분에 노후 은퇴 계획이 조금 미뤄졌지만 뭐 어때요? 저는 지금도 제가 장가 하나는 잘 갔다고 생각하니까요.”
방학 때면 구두 수거 일도 돕던 착한 두 아들
부부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빚을 갚아가는 요즘 쉬는 날이면 김우년 사장은 산에 오른다. 취미가 등산이기도 하고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거기에 매진하는 성격이라 그는 서너 군데의 산악회에 가입해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으로 간다. 부인 선희 씨는 평일에는 여고 급식실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이런저런 자원봉사활동에 열심이다. 간혹 이번처럼 탈춤축제같은 행사나 일거리가 있으면 특별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 앞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건 부부가 닮았다. 힘든 일 앞에서도 크게 절망하지 않고 긍정적인 남편 덕분인지 부인 선희 씨도 제법 강심장이 된 것 같다는 우년 씨의 푸념 아닌 푸념이다.
부인 선희 씨와의 사이에 아들 형제를 두고 있는데, 건축계측기사로 일하고 있는 맏이인 태일 씨는 김우년 사장의 믿음직한 우군이자 든든한 오른팔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대에 이어 아버지 어머니가 뒤이어 해온 자활원 일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봐 온 아들은 그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가족사를 소개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슈즈클리닉 온라인 카페 관리도 해 준다. 두 아들 모두 학교에 다닌 때 방학이나 쉬는 날이면 아버지를 도와 수선할 구두를 수거해 오는 일을 도우며 자랐고 아버지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 주는 지원군들이다.
손님을 위해 항상 열어둔 가게 문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아버지 뒤를 이어 가업을 잇고 구두 수선 일에 뛰어든 그 당시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는 사람들 중에는 양복 입은 점잖은 신사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 관공서나 금융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분들 중에서 지금껏 김우년 사장의 단골이 된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취재를 위해 길가 소음을 피해 닫아두었던 문 너머에서 “우년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요즘 세상에 누가 사장님 이름을 부르나? 잘못 들었나 했는데 이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더니 수리해 둔 구두를 들고 나가는 김우년 사장. 도로가에 댄 승용차 창문을 열고 웃으며 인사를 하며 수리비를 건네는 이는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점잖은 신사분이다. 오랜 단골인 듯 안부를 주고받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젊은 시절 흥국생명 앞(농협중부지점 앞)에서 구두를 닦을 때부터의 단골이라 한다. 조금 있다 들른 수선을 부탁한 구두를 찾으러 온 아담한 체구의 여자 분도 그이가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일어나 묻지도 않고 선반에 오려둔 수선해둔 구두를 내리는 걸 보니 그니도 오랜 단골이라는 게 말 안 해도 알겠다. 오늘따라 문은 왜 닫아뒀느냐며 문을 열고 들어서던 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왔을 때도 김우년 슈즈클리닉의 문은 거리를 향해 열려 있었다. 얼마간 앉아 있어보니 왜 그런지 알 것도 같다. 단골손님들을 향해, 차를 타고 가다가도 문득, 지나가는 길에 잠깐 구두 수선을 맡기러 들를 지도 모를 손님들을 위해 그래서 늘 문을 열어두고 있는 김우년 사장이다.
그리고 사장님이 생각하는 김우년의 구두 수선 가게에 단골손님들이 많은 까닭 중의 하나는 사장님만의 값싸고 질 좋은 수선 기술과 원하면 빠른 시간 내에 배달까지 해주는 서비스 정신 때문이다.
-헌 신발을 새 신발로 바꾸어 드리는 전문 수리점으로 탈색되거나 모양이 변한 구두, 유행에 뒤떨어지진 칼라구두, 흠집난 가죽구두를 새로 산 구두처럼 바꾸어 드립니다. 시중수리 가격보다 싼 가격에 깔끔하게 손볼 수 있으며 전화 한 통화면 시내 어디든지 달려가 수거 후 배달해 드립니다.-
김우년 슈즈클리닉 온라인 카페 대문에 걸린 글이다. 김우년 사장님이 이렇게 싼 가격에 질 좋은 서비스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제가 하는 이 구두 수선하는 일이 아버님이 시작하신 일을 이어받아 하다 보니 천직이 된 것도 있으니까 이왕 하는 거 아버지가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신으로 하셨던 그대로는 못하지만 내 재능 내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하되 그 기술과 일이 우리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익만이 목적이 아닌, 기왕이면 좋은 재료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거죠. 그러다보니 손님들 입소문을 타고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서 지금은 고정 단골손님들이 꽤 많은 편이죠. 70세를 제 은퇴 나이로 정해두고 있는데 그때까지는 부지런히 손님들의 구두를 수선도 해주고 염색도 해주고 하면서 부지런히 살아야죠.”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나오는 고향이 안동이라던 권씨가 생각난다. 그는 사회에서 낙오되어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아홉 켤레의 구두를 번갈아가며 빛나게 닦아서 신고 다닌다. 구두는 때로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구두를 닦는 것은 희망을 닦는 것
옛날 구두가 귀한 시절에는 구두 한 켤레를 장만하면 몇 번이고 수선을 해서 신었었다. 요즘은 고급 구두점이나 고가 메이커의 신발이 아니면 대부분 값싼 중국 신발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보니 사서 신다가 싫증나면 버리고 말면 그뿐이라 구두를 수선해 신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알고 보면 누구나 나름대로 괜찮을 자리에 신고 나갈 좋은 구두 한 두 켤레씩은 다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구두 수선가게 사장님은 구두를 수선하러 오는 이들을 통해 이렇게 또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보기도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속에 나오는 하나님을 만난 구두수선공처럼.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 반지하방에서 평생 구두수선을 하며 살아온 구두장이 마르틴, 마르틴이 일을 하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과 구두만 보였다. 구두를 신고 오고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어느새 마르틴은 사람들이 신고 있는 구두만 보면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아맞히곤 했다.
정호승의 시 ‘구두 닦는 소년’에서 소년은 구두를 닦으며 별도 닦는다. 하루 내내 길바닥에 앉아서 사람들 발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별을 닦는 구두닦이 소년. 소년이 구두닦이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자 생존의 수단인 구두를 닦으며 함께 닦는 것은 별, 그것은 고단하고 먼지 묻은 구두를 닦아내면 그 속에서 반짝일 희망이다. 그래서 구두를 닦는 것은 희망을 닦는 거다.
시청 앞 김우년 슈즈클리닉의 문은 오늘도 거리를 향해 열려 있다.<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