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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을 사로잡은 농부, 우주네 별사과 농장 정기영 안경희 부부(글/이미홍_객원기자)

과수원집에 시집가고 싶었던 처자
풍산읍내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란 경희 씨(35)의 어릴 적 꿈은 커서 사과를 키우는 과수원집에 시집가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과라면 사족을 쓰지 못할 정도로 좋아했고 커서 직접 농부가 되어 사과 농사를 짓는 꿈을 꾸곤 했다. 철이 들고 여고 졸업을 앞두고 주변의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도시에 나가 멋진 왕자님을 만날 꿈에 부풀어 있을 때에도 경희 씨의 사과 사랑과 아련한 동구 밖 과수원 길에 대한 꿈은 변함이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내 손으로 좋아하는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은 경희 씨는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취직을 했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좋았고 언젠간 자신도 농부가 되고 싶었던 경희 씨는 솔직히 대학에는 별 미련이 없었다. 그 대신 돈을 벌어 젊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싶었다. 한 이 년 열심히 직장을 다니던 경희 씨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해서 그전부터 동경하던 여군하사관에 지원을 했다. 뭐든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해내고야 마는 경희 씨는 결국 여군후보생을 거쳐 육군본부에서 하사관으로 복무를 시작했다.

풍산 읍내 처자와 죽전 촌꼴티 남자
89년 스무 살을 갓 넘긴 기영 씨(43)는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동안 충주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둘째형님을 도우면서 자신이 사과나무를 가꾸고 사과를 수확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사과나무를 잘 키울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그때부터 고향땅에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때는 사과나무가 좋아서 그냥 사과 농사를 짓고 싶어서 심기 시작했어요. 그래놓고 군에 갔다 왔지요. 당시에는 동네에 사과나무가 몇 그루 없을 때였는데 이게 앞으로 돈이 되겠던가 하는 건 몰랐고 생각도 안하고 그냥 좋아서 심었지요.”

천 오백평의 땅에 사과나무를 다 심어놓고 그는 군대엘 갔다. 휴가 때만 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사과나무에 매달렸다. 그리고 92년 제대를 하고 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과 농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사과 재배에 관계된 영농교육은 빠지지 않고 다 받았고 발품을 팔아 과수원을 찾아다니며 산 경험을 배우기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면서 밤낮으로 사과나무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형편이 되는 대로 주변 밭을 사들여 새로운 품종의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며 과수원을 키워 나갔다.
“처음으로 사과 수확을 했을 때는 트럭에 사과를 싣고 서울로 직접 팔러 갔어요. 누나네 집과 사촌형네 집에 며칠씩 머물면서 삼사일씩 아파트 단지, 역 앞,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 휴게소 등지를 돌면서 사과를 팔았어요. 1년에 열 서너 차례씩 그렇게 직접 팔러 다녔어요. 한 푼이라도 제 값을 받고 팔려고 힘든 줄 모르고 다녔죠. 그렇게 사과에 미쳐서 죽자 사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과수원이 5천 평으로 늘어나 있더라고요. 사과뿐만 아니라 단감농사, 버섯 농사, 복숭아 농사 그야말로 농사짓는 재미에 살았어요. 그러다가 서른두 살에 이 사람하고 맞선을 보게 됐죠.”

기영 씨는 풍산 죽전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토박이 농군이다. 8남매 중 위로 형님 셋에 누나 셋, 동생까지 있지만 일곱째인 기영 씨가 부모님 곁에서 고향을 지키며 사과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 것은 자연을 좋아하고 사과나무에 무한 애정을 쏟는 그 소박한 마음을 볼 때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예정된 인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희 씨가 군대에 재직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과수원을 하는 총각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했다. 막내라 누구보다 엄마와 가까웠던 탓에 엄마는 어릴 때부터 사과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고 과수원집에 시집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막내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시골이 좋고 농사짓고 사는 농부의 삶이 좋았어요. 농사일 하는 엄마 아빠 따라 들에 가는 게 좋았고 시골집에 있는 게 정말 좋았어요.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시골에서 자연 속에서 살게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어요. 그런 막내딸을 엄마가 잘 알고 있어서 아마 엄마가 선뜻 선을 보자 했던 거 같아요. 마침 우리 신랑 이모님 되는 분이 친정 이웃에 사셨는데 그 분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으신 거죠. 우리 엄마가 덥석 그럴 무신 거고요.”

맞선 보던 호텔 계단에서 지켜보던 양가 어머니
그렇게 해서 기영 씨와 경희 씨는 2001년 4월 목련이 필 무렵이던가 질 무렵이던가 하여튼 봄꽃이 한창 움을 틔우던 어느 봄날에 처음 만났다. 경희 씨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가던 날 안동 기차역 앞 파크호텔 커피숍에서 맞선이라는 것을 봤다. 차 시간 때문에 삼십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선을 보고 있을 때 커피숍 앞 계단에는 양가 어머니와 맞선을 주선하신 이모님 이렇게 할매 세 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계셨다.
“사실 첫인상은 별로였어요. 저는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 좋아하고 건강미 넘치는 활동적인 스타일이 이상형이었는데 이 사람은 키만 훌쭉하니 크지 마르고 조용하더라고요. 그런데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이 참 선해 보이더라고요. 사과농사 짓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참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죠. 그리고 나중에 헤어질 때 이 사람 어머니가 제가 사과 좋아한다고 트럭 뒤에 싣고 온 사과를 가지고 가라고 주시는 걸 제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어무이 됐니더!’ 하면서 말리며 얼굴 붉히던 게 기억에 남더라고요. 한 가득 사 주시는 걸 그냥 한 개만 손에 들고 갔죠. 그때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죠.”

서른네 살 노총각이었던 기영 씨는 선을 보는 날 어머니와 이모님을 태우고 사과를 싣고 트럭을 타고 호텔 커피숍에 선을 보러 오는 그런 남자였다. 사실 경희 씨와 선을 보기 전에 친정 부모님이 미리 하루 네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기영 씨네 과수원이 있는 죽전까지 가서 어른들이 먼저 선을 보고 오신 참이었다. 그 동네 사는 친정아부지 지인을 통해 마을회관에서 얼추 애지중지하는 막내딸 신랑 될 이의 됨됨이를 보고 오신 것이었다. 아마도 그 만남에서 기영 씨가 맘에 드신 듯 친정엄마가 일단 한번 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서신 것이었다.
“다른 엄마들 같으면 보통 시골에 잘 시집 안 보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막내인 제 마음도 잘 알고 계셨고 위로 언니 오빠들 다 멀리 시집 장가 보내셔서 그런지 저는 가까이 두고 싶으셨나 봐요. 이 사람이 어른들한테 잘 하고 성실하다고 좋아하셨어요. 진짜로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저희 친정 부모님한테 부모처럼 그렇게 잘하기도 하고요. 농사일도 도와드리고 집수리 같은 것도 봐 드리고 제가 없어도 지나가면 한 번씩 꼭 들여다보고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들이 많이 좋아하세요.”

“첫 눈에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어요”
그렇게 맞선을 보고 경희 씨는 군대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순하고 착한 남자 기영 씨가 사과 농사를 짓는 틈틈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과수원에 사과가 익어간다고. 올해 무슨 품종 첫 수확을 했다고. 과수원 전지를 한다고, 과수원에 눈이 왔다고, 봄에는 사과 꽃이 예쁘게 폈다고, 부대 일을 마치고 들어와 보면 문자가 와 있곤 했다. 무심한 듯 아닌 듯 문자도 보내고 짬짬이 과수원 사진도 찍어 보내왔다. 그리고 무심한 듯 보내오는 그 메시지들은 군 생활을 하는 경희 씨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었다. 아마도 기영 씨는 나 여기 기다리고 있으니까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그런 말 대신 그저 잊을만하면 문자로 과수원 소식과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저는 첫눈에 그냥 이 사람이 좋았어요. 그냥 다 좋더라고요.”
기영 씨의 이 한 마디에 그의 마음이 다 담겨 있다.

경희 씨는 대전에서 군복무에 바쁜 나날을 보냈고 기영 씨는 가끔 소식을 보내오기는 했지만 과수원에 매달려 바쁘고 누구도 서로 다시 만나자거나 그런 말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친정 엄마가 한 번 더 만나 보라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을 꺼내곤 했다. 그러다가 경희 씨가 말년휴가를 나오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웃에 계시는 이모님이랑 엄마가 등 떠밀어 두 사람은 한 번 두 번 더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희 마음에 기영 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착해요. 진솔하고. 나름대로 농사에 대한 철학도 있고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이랑 살면 내가 생각해오던 꿈처럼 둘이 같이 사과농사 지으면서 시골에서 아이들 키우며 그렇게 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런 경희 씨를 기다리며 기영 씨는 얼마나 마음을 태웠을까?
“처음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삼사년 동안 서너 번 만났나 그랬으니까요. 자주 볼 기회도 없었고 거리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저 사람이 제대하고 처형 집에 있는 걸 장모님이 결혼식이 있어 올라가셨다가 끌고 오다시피 데리고 오셔서 그때 만나서 데이트 비슷한 걸 했지요. 그렇게 두세 번 만나고 서너 달 뒤에 결혼했지요.”

총각네 진실농원이 우주네 별사과 농장으로
그런데 후보생 생활 6개월에 36개월의 4년여의 긴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한 경희 씨는 서울로 갔다. 언니 집에 머물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돈을 모아 제주도까지 하이킹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 결혼식에 참석하러 오신 엄마가 이 막내딸의 가슴에 바람이 든 걸 알았는지 그러지 말고 지금 이 길로 내 따라 내려가자며 재깍 손목을 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 버스를 타고 같이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영 씨를 만났고 그리고 기영 씨가 말한 그 데이트 비슷한 걸 두어 번 했다. 그것도 시골 과수원 밭길을 걸으며. 그리고 얼마 뒤인 2003년 1월, 경희 씨와 기영 씨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주와 우성이가 태어났다. 기영 씨가 혼자 농사 짓던 총각시절 ‘진실농원’이던 농장이름은 우주가 태어나면서 ‘우주네 별사과 농장’으로 이름을 바꿔 상표등록을 했다. 사과 농사 지으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경희’씨가 어릴 적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생활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농사일도 아이들 키우는 일도 만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도 저희들은 자랄 때 엄마가 일을 전혀 안 시켰어요. 그래서 농사 일이 그렇게 고된 지 사실 잘 몰랐던 것도 있어요. 농촌에서 사는 걸 좋아했지만 결혼해서 막상 일을 해 보니까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정말 고되더라고요. 그런데 몸은 고되지만, 때로는 힘든 일도 많지만 그래도 결론은 좋아요. 남편이랑 같이 농사짓고 시골에서 아이들 맘대로 뛰놀게 하면서 키우는 지금이 저는 좋아요.”
어떤 엄마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들을 엄마가 다잡고 공부를 시켜도 모자랄 판에 무작정 뛰어놀게만 하면 안 된다고 경희 씨더러 이상한 엄마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릴 때는 마음껏 뛰어놀아야 된다는 경희 씨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무엇을 하든 아이들을 믿고 밀어줄 생각이지만 공부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맘껏 뛰놀게 해주는 부모 되고 싶어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우주와 1학년인 우성이는 현재 서선초등학교를 다닌다. 집은 송현이지만 공부보다는 시골 공기 마시며 실컷 뛰어놀게 해주는 학교를 다니게 해주고 싶은 엄마 경희 씨의 생각 때문이다. 시골초등학교의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지내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집 앞 큰 학교가 아니라 시골학교를 택해 보낸 학교였지만 시골학교 선생님들은 그러나 도시 학교 선생님들만큼이나 현실적이었고 공부나 성적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다니고 싶은 학교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상적인 학교와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점을 찾았고 그 결과 지금의 서선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전교생이 몇 학급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라 분위기도 좋고 다행히 아이들도 지금 학교를 마음에 들어 하고 집에서 농장을 오가는 길목에 있어 경희 씨도 안심도 된다.

죽전리에서 기영 씨와 경희 씨 부부는 나름 유명한 커플이다. 마을에서는 베트남에서 시집 온 새댁 둘을 빼고는 제일 젊은 부부이기도 하고 부부가 참 부지런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상도 받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서 택배로 판매를 하고, 그러면서도 죽전에서 농사 지으며 사는 부모님 모시는 일부터 마을 일이 있을 때면 앞서서 열심인 것까지, 부지런한 기영 씨에 똑부러지는 경희 씨까지 두 말하면 입 아픈 우주네다.
“제가 좀 시골 할매 할배들, 어른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스스럼없이 말도 하고 어른들 일에 팔 붙이고 나서기도 하고 그래요. 버릇없다고 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다 우리 엄마 아부지 같아서 그냥 편하고 좋아요. 우리 시아버님 시어머님도 연세가 많으신데 그래도 막 어리광 부리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그래요. 사실 저희가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건 아니고 오히려 도움을 받고 살아요. 우주 우성이도 우리가 일하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봐주시기도 하고 그래요. 지들끼리 놀다 배고프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서 밥 먹고 자기도 하고요. 언젠가 토끼풀 주다가 손가락을 깨물려 병원에 싣고 가고 난리가 나기도 했지만요. 동네 분들하고 웃다 울다 그렇게 어울려 살아요. 사과 농사 지으면서. 저는 솔직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면 소도 지금처럼 못 키울 거 같아요. 지금은 두 분이서 다 키워주시거든요. 그리고 동네서 제가 제일 젊은 막내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이뻐해 주시기도 하고 부녀회 총무 일도 떠맡기셔서 시집 온 이래로 내리 맡아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마을에는 경희 씨 말고도 젊은 새댁이 둘이나 더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새댁들인데 둘 다 경희씨보다 어리다. 군인 출신 경희 씨가 말끝에 웃으며,
“그런데 베트남 새댁이 둘 있는데 마을 행사나 부녀회 때 불러도 잘 안오더라구요. 사실 막내들은 설거지 하는데 녹초가 되거든요. 와서 같이 거들어주면 좋을텐데, 군기가 좀 빠진 거 같죠? 하하!”

부모님이 농사 짓던 천오백 평으로 시작해서 차츰차츰 키워온 과수원이 지금은 사과 6천 평에 단감 천 평까지 7천 평에 이르는, 죽전리는 물론이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탄탄한 과수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수원 농사가 힘겨울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요즘도 해마다 새로운 품종의 사과나무를 들여와 심기도 하고 맛있는 사과를 길러내기 위해서 끈임 없이 노력을 하는데 새로운 품종을 새로 심을 때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기영씨가 아니라 전적으로 아내 경희씨란다. 맛있는 사과가 아니면 심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경희씨의 철칙 때문이란다.
“집 사람이 사과 맛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요.
이 사람이 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심었다가도 몽땅 캐내야 해요. 교육받고 그 품종이 좋다고 해서 심었는데 집사람이 먹어보고 아니다 해서 작년에도 다 캐냈어요. 아무리 모양이 좋고 수확량이 좋다고 해도 집 사람 입맛을 통과해야 심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사 먹는 사람들도 우리 집 사과가 맛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입소문이 나서 인터넷 주문도 는 것 같고요. 그래서 우리 과수원에서는 무조건 우리 집사람 심자고 하는 걸로 심어요.”

그때 경희 씨가 사과를 가지고 와서 한 접시 깎아 놓는다. 그런데 깎아 놓으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고만고만 똑같아 보이는 사과건만 경희 씨가 그 중 한 쪽을 찍어서 건네주며 이게 더 맛있는 거라고 권해준다. 먹어보니 과연 달큰하고 시원한 게 좀 전에 베어 먹은 사과보다 더 맛이 좋다. 이건 어느 밭에 있는 오래된 나무에서 단 거라느니 이건 요새 새로 나온 품종인데 맛이 괜찮다느니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권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많은 사과나무를 일일이 다 기억을 하는 듯하다.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자식 같은 천상 사과농사꾼 부부의 만담 한 도막 듣는 기분이다.

“태풍 피해 봤지만 사람 인심 확인했어요”
올 여름 태풍이 안동을 거쳐 갔다. 전국적으로 과수농가가 많은 피해를 봤지만 그중에서도 태풍이 뚫고 지나간 통로에 위치했던 이 지방 과수농가들의 피해는 컸다. 두 사람의 별사과 농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사과 농장에는 쓰러진 과목에 수많은 낙과와 작년의 반도 되지 않는 사과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태풍에 부부는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그동안 사람들한테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구나 하는 걸 이번 태풍 피해 복구를 도와주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느꼈어요.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러 오셨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넋을 놓고 앉아 있었는데 알음알음으로 소식을 들으신 분들이 너도나도 도움을 주셨어요. 작목반이나 영농단체분들도 오셨고 어린 나이에 일찍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신 4H 관계자 분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공무원 분들에 개인적인 친분의 지인들까지 백여 명이 넘는 분들이 저희 과수원에 와서 도움을 주셨어요. 저희는 보험을 들어놓지 않아서 보상금은 백만 원 정도 밖에 안 나왔지만 이번에 도움을 주신 그분들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느끼고 얻었어요. 그래서 소득이 작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데도 그걸로 감사하고 오히려 힘이 나더라고요.”

경희 씨 말에 쑥스러운 듯이 기영 씨가 한 마디 보탠다.
“제가 여태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올해 같은 피해는 처음이에요. 처음에는 농작물 피해보험도 꼬박고박 들고 했는데 일 년에 백만 원 넘는 보험료만 나가고 별 혜택은 없고 해서 안 들었더니 올해 그만 딱 피해가 온 거죠.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나쁜 일이 있으면 또 좋은 일이 있다고, 그전에는 한 해 인건비가 보통 사, 오백만원 정도 드는데 올해는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인건비가 절반도 안 들었어요. 제가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을 잘 못 쓰다보니까 일을 더 못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에 더 많이 도와주러 오신 거 같더라고요. 그전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정말 사람 사는 정이라는 걸 느꼈어요.”
태풍 복구가 끝나고 경희 씨는 고마운 마음에 사과하고 단호박 떡을 해서 돌리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과박스 아랫줄에 더 튼실한 사과 담는 사람
우주네 별사과는 작년부터 수확량 사과 전체를 인터넷이나 전화 주문 등 100% 소매 판매를 하고 있다. 그전에는 사과를 수확하면 일부는 경북에서 대만 등지로 수출하는 데 내고 일부는 농산물 공판장에 내고 남은 물량을 소매로 판매했는데 지금은 입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가을 수확 철에 한꺼번에 팔지 않고 일 년 내내 인터넷 장터를 운영하며 전부 소매로 판매를 하고 있다.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대신 매달 판매한 만큼 수익이 나는 구조이다. 아오리 사과 수확이 시작되는 늦여름부터 시작해 다음해 4~5월까지 품목에 따라 그때그때 꾸준하게 판매가 이루어지는데, 요즘은 11월말에 수확을 마친 부사가 제철이라 판매가 활발하다. 취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몇 차례나 주문전화가 걸려온다.
“사과가 작년처럼 맛있다고는 말씀 못 드려요. 태풍 피해도 있었고 저는 맛있어도 사과마다 그해 해 조금씩 맛이 다르거든요. 드셔보시고 맛있으면 더 주문해 주세요.”

경희 씨가 주문하면서 사과가 맛있느냐고 묻는단골손님들한테 들려주는 솔직한 답변이다. 우주네 별사과는 가격도 늘 고만고만하다. 사과 값이 폭등한다고 왕창 올려 받는 일도, 인터넷에 올리는 사과 따로 보내는 사과 따로인 법도 없다. 똑같은 사과 사진이지만 우주네 별사과 홈페이지 속 사과 사진은 매번 사과 수확을 할 때마다 새로 찍어 올린다. 똑같은 부사 사과지만 작년 것과 올 해 것은 때깔도 크기도 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깔을 좋게 하는 포토샵도 없다. 중량을 속이는 일도 실수라도 윗줄 아랫줄 크기가 다른 사과를 섞어 보내는 일도 없다. 내가 사과를 사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배송된 사과박스를 개봉했을 때 기분 좋게 받아먹을 수 있는 사과를 팔고 싶다는 게 경희 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6년 전 처음 우주네 별사과(http://psapple.com)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때는 사과 판매를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들과 감상들을 기록하고 지인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만든 블로그였다. 실제로 블로그는 시골농부의 아내로 아이들 키우면서 살아가는 경희 씨에게는 일상의 기록인 동시에 글쓰기의 장이기도 했고 지인들과 소식도 나누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그러다가 과수원 소식과 사과 수확과 판매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의 부탁으로 사과를 한 두 상자씩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인들의 입소문을 듣고 사과를 사 먹은 사람들의 주문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주문이 늘어 전부 주문 판매를 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희 씨는 요즘 농사일 보다는 판매 쪽에 더 신경을 쓴다. 주문부터 포장해서 택배 발송하는 일에서부터 배송확인전화 그날그날 블로그에 들어가 주문 확인하고 재고량 확인해서 변동사항 알리고 사진 업데이트에 후기 댓글관리까지 해야하다보니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거기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등하교 시키고 짬짬이 농장일도 거들며 아이들 공부도 챙겨야 하니 몸을 쉴 틈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 농장 일은 기영 씨 차지라 힘이 들만도 하지만 기영 씨는 끄떡없다고 말한다.
“제가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몰라도 늘 해 오던 일이라 그렇게 힘든 줄은 몰라요. 요즘은 농기계가 좋아져서 벼농사도 그렇고 과수에 약 치는 것도 그렇고 옛날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제가 과수원에 약치는 기계 같은 농기계 장비에 좀 투자를 하는 편이기도 하구요. 약치는 기계만 해도 세 대째인데 이삼천 만원씩 하는 기계들이라 집사람이랑 싸우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지만 집사람도 장비가 고장 나 약 못치고 하는 거 보면 결국은 져주죠. 저희가 지키는 원칙 중의 하나는 저 농약 친환경 농법을 지키면서 사과를 잘 키우는 거예요. 사과 같은 과일은 농약잔류기간이 두 달인데 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하 두 달 전부터는 농약을 안 쳐요. 닦아서 그냥 먹어도 될 정도로 출하를 해요. 저희 집사람이나 저는 사과를 깍지 않고 닦거나 씻어서 그냥 먹어요. 내가 껍질째 먹을 수 있어야 남들한테도 그렇게 말하죠.”

말이 많지는 않지만 간혹 조용조용 건네는 말에 필요 없는 말은 별로 없는 기영 씨다.
“사람들은 농사 짓는다고 하면 참 힘들겠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농사꾼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농사가 가만 보면 참 재미있어요. 봄에 꽃 피고 작물이 자라고 하는 거 보면 좋고 재미있어요.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사계절 내내 느끼는 경치 다르고 할 일이 따로 있어요. 늘상 할 일이 있어 바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경치 구경 할 짬도 있고 농사짓는 재미가 있어요.”

사과나무가 예뻐 죽겠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농사짓는 재미를 이야기 하는 기영 씨의 눈 속에 과수원 밭에 서 있는 사과나무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 가득하다고 나는 느낀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물을 주어 가꾸며 작물을 키우는 그 마음에는 거짓이나 욕심이 없다. 오직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있다. 수박 농사를 지을 때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순을 쳐주고 수박이 앉은 자리를 봐주며 정성을 들이셨다. 행여 가지가 엉키거나 당신 발에 밟힐까봐 맨발로 다니시기도 했고 걸음 옮기는 것도 함부로 안하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 뼘 자라는 그 놈들이 예뻐서 한참씩 자리를 뜨지 못하시기도 했다. 농부가 무언가를 키울 때의 그 마음과 정성은 오직 순수 그 자체다. 기영 씨는 농부가 농사짓는 그 순수한 재미를 아는 사람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매사에 당차고 활동적인 아내가 하는 일에 언제나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영 씨다.
“집사람이 처음 판매를 시작할 때도 이야기를 했는데 집사람 고집이기도 하고 저도 같은 생각이어서 저희는 항상 사과를 사 먹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괜찮다 싶은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서 되도록이면 그 가격에 판매를 하려고 해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상품의 경우에는 공판장에서도 상자 당 10만원이 넘게 책정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렇게 가격차가 많이 나면 대부분 가격을 많이 올리거나 물량이 없다고 인터넷 판매를 중단하는데 집사람은 그때도 전과 같은 가격에 팔더라고요. 장장에는 손해 같지만 지나고 보니 그러면서 오히려 믿고 단골이 되는 분들이 더 많은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집사람한테 다 맡기고 판매에는 거의 신경을 안 쓰는 편이예요. 택배가 많으면 작업을 거들어주는 정도죠. 농사는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는 것도 중요한데 집사람이 그 몫을 해 주니까 좋지요. 대신에 저는 사과 농사를 제대로 잘 지으려고 신경을 쓰죠. 상품이 좋아야 판매도 잘 되니까요.”

그야말로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경희 씨는 요즘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다른 일을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농촌체험관광사업 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있다. 당장 체험농장을 할 여건이나 인력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전부터 농장에 놀러오고 싶어 하는 지인들을 위해 농장 옆에 황토방 같은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놓고 언제라도 와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희 씨의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기영 씨는 이번 영농교육 제안이 왔을 때 자기 대신 보냈다. 그렇다고 기영 씨나 경희 씨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제안하는 사업형 농촌체험관광에 뜻을 둔 건 아니다. 7천 평이 넘는 과수원에 벼농사에 과수원에 들어가는 퇴비 때문에 시작한 열 마리 남짓한 한우 사육까지 농사일과 사과 판매만으로도 벅찬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영 씨와 경희 씨가 사는 모습이 보고 싶어 농장을 찾아오는 지인들이나 그 가족들을 위한 따뜻한 쉼터 같은 공간 하나를 만들고 싶은 바람에서 뭔가 도움을 얻을까 싶어 시작한 한 걸음일 뿐이다. 자신들의 농장에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사과도 따고 추억도 나누고픈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경희씨는 그래서 멀지 않은 언젠가 과수원 자락 어느 한 귀퉁이에 작은 황토 쉼터 하나 꾸미고 사람들을 보고 싶은 이들을 초대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경희씨를 기영씨가 웃으며 건너다본다. 경희 씨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노 프라블럼~일 것만 같은 기영 씨다.

지금도 사과를 따면 제일 먼저 딴 것을 경희 씨에게 주는 기영 씨, 복숭아를 단감을 딸 때도 언제나 제일 처음 딴 것을 경희 씨에게 주는 그 마음으로 기영 씨는 사과농사를 짓는다.
쓱 닦아 껍질째 먹어도 좋은 풍산 우주네 별사과 농장 주인장 기영 씨와 알토란같은 살림꾼 경희 씨. 두 사람이 꾸려가는 우주네 별사과 농장이 꿈꾸는 것은 언제든지 사람들이 쉽게 와서 편하게 푹 쉬고 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믿을 수 있고 꿀맛처럼 맛있는 사과와 복숭아와 단감을 키워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