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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막동 골목길의 겨울풍경(글/사진/백소애_편집기자)

안막동은 행정구역상 신안동, 상아동과 함께 명륜동에 속한다. 안동시내에서 안막동으로 향하는 4차선 왕복 도로는 퇴계로라 이름 지었다. 도산까지 쭉 이어졌기 때문이다. 길은 약간 오르막길이다. 분수대에서 길원여고까지 걸어오르면 10~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1990년대 지어진 1~3개 소규모 동의 안막현대아파트, 신안현대아파트, 계림황제타운, 화성아파트, 금탑맨션 등의 아파트가 줄줄이 있고 시내와도 가까운 거리지만 어쩐지 도심에서 비껴간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서울을 둘러싼 위성도시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파트 사이 사이 골목에 소박한 주택이 밀집해 있는 안막동은 안기동과 더불어, 시내를 가로지르는 가장 흔한 1번, 2번, 11번 버스가 다니는 구간이 아니어서 일반 시민들은 “거기 갈려면 대체 몇 번 버스를 타야하나?”하고 고민해야 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안막동의 원마을은 안막골, 안막곡으로 원래 안동부의 서부지역이었다.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길원여고 자리에 순흥(順興) 안효자(安孝子)의 대묘막(大墓幕)이 있었기 때문에 안막골이라 불리게 됐다. 이후 1914년 며질리와 병합하여 안막동이 되었다가 1931년 안막정, 명륜1정, 명륜2정으로 분리되었다. 그 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명륜1정은 명륜동, 명륜2정은 신안동이 되고 안막정은 안막동이 되었으며 이때에 상아동을 독립시켰다. 원래의 안막동은 현재의 명륜동, 신안동, 상아동이 다 포함된다고 한다.

시청 입구에는 안동시농민회의 ‘농정개혁 5대 요구안 관철 농민시국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다. 쌀쌀맞은 날씨처럼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보였다. 농민 인구가 많은 안동조차도 이런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식량주권의 길이 멀고도 험해 보인다.
문을 닫은 지 몇 년은 됐을 법한 북문장의사 처마에 길게 드리워진 고드름을 보며 길을 걷는다. 미닫이문의 셀로판종이는 떨어져나가 있고 눈길에는 발자국이 없다. 이제는 상조업체가 난립하니 개인이 운영하는 장의사는 설 곳이 없을 것이다.
인근 이발소에서 삐져나온 난로 연통은 담배처럼 연기를 뿜어냈다. 주인장은 나름의 아이디어로 갈무리를 잘해놨다. 금탑맨션 주차장에는 부녀회의 이름으로 입주민 자녀의 사법고시 합격을 알리는 축하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다. 수능이 끝난 요즘, 자녀 성적에 따라 부모들 기가 죽고 기가 사는 게 판가름 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늙어서까지 자식들 공부 잘하고 잘 나가는 게 부모들이 어깨 펴는 기준이라면 나는 가혹하게도 한 번도 그 어깨를 펴드린 적이 없다.

안막동까지 향하는 길은 명륜동, 북문동, 신안동을 거치게 된다. 옛 명성웨딩홀인 지금의 M컨벤션센터 지점에서 갈라지는 오른쪽 골목으로는 닥밭골1길이 나온다. 옛날에 닥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던 골이어서 딱밭골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닥은 전혀 없고 주택지가 들어서 있다. ‘닥밭골’이라는 발음은 좀 어렵지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마을이름이 정감이 간다.
슬라브 지붕의 고드름과 대문 앞에 내놓은 재활용으로도 쓰이지 않을 세간과 아담한 집이 있는 소박한 동네를 걷는다. 곳곳에 덜 녹은 눈과 영하의 날씨를 피해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수거함 위에 올라가 있다. 별로 따뜻한 곳도 아닌데 싶었는데 재활용 뭉치 안에 있으니 보온효과가 나는 모양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놓고 있다.

골목 벽보에는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알리는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후보들은 모두 미소 짓거나 웃는 얼굴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 국민들 얼굴이 그럴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퇴계로쪽으로 이어진 정의마을 골목 초입에는 비디오테잎 반납기가 녹이 슨 채 매달려 있다. IP TV와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의 여가생활 중 하나였는데 이젠 DVD대여업소 하나 찾아보는 것도 힘들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디오문화는 사라져갔다. 몇 천 원에 신작 비디오를 빌려와 봤던 기억이 새록하다. 특히방과 후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가 함께 보곤 했는데 그때 봤던 영화가 이사벨라 롯셀리니가 나오는 ‘블루 벨벳’과 배우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등이었다. 함께 모여 보는데 청소년 관람가를 본다는 건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닥밭골1길을 지나 현대목욕탕에서 오른쪽 편 치이골로 접어든다. 입구에는 아담한 기와지붕의 대성식당이 있고 신안현대아파트가 맞은편에 우뚝 서 있다. 우측 치이골로 접어들면 경일고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은 마을의 모습이 꿩처럼 생겼다고 하여 치곡이라 불렀으며 주로 산골의 전답으로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화장장을 설치하여 화장실골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화장장은 딴 곳으로 옮겼고 지금은 주택들이 들어서서 마을을 새로 이루고 있다.
주택 옥상에는 실로 꿴 무말랭이가 볕을 쬐고 있고 아담한 노인정 앞에 어르신은 수돗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씻고 있었다. 다시 퇴계로 쪽으로 걸어나가니 신안현대아파트 앞 시지정벽보판이 휑하니 서 있다. 영화포스터와 각종 공고와 광고 등이 붙어 있던 벽보판은 디지털 시대에 별 효과를 못 보는 모양으로, 그 흔한 불법 광고전단 하나도 붙어 있질 않았다. 고층에 누가 이사를 온 모양으로, 아파트 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이삿짐이 옮기는 오후의 풍경을 뒤로 하고 길원여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막현대아파트 상가 앞 공터는 제대로 농사를 짓는 것 같이 밭이 일구어져 있다. 사잇길과 인도 사이에 텃밭이라니, 흔한 풍경은 아니다. 텃밭에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투기하는 모양으로 ‘당신은 지성인, 버리지 마세요’하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꽂혀 있다. 아파트 후문 쪽 급수대 호스에는 고드름이 흉기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동절기 급수시간까지 나와 있지만 얼어붙어 있는 급수대에서 당분간 물을 떠가는 주민을 보기는 힘들 것 같아 보였다. 도산서원 25㎞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며 안막현대아파트를 지난다. 맞은편 동산길의 좁은 골목에도 눈은 여전히 쌓여 있다.
길원여고 운동장에도 벤치에도 눈은 포근히 쌓여 있다. 연못은 꽁꽁 얼어 있었다. 경비실 옆에는 교문 앞을 치우던 제설 삽이 세워둔 자전거에 기대어 쉬고 있다. 방화벽 대신 설치된 펜스에 대선후보들 포스터가 추위에 바람에 펄럭인다. CJ 영남방송을 지나니 두 동짜리 저층 아파트인 성도아파트가 보인다. 일대 도로변에는 매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일대는 퇴계로 매화길로 불린다.

길을 건너면 맞은편 아래 화성아파트가 나온다. 아파트 입구에는 길원여고에서 우회도로 교차점까지의 퇴계로 확,포장공사 준공표지석이 서 있다.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이 바로 사명당길이다. 사명당길은 세명당, 사명당골, 사명당곡으로 불렸는데 사명당(四溟堂)이 머물렀다는 말에 연유되어 부르게 된 이름이고 이후 음이 변해 사명당골, 세명당 등으로 달리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계속 직진해서 북쪽 퇴계로 길을 걸어가면 명륜동 사무소가 나온다. 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이 걸린 동사무소 일대는 조용했다. 명륜동사무소 왼쪽 골목으로 정백이골길이 나온다. 연탄이 재워진 상가는 문을 닫은 지 오래, 그냥 일반 가정집으로 보인다. 문에 붙여진 메뉴는 여전히 손칼국수집이라고 적혀 있다. 정백이골길은 정베기, 정백마을로 불렸던 곳으로 마을의 논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 석수장이들을 정으로 돌을 깨기 위해 구멍을 뚫다가 3개째에 정이 박혀 빼낼 수 없었다 하여 그렇게 불려졌다고 한다.

안막동의 끝트머리 즈음 향산고택, 치암고택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앞서 작은 규모로 서 있는 것이 향산고택 그 뒤로 치암고택이 있다. 향산고택은 퇴계 선생의 후손으로 한일강제병합의 울분을 단식을 통해 항의하다 순국한 향산 이만도 선생의 옛 집이다. 원래 도산면 토계리에 있던 것을 안동댐 수몰로 197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치암고택은 조선 고종 때에 언양현감, 홍문관 교리를 지낸 치암 이만현 선생의 고택으로, 그는 퇴계선생의 11대손이다. 문과로 벼슬길에 나갔다가 은퇴 후 만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이집도 당초 도산면 원촌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 지역으로 인하여 1976년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위로는 안막동과 와룡을 잇는 안막재가 있다. 예전엔 길원여고에서 안막재까지의 메타세콰이어길이 볼만 했다고 한다. 35번 국도는 잘 닦여 있지만 운치는 예전만 할까. 좁은 시멘트 골목길과 금 간 담벼락의 주택이 옹기종기 모인 안막동을 내려온다. 언 눈이 녹을려면 아무래도 조금 더 걸리는 응달진 곳을 피해서.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