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승 시인의 고향, 남선 신흥리를 찾아서(글/사진/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1.
남선면 신흥리로 길을 잡는다. 옛날 마을 이름은 망실(望實)이라 불렸고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흥으로 부른다. 남선면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고려 때부터 마을에 파평윤씨가 모여 살았는데 마을에 운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노스님이 신흥(新興)으로 개명했다고 전한다. 요즘도 여름철이면 반딧불이가 개울가에 보여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공기가 맑은 이곳 마을에서 윤혜승 시인은 태어나 유년을 보냈다. 자전적인 작품을 읽어보면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시고 그 다음해에 고향을 떠나 경산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큰일을 겪은 아이에게 고향과 어머니는 아마도 절대 그리움의 대상으로 평생 한이 되어 남아있었지 싶다.  


신흥으로 길을 나서면서 남선초등학교 부근 농협창고에서 우연히 길을 물었는데 볼일 보러 오신 분이 신흥리 이장님을 소개해주신다. 마침 오늘이 콩 수매하는 날이라 사람들이 북적인다. 수매하러 오신 신흥리 이장님께 윤혜승 선생을 아시는가 여쭈니 같이 오신 마을 어르신을 소개해주신다. 여든은 족히 넘어 보이는 어른께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해주신다. 또 그 외 몇 분 어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콩 수매 하시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신흥으로 출발. 갈라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오면 사붓골을 지나쳐 계속 직진하면 된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언덕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길게 길을 따라 이어지는 저수지가 있다. 요새 날이 차서 바짝 얼어붙어 있는데다 며칠 전 내린 폭설로 하얀 저수지가 아름답다. 며칠 영하권으로 기온이 내려가도 낮 동안은 햇살이 따뜻하니 눈이 녹아 차가 다니는 데는 별 불편이 없다.
저수지가 끝나자마자 바로 마을입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마을회관이 보이고 그대로 옆에 붙어서 신계서당이 있다. 선생의 연보를 보면 이 마을서당에서 아버지인 훈장을 통해 한자공부를 했다고 나온다. 선생의 아버지의 호는 국사(菊史)이며 이름은 영찬(永贊)이다. 동네에서 서당을 관리하는 칠촌 조카인 집안 아저씨에 따르면 선생의 아버지는 1등 선비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아마 마을에서 인품이 넉넉하고 인자하면서 학식까지 갖춘 분으로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가까운 친척이 선비라고 평하는 말을 개인감정을 담은 말이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닐 거란 생각에 더 기운다.


신흥리는 마을 중간으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을 중심으로 양 쪽으로 집이 들어섰지만 대체로 따뜻한 양지쪽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어져 있다. 서당을 관리하는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옛날에는 집이 병아리 집 같았다고 한다. 한 때 그 시절 농사짓는 시골집들의 흔적으로 그대로 안은 흙담벽이 눈에 보인다. 짚을 흙과 섞어 벽돌을 만들어 지었을 흙집 몸체가 군데군데 보인다. 시래기를 말려 벽 한쪽으로 빨래 널 듯 가지런히 말리는 집의 겨울준비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시에서 이주한 귀농인이나 전원생활을 즐기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의 현대식 건물도 눈에 드러나지만. 키 낮고 작은 집들이 더욱 눈밭에 잘 어울리는 조화란 무엇인가. 지붕에 쌓인 눈이 녹으며 만든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진 처마 밑으로 비 오듯 눈 녹은 물소리가 똑똑 떨어지기도 하고.




시인, 아동문학가 윤혜승(尹惠昇)
(1928년 1월 19일~2000년 9월 25일)
안동에서 태어나 1955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로 문단에 등단하여 1958년 시집 《애가(哀歌)》를 발간하면서 문단주로 대구에서 활동했다. 시집 <애가> <무고지민> <사랑이야기그리고 찬가들> 등을 남겼으며 동시 동화집 <갈잎의 노래> <비둘기 우는 마을>을 발간했고, 에세이 집 <계절풍> 시와 시론집 <한 그루 정정한 나무가> 등을 냈다. 시인, 아동문학가, 학자이자 교육자, YMCA 운동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선생은 이 마을에서 192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여섯 살 전후 무렵 경산으로 집안이 이사를 간다. 선생과 마을의 직접 인연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선산이 이 마을에 있고 친척들이 마을에 여전히 살고 있으니 많은 사연이 마을에 쌓여 있을 것은 당연하다. 선생이 살아계실 때는 해마다 시사를 지내러 마을에 와서 마을 사람들과 만날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의 선영을 관리하는 친척분께서 윤혜승 선생을 마음 깊이 흡족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해질 정도로 우의가 두터웠던 것 같다.


남선교회를 지을 때 선생의 숙부인 윤영문 목사가 주축이 되었다. 이 사실로 볼 때 선생이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은 가족환경에서 자연스레 물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선생은 숙부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을 거라고 한다. 신흥리 마을을 들어서보면 알겠지만 논과 들이 넓지 않아서 그렇게 경제적으로 넉넉한 마을이 아니다. 천수답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 짓던 시절에는 과히 좋은 땅이라고 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산골 깊숙이 들어온 마을 안에서 농토도 그렇게 풍요롭지 않을 때 사람의 경제적인 활동이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법이니. 선생은 그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학교를 다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기개있게 삶을 열어낸 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2.
어릴 때 성서를 통독해야 했던 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독 기독교적 세계관이 드러난 시를 쓰면서도 종교시인으로 불리는 걸 불편해했다. 아마도 종교에 묶이거나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인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인이 종교시를 쓰고 그렇게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선생의 경우는 좀 각별하다. 믿음의 차원과 시의 세계를 따로 구분한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삶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좀 특이하다. 일곱 살 때부터 갈릴리 호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될 정도로 심취해 있었던 세계였고 평생 그 세계 안에 거주한 그가 왜 유독 종교시인으로 분류되는 일을 불편해 했을까. 기독교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을 쓰면서 종교시인으로 불리기를 꺼려했다는 말은 신앙과 작품세계를 구분하자는 의도가 있는 것인데, 사실상 그 구분이 가능하려면 시인이 스스로 종교와 거리를 둔 작품을 쓰면 된다. 그런데 시인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스스로 ‘인간 이상의 신을 추구하거나 변증하지 않았다.’는 그의 입장에서 좀 납득은 간다. 그러나 신을 해석하는 입장의 차이나 성서해석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종교를 벗어난 입장은 아닌 것을 본
인은 파악하지 못했을까. “나는 어려서 문학을 익히면서 성서를 통독했어야 했다. 버겁고 고된 일과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각이 들면서 성서는 흥미와 호기심으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책꽂이에 기독교 관계서적들이 그런대로 몇 권 있어 성서를 읽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 복음서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예수의 행태에 대하여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매력이라기보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의 고독과 애정과 분노가 그대로 박진해 오는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를 만지게 되고부터 한 편의 시를 작업할 때마다 그의 행태의 배면에 깔린 장면이 어느 구절에선가 작용하게 되는 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선생의 연보에 따르면 한국전쟁기에 육군사관학교 교수임용 시험을 치러 합격을 했다. 이 기간에 종군작가로 활동한다. 국방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일로 군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역할을 대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병>>, <<군목월보>> 등의 잡지에 시를 실었다. 1928년생인 선생에게 1950년이란 시간은 고작 이십대 초반에 불과했고 이 시기에 필설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상처를 얻었을 것이다. 유년의 상처에 전쟁 상처까지 보탠 선생의 삶은 시의 현장이 되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인간에게 부끄러움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은 징집대상 연령에 포함되는 나이이므로 전쟁터를 두루 다니며 죽음과 삶의 잔인한 현실을 끔찍하게 지켜보거나, 때로는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전쟁체험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 공식적으로 글을 발표한 것은 1946년 <<새싹>>이었고, 이때 동시를 실었다. 현대문학에 <대춘부>로 서정주 시인의 추천이 완료된 것은 1955년이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아동과 어른의 장르를 나누지 않고 동시와 시를 자유롭게 발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도 보이는데 당시는 아동문학, 어른문학이 오늘날처럼 심하게 구별되지 않은 시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이, 어른을 나누어 쓴 글은 아이와 어른의 소통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아동문학은 어른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갖는 일이라서 이 둘의 구분은 큰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의 목소리가 동시, 동화라고 할 때 이미 아이, 어른의 세계의 경계가 모호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니 동시 동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 중요한 문학작품이 된다. 왜 우리는 아동문학을 유치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왜 도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문학, 계몽의 목소리를 지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여기에 보태어 동심을 천사와 동일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사실 이 물음에는 어른들의 편의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물음은 폭력이 된다.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고 아이의 입장에 서는 일이 아동문학이 해야 할 일이지 아동, 어른을 나누는 일은 별로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단점을 진작에 알고 계신 듯, 선생은 동시와 동화는 물론 시의 장르를 나누지 않고 작품활동을 했다.



3.
첫 시집 <<애가>>에 실린 시인의 후기를 보면 문학의 힘과 바탕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섯 살 무렵 어머니를 잃어버린 시인의 가슴엔 헤아리기 힘든 애환이 서려 있을 것은 당연하다. 한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랑의 부재를 확인하면서 성장해야 했던 시인의 삶의 고통은 종교와 떨어질 수 없는 정신적인 유대를 키웠다고 본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어머니 대신 남은 성경을 탐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미움도 분별도, 발가숭이로 부끄러움도 알지 못하던 무렵, 나는 이미 매달려 조르고 보챌 이들을 잃었습니다. 젊어서 숨진 여인을 따라 그이는 외아들인 나에게 복음서를 안겨 주고, 또 붓과 벼루를 물려주고 떠났습니다. <밭을 갈기보다 양을 쳐라>는 유언이었다고 합니다. 갈 밭도 없었거니와 나에겐 양을 칠 선함이 없었습니다. <양을 치기보다 시로 살자> 그만 나는 이렇게 붓과 벼루에 정이 들고 말았습니다.”
 


두고 가야 할 것에/아름다움이 있다면/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인가//
  눈여겨 보아 온 저 민둥산과/이마의 촉감이 아직도 따스한 바위와/저기 발가벗은 나무 뿌리와 송진 향내와//[중략]
  사월의 대낮이 이다지도 차거우뇨/태양 아래 늘어진 몸집 속에 불꽃이 퉁기고/피는 흘러 살갗에 싯귀를 새긴다/여기 사월의 바람꽃 자리에/나는 있노라/나는 홀로 나를 새기노라


위의 시 제목은 <갈보리 형틀>이다. 예수가 십자가 형틀에 못 박혀 죽은 예루살렘 근처 언덕 ‘갈보리’는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공간이다. 이 죽음과 삶이 동시적으로 던져져 있는 공간에서의 삶이란 민둥산의 벌거벗은 나무처럼 공허한 삶이기도 하면서 사철 푸른 상록수를 꿈의 공간으로 불러낼 수 있는 의지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허무적인 생애 조건을 갈보리로 설정한 작품에서 다시 삶의 긍정성을 끝내 찾아낸 언어는 4월, 부활에서 드러난다. 모든 생명이 겨울을 지나 꽃을 피우는 봄의 시간대에 놓이는 것처럼 삶이란 살아있고자 지향하는 의지의 전부임을 그 의지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시인의 작품세계의 주제 가운데 죽음, 삶, 희망의 의지는 결국 사랑으로 확장된다. 전쟁체험으로 매우 우울하고 슬픈 작품세계가 하나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을 믿는 의지는 항상 작동한다. <<사랑 이야기, 찬가들>>은 어린 손녀에서부터 물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풀어놓아 사랑 아닌 것이 없는 생명의 찬란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의 가족사의 비애랄까, 시인의 고통에는 가족의 죽음이 놓여 있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선생은 숙부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어린시절 형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긴 생애의 허무는 <첫 번째 이별>, <두 번째 이별>에 잘 나타난다. 공부하러간 형이 섬돌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부음을 숙부가 전한다. 이 소식을 듣는 그 시간, 시인은 어머니가 억지로 내민 익모초 즙을 마시는 상황이었다. 큰아들의 죽음을 접한 어머니는 작은 아들을 안으며 ‘이젠 너 하나만 못난 게 남았구나.’ 하며 탄식을 쏟아낸다. 다섯 살 어린 아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 시에 전해진다. 그 아들을 잃고 살아있을 구실을 찾지 못하신 어머니는 작은 아들을 두고 돌아가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소복 차림의 아지매들이 드나들고 가마솥이 온종일 끓는다. 어린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외출 정도로 이해했을까. ‘솥뚜껑 위의 전부침과 찌짐이 나를 즐겁게 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눈치로 어머니 부재현장을 다 읽어낸다 “개들도 짖지 않고 닭들도 울지 않았다. 골목길을 낯설은 발자국들이 왔다가는 또 총총이 펴나갔다. 오동나무 위로 달이 마구 흐르고 있었다. 묵밭에서 감자꽃이 어머니처럼 하얗게 일렁이고 있었다. 내 다섯적 기억이다.” 어린 소년의 마음에 먹을거리의 흥성스러움은 너무나 기쁜 일이었지만 집 안팎의 가축이며 사람들 하나 소리내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아주 무거웠음을 기억한다.


<사랑이야기> 연작시에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시적 대상은 단연 ‘은’이이다. 첫 손주를 대하는 선생의 마음이 그냥 보인다. 대를 잇는다는 생물학적 기쁨일까, 아들을 보고도 흐뭇할 수 없는 아버지의 책임감이 손자를 보면서 풀어진다. “<은>이가 온 집안에 뿌리는 행복/혼자서 살아남아 예순 나이로/이렇다 할 공덕 없는 빈 인생인데/그렇게 살면서 참 외롭기만 했는데/그런대로 살고파 버텨 온 세월인데/<은>이가 이렇게 내 품에 안기다니/누군가의 행복을 살짝 앗은 듯한 불안/아무래도 이것은 과분한 은총/오늘 이렇게 <은>이를 내가 반기듯/아득히 거슬러 더듬어 보는 진한 핏줄기/끝없이 이어 갈 뜨거운 목숨/<은>이의 고운 볼 부비면서 눈이 젖는다”


마냥 사랑스럽고 귀해지는 손자사랑은 선생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가족사의 비애가 한 줄 표현으로 압축되어 함께 나타난다. 손자의 존재가 온 집안을 행복하게 하지만 그럴수록 ‘혼자서 살아남아 예순 나이로/이렇다 할 공덕 없는 빈 인생인데’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서 혼자서 살아남다에 그 비애가 드러난다. 아주 어린시절 형을 잃고 연달아 어머니까지 잃어버리고, 그러다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살아온 외로움이 압축되어 있다.


동시와 동화를 묶은 <<갈잎의 노래>>에는 앙징스런 아이들의 생활상이 예쁘게 담겨 있다. 산골동네 아이들의 놀이와 일상이 재미나게 드러난다. 까칠복숭, 감자, 옥수수, 수박과 참외, 산나리를 각자 친구 생일에 가져와서 함께 먹고 나눠 갖는 즐거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산골동네 아이들 생일잔치는/감나무 푸른 그늘에 멍석 펴 놓고/도토리묵 차려 놓고/옹기종기 둘러 앉아’ 시작된다. 이 동시 동화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동시는 <마중>, <고요한 길>, <달맞이 언덕> 3편이다. 제목은 각기 다른 작품이지만 시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한결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마음 시린 아이가 등장한다. 부모님을 기다리는 강나루마을의 아이는 달이 둥둥 강을 따라 떠내려 갈 듯한 저녁을 혼자 서성인다. 강 건너 주막에서 개 짖는 소리 쿵쿵 들려오는데 복사꽃 둑길로 사람이 오는 것인지 꽃그림자가 흔들거린다. 이제 달이 돋고 길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아이는 강나루에서 장에 간 부모를 기다리는 서글픈 목소리에 울음을 섞어 놓았다.


선생의 동시에는 인생의 허무와 슬픔이 담담하게 흐른다. 아이들이 그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실존의 고독이란 태어날 때부터 생과 공존한다. 어린날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선생이 소년의 맘으로 쓴 글이 바로 동시가 되었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고요한 길>에는 바람 한 점 없는 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가 오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아이가 있다. 마을길로 송아지가 어미소를 따라 가듯이 아버지가 오시기만 하면 송아지처럼 쫄망쫄망 아버지를 따라나서고 싶어하는 아이가 조용한 길을 보고 섰다. 오시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나 한 듯 조용한 길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달맞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조용한 산줄기와 강줄기를 보고 서 있으면 하염없이 그리워지는 것들이 생긴다. 강줄기를 돌아 기차가 달리고 달도 떠오르는데 그리움은 깊어만 간다.


<<갈잎의 노래>>에서 시동화라 언급한 <고갯길>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어둠이 내리고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달그림자에 놀란다. ‘풀잎이 사글사글 잎 스치는 소리새로 휘리리리 하고 바람이 불어가면’ 또 놀랜다. 먼 산이 고래등같이 달빛에 젖고 있는데 이 산의 품속에는 알 수 없는 속삭임과 몸짓이 있다. 그 알 수 없는 어둠에 소름이 돋아 무서워지자 아이는 어머니라고 소리치며 뛰어간다. 그 외 <비둘기 우는 마을>은 전쟁의 위험을 알리는 동화이다. 돌이 아버지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다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다. 아버지가 살아온 것이 비둘기 덕분이라고 여기며 전쟁이 왜 일어나면 안 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 후기에 선생은 <군소리>를 적고 있는데 1947년 당시 <<아동>>, <<새싹>>에 실었던 글을 찾아 묶었다고 한다. ‘내가 어린이들을 사랑해서이거나, 그들을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차라리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또한 지난날의 나를 되찾으려는 의욕에서,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의식을 늘 가지고 온 것이다.’라고 적었다. 누구를 위한다는 명분없는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일에 동시와 동화가 필요할 때 좋은 작품이 된다. 그래서 선생의 아동문학은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런 아이들의 생활이 잘 표현되고 있다. 당시 시골아이들의 답답하고 외로운 현실을 겪은  그대로 잔잔하게 담고 있다.




4.
제자 가운데 권국명 시인이 기억하는 윤혜승 선생은 이렇다. 당시, 선생은 첫 시집을 발간한 1958년에 대구 계성학교에 국어교사로 첫 부임을 해왔다. 당시 권국명은 교내문예현상공모에서 운문, 산문 모두 장원에 당선되어 문예부 장학생이었다. 이때 윤혜승 선생의 맑고 열정적인 음성과 단정하고 맵시있는 모습은 존경의 표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애가>> 초판본은 초록색 양장본으로 정점식 화백의 그림이 보라색 내지로 인쇄되었다. 가로쓰기로 여백이 조화를 이룬 이 시집은 당시로서는 아주 고급스러운 출판물이었다. 권국명 시인은 선생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이 시집을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남선면 망실, 이제는 신흥리라 불리는 선생의 고향. 선생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운 이들의 영혼이 남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더더욱 절실하게 평생을 그리워했을 이곳. 형과 어머니를 모두 이곳에서 잃고 떠나갔으니 그 그리움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난 고향이지만 평생 고향을 잊지 않은 선생의 글이 보인다. ‘마음은 늘 어려서 떠나온 강나루 건너 산골동네인 고향산천을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작품 곳곳이 고향의 추억을 녹여낸 이야기임을 덧붙이고 있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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