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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라는 한마디로 즐거움을 주는 연극 ′소극′(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희극의 핵심은 웃음이다. 이 웃음은 비판 정신을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비판 정신이라는 것은 관객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희극은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결점이나 사회적 비리를 꼬집어 내어 웃음으로 분규를 해소한다. 이렇게 희극의 웃음은 인간의 불합리나 사회의 모순을 꼬집어 내는 데에서 빚어지는 웃음이다. 연극에서의 웃음은 기지와 풍자, 해학 등의 요소가 작용하여 관객들의 비판 정신을 요구할 때 진정한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극에서 웃음이 비판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과장된 동작과 익살, 떠들썩한 분위기 등으로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는 연극을 소극이라고 한다. 연극을 보면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진한 감동도 받지 못한다면 소극을 보면서 마음껏 웃는 것도 즐거운 관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농촌 총각들을 위해 국가에서 결혼사업을 추진하게 되고 이 사업의 시범적인 모델로 백만석이라는 농촌 총각이 도시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백만석이 국가차원의 결혼사업의 시범 사례자가 되면서 TV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 인터뷰를 본 신선녀는 백만석을 마음에 두고 그의 아파트에 찾아와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백만석과 결혼을 하여 아이 셋을 낳으면 10억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여자들과 기업체 직원이 찾아오지만 선녀의 마음은 순수하다. 한편 이 결혼 사업의 담당 직원 정부미는 10억 원을 노리고 박복혜라는 여자와 계략을 꾸미게 되고 박복혜도 백만석을 찾아와 세 명의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박복혜는 백만석 앞에서는 착한 척을 하지만 신선녀에게는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결국 신선녀는 백만석을 떠나게 되고 선녀가 떠난 후 사랑을 깨닫게 된 백만석도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간 백만석에게 신선녀가 찾아와 사랑을 이루며 이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는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순수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랑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회자되어서 그런지 진부하게 느껴진다. 연극을 보는 내내 지루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이 연극이 진부한 스토리를 메우는 웃음의 코드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TV에 나온 백만석의 사진을 선녀가 빼앗아가고 TV속에 아나운서는 당황한 기색이다. 이러한 장면에서는 가벼운 웃음을 가져 주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갖는 웃음의 코드는 무척 당황스럽다.

특히 멀티맨이 등장하는 장면은 웃음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삽입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멀티맨 역할을 하는 배우가 장면에 맞게 분장을 하고 나와 일인다역을 하는데 이것은 불편한 웃음을 유발할 뿐이었다. 신선녀가 틀어놓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멀티맨이 등장하여 과장된 춤을 추고, 백만석이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하자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며 멀티맨은 배달부로 등장한다. 또한 신선녀가 운동을 한다며 걸그룹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출 때 멀티맨은 여장을 하고 등장하여 격한 춤을 추다가 쓰러진다. 이러한 장면은 멀티맨을 통하여 코믹한 웃음을 자아내려고 의도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극에 녹아있지 못하여 장면이 따로따로 단절된 듯하며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다.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에서 멀티맨과 더불어 웃음의 코드로 등장시킨 인물이 박복혜이다. 박복혜가 등장하여 자신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가 사별했다고 한다. 이 연극의 모든 인물들을 비유체계로서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박복혜는 자신의 과거사를 코믹하게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이야기할 때 웃음을 유발한다. 자신의 상황과 어긋나는 아이러니한 설명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멀티맨이 등장하여 콜롬보 형사 복장을 하고 말을 심하게 더듬으면서 박복혜를 파헤치는 장면은 장면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느껴졌고 말을 더듬는 연기도 매우 어색하였다.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라는 제목을 처음 접하였을 때는 설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선녀가 나무꾼의 옷을 훔친다’는 상황의 역전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상황의 역전은 관객들에게 많은 웃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는 이것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제목처럼 신선녀라는 인물은 능동적인 여성으로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 백만석이 TV에 나와서 ‘사랑은 감기처럼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다.’라는 말이 선녀 할머니가 평소에 늘 하던 말이라며 그녀는 백만석을 찾아온다. 이러한 시작부터가 능동적이지 않다. 백만석의 매력에 자신의 잣대와 눈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말과 백만석의 말이 일치함에 의한 끌림은 능동적인 사랑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백만석과 같이 집에서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선녀는 늘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려 한다. 백만석이 밥을 먹고 싶다고 하여도 그냥 빵이나 먹으라고 한다. 나무꾼의 옷을 훔치는 노력을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한 장면에서는 오히려 박복혜가 밥을 해주는 정성을 보인다. 물론 계략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백만석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은 오히려 박복혜다. 선녀가 백만석에게 요구하는 것은 국가에서 해준 양복을 벗고 자신의 옷을 입으라는 충고뿐이다. 그러나 이 양복도 세련되지 못하고 너무 후줄근하여 사실성을 떨어뜨린다. 양복을 좀 더 세련된 것으로 사용하여야 만석의 옷과 대비되어 선녀의 충고가 강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충고 몇 마디만을 하다가 만석의 곁을 훌쩍 떠나버린 선녀를 능동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제목에서 오는 역전의 상황을 즐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라는 연극은 나무꾼의 옷도 훔치지 못하고 관객의 옷도 훔치지 못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극의 주제가인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오래된 트로트 노래처럼 진부한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한 셈이다.

라이어2
<라이어2>는 존이라는 한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는 50대이며 윔블던과 스트리트햄에 각각 메리와 바바라라는 두 아내를 두고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메리와의 사이에서 딸 비키를, 바바라와의 사이에서 아들 케빈을 두고 있다. 어느 날, 조용하고 평화롭던 그의 일상에 전쟁이 시작된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케빈과 비키는 서로의 아버지가 택시 운전사라는 같은 직업을 가졌으며 존 스미스라는 이름도 같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비키의 집인 윔블던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존은 비키와 케빈을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존은 비키와 케빈을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2층에 세 들어 사는 친구인 스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스탠리는 존의 이중생활을 잘 알고 있다. 스탠리는 비키와 케빈의 만남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2층 세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듣고 존을 도와주기로 한다. 존과 스탠리의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가고 결국 이들의 거짓말은 들통이 난다는 내용이다.

<라이어2>는 존의 이중생활이라는 부도덕한 소재를 가지고 연극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이 연극이 모든 요소를 거세하고 웃음이라는 코드에 주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존이 나간 사이에 비키의 집을 찾아온 케빈에게 존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 스탠리는 비키의 아버지로 역할이 전도된다. 또한 스탠리는 비키의 어머니에게는 이러한 상황을 숨기려다가 케빈과 사귀는 동성연애자로 오해를 받게 된다. 존은 두 집을 숨 가쁘게 오가며 비키와 케빈의 만남을 막으려고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될 뿐이다. 비키의 집에 들이닥친 케빈을 피하려고 존은 커튼을 쓰고 스탠리인 척 해야 할 때도 있고, 메리와 비키가 케빈을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을 잠그기도 한다. 스탠리의 거짓말은 점점 더 커져간다. 케빈에게 비키를 장님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메리가 방문이 잠겨서 나오지 못하여 문을 두드리자 메리를 정신병자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 장면들은 어색함이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관객들은 그 장면마다 폭소를 터트렸다.

빠른 템포로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배우의 동선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또한 대본은 아주 코믹하였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사실적이었다. 이러한 사실적인 연기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코믹한 상황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라이어2>는 극의 시작부터 존과 스탠리라는 인물이 주체가 되어 이 연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 두 인물들의 시각에 관객들의 시각이 덧입혀져서 관객들은 이들의 상황에 동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존의 부도덕에 대한 비판보다는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조바심치는 이들의 행위와 거짓말에 함께 긴장하기도 하고, 상황이 꼬인 장면에서는 웃으면서 극적 재미를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스탠리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의 초반에는 스탠리가 존을 도와주는 보조자로 나오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의 거짓말은 점점 더 커지고 상황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존이 거짓말의 중심에 서게 된다면 관객들은 그의 부도덕한 행위를 감추려고 하는 거짓말로 느껴져서 쓴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탠리는 존을 도와주는 보조자이기 때문에 그의 거짓말은 악의가 없어 보인다. 스탠리가 스스로의 거짓말 때문에 점점 더 이상한 상황으로 빠져도 존에 의한 피해자처럼 느껴져서 연민의 정까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존과 스탠리의 수많은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막바지에는 결국 이들의 거짓말이 들통 나게 된다. 메리의 집에 바바라가 오고 존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존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해 할 때 메리와 바바라는 존의 이중생활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메리는 존에게 비키가 존의 딸이 아니라 스탠리의 딸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연극은 끝난다. 관객들은 이런 역전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웃게 되는 것이다.

<라이어2>는 희극작품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대사에 장면과 장면의 템포와 리듬에 의한 완급조절을 시도했고 이러한 완급조절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대사와 극적 상황을 충분히 살려낸 연출력이 뛰어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연출력은 공간의 사용에서도 돋보인다. 존의 두 집은 한 공간을 사용한다. 바바라와 메리의 집을 하나의 무대로 사용하면서도 배우들은 동선의 꼬임도 없고 어색함도 없다. 하나의 무대 공간을 사용하며 인물들이 각자의 집에서 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라이어2>는 영국작가 레이쿠니의 탄탄한 작품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력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순간도 연극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으로 탄생된 것 같다.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와 <라이어2>는 웃음이라는 코드로 관객층을 겨냥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웃음’이라는 코드로 관객에게 다가가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소극이다. 그러나 두 작품이 웃음이라는 한마디로 관객에게 유쾌함을 주는 데는 차이가 있다. 소재적인 차원에서는 두 작품이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라이어2>는 관객몰이에 성공을 하고 있고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는 관객몰이에 실패를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어2>가 관객들이 극적 재미에 빠져서 연극을 보는 내내 웃게 만든 작품이라면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는 극의 재미에도 빠지지 못하게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는 작품은 관객들을 외면하게 만든다. 이 두 작품을 같은 날 관람하였는데도 소극장 공연인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의 관객은 4명이었다. 그러나 <라이어2>는 대구문예회관 비슬홀의 관객석이 거의 찰 정도로 관객들이 많았다. 물론 낮 시간과 밤 시간이라는 차이가 있겠지만 대구문예회관 비슬홀이 거의 찰 정도의 관객 수는 낮 시간과 밤 시간의 차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연극을 열정만으로 하는 시대는 끝났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특히 탄탄한 대본과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 수를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수준 이하의 연극은 관객들을 연극 자체에 눈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 연극 창작은 무척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연극 창작자들은 관객들이 연극에 대해 가지는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연극 창작자들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