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에 취하다, 회곡 양조장 권용복 대표(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서민의 술, 정겹고 사람다운 술, 막걸리
1970년대까지만 해도 참치는 지금처럼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참치회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도미류의 생선을 최고로 쳤기 때문에 참치는 그닥 인기가 없었다. 참치 보급에 한 몫 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화물 수요로 호황을 맞았던 일본항공이다. 도쿄에서 미국으로 수출 제조업 라인을 뚫고 있던 일본은 돌아오는 비행기의 화물칸이 텅 빈 것을 보고 참치를 냉동해서 가져오기로 한다. 당시 미국에서도 참치는 낚시의 재미를 위해 잡았을 뿐 식용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식용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참치였기에 참치회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오도로인 뱃살 부위는 사람도 아닌 고양이가 먹는 부위였다. 이유는 기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뱃살의 기름진 그 부위가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았겠지만 언젠가부터 그 맛있는 부위에 붙여졌을 이름인 ‘오도로’는 ‘입에서 살살 녹는’이란 뜻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고양이에게나 주던 뱃살의 기름진 부위가 한 피스에 몇 만원에서 십 만원도 호가하는 ‘오도로’가 된 것이다. 고양이 사료에서 고급 횟감으로, 어쨌든 오도로는 그렇게 몸값을 올리게 됐다.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경제의 발전은 먹거리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도 문화와 경제에 따라 유행을 타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음식은 그 시대의 문화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는 막걸리다. 비록 오도로처럼 드라마틱한 사주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그 고유성이나 역사성에서 본다면 ‘장인’축에 끼지 않을까 싶다.
일제 강점기, 주세법이 생기기 이전, 막걸리는 술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양조장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보통의 음식처럼 손님 대접에 혹은 제례에 쓰이면서 직접 빚어먹었던 술이다. 그런 막걸리가 한 동안 정체기를 타더니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실 수 있는 술이 되었다. 지역에서도 그 맛을 이어가고 있는, 장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를 지닌 막걸리 양조장이 있다. 쌀 가공산업 육성과 지역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12월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회곡 양조장이다. 회곡 양조장은 현재 그 집의 여섯째인, 권용복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해 온 회곡 양조장의 막걸리 빚는 이야기를 찾아 늦은 겨울, 화창한 햇볕을 지기삼아 풍산 회곡에 들어섰다.
잊혀져가던 술 그리고 술도가 아들의 귀향
1909년 일제강점기 주세법이 공포되면서 이후 주세령은 몇 년을 거쳐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주세법은 주류면허에 대한 허가가 있어야만 술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 빚어, 먹고 팔던 가양주 전통의 우리 술은 사실상 주세법으로 거의 맥이 끊겼다고 한다.
회곡 양조장을 들어서는 입구에 걸린 오래된 간판만이 그 역사를 넌지시 말해줄 뿐, 권용복 대표는 선조대의 언제부터 양조장을 운영했는지 잘 알 수 가 없지만 굳이 문서상의 기록으로 역사를 셈한다면 적어도 주세법이 시행되던 때부터를 시작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세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회곡 양조장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아버지를 7살 때 여읜 터라 권용복 대표가 회곡양조장을 맡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 수십 년이 넘게 회곡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내었던 것은 사실 양조장 집으로 시집을 온 그의 어머니 김숙자(75) 여사다. 하루에 막걸리 병 스무 개가 든 열 박스도 채 못 팔던 시절, 막걸리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는 전통술이 되었다. 이는, 인하공전을 나와 건설업에 있던 권용복 대표가 도시에서의 젊은 시절 꿈을 접고 단호하게 안동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힘이 부치셨는지, 자식들 중 하나가 은근히 양조장을 맡아주기를 바라셨는지, 어머니는 아들을 내려오게 할 방법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렇게 양조장을 이어가려는, 머리끝이 하얀 어머니는 생떼를 부리셨다. 하지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양조장 문이 닫힌다는 것이 양조장 집 아들인 권용복 대표에게 어떤 심정이었을까 추측해 본다. 아마도 그 이유에서 또한 그가 귀향을 결심하지 않았을까.
공급구역제한 풀리고 막걸리에 미쳐 살았죠
그가 인천에서 하던 건설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1998년, 회곡 양조장에서는 하루 열 박스의 막걸리도 생산하기 어려웠고 판매도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막걸리 맛에도 유행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가끔 찾아 먹는 그런 술이 되었다. 더군다나 1999년까지만 해도 막걸리는 공급구역제한에 따라 회곡리 일대의 몇 개 마을에서 밖에 유통이 되지를 못했다. 권용복 대표가 그보다 이른 일 년 전 미리 안동에 내려와 회곡 양조장의 재도약을 위해 맛을 준비하고 끊임없이 연구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상당한 행운이 깃든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넘은 2000년 1월 1일부터 막걸리의 공급구역제한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스스로 ‘막걸리에 미쳤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회곡 양조장이 하루 생산량 200여 박스를 돌파하게 된 데에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막걸리 맛을 찾기 위한 그의 노력과 연구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안동에 내려온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생산량은 물론 매출 역시 스무 배가 훌쩍 넘었다. 하루 열 박스 남짓 생산하던 때에서 오늘날 회곡 양조장은 200여 박스를 거뜬히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권용복 대표는 그 이상의 주문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회곡 양조장에 있는 시스템으로는 하루 200박스 생산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곡 양조장에서 생산해 낼 수 있는 양은 한정이 되어있으니, 만약 그보다 더 주문을 받아 생산량을 늘려야 되면 방법은 발효시간을 짧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순간의 소득은 올라가겠지만 본연의 맛을 잃은 막걸리를 소비자들이 오래 먹어주겠는가, 라고 권 대표는 소신을 내비쳤다.
판매량이 늘어 수입이 많아졌지만 십여 년이 지나서도 권 대표가 여전히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바로 맛 개발이다. 지난해에는 안동의 전통 누룩을 개발하기 위해 개발비용으로 수입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다. 누룩의 연구와 개발은 농업과학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안동대학교의 권기석 교수가 이끌고 있다. 쌀 막걸리 외에도 동동주와 참마 막걸리를 새롭게 내놔 쌀 막걸리 못지않게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 전통과 새로운 맛의 대립
물론 지난 세월, 회곡 양조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기존의 술을 빚어오던 방식을 벗어나 아들이 새롭게 연구하고 개발해온 막걸리 레시피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고 한다. 물론 맛으로 평가 받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 먹고 판매가 늘어나면서 어머니의 이런 의구심들은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의 텃새였다. 회곡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는 둥 방부제를 넣었다는 둥, 근거 없는 소문과 허위 신고들로 가끔은 권 대표도 미쳐서 해오고 있는 이 일에 발목이 잡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을 속이거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었던 권용복 대표는 그런 얘기들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이제는 맛과 품질을 안동지역의 많은 소비자들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이제는 거래처 가게나 지인들이 보증을 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뜬소문을 날리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고 하니, 회곡 양조장의 인심과 막걸리 맛이 많은 사람들을 단골로 삼은 모양이다.
"막걸리도 유행타요, 항상 공부해야 합니다”
3남 4녀 중 여섯째인 권용복 대표는 양조장님 아들내미답게 술찌개미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그래서일까, 회곡 양조장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하루 10 박스에서 100 박스로 판매량이 늘 수 있었던 것은 권용복 대표의 막걸리 사랑 덕도 있는 것 같았다. 막걸리 사업은 애정이 없으면 못한다는 권대표의 회곡 순쌀 막걸리는 저온 숙성을 위해 숙성기간을 보통의 두 배로 해, 탄산가스의 생성이 최소화 되게 하여 톡 쏘는 맛이 적다. 처음에는 그 맛을 잘 모르지만 두 번째 부터는 다른 것을 못 먹는다고 한다. 찌는 시간과 배합비율, 발효에 대한 연구와 안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만을 고집하여, 지역 농산물 소비를 위해 또한 애쓰는 권용복 대표는 진정한 막걸리 사업가였다.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니 애정이 있는 사람이 맡아서 해야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은 안 된단다. 밖에 나가서도 술은 막걸리만 마신다니, 그는 정말 막걸리를 사랑하나 보다.
한창 막걸리 맛을 연구할 때에는 막걸리 제조에 관련된 책을 뒤적이며 매일같이 직접 담가보기 일쑤였지만 한국식품연구원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퇴근하다시피 다니며 공부를 했던 노력도 있었기에 지금의, 소비자가 찾는 막걸리 맛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막걸리도 유행을 타기에 하락세에 대한 대비를 늘 해둬야 한다는 모습에서는 또한 권용복 대표의 사업가의 면모가 비춰진다. 그는 한때, 옥동에서 팔도상회라는 막걸리 집을 운영했었다. 젊은 사람들 또한 막걸리 소비를 할 수 있고 슈퍼에서 사다 마시는 막걸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사람들이 소주나 맥주처럼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판매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판 주막이라고 해야 할까. 팔도상회라는 이름은 촌스러운 듯 기억에 남는 것이, 간판 이름을 지을 때도 권용복 대표다운 일화가 있었다. 간판 후보를 여러 개 적어둔 종이를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만 이야기 해 보라고 했다. 지인들은 많은 후보 이름들 중 유일하게 팔도상회를 기억했는데 이유는 ‘다른 건 모르겠고 팔도상회는 하지마라’ 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그 반응을 역으로 이용해 팔도상회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권 대표가 직접 프랜차이즈를 이루겠다는 꿈을 안고 몇 해 운영을 했었는데 장사는 꽤 잘 됐었다. 손님은 나를 먹여 살리는 사람이라며 내 가족이 먹는 음식처럼 안주와 술을 내 주는 것 또한 권 대표의 철학이자 사업의 기쁨이었다.
생산할 수 있는 만큼만 주문을 받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이용해 순쌀 막걸리를 만들고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맛을 내기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권 대표의 열정과 그의 가족이 일궈온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곧 회곡 양조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 정성을 알아서일까, 회곡 순쌀 막걸리는 주류품평회에 입상하고, 경북의 대표로 선발되는 등 각종 품평회에서도 그 맛을 인정받았다. 또한 지역의 쌀 소비량에 기여함은 물론 막걸리 전통주를 위한 연구와 그 노력으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권 대표가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실은, 안동 시내 어딘가에 그의 안동고등학교 동창들이 걸어 둔 커다란 현수막으로 이미 안동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봤을 것이다. 이 표창의 의미는 또한 그 한 사람에게만이 아닌 회곡 양조장을 일궈온 그의 가족과 양조장 식구들 모두에게 함축되는, 전통주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정석대로 만듭니다. 정직하게 맛있게
회곡 순쌀 막걸리는 청와대의 만찬주로 납품이 되기도 했다. 보통은 큰 기업의 막걸리가 만찬주로 들어가지만 안동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어 낸 막걸리가 그것도 1년 동안 꾸준히 납품됐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막걸리 맛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이 처음 한번, 회곡 막걸리를 맛 본 뒤로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 다른 막걸리를 다시 먹고 나서야 회곡 순쌀 막걸리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재 주문을 하게 된 것이 1년을 이어가게 된 계기였다. 권용복 대표가 내내 입에서 침이 마르게 자신 있어 하는 부분도 바로 막걸리의 맛이다.
요즘 막걸리는 개인 슈퍼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는 판매가 대부분이다. 판매를 올리는 만큼 여러 지역행사나 동네 노인정에도 권 대표는 꾸준한 후원을 해오고 있다. 이제는 회곡 양조장에서 한정된 생산을 극복하고 더 많은 맛을 담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경북바이오산업단지에 새 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또 법인합작 기술제공을 하여 국내를 넘어 뉴욕에서도 생 막걸리를 출시할 예정이다. 막걸리의 승패는 생 막걸리에 달려있다는 권 대표는 국내에서 살균탁주로 만들어져 수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새로 짓는 공장이 완공되면 여름쯤 회곡 양조장의 신제품을 맛 볼 수 있을 거라 한다. 늘 버는 만큼 투자하고 먹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권용복 대표에게는 전통주에 대한 애정과 장인 정신이 있었다.
회곡 양조장에 들어서면 담금실과 주모실이 있다. 담금실은 발효가 되는 공간이다. 그 벽만 50센티미터가 넘는다. 담금실은 할아버지 대부터 있었던, 회곡 양조장의 산 증인인 셈이다. 한 겨울이었지만 푹 찌는 듯한 따뜻한 기운과 타닥타닥하는 술 익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이제는 술 익는 소리만 들어도 어느 정도 되었다, 라고 알 수 있다는 권 대표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장인 정신이 깃든 이 곳 양조장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막걸리를 수입하던 일본이 얼마 전부터 서울막걸리, 홈런 막걸리, 카라쿠사 막걸리, 토라 막걸리를 자국 제조해 생산에 나섰다고 한다. 건강과 맛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에게 막걸리는 단연 인기다. 모처럼 평생지기와 마주 앉아 막걸리 한 사발에 두부 김치를 얹어 먹는다. 귓가에서 잠시 동안 타닥타닥 술 익는 소리가 곁에 돈다. 막걸리만큼은 제 2의 기무치가 되지 않기를.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