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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하회마을의 누정건축(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하회마을 건축문화유산
안동시민이 되어 시작한 나의 건축순례가 햇수로 5년째가 되었다. 안동살이 전에도 나는 안동을 수없이 찾아와 안동의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건축문화유산을 순례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간 나는 너무나 아둔하게 물질적인 건축물에만 집착한 순례를 했었다. 요즘 난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곳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건축문화유산을 조금씩 알아가는 순례를 하고 있다. 손님이 아닌 주인 입장에서 안동의 건축문화유산을 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고,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짧은 시간에 그 속의 많은 것을 파악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순례의 한 걸음을 띨 때마다 나는 건축문화유산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건축문화유산이 품고 있는 많은 이야기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만드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이야기는 사라지고 어떤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회자된다. 이들 이야기는 주변 자연경관 요소들과 만나면서 풍성해진다. 또한 이들 이야기는 여러 해를 지나면서 정제되고 축척되어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야기가 풍부한 건축문화유산은 자연 환경과 문화와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동지역의 건축문화유산은 학술적 · 역사적 · 예술적 가치가 높으면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안동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동지역을 다양한 가치를 지닌 건축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한다. 특히 유교문화 관련 건축문화유산과 조선시대 관련 기타 건축문화유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정신문화유산인 유교문화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하회마을인데, 하회마을은 민속 문화와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하회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화천을 중심으로 마을의 종택과 전통가옥이 강 건너 부용대, 옥연정사, 화천서원, 겸암정사와 마주하고 있으며, 마을 주변 산과 화천 등이 어우러져 마을의 경관을 만든다. 그리고 병산서원은 마을 동쪽의 화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들 전통가옥과 기타 건물, 자연 경관을 만드는 수많은 요소들은 하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2010년 7월 31일 경주 양동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산류씨의 집성촌으로 고려 말 전서 류종혜(柳從惠)공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하회마을에 터를 잡기 전, 마을에는 허씨와 안씨 일가가 살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은 화산 기슭이 아닌 화산의 지맥이 서쪽 화천으로 흐르는 지맥 위에, 화천이 삼면을 감싸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다. 풍산류씨의 하회마을이 번창하게 된 것은 류종혜의 5대손인 입암(立巖) 류중영(柳仲郢, 1515~1573)과 입암 선생의 두 아들인 겸암 류운룡(1539~1601)과 서애 류성룡(1542~1607) 때부터다. 입암은 중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좌부승지 · 황해관찰사를 지낸 분으로 이후 벼슬을 하지 않고 고향인 하회에서 가문을 지키며 수양과 학문을 한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맥을 이었다. 서애도 퇴계 선생 제자로서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都體察使)와 영의정으로 계시면서 존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현재 하회마을에 있는 문화유산은 이 두 형제와 자손들이 남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회마을은 민속마을로 지정되었으며, 마을 내에는 국가지정 문화재와 도지정 문화재가 있다. 문화유산은 보물 2점, 중요민속자료 10점, 천연기념물 1점, 도지정 문화재 1점 등이 있다. 하회에 살았던 류씨 일가가 남긴 종택과 전통가옥 및 기타 건물, 자연경관은 우리나라 전통마을을 구성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봄날의 하회마을
자연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은 상태로서도 가치가 높지만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가치는 더 높아지며, 자연과 역사문화는 재창조되어 인간의 삶과 가치관 형성, 건축물 조영에 큰 영향을 준다. 자연은 인간을 감싸고 있으면서 생활에 활력을 제공하는 인간의 든든한 후원자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고, 그곳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세계를 만든다. 사람은 사람마다 자연환경을 대하는 방식과 해석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안동시민으로서, 건축문화유산의 순례자로서, 난 바람과 물을 타고 온 봄기운을 따라 인간이 자연을 가장 가까이 접하고자 조영한 누정건축을 찾아간다.

안동지역은 낙동강과 크고 작은 지류와 산들이 하나로 어울려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 다양한 색깔의 누정건축이 있다. 누정건축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뿐만 아니라 성리학자들의 유교문화와 사유체계, 조영원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누정건축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예를 찾아 볼 수 있는데, 경상북도 안동을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하회마을 순례는 종가와 민가를 보기 전에 풍산류씨들이 남긴 누정건축을 먼저 둘러본다.

안동 하회마을의 중요한 자연 경관 요소인 화천은 동에서 서로 흐르다가 다시 거꾸로 물이 흘러 나간다. 따라서 화천 주변에는 정자와 마을의 종택과 살림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의 씨족마을로 풍산 류씨 7대손 류종혜 이후, 13대 겸암 류운룡과 그의 동생 서애 류성룡을 거치면서 겸암파와 서애파로 나뉜다. 류운룡 이후 겸암파는 풍산류씨 종가의 맥을 잇는데 주력해왔으며, 류성룡 이후 서애파는 대외적인 활동을 통하여 문중의 위상을 알려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흔적을 보기위해 하회마을을 찾아오며, 그리고 종종 나는 그들의 순례길 길잡이 노릇을 한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하회마을 순례를 할 때, 나는 늘 화천 건너 상봉정, 겸암정, 부용대, 옥연정사, 화천서원을 먼저 보게 한다. 특히 부용대는 마을을 방문하기 전 필히 오르도록 하여 마을과 주변경관을 살펴보도록 한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던 지난달도 전에 늘 하던 대로 봄비를 맞으며 부용대를 오르면서 하회마을 순례를 시작했다.

봄비속의 하회마을은 또 다른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청주에서 온 건축 전공 순례자들은 이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부용대에서 마을과 주변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과 마을의 공간을 파악한 후 마을 내 가옥을 연결하는 골목을 거닐면 마을의 구조와 공간구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마을 내 종택과 살림집을 살펴 본 후, 마을의 논길과 병산서원 길을 걸으면 순례자들은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와 청주 순례자들은 그날도 봄비를 맞으며 병산서원까지 걸었다. 당시 나를 따랐던 순례자들은 나에게 건축순례의 진정한 맛과 의미를 맛보았다고 감사를 표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봄날에 나는 다시 하회마을 다시 찾았다. 하회마을은 화산에서 시작한 지맥이 상당, 중당, 삼신당을 지나면서 종택과 살림집에 땅의 기운을 전달하고, 만송정을 지난 후 화천 속으로 사라진다. 현재 마을과 화천 사이에는 80년대 홍수 피해를 막고자 쌓은 제방길이 마을 감싸고 있다. 제방 위에는 마을 외곽길이 조성되어 있고 길을 따라 벚나무가 자라고 있다.
겨울에는 겨울의 정령이 화산에서 지맥을 따라 내려와 벚나무와 만송정 소나무 가지에 눈꽃을 피운다. 겨울이 지나고 봄날이 오면 봄의 정령이 화산에서 지맥을 따라 내려와 제방길 벚나무에 벚꽃을 피우고, 만송정 소나무 솔잎에 생명의 꽃을 피운다. 하회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매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정자에서 보았다면 겸암 선생과 서애 선생은 무어라 표현했을 궁금해진다.

자연을 품고 있는 겸암과 서애 선생의 누정건축
안동 하회마을 관련 정자건축은 겸암정사와 빈연정사, 옥연정사와 원지정사, 그리고 상봉정이 있으며, 이외 만송정이 있다. 이들 정자건축은 화천과 만송정 소나무 숲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보고 있으며, 주변에는 자연 경관 요소인 부용대 및 기타 크고 작은 야산과 들녘이 있다. 빈연정사와 원지정사, 만송정은 마을 속에 있으며, 이외 건물들은 강 건너에 있다. 겸암정사와 빈연정사, 만송정은 겸암 류운룡 선생이, 옥연정사와 원지정사는 류성룡 선생이, 상봉정은 겸암 선생의 증손 류세철 선생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강 건너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는 부용대를 중심으로 동쪽에 옥연정사가 있고 서쪽에 겸암정사가 있고 겸암정사 상류 강변에 상봉정이 있다.

겸암정사는 살짝 들어간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철 강 건너 만송정 쪽에서 보면, 한 번에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보일락 말락 하게 숨어 있다. 겸암정사는 겸암 류운룡 선생의 호를 따른 것으로 대외적으로 과시나 활동보다 내적 성찰을 중시하면서 은자적 삶을 추구하던 겸암 선생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정사는 세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화천에 면하고 있는 누는 하회마을의 화천과 만송정을 바라고 서로 대화를 하고 있으며, 만송정 넘어 마을의 살림집 속에는 겸암 선생이 건립한 빈연정사가 마주하고 있다. 빈연정사는 한 채로 구성된 단출한 정사로 겸암 선생이 지은 후 서재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폐교 후 철거된 풍남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부용대 동쪽에 자리한 서애 선생 관련 옥연정사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있으며, 현재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류성룡 선생은 이 정사에서 임진왜란과 관련한 《징비록》을 구상하고 저술했다고 한다. 이 정사는 처음에 옥연서당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강학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석 축대 위에는 돌과 흙으로 쌓은 후 기와를 올린 긴 담장이 있는데, 강 건너 마을에서 보면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모습은 겸암정사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옥연정사의 감록헌 마루에 앉아 마을을 보고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 시선을 마을 쪽으로 돌리면 나지막한 담장이 모래층을 가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마을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보름달이 안동을 비추던 날, 보름달이 화산을 넘어올 때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아직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감록헌 오른쪽 협문인 간죽문을 나오면, 보허대(步虛臺)가 있다. 보허대에는 서애 선생이 낙향하여 소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후손격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당시 서애 선생은 충절의 상징인 소나무를 심는 것으로 당신의 심경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서애 선생이 소나무 옆에서 화천을 보며, 마을과 옥연정사를 왕래하던 나룻배를 보았을 것이다. 지금 나룻배는 서애 선생을 찾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는데, 다른 것이 있다면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바뀐 점이다. 현재 모습 또한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동양화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마을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옥연정사보다 이른 시기에 지은 원지정사가 있는데, 이 정사는 서애 선생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처음으로 지은 정사다. 옥연정사는 현재 정사와 연좌루 2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연좌루에 오르면, 만송정, 부용대와 화천, 옥연정사가 한눈에 들어와 시야가 확 트인다. 화천가 소나무 숲에는 현재 사라진 만송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이 숲을 만송정이라 한다. 연좌루의 대들보는 하회마을 어느 건물에서도 볼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대들보는 휜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서애 선생의 기운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용이 연좌루를 휘호하고 있는 느낌을 같게 한다.

하회마을의 정자는 화천과 만송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채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이야기 속에는 두 형제간의 우애와 효심, 학문을 닦고 가르치던 유학자의 가치관, 가문과 나라를 위한 그들의 마음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강물을 따라 세상에 알려져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 이야기는 주변 자연 환경을 고려하여 조영한 건축물과 더불어 풍성해진다.
이들 정자와 마을의 이야기를 여유롭게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상봉정이 있다. 상봉정은 마을 서쪽의 절벽 ‘서애’의 상봉대 위에 있는 정자로서 나룻배를 타고 양진당과 충효당으로 오갔다고 한다. 현재 상봉정 주변은 도로의 확장과 현대적 구조물로 옛 경관이 많이 훼손 되었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유줄불놀이가 있는데, 탈놀이가 서민 중심의 놀이라고 한다면 줄불놀이는 선비들의 선유시회가 같이 열리는 양반 중심의 놀이다. 놀이를 즐기는 방법은 적극적 참여를 통하여 즐기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이를 음미하면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 양반들이 즐겼던 놀이문화를 음미할 수 있으면서, 마을에 담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자, 주변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상봉정이 그 중 하나다.
현재 이곳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매년 9월말과 10월초 저녁에 이곳을 찾아와 부용대 아래 화천과 백사장의 줄불놀이를 즐기고 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순례자 여러분은 혼잡한 마을로 들어가 짜증내시지 말고 강 건너 강변에서, 상봉정에서 자연과 역사문화경관을 즐기시기 바란다. 이제 나는 마음의 발걸음을 마을 쪽으로 향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