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세상을 돌아 가송에 둥지를 틀다(글/이미홍_객원기자)
이 남자 박성호. 서울사람이다. 아니 서울사람이었다. 수학을 전공한 서울내기 박성호가 자신이 번 돈 천만 원을 들고 베를린으로 훌쩍 떠난 게 91년도다. IT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읽은 책을 통해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봉화군 화천리 꽃내마을 즉 골래다. 7년의 독일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한국은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그간 인연 맺은 문화계 인사와 인터넷 발달을 예측한 사업수완으로 그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벤처 열풍의 단맛을 봤다. 그리고 쓴맛도 봤다. 아버지의 봉화 땅을 팔아 사업 빚을 갚는데 썼고 다시 찾아드리는데 몇 년이 걸렸다. 우연히 도산 가송리에 왔다가 깎아지른 듯한 학소대와 주변의 풍광에 할 말을 잃고 ‘여기가 내가 살 곳’이란 직감과 끌림으로 무작정 땅주인들을 찾아 나섰다. 이곳에서 손수 집을 짓고 밀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으며 제대로 참살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즘 농사짓는 사람들은 집 앞에 4차선이 뚫려도 농사를 지을까 말까인데”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하고 선택한 땅이다. 잘 나갈 때 결혼해 여간 다행이 아닌 부인 김선영 씨와 아이 둘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안동으로 왔다. 지난달에 겨우 전봇대를 설치해 전기를 들였다. 그는 문명의 이기에 질려 자연으로 들어왔지만 또 그 불편함 때문에 힘들어 하는 자신의 모습에 아이러니를 느꼈다. 한편, 전봇대가 자연을 훼손한다기보다 경관을 훼손한다고 절충하여 생각하기로 했다. 5년 전, 가송리를 찾은 서울친구들은 경치에는 감탄했지만 뗏목을 타고 집으로 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얼마 못 버틸 것’이라고 장담했다. 친구들이 틀렸다. 그는 ‘버티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의 가송리 힐링캠프에서. 여기 안동사람 다 된 박성호의 삶을 엿본다. -편집자



가송 농암종택 앞 강변에서 접선(?)
바람이 쌀쌀한 봄날 하루, 가송 농암종택 앞 강변 공터에 섰다. 그리로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가면서 내내 그 강가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 집 같은 것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착한 그곳에는 역시나 내가 알던 그대로 강물과 모래와 풀들만 가득했다. 강가에 차를 대고 기다리는 순간 아!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강 건너를 바라다보았다. 강 저쪽에 모퉁이를 돌아 갤로퍼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거침없이 강을 가로질러 건너온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내린 이는 짐작대로 우리를 마중 나온 박성호(45) 씨였다. 짧은 수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갤로퍼 뒷좌석에 올랐다. 봄날이라 강물이 많이 줄긴 했어도 건너면서 보니 생각보다 물이 깊고 큰 돌이 많아 울퉁불퉁 강 건너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 험한(?) 길은 예사로이 아는 나와 달리 겁이 많은 편집기자는 바짝 긴장해서는 손잡이를 붙잡고 눈을 꼭 감고 있다. 그렇게 강을 건너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산굽이 돌아 강을 끼고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는 너른 들과 그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앉은 새로 지은 집이 보인다.


언덕배기 너른 밭에는 갓 기지개를 펴듯 초록빛이 점점이 박혔는데 작년 가을에 씨 뿌린 밀이 추운 겨울을 용케 견디고 되살아나고 있는 밀밭이었다. 여름이 되어 넘실거릴 밀 이랑들이 벌써부터 눈에 밟히는 듯한데, 지난겨울이 워낙 추워 제대로 자라 줄지 걱정이라더니 며칠 뒤 아무래도 갈아엎어야 할 거 같다고 전해왔다. 밀이 자라면 베고 그 자리에 메밀을 심는단다. 올해에는 고구마 농사에 이어 감자 농사도 짓는다며 저 쪽 강머리에 있는 금방 심어놓은 오천 여 평에 이른다는 감자밭을 가리킨다. 고구마는 조금 더 있어야 심을 철이라 아직인 모양이다. 언덕 쪽 밭머리 저쪽 끝에 일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 알고 보니 한전에서 전기선 공사하러 오신 분들이란다. 성호 씨가 트랙터로 강을 건너가서 한전 트럭을 끌어 건너와서 지금 공사 중이라고 한다. 그가 가송에 둥지를 튼 지 5년 만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오게 된 것이란다.




소믈리에 주인장이 직접 담근 오디주스
잠시 기다리라며 안내한 별채에 들어서니 아담한 방 밖, 눈앞으로 다가드는 강 건너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며 불쑥 솟은 바위와 연분홍빛이 배어나는 개복숭아 나무 한 그루, 잠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속에 앉아 있는데 직접 담근 과일주라며 주인장 성호 씨가 차를 내온다.
“봄마다 제가 직접 따서 만들어 친구들 주는 걸 좋아해서 오디, 살구, 개복숭아 이런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담가요. 제가 숙성 발효 이런 거에 관심이 있거든요. 술 익어가는 게 좋다고 할까요?”
알고 보니 와인을 좋아하고 발효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있는 주인장이 담근 오디 주스를 마시며 그가 가송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가송에 대한 이야기는 안동과의 인연을 묻는 질문에 봉화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갈 때면 안동을 거쳐 가곤 했던 기억과 안동에 살았던, 참 좋아하고 따랐던 고모에 대한 기억을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됐다.
“부모님 고향이 봉화인데, 봉화읍 화천리가 저희 무안 박씨 집성촌이라, 제게는 화천리라는 행정 지명보다 성씨가 같은 일가친척 어르신들이 많이 사는 골래라는 이름이 익숙하죠. 그리고 저랑 정말 잘 통하고 가깝던 또래인 친구 같은 고모가 안동에 있었어요. 대학 1학년 2학년 때 청량리에서 밤기차 타고 내려와서 하회며 도산서원이며 안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고 했는데 저는 그때 안동이 정말 좋았어요.”
어느 날 돌아와 보니까 하회마을도 그렇고 많이 변해서 어느 면에서는 실망도 했지만 스무 살 무렵의 안동의 기억, 그 이미지가 아직도 그에겐 남아있다.
“부모님이 외지에서 사업을 하시며 저희들을 키우셔서 봉화는 제게는 그저 아버지 고향 마을 골래였는데, 아버지가 귀농하셔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시면서 가끔 내려오는 부모님 계신 고향 느낌이었다가 제가 이곳 가송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는 이곳 가송이 제겐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고향이 되었죠. 아버지는 봉화에서 야콘 농사 살구농사 지으시고 저는 여기서 밀농사 메밀농사 짓고 있죠. 제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부모님이 농사 지어 파느라 힘들다고 하시던 그 노고를 제가 몸으로 겪어보고서야 알았죠. 그래서 그제서야 인터넷으로 농산물 판매 사이트도 만들어 온라인 판매를 하시게 해서 판로 걱정을 좀 덜어드렸죠. 물론 제가 농사지은 고구마도 슬쩍 같이 판매를 하고요.”


독일 유학생활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삶의 밑거름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뽑아서 읽은 책들 중에 유독 성호 씨의 마음을 끈 책들은 독일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남부 독일에 관한 책은 몇 번이고 탐독을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한 번은 꼭 가야지 생각을 했다. 그것도 독일 중에서도 책 속에 나왔던 남부 독일에 관한 생각이 마음 속 깊이 계속 남아 있었다.
“91년도에 독일로 갔어요. 처음에는 한 두 세 번 일 때문에 갔다가 독일이 좋아서 어느 날 결단을 내려서 독일로 유학을 간 거죠. 전공이 수학이었는데 독일에 가서는 컴퓨터 관련 공부를 했죠. 부모님은 지금도 그때 유학비용을 못 보태주신 걸 미안해하시는데 저나 누나들이나 대학 다니면서도 그랬고 유학 때도 그랬고 다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 학비는 자기가 벌어서 다녔어요. 누나들도 저도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요.”


유학을 갈 때 그의 손에는 유학을 계획하고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천만 원이 있었다. 그걸로 베를린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하면서 유학생활을 계속했다. 한국에서도 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며 학교를 다녔기에, 베를린이라고, 독일이라고 해서 그에게는 특별히 상황이 더 힘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베를린은 찾아보면 일거리가 많아요. 그리고 그 당시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라 동베를린, 서베를린 할 거 없이 도시 재정비랄까 시에서 하는 청소 아르바이트가 많았어요. 겨울에는 눈 쓸기를 많이 했죠. 거리 청소도 하고. 그리고 제가 꾸준히 오래 일했던 악기점이 있었는데, 일 하면서 가게 운영하는 프로그램 짜주는 일도 하고 악기 다루는 나이 든 사장님한테서 음악 이야기도 듣고 그곳에 있으면서 문화 관련 사람들과 인연도 맺고, 그러면서 교민들이나 유학생들과 교류가 많아지면서 차츰 과외도 하게 되었죠. 그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연이 이어져서 일을 같이하게 되기도 하고 그랬어요.”
독일은 원래 학비가 공짜인데 반해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되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학 중에는 특히 가이드 일거리가 많이 들어왔다.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을 가이드 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음 학기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버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오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같이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서 방학을 무지 기다렸죠. 그때 한창 사진에 빠져 있었고 여행을 좋아해서 서울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그때부터 저는 설레요. 일행들 안내한다는 명분으로 좋아하는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도 하고 사진도 맘껏 찍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때가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의 인생에서 독일 유학시절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도 그 또래의 다른 이들처럼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일상에 젖어서 남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무미건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그가 독일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많은 것들, 유럽에서 맞닥뜨렸던 문화적 충격,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인간적 교류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그전에는 그저 글로만 알았던 것들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그는 성장을 했고 세상을 좀 더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들은 그 이후, 그의 삶에 밑거름이 되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IT창업 붐의 중심에 서서 승승장구
그렇게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변화하는 세상과 더불어 많은 기회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하고 온 공부와 세상의 흐름이 맞아떨어졌던 까닭이 컸다. 그래서 귀국을 하자마자 그는 정신없이 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의 30대는 한마디로 치열하게 일을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시기였다. 386 마지막 세대에 속했던 성호 씨는, 87년 6월항쟁의 끝자락에서 독일로 유학을 가서 첨단산업분야 중 하나인 컴퓨터를 전공하고 돌아왔고 그가 돌아온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는 인터넷이 새로운 문화로 떠올랐고 IT창업 붐의 가운데에서 정보공학 분야 유학파인 그는 인터넷 관련 사업에서 초반에 거의 전도사처럼 여기저기 불려가며 일을 하러 뛰어다녀야 했다.


독일 유학 당시 괴테문화원을 통해서 한국에서 많은 문화 관련 인사들이 연수를 왔고, 그때 안내를 하며 연을 맺었던 주로 문화 쪽이나 언론분야에 관계된 이들이 인터넷과 접목해서 그 분야 새로운 문화 사업을 꾸릴 때 책상 하나 놓아주면서 여기서 일을 한 번 해 봐라 기회를 주는 게 많았다. 덕분에 그는 자연스레 문화와 인터넷 두 분야를 접목해 관련된 일을 해 나가게 되었다. 그는 그 시기를,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많은 일들을 했고 다행히 운도 따라주었던, 그래서 한 마디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 당시 언론에서 그를 두고 말하기를 -인터넷 1세대의 선두주자, 투자의 귀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들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열심히 뛰었고 성과도 내고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만 되돌아보면 그 자신이 엄청난 거품에 둘러싸여 있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 문화콘텐츠 수입, 문화상품 쇼핑몰 사업 등등 많은 사업들이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온라인 예약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적었고 사람들의 반응은 느리디 느렸고,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문화상품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직원들을 30명 정도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작을 했는데 첫 상품을 파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꿈꾸는 세상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 중 어떤 것은 대박을 터뜨리고 또 어떤 것들은 너무 앞서서 엎어야만 했다. 


어느 날 문득 던진 화두, 이 삶이 최선입니까?
한때 강남에 빌딩을 소유할 만큼 사업이 잘 돼서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몇 번의 창업을 거듭하면서 사업상 여러 번의 고비도 겪어야 했다. 번 돈을 몽땅 빚잔치에 넣고 아버지의 땅까지 경매로 넘어갈 정도로 바닥을 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깨달은 것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대박신화에서 깨어난 순간이었다.
거품이 빠지고 그는 다시 사업을 정비해 착실하게 돈을 벌었고 그리고 빚을 갚아나갔다. 그러면서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땅이었다.
“그전에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해서 번 돈으로 재투자를 하지 않고 부동산 특히 땅을 사 들이는데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 때문에 아버지의 터전인 땅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땅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거죠. 결국 열심히 벌어서 아버지의 땅을 찾아드렸지만 그 당시의 죄송했던 마음이 지금도 남아있죠. 어쨌든 그때부터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녔죠.”


처음에는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경기도 일대의 땅을 주로 보러 다녔다고 한다. 귀농을 한다던가 하는 건 생각도 안했고 그냥 주말농장 정도를 생각하고 시간이 나면 여행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땅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전국의 골짜기 골짜기를 걸으면서 점차 땅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좋은 땅을 찾아다니다 결국은 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그는 가송리에 곱게 숨어있던 자신만의 땅을 찾아냈다. 이육사문학관이 있는 원천에서 단천리 쪽으로 쭉 따라오다 탐방로가 만들어진 왼편의 퇴계오솔길인 예던길이 아니라 단천교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가송 쪽으로 강을 따라 쭉 걸어오다 길이 끊겨 산자락을 하나 넘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외통수 너른 들 한 자락,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앉아 한참을 그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땅을 찾아다니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한 십 년을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도로 맨주먹이고 아이들은 어리고, 낭만도 여유도 없이 참 힘들게 일만 하며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제가 하는 사업, 내가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의 가치가 참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만들어주고 큰돈을 받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산거죠. 그런데 문득 정신 차려보니 세상에는 다른 삶도 많고 더 소중한 것들도 많다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가 우연히 도산 쪽으로 오게 됐고 여기를 만나게 된 거죠.”
눈앞에 펼쳐진 가송리 전경에 한마디로 한눈에 반해버린 거다.
“흘러 흘러서 이 땅을 보게 된 거고 본 순간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저는 아, 이 땅을 사야겠다 생각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회사를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땅 주인들을 수소문해서 하나 둘 땅을 사기 시작했죠. 소유주가 여러 집이어서 아직 못 산 것도 많아요. 그렇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금씩 더 살 수 있는 한 사서 제가 이곳에서 꿈꾸던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이곳을 선택한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는 이 땅을 택한 게 사업이나 미래 구상 같은 건 아니었어요. 고단한 마음을 쉬고 싶기도 했고 저와 제 가족이 여기에 정착하고 싶은, 제 삶의 종착역으로 생각을 했어요.”



‘아빠만 좋으면 다냐’던 아이들의 빠른 적응
사업이 산전수전 겪으며 부침을 거듭하다 어느 정도 일을 수습하고 생활이 안정이 될 즈음인 2002년, 그는 지금의 아내 김선영과 결혼을 했다.
“그냥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이 여자와 해야겠다 싶었어요. 옆에서 저의 모든 것을 지켜본 사람이고 많은 것을 함께 했으니까요.”
초창기 회사를 만들고 직원을 세 명 채용했는데 그때 지인의 소개로 면접을 보고 똑 부러지고 일 잘할 거 같아 직원으로 뽑았단다. 뽑아놓으니 생각대로 일을 잘해 믿고 일을 맡기게 됐다고. 직원으로 들어와 오래 곁에서 같이 일을 하며 그와 많은 일들을 함께 겪어낸, 똑똑하고 일 잘하는 직원에서 언제부턴가 때론 기대고 의지하기도 하면서 삶의 동반자가 된 아내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지금 이 길의 든든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2005년 가송에 반한 그가 서울에서의 사업을 접고 가송에 밭을 일구고 밀을 심고 집터를 닦기 시작했을 때도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아이들 데리고 안동으로 따라와 준 선영 씨다. 지금은, 성호 씨 말에 따르면 아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농사에 밥 해 먹는 일까지 든든한 보험이라는 아내 선영 씨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인 지나, 재연 두 아이 공부며 안동에서 시작한 일 때문에 주중에는 시내에서 생활하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가송으로 들어온다. 아빠만 좋으면 다냐고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가송으로 들어오는 주말을 기다리게 되고 자연 속에서 웃으며 뛰놀게 되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태어나서 서울에서만 살아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작 적응해 줘서 그게 너무 고맙다.
그가 이곳에 온 지 5년이 지났다. 유학도 사진도 사업도, 그 모든 일들이 그냥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왔듯이 이 땅도 그에게는 그렇다.
“처음 왔을 때 이곳에 있었던 것이라고는 쓰러져가는 작은 집 한 채가 다였죠. 인간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벨탑을 쌓아 올리듯 문명인답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걸 절감했죠.”
자연은 정말 아름답지만, 살기 위해서는 집도 있어야 하고 물도 필요하고, 전기도 필요했다.
“아주 어릴 적 봉화 할머니 집에 가면 있었던 호롱불을 켜고 밤을 지새우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생활을 2005년도에 해야 했다는 거죠.”


45년도에 지었다는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 촛불 하나 켜 놓고 지내야 하는, 서울에서 시골에 가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사 왔던 생필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예를 들면 물을 끓이기 위해 가져온 전기포트 대신 다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와야 했던 일 같은 경우들이 비일비재했다. 강물을 떠다가 하루 이상 두었다가 식수로 사용하고, 세수를 하기 위해 강으로 내려가고, 그런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난감했던 게 문명의 이기에 질려서 자연적인 삶을 찾아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문명의 혜택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이 불편해서 다시 이곳에 전화를, 수도를, 전기를 끌어들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는 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일 난감했던 것 중의 하나가 통신 수단, 전화였어요. 지금은 통화가 잘 되지만 초기에는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니까 여기만 들어오면 모든 곳과 연결이 끊어지는 거죠. 일종의 고립된 생활 그런 게 힘들었죠. 그래서 통신회사랑 이야기를 해서 전화 연결을 하고, 흙집을 짓는 방법을 배우러 다녀서 우리 밭의 밭 흙을 가지고 살 집을 짓고 나무가 좋다고 해서 지붕 서까래나 천장에 나무를 들여다 놓으며 자연친화적인 집을 지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문명의 편리함도 함께 들여다 놓았죠. 저는 혼자 도인처럼 살려고 온 게 아니니까요.”


강남 IT맨의 좌충우돌 시골 적응기
그가 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곳 가송의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나누고픈 지인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좋기에 그렇게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나 하고 이곳에 따라와서 보고는 처음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에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빈 들판을 보고는 다들 ‘너, 오래 못 있겠구나!’ 그랬다고 한다. 그를 잘 안다고 하던 사람들일수록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IT니 인터넷이니 문명의 첨단 그 한복판에서 뛰어다니던 그와 산골오지의 삶을 연결시키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가 나중에 농사짓다 트랙터에 다리가 말려들어가는 큰 사고로 서울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하고 누웠을 때도 이번에는 정말 그만두고 올라오겠지 했던 지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다시 가송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희 집사람이 가장 고마운 거는 미래가 불투명한 데도 어쨌건 저를 인정해주고 그대로 받아주고 지지해줬다는 거죠.”
친구들은 지금도 가송에 처음 왔을 때 이야기를 한다.
“제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그때는 차로 건널 수 없이 물이 깊을 때라서 두꺼운 스티로폼 양 쪽에 합판을 대서 만든 뗏목을 가지고 강 저쪽에 있는 친구들을 태우러 갔어요. 그때 그걸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댓글들을 달고 난리였죠. 아마 오래 못 버티고 곧 올라 온다에 건 친구들이 많았을 거예요. 물론 나중에는 뗏목이 아니라 배를 샀지요. 지금은 강물이 얕아서 차로 마중을 갔지만 물이 차오르면 배로 마중을 나가요. 작은 짐들도 배로 나르고요.”


그가 지금은 마을을 떠나고 없는 땅 주인들을 수소문해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 집 두 집 이어진 다섯 집의 땅을 사들였을 때 그 땅에는 잡풀 우거진 밭들과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한 채가 간신히 서 있었다. 2008년 봄이었다. 그는 우선 다 쓰러져 가는 그 집 중 한 곳에서 노숙자보다 못한 몰골로 생활을 하며 밭을 일구고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를 심어놓고 보니 캐서 보관을 하는 문제가 걱정이 됐다. 그래서 삽을 들고 굴을 파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저장할 자연 저장창고로 쓸 동굴을 판 것이었다. 그런데 굴을 파고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초가보다 굴속이 오히려 덜 춥고 깨끗했다. 그래서 그 지하 굴속에서 지내며 밭을 일구면서 한편으로는 집짓는 곳을 찾아다니며 집 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집짓기에 도전했다. 집 지을 건축 자재들을 주문해서 사람들이 강 저편에 자재를 부려 놓으면 만들어 놓은 뗏목을 이용해서 여러 번에 나누어서 짐을 날랐다. 그가 지은 집을 이루고 있는 모든 크고 작은 부분들이 다 그렇게 강을 건너왔다. 뗏목과 갤로퍼와 트랙터를 동원하여 일일이 손수 옮겨온 것들이다.
“여기 있는 어떠한 물건도 저 강을 건너오지 않은 것이 없어요. 아주 소소한 못 하나 나무 하나, 큰 짐인 경우 강 저쪽 편에 내려놓았다가 조금씩 나누어 운반하기도 하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한두 달씩 그냥 저쪽 편에 둬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마음이 아프죠. 길이 있으면 차로 한 번에 집 앞 마당에 부릴 수 있는데 강물 신경 써가며 몇 번을 왕복하다 보면 절로 문명의 이기가 그립죠.”


도산면 가송리 내비게이션에도 나타나지 않는 주소. 물건을 주문할 때면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배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곳, 그래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할 때면 인근 식당에 신세를 져야만 한다.
“일단 식당까지 오면 전화로 여차저차 설명을 해서 건너 편 강둑까지 오게 하죠. 아니면 아예 배달이 안 되니까요. 아직도 산간 오지로 뜨죠. 얼마 전에 삼성전자에 냉장고를 주문했는데 근처까지 와서도 자기들끼리 설왕설래 한 거죠. 여기가 맞나 하고. 나중에는 자신들은 이런 곳에까지 배달을 한다고 사보에 낸다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갔어요.”


머리가 아닌 몸 쓰며 사는 법 배우는 중
그가 가송에 집을 짓고 아직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제법 구색을 갖추고 농사를 짓게 되기까지 겪은 파란만장 우여곡절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제가 오염되지 않은 순수 자연 그대로가 좋아 가송에 눌러앉았으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진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제일 심각한 게 전기 문제였어요. 전기가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하다못해 조그마한 공구 하나를 쓰려고 해도 전기가 필요하고 전기밥솥이 있어도 밥을 못해 먹으니까 죽겠더라고요. 그래서 궁리궁리 끝에 시도하게 된 게 강 저쪽 언덕너머에 집 짓고 살고 있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는 거였어요.”
전파상에 가서 10미터짜리 전선을 구해 와 그 집에서 이곳까지 우선 전기를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기가 기본 용량이 있다 보니까 불을 켜놓고 전기밥솥에 밥을 한다거나, 신신당부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러 온 일꾼들 중 한 분이 모르고 바깥에 있는 수도를 틀기만 해도 차단기가 덜컥 내려가 버렸다. 전압이 약해서 그렇다고 해서 청계천에 가서 두꺼운 공사용 전선을 비싸게 주고 사다가 연결해서 썼다. 그래도 아무리 조심을 해도 툭하면 차단기가 내려갔다.
한 번 끊어진 전기를 다시 이으려면 저 강 건너 언덕너머 집에 연락을 해서 다시 변압기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에 사람이 없거나 연락이 안 되면 강 건너 언덕너머 그 집까지 직접 뛰어가야 했다. 일을 하다 말고 어떨 때는 하루에도 서너 번 그런 일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그의 집 창고에는 대형 발전기가 두 대나 있다. 밥도 해 먹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농기구도 써야 하고 냉장고도 세탁기도 써야 하니 그로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이기인 전기가 너무도 절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어깨춤이 절로 나올 일이다. 물론 그것도 공으로 저절로 된 게 아니라 그가 궁리 끝에 한전을 찾아가 실랑이를 하다가 타협점을 찾은 것이 달랑 홀로 독채 한 가구이지만 열 가구분의 전기를 신청한 것이다. 


사는 거 자체 만으로만 보면 사실 어디를 가든 여기보다는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움직여 만들어야만 하는 이곳 가송의 삶이 좋다고 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그동안 몸이 아닌 머리로만 세상을 살아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왜 나는 그동안 책만 보고 머리만 쓰면서 사는 게 다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거였어요. 차라리 어디 가서 나무를 다듬는 방법, 못 박는 방법 같은 거라도 제대로 배워놨으면 세상 순리대로 몸도 써 가며 그렇게 살았더라면 훨씬 더 잘 적응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후회를 많이 했죠. 그래서 한 삼 년 정도는 생각하지 말고 몸을 움직이라고 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해야 했어요. 이제 조금 농사짓는 것, 나무 심는 법, 철 따라 언제 뭐를 심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세상 이치에 따라 사는 법을 알아가는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아버지 직업은 농부라고 말해요”
가송에서 지낸 시간들 중에 요 몇 달간은 참으로 생각이 많은 시간들이었다. 외부로부터 전해져오는 문제들 중 하나는 그의 집 앞을 지나는 강을 도에서 하천으로 지정하면서 발생되는 문제였다. 요즘 안동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유교문화권사업과 맞물려서 도에서 이 일대를 하천으로 지정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성호 씨는 집을 포함해서 만 오천 평에 이르는 강변 쪽 부지가 하천에 포함되게 된다. 그러면 그가 계획하고 있던 농사는 물론이고 강가에 농막 같은 쉼터나 체험 공간 마련 같은 일들에도 많은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유지가 만 오천 평이나 무용지물이 될 판이라 성호 씨는 그 문제로 몇 번이나 도청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성호 씨 혼자 민원 제기를 했지만 지금은 고산정에 관계된 문중 분들이나 일대 주민들 중 관련이 있는 분들과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 시행도 좋지만 사유지가 들어가고 각종 제한을 받게 되는 주민들의 의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어 처음보다는 하천으로 편입되는 부분이 줄어들 것도 같아 그나마 희망이 보이고 있다. 한창 갈등이 심했을 때는 가송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역시 가송이란다.
그는 스스로 아직도 가송에 미쳐 있다고 한다. 이즈음의 어느 날 문득 그는 이곳에 와서 그동안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았다. 처음 이 땅에 매료돼서 멀리 20년을 보고 이 땅에 터전을 닦고 그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지듯이 이 좋은 것들을 다른 이들과도 나눌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이 땅을 열심히 잘 가꾸고 있나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땅의 풍관을 헤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잘 살리고 있는지, 한 마디로 농사를 제대로 짓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처음에 저는 농사를 지으려고 내려온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예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모님 직업을 조사해 오라고 했을 때 저는 당당하게 농부라고 적어내게 해요.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조금씩 생명의 소중함, 먹거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생명을 살리는 농업에 대해서 공부도 하게 되고 가톨릭 농민회에도 가입을 하게 되면서 참살이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초보농부 박성호의 가송리 힐링캠프
이제는 그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들에 나가고  일이 많으면 해가 지고서도 사방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일하는 게 익숙해진, 그래서 저녁밥만 먹으면 한 줄 기록을 남길 새도 없이 어느새 고된 몸을 누이고 잠들고 마는 농사꾼이다. 그래도 아직 남들보다 잘 짓지는 못하는 농사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그가 배운 한 가지는 우선 땅을 놀리지 않고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소한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 먹거리를 길러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화학 비료나 농약을 안 치는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밀농사도 메밀 농사도 고구마 감자도 다 농약을 많이 안 쳐도 되는 농사다.
“마침 일손도 없고 잘 된 거죠. 제가 그런 면에서는 많이 게으른 농부예요. 처음에는 고구마가 잘 되서 맛이 있으니까 온라인으로 파는데 너무 잘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고구마 농사를 만여 평까지 지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돈은 좀 되는데 여기까지 사람을 사서 데려와서 일을 하고 상품 포장을 해서 택배로 부치고 하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트랙터 같은 농기구를 사서 되도록 일손을 적게 들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어요. 그래서 밀농사와 메밀 농사 같은 걸로 관심을 돌린 거죠. 작년에는 메밀이 정말 너무 잘 됐는데 돈은 별로 많이 벌지 못했지만 메밀꽃 핀 그 정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어 가곤 했어요.”
그래서 자칭 게으른 농부인 성호 씨가 찾은 대안은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밀농사 메밀농사를 지으면서 이곳을 좋아해서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와 천혜의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가송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돌아돌아 왔지만 가송의 자연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 그것이 그가 정말로 바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오늘도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밀, 감자, 고구마도 저장하고 직접 담근 오디주며 살구주도 저장하기 위해서 새롭게 지하 저장창고를 짓고 농로를 정비하고 고구마를 심기 위해 오늘도 트랙터로 밭을 간다. 일 년 사계절이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산에 산수유, 개복숭아, 진달래 하나 둘 꽃이 피고 갯버들부터 나무에 물이 올라 연두에서 연초록으로 진초록으로 차례차례 물들어가는 그 과정이 가장 아름답다는 가송의 이 봄을 혼자서 만끽하면서 밭을 갈고 있을 터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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