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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조건, 성과 이름(글/정진영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성과 씨, 그리고 본관
양반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姓)과 본관(本貫)이지만,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어서 당연한 것쯤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성과 본관만으로도 일차적으로 양반인지 아닌지, 나아가 어떠한 지위의 양반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성씨는 중국에서 온 것이다. 중국의 상고시대에 남자는 씨를, 여자는 성을 호칭했다가 후대에 성씨로 합해진 것이다. 성은 출생의 계통을 표시하는 것으로, 그 조상의 출생지를 성으로 삼았다. 이로써 소속혈통을 구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같은 혈통을 가진 자가 각지에 분산되면서 이들을 표시하고자 한 것이 씨이다. 그래서 성은 혈연(血緣)의 계통을, 씨는 분화된 성의 지연(地緣)을 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성씨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신분이 높은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그들 가문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사물의 이름을 쓰기도 했지만, 조상의 출생지를 성으로 삼았다. 물론 스스로 성을 만들기도 했지만, 제후로 봉해지면서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성은 출생의 계통을 표시하는 것으로 대체로 아버지의 성을 따랐지만,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혈연적인 관계가 없는 성을 받거나, 또 기존의 성을 바꾸기도 하였다.
우리가 이런 중국식의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물론 우리 나름대로의 혈연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었을 테지만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씨제도도 함께 받아들였던 것이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은 진흥왕(545-579) 때부터 김(金)이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왕실의 경우일 뿐 당시의 귀족이나 고급관료라 하더라도 아직은 성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와 6세기 후반에 건립된 진흥왕 순수비 등 여러 금석문에 나타나는 인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중국식 한자성이 쓰여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신라에서는 6세기 후반이후에 귀족 상층으로부터 중국식 한자 성인 3성과 6성이 점차적으로 사용되었다. 신라하대에 이르러서는 지방에까지 보급되었는데, 그것은 지방의 유력층인 호족들의 성장과 함께 한다. 호족들은 중앙 귀족들을 모방하여 점차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과 함께 공신들이나 지방의 크고 작은 호족들에게 각기 성을 나누어 주었다. 이를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고 한다.

우리의 성씨제도는 중국의 것을 모방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의 글자 대부분은 중국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것은 형식과 글자일 뿐이다. 따라서 엄연히 우리의 성씨는 중국과 다른 것이다. 한국의 성씨가 중국과 다른 것은 본관이라는 제도에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성의 지역적 분파를 씨(氏)라고 하였으니 우리의 본관과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중국은 씨에 관계없이 성이 같으면 동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이 같아도 본관이 다르면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처음에는 본관이라는 것이 없었다. 경주의 왕족과 귀족들만이 성씨를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본관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이후 지방 호족들에 의해 성씨가 사용되면서 3성과 6성 등 신라왕실과 귀족성이 거의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제 같은 성씨를 사용하지만 혈연적으로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다. 같은 성을 쓰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구별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본관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의 본관은 중국의 성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본관은 고정불변이 아니었다. 본관을 바꾸는 일은 조선 중,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본관을 바꾼다는 것은 성을 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과 본관은 그 자체가 신분적 지위를 나타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큰 성씨나 큰 성씨의 본관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과 같이 성이 같으면 원래 한 조상에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란 오해도 본관을 바꾸는데 한 몫을 했다. 오늘날의 성과 본관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되고 확립된 것이다.

양반 성, 상놈 성
성씨는 고려시대에 지방의 양민층에까지 보급되었다. 그러나 노비를 위시한 천민층은 조선시대 중 ·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성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이 있고 없음은 그 사람의 신분이 양인 이상인지 아니면 천민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이 없는 천민층이 적지 않았다는 데 있다. 16, 17세기 곧 임진왜란 전후 시기의 노비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17세기 중반경의 호적대장을 보면 성이 없는 사람이 전체의 반 이상이었다. 물론 이들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점차 성을 가지게 되었다. 성을 가진다는 것은 이제 노비신분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1894년의 갑오개혁과 함께 노비제가 폐지되면서 우리 모두는 이제 당연하게 성을 가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평민이상이면 누구나 성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성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양반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지 못했다. 물론 어떤 성을 가졌느냐가 중요했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듯이 양반 성이 있고, 상놈 성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성씨가 큰 성씨이고, 어떤 성씨가 희귀한 성씨인지의 구별만이 있을 뿐이었다. 대성이라는 것은 후손이 많고, 이름 난 조상이 많다는 것이고, 희성에는 후손들이 적으니 자연히 출세한 사람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희성에 비해 대성인 경우가 양반일 확률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씨가 아니라 본관이 더 중요하였다.

본관은 처음으로 성을 취득한 조상이 살았던 곳을 말한다. 그래서 경주,안동,김해 등과 같은 고을 이름으로 본관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의 본관지는 이 같이 큰 군현의 명칭으로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통일과 함께 전국의 크고 작은 호족들에게 각기 거주 출신지 별로 성을 나누어 주었다. 이를 토성분정(土姓分定)이라고 하였음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여기서 크고 작은 호족이란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세력의 크기를 말한다. 즉, 큰 군현을 대표하는 호족과 촌 단위의 지배세력은 지역적인 기반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같은 김씨를 하사받았다 하더라도 군현의 호족은 군현의 이름을 본관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촌이나 향,소,부곡을 기반으로 한 지배세력은 그들의 근거지인 촌이나 향,소,부곡의 이름을 본관지로 삼아야 했다. 그러니 본관의 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세종 당시 전국의 성씨와 본관을 조사해 두고 있는데, 성씨는 대략 250여 개, 본관지는 4,500여 개 정도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성씨 수는 세종 당시와 거의 비슷하지만, 본관은 도리어 1,100여 개나 줄어든 3,400여 개에 불과하다. 세종 당시에는 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적어도 전체 인구의 반이나 되었을 것이다. 이들이 조선후기를 거치면서 모두 성과 본관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천여 개 넘는 본관지가 소멸되고 말았다. 이것은 성이 없던 사람들이 성씨를 가질 때 새로운 성씨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아주 흔한 성씨를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성씨를 사용한다는 것은 적어도 천민이라는 신분적 차별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그렇다면 독특한 성씨를 쓰거나 흔하지 않는 성을 사용함으로써 또다시 차별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본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기존의 본관을 바꾸어 나갔다. 촌이나 향,소,부곡 또는 규모가 작은 고을명칭을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지역적 사회적 기반이 미약했기 때문에 큰 인물을 배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본관은 결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굳이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본관을 바꾸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일정한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양반들도 더 큰 양반으로 행세하기 위해서 슬그머니 조상을 바꾸기 일쑤였다. 이들은 본관을 중국의 씨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성씨는 같은 조상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이로써 본관을 바꾸는 공공연한 명분으로 삼았다. 아무튼 오늘날의 본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족보가 편찬되면서 시조를 중심으로 아주 체계적으로 계보화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동성동본이라 하더라도 사실은 혈연적으로 아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본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양반인지 아닌지, 혹은 문벌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이름난 본관으로 바꾸고자 하였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혈연적으로 무관한 사람들이 같은 본관으로 새롭게 편입되고 또 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제 성씨와 본관만으로는 양반인지 아닌지, 혹은 명문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 종법(宗法)의 발달은 특정 촌락에 아버지계열 친족을 대대로 살 수 있게 하였다. 이들은 점차 그들 조상 가운데 뛰어난 분을 중시조(中始祖)로 내세워 문중(門中)과 파(派)를 형성하고, 마을과 문중을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었다.
이제 점차 성과 본관만이 아니라 어느 파이고 어느 마을 출신인지가 양반과 명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 갔다. 명문 양반가의 성씨 앞에 양동이니 하회니, 내앞이니 하는 촌명이 붙는 형식, 즉 양동이씨, 하회류씨, 내앞김씨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양반 식별법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유명 가문의 족보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씨와 가문의 혈연 계보에 대한 지식을 보학(譜學)이라고 하였는데, 보학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필수 교양이었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조상을 조작해 내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오랫동안 세거해 왔던 고을뿐만 아니라 이웃 고을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양반들은 혼인과 스승제자 관계 등을 통해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역사회에서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놈인지는 그냥 자연스럽게 파악될 수 있었다.

다양한 이름들
이름은 사람을 식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호이다. 동서양 많은 나라에서 이름을 중히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우리 역시 그러했다. 할아버지의 이름자로 쓰였던 글자를 손자의 이름으로 쓰지 않았고, 성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도 불경스러워했다. 양반들이 최고의 성현으로 존경하는 공자의 이름은 구(丘)이다. 그런데 대구(大丘)라는 지명에도 같은 글자가 쓰여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대구(大丘)가 졸지에 대구(大邱)로 바뀌었다. 중국의 황제나 조선시대의 임금님의 이름자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심지어는 임금의 이름자와 같다는 이유로 대대로 써 오던 성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이름은 외자에 그것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글자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만약 ‘영권(永權)’이라고 하였다면, ‘영’자와 ‘권’자가 들어간 지명과 이름, 심지어는 권씨의 성까지도 바꾸어야 하는 큰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런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이성계가 그러했다. 처음부터 왕위에 오르리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왕위에 즉위한 후 이름을 ‘단(旦)’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혼란을 최소화했다. 이렇듯 이름이라는 것은 그냥 사용하기에 좋고 부르기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양반가문에서도 어려운 글자를 골라 이름자로 쓰는 풍조가 생기기도 했다.

양반 집안에서 이름을 짓는 데 고려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항렬에 맞추고, 태어난 시간도 고려하여 사주와 팔자를 살피기도 했다. 또한 부모나 집안의 기대와 희망을 담아 글도 잘 하고 과거에도 급제하라는 의미에서 ‘문(文)’자나 ‘필(筆)’자를 선호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주 정성을 다해 지은 이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평생 동안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한두 번 정도는 바꾸기 일쑤였다. 심한 경우에는 10여 차례이상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이름의 종류도 다양하였다.
우선 초명 또는 아명이라 불리는 것이 있었다. 대체로 갓 태어난 아들에게는 흔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천한 이름을 붙이면 목숨이 길다고 생각했다. 홍역을 겪고 10여 세가 되면 생존할 확률이 아주 높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체로 이때쯤에야 정식 이름을 썼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과거에도 연거푸 떨어지고 큰 병에라도 걸리면 이름을 고쳐서 액운이나 운명을 바꾸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생존 당시에 사용하던 이름과 호적 또는 족보에 올린 이름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이래저래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름은 참 혼란스러웠다.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면 그것을 대신할 또 다른 이름이 있어야 했다. 자(字)니 호(號)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령 이황(李滉)의 호는 퇴계(退溪)이고, 자는 경호(景浩)이다. ‘자’라는 것은 대체로 16세가 될 무렵 오늘날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 시에 집안의 어른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어른들 역시 성인이 된 집안 자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따라서 자는 주로 어른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불려졌다.
그러다가 중장년에 이르러 자신의 취향에 맞는 별명, 곧 호(號)라는 것을 지었다. 스스로 지은 별명이니 자기 아래 사람과 후대에 주로 불리게 되었다. 별명에는 자신의 희망이나 인생관을 담기도 하였고, 아니면 자신의 거주 마을의 산이나 내 이름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황의 호인 퇴계는 토계(土溪)를 퇴계로 바꾼 그의 집 앞을 흐르는 조그만 개울 이름이며, 최흥원의 호인 백불암(百弗庵)은 ‘아는 것도 능한 것도 없다(百不知百弗能)’는 겸양의 뜻을 담고 있다. 물론 호도 하나만이 아니라 나이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자주 바꾸었다. 퇴계라는 호 외에도 퇴도(退陶)니 도수(陶叟)니 하는 호도 사용했다.
양반이라 하여 모두가 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글이라도 할 줄 아는 선비나 학자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호가 없는 사람이나 친족 간에는 택호(宅號)를 사용했다. 택호란 말 그대로 집의 이름이다. 보통은 부인의 출신지명으로 지어지나 관직명 또는 당호(堂號)로서 지어지기도 했다. 예컨대 ‘무실댁(宅)’, ‘참봉댁’, ‘무언재(無言齋)’ 등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무실어른’, ‘참봉할배’, ‘무언재 큰아들’ 등과 같이 개인을 지칭하는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무실댁’이라는 택호에서 부인의 출신지명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무실마을의 류씨 가문에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은연중에 혼반(婚班)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하지 못할 경우에는 감추기도 했다. 어느 집안, 어느 문중과 혼인했느냐가 바로 그 가문의 격을 결정하였으니 혼반이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택호를 보면 그 가문의 지체를 알 수 있다.”는 말은 이 같은 사정에서 연유한다.

이름을 중시한 것은 물론 양반들의 경우이다. 특히 노비들의 이름은 그들 주인에 의해 주로 물건, 계절, 동식물 이름 등으로 지어지기도 했다. ‘막대(莫大),‘장대(張大)’,‘삼월(三月)’,‘돼지(道也只)’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도 있어야 했지만, 이름도 바꾸어야 했다. ‘막대’와 ‘돼지’로는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김상대’나 ‘박도천’으로 바꾼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평민들의 이름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하층민들도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식이 점차 강해지면서 그에 걸맞은 이름으로 바꾸어 갔다. ‘망둥이’만이 아니라 ‘꼴뚜기’도 당연히 뛰어 그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할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양반사회라는 것이 그 이름 하나에도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