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살고 싶어 흙을 찾았다, 임명섭씨부부(글/임종교)몇해전이던가. 봉화 석포에 있는 산골소녀 손은화를 찾아가던 길에 안상학시인과 동행했던 적이 있는데 모처럼만에 그와 함께 나섰다. 찾아가는 길손의 도리상 그때 그는 고등어 한손을 사오라고 했던 것 같다. 음료수 박스 하나면 될 것을 하필이면 이 비린 냄새나는 것을 폼나지 않은 검은 봉다리에 넣어 들고 가나 싶어 내심 그때는 불만이었었다. 그야말로 뺀질뺀질한 나이였다.
이번 취재를 나서며 나는 그때 생각이 문득 나서 고등어 한 손을 먼저 차에 얹었더니 안시인은 그게 맘에 들었는지, 곁들여 소주대병 두병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남의 집에 찾아갈 때 들고가는 그 고등어 한손의 정겨움을, 그게 사람 냄새나는 사람사는 정이라는 것을 적쟎은 세월의 인연동안 난 어렴풋이나마 그를 통해 배우게 된 것 같다. 봉화에 전우익 선생님댁에 가면 요것이 오래 묵은 채로 손님을 기다리며 처마에 대롱대롱 달려있다고 했던가.
매정하다 매정리!
지금 우리는 녹전면 매정리 골뫼로 간다. 용두산 산아래에 내려앉은 이 마을은 길손의 입에서 정말 매정하다, 매정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는 길로 봐서는 번듯한 마을이 있을까 싶을만큼 몇번의 포장과 비포장을 지났다. 초행길이라 헤매다보니 예고개로 들어오면 40분밖에 안걸릴 거리를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이 되버렸다. 마을 앞 동수나무에 걸린 그네가 정겨움으로 다가올쯤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임명섭씨(32)가 손을 들어 보인다. 마을앞 공터에는 시끌벅적하니 젊은 청년네 소리들이 우리를 반긴다. 모두들 연배가 비슷한 동네 친구들인 모양이다.
요즘 농촌엔 60대 젊은 사람만 있다더니 희안하게도(?) 30대들이다. 도시로 나가봐도 사는 게 별볼일 없는데도 다들 나가려고만 하는 때에 30대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지키며 사는 모습이 안도감으로 다가오면서도 젊은 내외가 농사를 지으러 들어왔다니, 아니, 왜?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되니 이게 어줍쟎게 도시 물먹었다는 머리에서 퍼뜩 드는 생각이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오늘 일은 다들 쉰 모양이다. 건장한 젊은 사람 다섯에, 필자와 안시인, 그리고 명섭씨 아내 순분(31)씨와 딸 소희, 이웃사는 다섯 살 박이 민정이까지 앉으니 명섭씨네 집 마루가 그득하다. 비가 와선지, 이미 우리가 오기전에 소주 대병들이 하나를 거뜬히 비운 모양인데도 고등어 안주가 나오고 다시 술판이 벌어지자 필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우선 말을 튀울 요량으로 이번 가뭄에 고생하지 않았느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모를 작년에 비하면 한달이나 늦게 심었는데 그러다 보니 일이 자꾸 밀리쟎아요. 그래서 많이 바빴지요. 비오니까 그동안 못한 밭일, 논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그중 가장 연장자인 듯한 석기(37)씨 말이다. 특이나 농사 이야기가 나오자 서로들 자신이 옳다며 소리높이는 탓에, 돌아와 들으니 드문드문 명섭씨와 나눈 몇마디는 녹음기에서 확인이 되지 않는다. 그런들 어떠하랴. 모처럼만에 만나는 농촌 인심에 나도 섞여 할 일을 잊었으니.
농약냄새가 촌냄새인 줄 알았던 애숭이 시절
명섭씨는 부산이 고향이다. 바닷가 짠냄새를 맡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농사지을 생각을 했다. 그가 농사를 첨 지으러 갔을때는 과수원이 많은 곳이었는데 과수원에서 나는 약냄새를 맡으며 그는 그게 촌냄새인줄 알았을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애숭이였다. 단순히 농사짓는 것이 즐겁고 좋아서 시작했다는 게 명섭씨 말이다.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농사짓겠다고 이곳저곳 다녔지요. 그때 어린 맘으로 내 생각 가지고 할 수 있는 세상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어디 취직을 해도 그렇고, 농사를 짓는거는 좀 틀린 것 같더라고, 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고, 똑같은 농사를 지어도 다 차이가 있거든요. 그게 참 매력이예요. 첨엔 그런 것도 잘 몰랐지만…, 아무래도 자연하고 젤 가까이 있으니까 좋고, 또 농사짓는 일 만큼 솔직한 건 없는 것 같애요."
약간은 느린 어조로, 해맑고 통쾌한 웃음을 웃어가며 그는 조근조근 조리있게 말을 이어갔다.
이런 그를 두고 처음에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나보다. 동네 청년들도 첨엔 농사 짓는게 좋다는 황당한 사람도 다 있구나 싶었단다. 맞은편에 앉은 동한씨(33)가 그와 대면했던 첫 느낌을 풀어놓는다.
"첨엔 현실파악을 잘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꼭 세상 사람과 어울리지 못한 사람처럼 약간 도가적인 분위기도 느껴지고…(일동 웃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유기농인지를 한다고 약한번 치면 간단하고 빨리 진척될 일을 풀 뽑으러 다니고 약도 발효시켜서 만들어 쓰고 이런 모습을 보니 더할터였다. 옆에 앉은 상국(32)씨도 한마디 거든다.
"첨에는 답답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거 보다 좀 독특하게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도 들고…열심히는 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일을 못치고 나가니까. 근데 적은 면적으로 따져보면 유기농법으로 하는게 우리보다 많이 나오겠다 싶어요."
이제 그들도 명섭씨 농사짓는 방법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일테다.
"첫해는 농촌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힘들었지요. 겉으로 보이는 것하고 막상 내가 그곳에 들어가서 사는 건 또 틀린 거거든요. 사실 첨에는 실망도 많이 했어요. 내가 잘 이해를 못했던 부분들도 많고, 그걸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요. 게다가 농사자체가 힘든다기 보다 거기에 딸린 생활이 차이가 많으니까 실패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돈쓰는 거, 돈 버는거부터 다 다르니까"
도시에서 월급쟁이하는 사람들이야 매달 얼마씩 월급이 나오지만 농사는 일년살이라 여름엔 하늘만 보고 있다가 가을되면 돈이 좀 생기는데 제대로 일년살이를 잘 못하면 여름엔 하늘만 쳐다보고 맨날 풀만 뜯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섭씨에 모두들 맞장구를 친다.
농사는 아무나 하나
잠시 우린 그가 일궈놓은 농사구경을 하고 싶었다. 집 뒷산으로 경운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명섭씨, 순분씨 부부가 일궈놓은 밭들이 보인다. 만삭인 아내는 딸 소희를 업고도 경운타기에 능숙한데 필자는 혼자몸으로 비실비실대고 있으니 은근히 명섭씨가 핀잔을 준다.
그는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아직 농약을 쳐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것이 농사꾼으로 사는 신념인 듯 싶었다.
"같은 면적에서 보면 비료치고 약치고 이러는 것보다 농사효율면에서 내가 나은 것 같애요. 그게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풀도 계속 대야 하고… 그래도 메뚜기도 있고, 가재도 살고, 고추같으면 맴기도 다르지요."
그의 밭에는 골 사이로 인삼 농사 지을 때 덮어놓은 검은 막이 쳐져 있었다. 물론 볏집도 깔려있다. 풀이 나지 말라고 세운 대책 같았다.
"첨 농사지을 때 풀이 막 나니까 동네사람들이 뭐라 하드라고요. 정읍에서 농사 지을땐데 하도 말들이 많아서 고민하던 차에 인삼농사 짓던 사람이 이걸 한번 깔아보라고 하드라고요."
둘이서 때때마다 이런 풀과의 전쟁을 치룬다는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주로 맡아하던 밭 일은 만삭의 몸이라 그 일을 못해내니 집앞에 있는 밭은 풀밭이 돼 버렸다. 그러나 그는 절대 앞으로도 농약을 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거대면 약 치는 게 났지요. 약 치는 게 뭐니뭐니 해도 젤 쉽다니까요. 쉽기는 쉬운데 쉬운걸로 가자면 끝이 없고, 대신에 돌아오는 해가 많지요. 뭐.(웃음)"
그는 약도 만들어서 쓴다. 귀농학교를 통해 배운 것도 있고, 스스로 많이 연구하고 개발을 하는 것 같다. 약초같은 걸 발효시키기도 하고, 농작물을 발효시키기도 하고, 소주를 가지고 만든 약도 있다.
"약 치다가 목마르거나 배고프면 그걸 참으로 먹기도 하지요.(웃음) 소주로 만든 것도 있는데 그거 치다가 동네 사람 지나가면 술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하기도 하고…(웃음)"
불 때며 살아요
그러나 농사일은 그렇다치더라도 집안생활은 여자들 생활이 많을테고, 그리고 동네에는 남자 청년들은 많은데 젊은 아낙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다들 장가를 가지 않은, 아니 못간(?) 탓이다. 요즘 젊은 여자들이 도시 생활을 버리고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산다는 일을 몇이나 받아들일까.
순분씨는 고향이 충남 예산이다. 집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 농사 지으며 살고 싶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한 10여년쯤 살아보니 자신과는 맞지 않아서 일부러 농사지을 사람을 찾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귀농학교에 아시는 선배분의 소개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촌 아낙의 길을 자청했다. 그녀또한 남편 못지 않은 농사꾼이다. 웃을 때마다 그 모습이 넘 순해보이고 고왔는데 그런 면에서 이 두부부는 무척이나 닮아있다.
명섭씨, 순분씨 부부와 딸 소희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는 아는 분 소개로 99년에 100만원을 주고 산 집이다. 정기역자 집으로 아직까지 불을 때며 살고 있어서인지, 불땐 자욱이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요즘 사는거에 비하면 훨씬 힘들지요. 비새지, 흙 떨어지지,…"
아내 순분씨의 부른 배를 보며, 딸 소희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며 교육문제나 여러 가지 힘들 상황이 걱정돼 이런저런 참견을 했다.
"도시에 있다고 애들 교육이 잘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없어요. 교육이라는 건 집안에서 다 이루어져야지요. 교육이 산수 가르치는 건 아니쟎아요. 사람이 제대로 되어야 하는 거지, 우리 애들이 클때쯤이면 그런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길꺼라고 보거든요. "
아내 순분씨도 마찬가지다. 막달이 다 되어가는데 올해는 가물어 병원도 제때에 못가고 거른날이 많았다고 한다.
"첫째 가졌을때는 자주 다녔는데 둘째때는 비오면 한번씩 가고(웃음), 특히 올해는 더 가물어서 못갔어요. 특별히 이상하고 그런 건 없으니까."
조금 힘들고 불편하다고 그걸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듯,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려는 부부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읽는 탓일까, 늘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들볶기만 했던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 하루였다. 농사도 느낌이라는 명섭씨 말마따나 사람을 만나는데도 느낌이 중요하다.
해맑은 웃음을 간직한 부부의 얼굴이 취재를 마치고도 며칠씩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내게 주었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그러면서 소신있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 때문이였던 것 같다. 구수한 안동표준어를 나누며 고등어 한손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씩들 나누는 사이 명섭씨와 동네 청년들 등 뒤로 해가 지고 있다. 이젠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언제 한번 동네 청년들이 부탁하던 삼겹살을 사 들고 그때쯤이면 세상밖으로 나왔을 명섭씨, 순분씨 부부의 둘째 아이를 꼭 보러가야겠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