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경수상 뮤지컬 <부용지애>(글/임지희_안동대 국문과 겸임교수)
<부용지애> 공연이 올해 4회째 올려졌다. 아름다운 하회마을의 부용대와 그 아래로 흐르는 강을 무대배경으로 하고 만송정 앞에는 객석이 차려졌다.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에 흐르는 강위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무대는 작년보다 더 웅장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한여름 밤에 부용대에서 실경수상 뮤지컬을 즐기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밤하늘의 별과 부용대의 무대와 만송정의 관객석, 이보다 더 화려한 무대는 없을 것 같다. 하회마을의 절경을 활용한 자연 속에 살아있는 무대는 <부용지애>가 관객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사랑의 테마 <부용지애>
<부용지애>는 매년 진화하는 뮤지컬이다. 1-2회 공연을 관람하지 못했지만 지인의 말을 들어 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작년과 올해 공연을 보았는데 작년보다는 올해 공연이 한층 더 세련되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공연은 줄거리부터 작년보다 더 탄탄하게 짜여 있었다.
<부용지애>의 시간적 배경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다. 전투장면이 군무로 재연되고 전란에 아버지를 잃은 허도령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하회마을로 돌아와 김씨처녀인 분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하회마을에 설화로 내려오는 허도령과 김씨처녀처럼 영원히 사랑하자며 사랑의 언약식을 한다. 분이를 탐하는 변도령과 당골네의 딸 옥이의 질투로 인해 서낭당은 불타고 3개의 탈이 소실된다. 허도령은 겸암에게 불타 없어진 탈을 자기가 깎아 재앙을 없애겠다고 한다. 류성룡이 돌아오고 류성룡과 겸암의 형제애가 노래로 상징화된다. 허도령은 탈을 깎기 위해 은거하고 괴질에 걸려 앓던 분이가 깨어나서 허도령을 찾게 된다. 결국 탈을 깎을 때까지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를 어기면서 허도령은 죽음을 맞아하고 분이도 강으로 사라져간다.
작년보다는 분명 탄탄하게 스토리가 진행되어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올해의 공연이 구성면에서 무엇인가 약간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부용지애>의 공연에 대한 애정이 가져온 욕심일런지 모른다. 각설하고.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대중적인 테마이다. 사랑의 테마는 대중적이어서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식상한 느낌을 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회마을의 허도령 설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허도령 설화를 테마로 한 <부용지애>는 관객들이 극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여 극에 몰입시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허도령과 김씨처녀가 사랑하게 된 계기점이 없어도 설화 속의 허도령과 김씨처녀가 사랑했던 것처럼 그들의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어 극에 몰입할 수 있다. 허도령과 김씨처녀의 사랑의 세레나데와 더불어 무대 위의 나무에 꽃이 피고 부용대에서 낙화처럼 아름다운 불이 강위로 떨어지는 조명과 영상의 활용은 두 남녀의 사랑이 돋보이게 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사랑의 테마는 관객들을 빨리 식상하게 한다. 이 뮤지컬은 허씨도령과 분이라는 주인공을 음해하는 변씨 도령과 옥이를 부정적 인물로 상정하고 갈등을 야기하고 있지만 그 갈등의 축조가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의 특색을 살려 노래와 춤으로 그 갈등을 좀 더 강하게 보여 주었다면 더 재미있는 극이 되었을 것이다. 허도령과 김씨처녀의 사랑은 노래와 주인공의 분신 같은 두 명의 춤꾼을 활용하여 한 무대를 사용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잘 그려나갔다면 부정적 인물의 음모와 계략은 축소되어 있어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또한 허도령과 분이가 서로 믿으며 사랑을 지키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없다. 변씨 도령과 옥이의 음모에 휩싸여 허도령이 고통을 받을 때 김씨처녀인 분이는 보이지 않는다. 허도령과 분이의 사랑을 승화시키려면 고통 속에서 둘이 서로를 믿으며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려져야 한다. 갈등이 축조되어 극적 긴장감을 가지고 주인공들이 이러한 수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며 관객들은 ‘극적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부용지애>의 현재적 의미는?
주인공이 수난의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은 관객들의 현실과 연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상황이 있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가지는 고통의 상황과 자신이 가졌던 상황을 치환시키기 일쑤이다. 그리고 그러한 수난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극이 관객들에게 현재적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 극은 박제화 된 느낌을 준다. 현재적 의미로 다가오지 못하고 박제화 된 극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고전이 연극, 영화, 뮤지컬 등등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s 로 관객을 만나 성공한 사례를 보면 현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향전>이라는 고전이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는 변사또라는 인물을 통하여 사랑이라는 것에 포장된 탐욕과 권력의 속성을 보여주어서 관객들에게 현재적 의미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안동과 가까운 영주에서도 <정도전>이라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이 연극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해석하여 시대의 혁명가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권태를 느끼는 관객들에게 이 연극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여 감동을 주고 있다.
<부용지애>의 류성룡은 이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없다. 그래서 이 극이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하회마을의 유명한 인물인 류성룡을 의무감 때문에 등장시킨 느낌이다. 류성룡이 당대 훌륭한 인물이고 안동이 자랑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현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등장이 감동적이지 못하고 줄거리에 곁가지를 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부용지애>는 이 극을 통하여 ‘어떻게’ 관객들에게 ‘어떠한’ 현재적 의미를 제공할 것인가? 에 대한 첨예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부용지애>는 실경수상 뮤지컬로 기획된 공연이다. <부용지애>는 ‘실경수상’이 가지는 다채로운 무대 사용은 성공적이다. 또한 이에 걸맞게 조명과 영상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시각적으로는 관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공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뮤지컬이 가지는 완성도를 생각해 본다면 아직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야하는 공연이다. 뮤지컬은 탄탄한 스토리 안에 노래와 춤 등, 이외의 것으로 극적 재미를 더해야 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탄탄한 스토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뮤지컬이라는 극의 생명력은 짧아지기 마련이다.
관객의 취향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관람한 목요일에는 극이 끝나기도 전에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가면서 하는 말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시각적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연극적 재미’를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 <부용지애>만이 가질 수 있는 공연 원리를 모색할 때 감동을 주는 연극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불꽃놀이로 뮤지컬의 빈 공간을 채우는 안일함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에는 좀 더 진화된 실경수상 뮤지컬 <부용지애>를 기대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