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속 안동 -어떤 기자가 1921년 예안지방을 둘러보고 쓴 글을 읽으며(글/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개벽>잡지에 실린 안동관련 글을 읽다가, 함께 읽고 안동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에 보탬이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잡지 내용을 옮겨 놓는다. 신구문화가 충돌하던 식민지 공간에서 근대문화를 수용하게 된 우리 지역민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 흔적이 별로 없어서 자못 궁금하던 차에 기자라고만 신분을 밝힌 사람의 글을 통해 당시 안동사람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자. 물론 서울 사는 사람이 안동을 6일 돌아다닌 소감이 그리 신통할 까닭은 없다. 제대로 보기도 어렵다. 비록 오해에 그쳤을지라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치는 안동문화는 어떤 모습일지는 보이지 않을까.


우리의 근대가 서구화로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낯설었고 불편했던 점이 많았을 것인데 당시 보통 사람들의 의식은 어떠했는지 추측하기 어렵다. 물론 이 잡지의 기자는 짧은 일정 동안 이미 계획해 둔 몇 군데를 둘러보고 감회와 들은 바를 기록하고 있어서 안동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이 기사의 근거가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기자의 입장은 성글다. 기득권 문화변화를 정치세력의 변화로 읽어내고 있고 하층부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일반적인 판단을 넘어서지 못하여 단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눈이라 여기며 그의 글을 통해 안동의 당시 문화변동을 추측하는 시간은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기자는 퇴계선생의 유적을 찾아보기 위해 안동예안지방을 7월 26일로부터 31일까지 근 6일의 기간으로 경북 안동 지방을 둘러보고 기사를 실었다.기자가 안동행을 계획한 이유는 첫째, 퇴계 선생의 사상이나 혹은 행적의 여하를 더듬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400년 후의 지금이나마 선생의 상양徜徉하던 그 땅을 한번 밟아 보려고 한 것이다. 둘째로 선생의 유풍여향이 어떠한 형식 혹은 내용으로써 그 지방에 남았는가를 보려고 한 것이었으며, 셋째로 500년 이어져온 제현을 배출한 조선의 추로지향이오 유교문화의 중심지라는 안동(安,禮) 지방을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안동답사의 기간이 너무 짧아 모든 것을 조직적으로 보고 얻지 못한 것은 유감 중 유감이지만 단편의 소감과 소견을 피력한다고 썼다.



옛 경상도와 오늘날 경상도를 비교하여 쓴 글을 보자. 먼저 옛 경상도 사람의 기질과 풍속은 서울(당시 경성)에 거주하는 친구를 통해 짐작해왔으나 실제 안동지방으로 내려와서 보기는 처음이라 밝히면서 땅과 사람의 특별한 점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예안지방이 퇴계선생을 중심으로 특별한 공간임을 소개하고 있다. 경상도는 감여가堪輿家의 창천수성이라는 태백산맥이 전 도내에 방박磅礴하고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강인 낙동강이 도의 중앙을 종류하야 지세가 웅위하여 이 지방의 사람은 일반으로 골격이 장대하고 성질이 자못 뚝뚝하야 문득 보아도 무엇을 함이 있을 듯하다. 여기서 뚝뚝함은 부드럽지 못하고 뻣뻣한 것을 이른다. 이것은 추상이 아니라 사실이니 위로 옛적에 찬연한 신라 천 년간의 문명을 내었으며 아래로 조선 오백년간 유교문화의 근원지를 형성하였다.


더욱이 이번 기자가 본 안동 예안지방은 그 땅이 태백소백의 남쪽에 있어 평원광야가 명수청랑하야 백사견사가 도처에 전개되어 그 기색이 완연히 한성부근과 같았으며 그 중 예안은 기자가 주로 찾은 퇴계선생의 본향이오 안동은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선생의 본향으로서 서원이 처처이오 사대부가 가가이라 할 만하게 되었다. 놀라지 마라. 옛날에 윤리를 높이고 도학을 중히 여기어 비록 고촌잔리일지라도 독서성이 끊길 줄을 몰랐으며 순의옹유이라도 모두다 도덕성명을 말하는 바 자기네들이 먼저 문화향으로 자처하였다. 우리도 동방추로의 고향이라 칭하고 있다.
당시 식민지 상황에 놓인 경상도를 두고 쓴 글을 보자. 양반과 상인의 성격차이를 설명해놓고 다시 모든 사람을 일반화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실어두고 판단은 독자분들께 맡긴다. 이런 양반과 상민의 구분은 안동의 문화라고도 하기 어렵고 개개인의 특성과 연결되는 일이다.


지금의 경상도-아니 금일의 안례(안동 예안)지방의 일을 가리켜 할 말은 아니다. 이번 기자가 처음으로 그 지방에 들며 느낀 것을 가장 솔직히 말하랴 하면 그 키가 크며 얼굴의 뼈와 뼈가 몹시 두드러지고 붉고 누른빛이 이상하게 들어나며 게다가 갓 망건을 쓰고 긴 담뱃대를 든 그 지방 노인들의 모양은 어떻게 보기만 하면 고루를 느끼게 되며 그 중에 이상한 것은 어떠한 노인을 대하면 건방지고 쓸쓸한 기미를 느꼈고 또 어떠한 노인을 대하면 추조하고 너저분한 기분을 느꼈는데 후에 들으면 전자는 반가 노인이오 후자는 상가의 노인이었다. 즉 그곳의 양반 사람은 극단의 자존심과 끊임없는 당쟁으로 인하야 인간미의 다수를 잃은 냉정한 사람이 되었으며 상인은 누 백년의 굴종생활로 인하야 신성한 인생성의 다수를 빼앗긴 추누麤陋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말은 셈이다. 다시 말하면 과도의 자존과 무리의 굴종은 다 같이 병적인 성격을 만들고 말았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관찰하면 그런 기미가 잇다 함이오 개개인 반듯이 그러타 함은 아니다.


다음으로 일제시기 양반의 변화 모습 중에 가장 놀라운 일이었을 농사짓는 것을 소개한다. 갓 쓰고 김매는 농군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를 모르고 살던 양반들이 실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본 기자는 “즉 현재 구문화가 이 지방에부터 있는 형편은 마치 일전에 본 농군의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립(갓)자모양이라”고 한다. 아래의 글을 통해 머리 위에 얹힌 립자 모양을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이 지방 동무의 말을 들으면 이곳 양반들은 옛날에는 농사를 짓지 아니하였다. 비록 물을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농장에는 나서지 아니하였다. 오직 글을 읽고 예를 강함이 그들의 유일 임무였으며 근대 이후로는 벼슬을 구하고 토색(대상인對常人)을 행하는 한 가지 임무가 늘었다. 그러나 정말 최근에는 대세의 흐름 탓인지 양반도 대개 농사를 짓게 되었다. 들에 나아갈 때는 농립(백색죽립白色竹笠)이나 혹은 수건을 쓸지라도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망건 쓰고 관 쓰는 것이 그네들 사는 법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양반 중 우두머리 양반만 관을 쓰고 기타 양반은 폐지) 그런데 기자가 안동으로부터 예안에 왕래하는 도중에 농사용 립 이외에 정식 갓을 쓰고 김매는 농군을 보았으며 그 갓은 그저 맨머리 위에 올려놓은 갓이었다. 실제는 농립의 대에 헌 갓을 쓴 것이었다. 양반의 특권의식이 식민지 상황 속에서 지켜질 수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변화 역시 안동 특유문화이기 보다는 전국적인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볼 것을 대강 보고 그 지방을 떠나올 때에 기자는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기자는 조선의 유교문화가 실천적이지 않았고 계급(장유長幼, 남녀男女, 귀천貴賤(반상班常), 빈부貧富)의 엄격한 차별이 있어서 식민지 상황 속에서 구문화로 머물다 위력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이 계급질서의 옹호를 위하여 상례 제례 기타 가정이나 사회에 있는 대소 예절을 명분으로 만들었다. 3.1운동 이후 변화한 정치 세력과 사회여론의 역할도 한 몫 한 것으로 보탠다. 유교 자체가 (一)명분, 의절의 방면에 많은 정신을 둔 관계(왈삼강오륜, 왈립어례, 왈선례후학 등) (二)인욕 즉 식색의 방비를 명예로써 대케 한 관계(왈입신양명, 왈군자몰세이명불칭언 등) 정부로부터 효자열부의 표창을 직행한 것이 폐단이 되고 병통이 되어 유교문화는 말할 수 없는 형식이 되고 말았다고 덧붙이고 있다.


민간에 심각하게 전해지는 문제로 미신의 유행을 꼽고 있는데, 교육부재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으며 안동만이 아니라 당시 전국적인 현상임을 설명하고 있다. 식민지 당시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마음을 사기집단 비슷한 종교집단에 의지하면서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안동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었고 그 점을 기자가 쓴 것이다.


미신의 유행이 특심한 것이니 촌에 나아가면 집마다 대문 위에 물병을 달아놓았는데 이것은 괴질침입의 예방이라 한다. 일주일 만에 옥황상제와 면회를 한다는 훔치교는 일시 안동지방을 풍미한 바 경찰은 한참 그 교의 취체를 막았다 한다. 유교문화의 중심지이라는 그곳에서 이러한 미신의 유행을 보는 것은 기괴하다. 그러나 그곳 인심의 내용을 보면 그리될 수 밖에 없다. 다른 지방과 달리 마을에 서당이 없고 각자 자기 집에서 가정지학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양반의 가문은 대개가 유식한 바 별로 관계가 없었으나 상인의 자제로는 도저히 취학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양반들은 상인의 수학을 불허하여 상인 중 유식자가 혹 생기면 즉시 그를 배제하였다. 이는 상인도 유식하면 양반과 같이 될 것을 미워한 까닭이었다. 이리하야 그 지방 사람의 반수 이상을 점한 상인은 목불식정의 무식한이 되었다.


유도를 숭봉하면서 얼마나 사상의 개선을 얻었으랴마는 상인은 그나마 숭봉할 자유가 없었다. 이와 같이 무식하고 믿을 바 없는 상인들은 미신 밖에 더 취할 길이 없다. 양반 가정에도 사실은 미신의 기분 속에 묻혀 있었다. 이리하야 일반은 미신, 기타 이단으로 돌아가기에만 가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안동 예안지방만이 아니라 전조선 일반의 형편이라 하야도 과언이 아니겠다. 시사하라. 조선 전토에 유도문화가 그만큼 협흡하였음에 동학의 교파가 한번 일어나자 어떻게 되었으며 기독교가 한번 수입되자 어찌 되었는가. 모두 일사천리로 새로 발전하는 금일이 아닌가. 유도의 문화가 얼마나 형식적이었으며 국부적이었음을 더욱 이것으로써 알 수가 있지 아니한가.


상민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가를 잘 드러내는 표현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매우 타락해 있는데 상민은 ‘사람부스러기’로 살아왔다. 상민들은 생활난으로 양심이 마비되어 딸을 기생집에 팔았던 것인데 조선의 창기 중에는 경상도 여자가 제일 많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기준과 자료에 의해 쓴 글인지 알 수 없으나 기자는 그렇게 썼다. 평양에는 기생서당이 있고 안동에는 창기서당이 잇고!라고. 안동 읍내에 창기서당이 있어서 가무를 배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 안동시내에서 양잠강습생모집 광고문을 순한문으로 작성한 것을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광고를 대체로 순한문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는 제일로 한문을 숭상한 동시에 상당한 집 자손치고 한문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그 반면으로 조선 국문은 문자로 생각치도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국문운동이 안동에서 바람을 만나서 일어나고 있다고 반겨하고 있다. 또 교육열이 높고 청년의 활동이 많아 새로운 문화를 기대한다는 긍정적인 입장도 보인다. 다만 아직 구문화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는 평가가 중심을 이룬다.


청년의 활동으로는 읍촌에 청년회가 있고 안동읍내에는 노동공제회의 지회가 있어 회원수가 이천 여명인데 동시설부의 사업으로 소비조합을 발기 중이라 하며 돌아오는 동한기에 이르러는 각지에 농촌강습을 행하리라 한다. 또 가상한 것은 동군 풍서면 하회촌(류서애선생의 생거지이니 선생의 서원이 유하며 그 자손 300여호가 단거)에 소년회가 설립되어 재미있게 일해 간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자가 그곳에 들기 바로 전일에 학생대회의 순회강연이 있었는데 매우 성황이었다 하며 또 그 지방인으로서 동경에 유학하다가 하계에 돌아온 학생들이 강연대를 조직하야 촌촌을 순강하는 등 그 각 방면의 활동은 실로 주시할 가치가 있으며 이 보조로 이 지방이 석일에 있어서 조선 구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음과 같이 금일에 있어서는 조선 신문화의 중심지가 될는지 모르겠다. 기자의 판단으로 보건대 안동의 새로운 문화도 역시 청년의 조직된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동후면에 거주하는 류인식 선생은 안동의 신문화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인물인데 이 선생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성에 주류하며 시세의 추이에 착목하던 중 거금 14년 전 정미에 문득 향읍인 안동으로 돌아와 당시 군수와 상모하고 동군 읍내 유궁재산 1,220두락의 강제기부를 수하야 임하면 천전리에 중등정도의 협동학교를 창설하고 신교육의 실시에 착수하였다. 교육열이 불같이 일고 신문명에 대한 동경이 금일 같이 간절한 이때 다수인을 상대로 학교를 건설함이 실로 역사였다. 14년 전의 그때에 있어 특히 구문화에 대한 숭앙의 도가 조선 어느 지방보다도 제일로 농한 그 지방에 있어 몽중에도 생각치 아니하던 신문명의 수입을 계획한 그 운동이 어찌 어렵지 않았으리요. 류인식 씨의 그 운동은 과연 그 지방의 청천벽력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반은 처음에는 경황하였으며 다음으론 적의 소위로 인하였다. 그 학교의 교원이던 김기수, 안상덕, 이종화는 당시 침입한 의병의 손에 총살되고 학교는 일시 문을 닫기도 했다.


예안 퇴계촌에는 보문의숙, 풍서면 하회촌에는 동화학교의 설립을 견하야 최근까지 계속하던 중 경영의 곤란과 당국의 종용으로 인하야 삼교는 객춘에 모다 보통학교로 조직을 변경한 바 이것이 그곳 신문명건설운동의 대개이며 류인식씨 활동이다. 그래서 그 지방에 있어서 오늘날 신문화를 말하고 신 활동을 절규하는 신진청년의 대부분은 모두 이 학교의 출신 혹은 관계자 아님이 없다 한다. 류인식 선생의 교육운동이 안동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토대가 됨을 잘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퇴계묘소와 도산서원을 돌아보는 것으로 기자는 일정을 마무리한다. 그 과정에서 소개되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곤란한 것은 교량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그 많은 하천을 건널 때마다 차는 차대로 승객은 승객대로 독립하게 되는 그것이며 폭우 한 보습만 나리면 교통차단이 되는 그것이었다. 비 오는데 다리를 건너려면 차에서 내려 물길을 그냥 건너다닌 불편함이 잘 읽힌다. 이날 오후 4시경에 안동을 도착한 기자는 바로 퇴계촌을 향하랴 하였으나 이럭저럭 날도 저물고 또 뜻하지 아니한 권중렬 금원진 형(동창생)을 대하게 되어 그 밤을 안동 읍내에서 지내고 그 다음날 아침에 퇴계촌을 향하였다.


퇴계선생의 묘소가 있고 또 그 서원이 있는 퇴계촌(금 안동군 도산면 토계리)은 동으로 안동읍을 거하기 50리, 원예안읍을 거하기 동으로 10리 허에 있었다. 이날로 안동을 돌아올 생각으로 분주히 말을 몰아 토계리에 도착하기는 숲속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3시 반경이었다. 묘소는 선생의 본거인 온혜리를 거하기 약 2리이요. 기자가 착족한 토계리 면소로부터는 토계를 격하야 동으로 비스듬하야 보이는 근처이었다. 묘소가 있는 산은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나 그 산전이 급준하야 오르기에는 꽤 힘이 들게 되었다. 기자는 다시 산하에 미처 관 쓴 노인에게 길을 물어 산상에 올랐다.


기자가 묘전을 참배 할 때에는 부슬거리는 비가 그치고 오히려 우의를 먹음은 그늘이 산상을 배회하며 이따금 불어오는 남풍이 묘상의 작은 풀꽃 위에 맺힌 이슬을 움직여 떨어트릴 뿐이었다. 바로 묘 아래를 보면 선생이 지늘(臨)고 또 건너던 토계의 작은 물은 흐르는 것이 예와 같으며 도산의 방박이 기세가 일양이거늘 자못 시대와 인심뿐은 선생 재세의 당시와 이제가 같지 아니하여 선생이 열심으로 주지하시던 그 문화는 자최가 날로 희미하고 선생으로는 뜻도 생각도 아니하신-즉 유도 아니요 불도 아니요 또 로도 아닌-일종의 이단적 문화가 조선의 전토를 풍미하여 있도다. 만일 先生의 령으로서 이곳에 담기운 이 유체와 같이 계셔서 금일의 이 현상을 감찰한다 하면 그 감회가 과연 어떠할까. 시대적 대세의 사연으로 문화상 국면이 전환되는 것은 오히려 가히 인하려니와 선생 이후에 제이 제삼의 선생이 또다시 나지 못하고 초부목동의 입에서까지 「유교망국」의 노래를 듣게 된 그것을 만일 선생의 령으로서 상급하신다 하면 그 느낌이 또한 어떠하실까.


퇴계선생에서 비롯되는 안동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계승하고, 새롭게 유입되는 근대문화는 또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새롭게 물어볼 기회의 시간이 신구문화의 갈등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일기자라고만 쓴 분이 언급한 대목 가운데 대체로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그 안에서 특성을 보이는 안동의 문화가 언뜻언뜻 비친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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