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을 기렸던 청송문학의 밤(글/사진/박월수_수필가, 청송문협회원)
칡꽃 향기 그윽한 계절이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가 문득 그리운 이름들을 추억하게 한다.
‘청송’하면 떠오르는 그리운 이름 중엔 이오덕 선생이 있다. 산골학교 아이들한테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새삼스럽게 배웠다는 선생, 그런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촌사람들의 생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쳤던 선생은 토박이 청송 사람이다.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8월 어느 하루, 용전천을 앞에 낀 청송문화예술회관에서는 ‘하느님의 물건을 파는 참새’란 주제로 시낭송의 향연이 펼쳐졌다. 청송문화원이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 청송지부(지부장 박성애)가 주관한 문학의 밤 행사였다. 이는 소천한지 올해로 십 년이 되는 청송의 향토작가이자 아동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자리였다.
현서면 덕계리가 고향인 선생은 같은 마을에 외가를 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런 이유로 이날 행사는 나무닭 움직임연구소에서 기획한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 인형극으로 문을 열었다. 현서면에 사는 초,중생들이 극에 쓰일 인형을 만들고 직접 출연도 했다. 이 특별한공연과 행사를 보기 위해 지역의 문학인은 물론이고 이육사문학관장인 조영일 시인과 (재)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인 안상학 시인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인형을 움직이면서 대사를 읊조리고 맑은 소리로 노래하는 아이들의 표정으로 인해 “강아지 똥”은 관객 속으로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 속에 인형극은 막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이주영 박사와 함께하는 이오덕 시인의 시 세계’가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물건을 파는 참새는 어떤 모습일까 몹시 궁금했다.
봄의 이야기’, ‘너를 향한 나의 마음’, ‘자연과 함께라면’, ‘하느님과 이야기하기’, ‘나의 행복’이라는 다섯 가지 소주제로 시낭송이 진행되었고 이주영님의 시 해설이 주제마다 곁들여졌다. 이주영님은 이오덕 선생의 제자며 선생의 삶과 문학을 연구하는 단체를 꾸려가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낭송과 해설 사이에 선생의 시를 노래로 발표하는 음악회 또한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선생의 시에는 자연이 통째로 들어앉아 있다. 그 속엔 항상 아이들이 함께 한다. 종달새와 여울물이 있는가하면 피 울음 우는 두견이와 진달래가 있고 따 먹어도 배는 고픈 찔레꽃을 배경으로 뻐꾸기는 운다. 아이의 소매며 바짓가랑이에서는 꽃냄새며 풀냄새가 난다. 꾸구욱 꾸국 산비둘기는 날고 숨을 할딱이며 고개를 넘는 아이의 가슴엔 수다스런 멧새와 딱새의 얘기가 안겨있다. 산봉우리와 강물의 노래가 흐르고 하늘 가득히 노래처럼 눈이 내린다.
선생 시의 특징은 하느님이 많이 등장한다. 부친이 가솔을 이끌고 고향인 의성 사곡을 떠나 현서로 와서 화목교회를 지으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되는 부분이다. 무대에는 어느 새 하느님에 어울리는 복장을 한 여인이 성경책을 든 채 앉아있다. 학교를 돌리빼기하고 산딸기를 따 먹은 아이를 칭찬하는 하느님은 아이의 친구처럼 다정하다. 양 갈래 머리를 묶고 딸아이의 멜빵바지를 빌려 입었다는 사십대의 아주머니가 어린 아이 역할을 멋지게 연기한다. “새소리 듣는 게 공부라고요? 딸기 따먹는 거, 나무하고 풀하고 벌레들하고 같이 노는 거, 그게 공부라고요? 하며 되묻는 아이에게 하느님은 상장을 주신다.
‘하느님과 이야기하기’란 시극이 끝나자 짓궂은 사회자가 지금의 현실을 꼬집는 한마디를 잊지 않고 던진다.
”이 시는 요즘 젊은 엄마들 잔뜩 있는데서 들려주면 클 납니데이, 아시겠지요?“
가득히 모인 관객 속에선 어쩔 수 없는 웃음들이 터져 나온다. 누구나 알고 있듯 요즘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일상에 묶여있다. 하루쯤 학교를 빼 먹고 산이나 들로 나가 맛있는 딸기도 따 먹고 달착지근한 삘기를 껌 대신 씹으며 보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선생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교장 선생님 몰래 학교에 있는 벚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따 먹는 모험을 하면 안 되는 걸까. 학원에 가는 대신 거랑에서 다슬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에겐 금기 사항이 되었을까.
아이들과 함께 포플러 숲길을 걷고 자연 속에서 커 가는 아이들에게 꾸며 쓰는 ‘글짓기’가 아니라 솔직한 ‘글쓰기’를 지도하신 선생, 마흔 두해 동안 교단에 머물면서 누구보다 아이들 인성교육에 앞장섰던 선생을 떠올리면 그 분이 이 세상을 다녀가신 건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창문으로 들어 온 오후의 햇빛 속에서 아이들이 적어 놓은 글자가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아기 염소가 되고 피라미가 되는 걸 지켜보는 것, 별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되는 걸 지켜보는 일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하셨다는 선생, 그래서 눈물이 난다는 낭송시를 들으며 관객들은 잔잔한 감동에 젖는다. 벌레 소리 속에서 별빛 희망과 달개비 꽃의 가난한 행복을 보고 지구의 숨소리를 듣던 선생이 하늘만큼 우주만큼 커 보이는 시간이다.
선생의 시를 노래로 꾸민 순서에서 오카리나와 기타와 하모니카 선율이 어우러진다. 농사짓는 부모 일 거드는 아이들의 꾀부리는 몸짓과 순진한 웃음이, 뻐국채 꽃을 귀에 꽂고 책보자기를 메고 뛰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관객들 마음에도 선생의 소박했던 삶이, 이루고자 했던 꿈이 풀물처럼 번지는 걸 느낀다.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일기를 쓰셨던 선생은 시와 수필과 아동문학을 하는 글쟁이며 우리말 바르게 쓰기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며 한글운동가였다. 꾸밈없는 삶을 사신 이오덕 선생의 시세계 공연이 끝이 났다.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마음에 선생의 삶이 언제까지나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문학은 소통의 도구이며 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절절한 편지글 하나로 꿈에 그리던 연인을 가까이 둘 수도 있고 짧은 시 한 줄로 상처를 지닌 이들의 마음에 다가설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대중 매체의 발달로 문학이 가진 소통이며 치유의 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으로 보여주는 문학으로서의 낭송의 의미는 크다. 독자가 책을 펼치지 않으면 문학하는 이들이 먼저 그들의 눈앞에 다가서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해마다 청송 문학의 밤은 열릴 것이고 시를 낭송하는 문인들의 목소리는 낭랑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에 칡꽃 향기처럼 그윽하게.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