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희, 공기돌농장에서 살어리랏다(글/이미홍_객원기자)
땅은, 대지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끌어당긴다. 소설 ‘대지’의 주인공 왕룽은 죽음을 앞두고 땅을 팔려는 아들들에게 ‘너희들이 땅을 팔아버리는 그날이 바로 끝’ 이라고 한다. 그에게 땅은 삶의 근간이었기에. 대지의 흙을 밟고 산다는 것은 도시의 정글 속을 뛰어다니며 사는 것과 다르다. 땅은 생명의 원천이자 인간이 살고 사랑하고 싸워나가는 그야말로 삶의 터전이다. 도시 속에서 우리는 늘 대지를 꿈꾸며 맨발로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꿈을 꾼다. 대지는 그렇게 우리를 부른다. 그리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어느 순간 기꺼이 그 부름에 응한다. 때로 한 평의 땅이 그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안동시 이천동 공기돌농장의 석창희(47)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가 사업을 시작하고 돈을 시작했을 때, 돈이 생기고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이곳에 땅을 산 것이다. 1997년, 그때 그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었던 500평, 그게 그에게는 지금의 공기돌농장의 시작점이 되었다.
조약돌, 차돌, 짱돌, 꽃돌, 선돌 석씨 집안 5남매
그는 2004년 이곳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하기 전에는 시내에서 간판 업을 했다. 그런 그가 간판 업을 접고 이곳에 들어와 십여 년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가꾸고 일구어 온 게 지금의 공기돌 농장이다. 농장 이름은 그의 성씨인 돌 석 자에서 따왔다. 그리고 다섯 아이들 특징을 따서 오남매 별칭을 첫째 지예는 조약돌, 둘째 지원이는 차돌, 셋째 지찬이는 짱돌, 넷째 지인이는 꽃돌, 막내 지률이는 선돌 이렇게 지어 공기돌농장이라 이름 했다. 농장 이름처럼 농장 주인은 그이지만 공기돌농장의 중심에는 그래서 항상 다섯 남매가 함께 있다.
“저는 항상 우리 가족이 최우선이에요. 정말 가까운 후배가 우리가 여기 들어오기 얼마 전에 스물여덟의 나이에 결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사고로 갔거든요. 그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나이가, 젊음이, 못다 살고 간 그 친구의 삶이 너무 아팠어요. 그때 집사람이랑 얘기했죠. 그전까지는 아침 일찍부터 아침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동동거리며 정말 바쁘게 일하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의 죽음을 보고, 우리 왜 이렇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사냐? 밥은 챙겨 먹고 다니자.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미루지 말고 지금 아이들하고 눈도 맞추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살자 그렇게 결심을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침밥을 안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면서 아이들하고 같이 밥 먹으면서 대화도 하고 그렇게 지내요.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살려고 노력을 해요.”
주말이면 창희씨네 밭에는 온 식구가 출동해 있다. 시험이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은 으레 일하는 날이다. 어린이날이나 빨간 글씨가 있는 일요일을 별로 기다리지 않았던 필자의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농사가 많았던 탓에 아이들 노는 날만 고대하시던 아버지와 그날 어떻게 하면 일을 피하고 친구들과 놀러갈 수 있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남동생도 떠오른다. 모내기를 하는 날이면 못줄을 잡기 위해서 학교를 쉬기도 했었고, 어린이날은 고추 심는 날, 어버이날은 수박 심고 참외 심는 날, 여름 방학이면 참외 따고 수박 따는 날, 우리의 유년 시절 공휴일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었다. 유일하게 실컷 놀 수 있었던 겨울 방학은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제대로 된 방학이었었다. 그래서 지금 창희씨네 오남매 마음들이 절로 읽혀지는 것만 같다.
“애들이 불만이 많죠. 토요일 일요일이면 와서 고추 따고 해야 하니까. 고구마 캐는 날, 감자 캐는 날도 빠지면 안 되죠. 한 명도 열외는 없어요. 할 때도 같이 놀 때도 같이, 그게 제 방침이에요. 애들이 다들 일찍 철이 들어서 싫다 힘들다 내색은 안하는데 저도 알죠. 그래도 우리 형편에 일일이 일손을 구해 쓸 수도 없고 고추 심고 따고 하는 걸 혼자 하기에는 힘에 부치고. 또 농사라는 게 때가 있어서 그때그때 심을 거 심고 거둘 거 거두고 해야 하니까 꼬맹이 막내 손도 빌리게 되더라고요. 세 살 우리 막내 지률이가 벌써 밭고랑에서 고추 포기 날라주는 걸 도와줘요. 이웃 어르신들이 보면 저 집은 저래 어린 갓난아이까지 일꾼이라고 하시죠. 남들은 아이들 공부 한 자라도 더 시키지 뭐 하러 일을 시키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생각이 그게 아니거든요. 가족은 운명공동체잖아요. 부모가 힘든 걸 아이들도 알아야 하고 아이들 힘든 걸 부모가 살피고 도와줘야 하고요. 함께 할 수 있는 건 함께 나누고 뭉쳐야 할 때 뭉칠 수 있는 거 그게 가족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하면 저 혼자도 끌어갈 수는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 저는 아이들한테도 서로 도와서 같이 하자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창희씨가 이렇게‘가족은 공동운명체다’라는 생각을 신념처럼 가슴에 품고 살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족은 운명공동체, 아픔 있기에 더욱 강조해요
창희씨가 여섯 살 때 서울서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안동으로 내려왔다. 아버지 고향은 김천이셨지만 고모님 두 분이 그전 안동 신시장에서 새우젓 장사를 하시던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서울서 살 형편이 못되자 식구들을 이끌고 안동으로 왔다. 그런데 그때 창희씨네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온 식구가 제각각 벌이를 해야 했다. 창희씨가 기억하는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하게 가난했던 기억들과 그로 인한 아픔들로 채워져 있다. 배고픔과 어머니의 눈물. 친구들이 동무들과 뛰놀던 이야기, 부모님 손잡고 유원지 나들이 갔던 유년의 기억들을 추억할 때면 창희씨는 입을 다문다. 그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은 사업에 실패하시고 술로 소일하시던 무기력한 모습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느라 늘 삶에 찌들어 고생하시던 어머니, 그럼에도 살림은 나아지지 않아 학교에 몇 달치 육성회비 납입금을 내지 못해 담임에게 불려가곤 했던 기억들, 일찍부터 먹고 살 궁리부터 해야 했던 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고 싶었던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실업고를 가야 했던 순간의 눈물 나는 억울함, 그런 것들로 가득하다. 그게 창희 씨 가슴에 쌓여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픔으로 자리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아버지는 평생을 허방을 짚고 선 듯 사시다 돌아가셨고 누나는 몸이 성치 않아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십년 째 연락이 끊긴 애증이 교차하는 바로 밑의 동생, 삼남매는 각각 그렇게 흩어졌고 창희씨만 지금 어머니 곁을 지키며 살고 있다. 사실 창희씨가 농사를 지으러 들어가는 바람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위로 삼남매가 시내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내니까 창희 씨네가 어머니 그늘에서 오래오래 그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일가가 번성해 형제간에 우애 있게 오가고 때로 가족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을 보면 아직도 한없이 부러운 창희씨다.
그래서 자라면서 창희씨는 결심을 했다. 나는 내 힘으로 단단한 가정을 일구겠다고, 그리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 형제간에 서로 기대고 힘이 되어주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다시 일가를 이루어 가족들이 번성하게 지내는 걸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창희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그냥 웃고 말았지만 창희 씨는 진지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할 때 창희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서 자신은 아이들을 힘닿는 데까지 많이 낳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 계숙 씨가 자기도 형제가 많은 게 좋다고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창희씨가 나중에 돈 벌어서 시골에 땅 사서 내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했더니 그것도 좋다고 했다. 둘은 천생연분이었다. 그리고 야간대학에서 CC로 만난 계숙 씨는 그때 이미 안정적인 직장도 가지고 있는 능력 있고 참한 아가씨였다. 그래서 더 창희씨 마음에 쏙 들었고 둘은 학교 다니며 깨 볶으며 연애를 하다 졸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집사람이 그래요. 시골에서 자랄 때 일하기 싫어서 꾀부리고 그랬는데, 농사짓는 농부의 아내가 될 줄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일 잘 하거든요. 이건 우리 일이니까요. 자기 농사니까 그런 거 같아요. 아마 아내도 더 젊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이제 철도 더 들었고 또 남편인 제가 혼자 애쓰는 게 안쓰러우니까 쉬는 날에는 일을 많이 도와주지요. 와이프한테도 아이들한테도 고맙고 미안하죠.”
초보농사꾼의 혹독한 신고식
“제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찾아다니면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어요. 요 근래는 경북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작년부터 농업 사관학교 교육도 받다가 농사지으면서 대구(영남대)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안다니고 있어요. 사실 조금 회의도 들고요. 농민들도 다들 요즘은 너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게 또 평가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정부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는데 그런 것들이 실제로 영향을 주거든요. 물론 새로운 작물재배법이나 블로그나 쇼핑몰 운영 같은 농산물 판매와 직결되는 유용한 교육들도 많지만요. 처음에는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죠. 첫해 배추를 심었는데 그 해 배추 한 포기에 오백 원! 팔다가 팔다가 나중에는 간판 사업할 때 아시는 분들까지 찾아다니면서 배추 좀 팔아달라고 사정했죠. 와, 정말로 눈물 났어요.” 그야말로 신고식 한 번 혹독하게 제대로 치렀다.
그가 블로그로 농작물을 판매한 것도 사실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작년에 교육을 받으면서 블로그를 개설하고 작년 한 해 동안은 방문자가 만 명이었어요. 그것도 같이 교육받는 사람들끼리 방문해주고 하면서요. 그러던 것이 제가 이런저런 농사짓는 법도 올리고 나름대로 방향을 잡고 제가 농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후에 깨달은 저만의 농사비법이랄까 새롭게 알게 된 정보 같은 제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를 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들어오면서 방문객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20만 명으로 늘어난 거예요. 또 그렇게 배워서 작년에 제3회 경북사이버 정보화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어요. 사례 발표를 하는 데 하도 긴장을 해서 우황청심환을 두 개나 먹고 발표를 했어요. 그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름 농부로 정착을 해 가고 있다고 할까요?”
요행을 모르는 이 우직한 농사꾼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는 그저 작물이 자라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좋았죠. 배추 잎이 처음 한 잎 두 잎 나올 때는 신기해서 아침이면 배추밭으로 달려가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농사를 짓는다는 건 키우는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이걸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야 되는데 농산물 판매라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농산물공판장은 도매가로 넘기다시피 해야 하는데다 수수료도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일 년 내내 농사지어서 손에 쥐는 돈은 얼마 안 되더라고요. 농사지어서 제 값 받고 판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또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판로 방법 확보라는 의미에서 제게 하나의 방법으로 다가왔고 실제로 조금씩 그 효과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예요. 얼마 전에 올해 농사지은 건 고추 1차 판매가 종료됐고 그동안 새로 따서 깨끗하게 세척해서 말린 건 고추 2차 판매를 곧 할 예정이에요. 올해 고추 값이 많이 내려서 시중에서 5천원 6천원 내외에 거래될 때 저는 최상품만 선별해서 9천원까지 받았어요. 물론 너무 최상품만 선별해서 팔다보니 선별하고 남은 고추는 헐값으로 시장에 가서 넘겨야 하는 경우의 수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 블로그를 통해 고추를 주문하고 받아먹는 분들께는 최상의 상품을 보내드리려고 신경을 많이 쓰죠. 그게 곧 저희 농장의 얼굴이니까요.”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농사꾼이다.
“사실 오늘 2차 고추를 부쳐줘야 하는데 손님들 오신다고 내일로 미뤘어요. 1차로 선별을 해서 깨끗하게 세척까지 해서 말린 거라 그냥 포장을 해도 되지만 저는 한 번 더 선별을 해서 포장해요. 적어도 우리 농장에서 나가는 것만큼은 최상의 품질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야 고추를 사 먹어본 분이 감자도 사고 고구마도 사고 그렇게 이어질 수 있다고 보니까요.”
듣고 보니 우리 때문에 배송작업을 미룬 거였다.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안 되어 한통의 전화가 왔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올해 받은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설문조사를 하기 위한 전화였는데, 지금 손님이 있으니까 나중에 전화주시면 찬찬히 설문에 응하겠다며 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게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데 석창희 씨는 그게 몸에 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머리 되면 하고 다른 거 하려면 일찍 시작해라
그리고 그는 이곳 양지골에 들어와 살면서 모든 사람들이 굳이 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목을 매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새삼 확인했다. 너도 나도 일류대를 꿈꾸고 대도시로 나가기를 꿈꾸고 그래도 4년제 대학은 나와야지 하면서 애는 죽자 사자 공부하고 부모는 또 그걸 뒷바라지 하느라 등골 빠지고. 그런데 그렇게 아등바등 서울에 잘나가는 대학 졸업해도 졸업하면 막상 취업도 못하는 이가 수두룩한 게 현실인데, 그걸 알면서도 왜 다들 한 길만 보는 건지 그는 답답하기만 하다.
“저는 아이들에게 그래요. 중학교 기준으로 학교에서 상위 20% 안에 들지 못하면 인(in)서울은 고사하고 대학은 생각하지도 마라. 대학을 가더라도 대학 이름을 생각하지 말고 니가 가고 싶은 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고 그 길로 노력해라 그래요. 공부로 풀어먹을 수 있는 놈은 공부시키고 다른 것에 재주가 있는 놈은 그쪽으로 밀어주자는 게 제 생각이라 저는 둘째가 중학생인데 요리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기꺼이 요리학원에 보내줬어요. 우리 둘째가 지금 중3인데 요리 쪽으로 실력이 대단해요. 그 점은 저를 닮은 거 같아 살짝 기분이 좋기도 한데 하여튼 본인이 좋아하고 그쪽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서 적극 밀어주고 응원하고 있어요. 저는 우리 아이들 중에서 나중에 아빠처럼 농사짓고 싶다면 그것도 환영이에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되 좋아하고 하고 싶으면 그만큼 열심히 노력을 해라 그거죠.”
그런데 그도 딸 가진 부모라 지금 고3인 첫째 딸이 내년이면 대학을 가는데 사실 마음 같아서는 첫째는 멀리 보내고 싶지 않은 게 아버지 마음이다. 실력이 되면 부모로서 뒷바라지 해줘야 하고 또 형편이 되는 한 그럴 생각이지만 점점 현실로 다가오자 걱정이 된다. 그래도 우선은 할 수 있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딸한테 파이팅을 해 준다.
“저는 이곳에 땅을 사면서도 나중에 늙어서 들어와야지 하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집을 지을 여건만 되면 언제든 들어와야지 생각했죠. 이 땅을 살 때 아이들이 셋이었는데 돈 벌어서 아이들 셋 키우면서 집을 지을 돈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하던 일을 접어야 할 시점이라 2004년 당시 살고 있던 옥동에 있던 5주공에 들어갔던 돈을 빼고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돈을 보태서 집을 지었다. 당시 경제적 여건이 워낙 안 좋았던 터라 생각하고 있던 제대로 된 집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여기저기 자재도 구하고 도움도 청했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하고 둘이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가 손수 지은 양지골 5남매집
“처음에 이 땅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집도 비닐하우스도 창고도 제 손으로 하나씩 다 직접 지었죠. 처음 이 집 지을 때 우여곡절이 많았죠. 집 짓는 법도 모르고 그저 비만 안 맞으면 된다 생각하고 무작정 나무 자르고 기둥 세우고 지붕 덮고 그런 식이었죠. 옛날 시골 어르신들이 그랬듯이 내 살 집 내 손으로 형편껏 지은 거죠. 여기 이 집 지붕 천장에 쓰인 저 나무가 그때 경안여고 창틀로 쓰이던 거예요. 처음에는 스티로폼 대고 합판 덮고 하는 식으로 지었는데 살다보니 비 맞고 눈 맞고 하니까 지붕이 내려앉더라고요. 그래서 저걸 얻어다가 제가 잘 다듬어서 재활용을 한 거죠. 그래도 저게 나름 제법 튼튼해요. 멀쩡한 건데 솔직히 버리면 아깝잖아요. 하다못해 땔감으로라도 쓸 수 있는데. 제가 달라고 해서 싣고 와서 저렇게 지붕을 다시 대고 남은 건 땔감으로도 쓰고 그랬어요. 친구하고 둘이서 뚝딱뚝딱 만든 거라 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비도 새고 천장 서까래도 내려앉고 해서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손을 봐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 저기 저 현관 들어오는 마루는 옛날 안동고등학교 교실 바닥에 쓰이던 거예요. 제가 가져와서 그 중에 괜찮은 걸 골라서 니스 칠하고 다듬어서 저렇게 마루를 만들었어요.”
알고 보니 이 집 서까래며 마룻바닥이며 장독대가 놓인 외벽에 장식으로 덧댄 목재장식이며 저마다 사연이 있고 어디서 왔는지 출처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멋진 집은 아니지만 그 안은 넓고 있을 건 다 있다. 너른 거실이며 아이들 방이며 주방에 욕실에 폼은 덜 날지 몰라도 딴에는 면면이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거기에다 살면서 이곳 조금 저곳 조금 덧대고 고치고 다시 칠하고 또 다른 재료를 구해와 어우러지게 하고, 한 마디로 이야기가 있는 집이다.
“남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저는 이 집이 너무 애착이 가요. 여름에는 넓고 시원하고. 우리 식구들 발 뻗고 모여 잘 수 있고. 저는 여기를 나중에 가족박물관을 만들 거예요. 여기를 허물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조금 더 형편이 나아지면 저쪽 옆에 새로 예쁜 집을 지을 계획인데 솔직히 저는 이 집을 없애고 싶지 않거든요. 터가 넓어서 없애고 다른 걸 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공간이 너무 애착이 가고 우리 집 역사로 남겨두고 싶어요. 그래서 이곳을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로 계속 채워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여건이 되면 체험학습 공간으로 쓸 수도 있고요.”
무엇이든 준비된 사람이 기회의 폭이 넓다
그는 남자로선 흔치 않게 천연염색자격증도 있다. 비록 3급이기는 하지만 그가 청일점으로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배워 자격증 시험까지 봤다. 마침 기회가 좋아서 쪽 염색 대가이신 선생님한테 쪽도 배우고 나중에 체험학습장 열면 천연염색도 같이할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다.
“사실 시골에 들어와 농사지으며 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마음이 조금 센치해 진다고나 할까 뭔가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타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통기타를 배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통기타는 여성회관 밖에 개설이 안 돼 있어서 남자라서 자격이 안 돼 못하고 눈을 돌리다가 만난 것이 천연 염색이죠. 우연히 나주 쪽에서 쪽 염색으로 대가이신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정갈하고 고즈넉한 한옥에, 장독대가 나란한데 염색한 나염 천들이 바람에 날리는 그 모습이 뭔가 마음에 와 닿으면서 품격이 있더라고요. 그 모습에 반해서 기 센 아주머니들 틈에서 청일점으로 놀림 아닌 놀림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천연 염색을 공부했다. 하는 김에 민화도 배웠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한동안 푹 빠져서 했는데 아마 농사지을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계속했을 것 같다. 하나라도 더 배워두면 언젠가 황토방 하나 지어 놓고 장 사업도 하면서 체험학습장 할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 와중에도 했다는 그다. 짬을 내어 배우는 작은 거 하나도 자신의 농장에 도움이 되는 길을 생각하는 게 어느새 버릇처럼 굳어진 공기돌농장 주인 창희씨다.
그리고, 열심히 농사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를 치고 가는 깨달음 하나,
“아 지금 내가 임대해서 농사짓고 있는 이 땅은 언제 주인이 돌려달라고 할지 모르는 남의 땅이구나! 지금 온전한 내 땅은 500평, 그럼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는 생각했다. 그 답을 그는 장독대와 천연 염색에서 보았다.
“저는 언젠가는 장 사업을 할 거예요. 된장을 담는 장독도 제대로 된 것들은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욕심이 나고 마음이 바빠서 여기저기 독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더러 큰 맘 먹고 장만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더 기반을 쌓아서 언젠가는 꼭 장 사업을 하고 말거예요. 그리고 천연 염색도 겸해서 하면 체험 학습으로도 활용하기 좋고, 할 건 많아요. 마음이 앞서는 게 문제죠. 하나하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준비해 가야죠. 저는 농촌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해요. 농업, 잘만 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요.”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사실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아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아내가 결혼 전부터 경안교육재단에서 일을 했는데, 학교 쪽에 있다 보니까 아이들 교육비 지원이라든가 대출 이런 면에서 많은 혜택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사업을 접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어느 정도 생활의 균형을 이루면서 무사히 농사꾼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아내는 경안재단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경안여고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아내가 일을 잘하고 일복이 많아서 항상 바쁜 곳으로만 다니는 것 같아 안쓰럽다. 농사라는 게 매달 수입이 일정한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윗분들한테 인정도 받고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오는 아내가 든든하고 고마울 수밖에 없다. 퇴근을 하고 아내가 밑의 두 꼬맹이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면 그는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창희 씨 스스로가 요리 하기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김치며 된장이며 그가 직접 담근다. 요리에 큰 취미도 할 시간도 없는 아내 계숙씨로서는 그런 면에서 남편을 정말 잘 얻은 셈이다.
“저야 시골에 살아도 노는 날에야 잠깐 거들 뿐이고 혼자서 거의 다 하다시피 하죠. 고추 심고 할 때는 아이들하고 거들지만 농사 일이 어디 손 가고 힘쓰는 일이 한 두 가지겠어요. 결혼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제 손으로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남편이 한 김치가 정말 맛있어요. 제 친구들이 부러워들 해요.”
남편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를 알기에 별로 투정 부릴 일도 싸울 일도 없다. 사람 사는 일이라 부부 사이에 이런저런 다툼이야 왜 없을까만 귀농도 막둥이까지 아이들을 다섯 명 낳는 것도 단 번에 오케이 하는 아내이다 보니 크게 싸울 일이 없다. 어쩌면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일찍이 알아버린 아내 계숙씨의 현명한 남편 석창희 길들이기인지도 모르겠다 싶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겁니다
굳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요즘 세상에 다섯 남매의 아버지로 사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사실 저는 국민연금을 안 들었어요. 나라에서 국민연금 들어라 할 때 제가 그랬어요. 내 노후는 내 자식들이다. 국가에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하면서 돌아가라 했어요. 사실은 아이들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우선 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하나라도 더 해 주자는 생각이었어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할 여유가 사실 별로 없는 것도 있지만 저는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믿거든요. 지금도 사실은 농민이라서 국가에서 반을 부담해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유리한 조건이지만 지금도 저는 안 넣고 있어요. 생각의 차이인데 저는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며 아이들 키우고 있어요.”
나는 이 순간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의 아버지가 불쑥 생각난다. 무정부주의자인 그는 아이를 정규 학교에 보내는 걸 거부하고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남쪽 섬으로 들어간다. 읽으면서 그 아버지가 정부를 향해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로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멋대로인 것 같고 주류 인생을 거부하지만 나름대로 철학이 있는 아버지 이야기인데 살짝 핀트는 어긋나지만 창희씨와 어딘가 한 곳 분명 닮은 곳이 있다.
그는 누가 무어라 해도 저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첫째는 솔직히 맏딸이다 보니까 저는 가까이에서 다녔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꿈인데 저는 안동대학교 국어교육학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국립이고 집에서 동생들 공부도 봐주고 하면서 다녔으면 싶거든요. 그런데 딸애는 꿈이 크다 보니까 나가고 싶어 하죠. 대구 동성로를 걷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되면 당연히 보내줘야죠. 그런데 경북대 사범대 가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니까 요즘 바짝 긴장하는 거 같더라고요.”
시행착오 겪는 초보들에게 도움주는 블로거
“지금 심어 놓은 싹이 어린 감자는 내년 씨감자를 할 종소예요. 저는 감자를 남들보다 일찍 심어서 늦게 캐요. 감자는 재배 기간이 길어야 전분 형성도 잘되고 분이 많이 나고 달아요. 여름 감자는 하지에 캐야 해서 하지 감자예요. 가을 감자는 서리를 맞혀서 캐고요. 빨간 감자 같은 경우는 없어서 못 팔아요. 올해 일반 감자는 감자 값이 폭락해서 한 박스에 만원 만 오천 원 받을 때도 빨간 감자는 가격 변동이 별로 없어서 올해도 삼만 원에서 오만 원에 팔았어요. 제가 농사짓는 양에 한정이 있어서 지금은 찾는 사람이 있어도 못 팔고 있어요. 블로그를 통해 팔다 보니 판로는 어느 정도 마련이 됐는데 이제는 일 년 내내 꾸준히 판매를 지속할 수 있는 품목과 방법을 찾는 중이예요. 그때그때 팔 수 있는 품목이 있고 저장성이 있어서 두고 판매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재배하려고 하죠. 고추나 고구마 생강 같은 경우 좀 여유를 두고 판매가 가능하지만 찾는 분들이 많다 보니 보관해 둘 틈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대파는 저장성이 약한데 그래도 저는 대파 농사를 꼭 지어요. 대파는 시내 식당에나 슈퍼에 공급하는데 없어서 못 팔아요. 어떤 분들은 힘만 들고 수익성이 큰 편도 아닌데 왜 대파를 심느냐 물어요. 그런데 제가 농사를 지어 보니까 사람들이 불경기면 과일은 덜 사 먹어도 대파는 사 먹어요. 꼭 필요한 거니까 가격이 비싸도 사먹어야 하는 게 대파예요. 그래서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품목이에요. 물론 다 내 당이면 저도 사과나무를 심죠. 심어 놓으면 두고두고 수익이 나니까요. 그런데 지금 제 여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저는 농사를 짓는 거거든요.“
그가 가꾸어 놓은 밭만 봐도 그가 얼마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농사를 짓는 지 알 수 있다. 길 가 한 뼘 땅도 놀리지 않고 가을무며 쪽파며 씨감자 할 종소 감자며 총각무며 얼갈이배추에 김장배추까지 잡풀 하나 날 틈새 없이 촘촘히 밭고랑을 채우고 있는 위로 뜨거운 햇살에 행여 시들까 간간이 호수로 물을 뿌려주고 한쪽에선 끝물고추가 익어가고 있는데 이 또한 하나라도 더 수확을 하기 위해 빽빽하게 심되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골을 내어 일렬종대로 정리가 된 채로 가을 햇볕아래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 옆 밭에는 대파가 한밭 가득이다.
“올여름 장마철에 대파가 미처 덜 자라 찾는 곳이 많아도 파는 걸 잠시 중단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수확할 때가 되가니까 이제 또 대파도 부지런히 내다 팔아야죠. 대파도 저는 좁은 면적에서 많이 심어 크게 잘 키우는 비법이 있어요.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고 제가 시도한 방법이 성공적이면 저는 그걸 떠 블로그에 올려서 저같이 시행착오를 겪는 분들한테 공유를 해요. 비법 물으면 아는 한에서 댓글도 달아주고요. 소규모이지만 제가 크게 실패하지 않고 농사지으며 살 수 있는 비법이죠 이런 것들이.”
배추도 심어 놨는데 올해 아마 배추 파동이 날 거 같다고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소 들어가 보니까 올해 고추가 사실은 작년보다 6%나 덜 심겼대요. 그런데 날씨가 좋다 보니까 다들 고추 농사가 잘돼서 고추 값이 많이 떨어졌잖아요. 고추 농사가 잘 되면 농민들 수익이 좋아줘야 하는데 실상은 가격이 폭락해 버리니까 농사가 어려운 거죠.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 흘리며 농사짓는 농민들 한숨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고추 값이 폭락했을 때 모여서 술 한 잔씩들 하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야, 태풍 한 번 와야 된다. 누구 하나 희생해서 대다수 농민이 살 수 있다면, 하느님도 생각이 있으시면 좀 어떻게 해 주셔야 되는 거 아니냐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고추 농사를 주로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울분 서린 한탄인 거죠.”
공깃돌처럼 작아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죠
그는 자라면서 일가친척 없이 외롭게 자란 게 한이라 말하지만 그건 어느새 그가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찾아서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신이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 게 익숙한 독립적인 사람으로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새 혼자 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은, 혼자서도 단단한 그런 사람으로 그를 만들어 주었던가 보다. 그는 혼자 농사를 짓는 것에도 어느새 이력이 붙었다. 고추를 따야 한다든가 하는 바쁜 일손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한다. 혼자서 많은 종목을 짓다 보니 오히려 늘 시간이 부족해 탈이다.
“저는 특별히 농민회 이런 데 가입을 안 하고 혼자 알아서 공부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솔직히 조금 트러블이 있어요. 빵 만드는 거에 비교하면 제가 제과제빵 기술 배워서 이제 제 가게를 차린 거죠. 서로 생각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요즘은 다들 작목반이나 농민회 이런 모임에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하고 해서 농민들도 권리를 찾고 하는 건 좋은데 그런 모임 같은 것이나 인간관계에 너무 묶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안 맞았고요.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하는 저로서는 농사일 할 시간도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던 교육도 중단한 거고요. 이제 어느 정도 기초는 잡혔으니까 제 나름대로 기준을 사지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우선은 저는 이게 맞는 거 같아요. 나중에 농사 규모가 더 커지면 저도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하겠지만요.”
아이들이 나의 노후, 함께 모여 사는게 꿈이죠
“요즘은 또 한 가지,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 부가 가치도 그렇고 하루라도 빨리 장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요. 저희 어머니가 서울에서 사셨지만 고향이 전라도시고 외할머니가 전라도 분이시다 보니까 음식 솜씨가 좋으세요. 장맛도 기가 막히고요. 저희 어머니가 그걸 좀 물려받으셨는데 연세는 자꾸 드시는데,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그 자산을 활용도 하시고 저희가 그걸 보면서 그 비법을 전수받고 싶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규모가 작게나마 우선 시작하고 싶어요.”
농한기에 적절하게 시간과 인력도 활용하고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 하나라도 더 비법 전수받을 생각에 바쁜 창희씨다. 방학이면 시간이 많은 오남매도 당근과 채찍으로 제대로 활용을 할 생각이다. 그의 모든 농사 계획 속에는 알게 모르게 오남매의 역할이 안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의 말마따나 가족공동체이다 보니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열외가 없는 아버지의 방침 아래 어쩌면 올 겨울, 아니면 내후년 겨울이면 콩 삶느라 가마솥 앞에 장작을 넣으며 앉아 있거나 자근자근 메주를 밟고 있을 오남매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저는 뭐든지 현실성 있게 접근을 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게 메주 사업이에요. 아직도 집에서 장을 직접 만들어 드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아파트에서 메주를 띄우기는 힘드니까 메주를 사서 만드는 분들이 많으니까 우선 겨울 농한기에 콩 사서 메주 만들어서 파는 것부터 시작하려고요.”
그래서 장독도 하나 둘 더 사들이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나중에는 제대로 된 장 사업을 꼭 할 생각이고 자신도 있다. 굳이 웰빙이니 힐링이니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망이 밝다고 그는 믿고 있다.
“저는 솔직히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그런 제 생각을 감출 필요도 못 느끼고요.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아들이 잘 돼서 중심을 잘 잡아야 집안이 잘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딸은 아무리 예쁘고 믿음직해도 남의 집에 보내야 하잖아요. 그리고 저는 팔도로 아이들 흩어져 살게 보내려고 오남매 낳지 않았다 이거죠. 되도록 경북을 벗어나지 마라. 그리고 모여 살아라 저는 평소에 아이들에게도 은근히 세뇌를 시킨다고 할까 그런 걸 유도를 하죠. 때론 자식들하고도 밀당을 하죠. 따르고 안 따르고는 결국 자신들 선택이지만 제 바람이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살았으면 한다는 거죠. 지금 이 집을 중심으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집안이 번성하길 바래요. 여섯 살 때 부모님 따라 안동에 와서 가난에 온갖 서러움 겪으면서 외롭고 힘들게 일어섰는데, 우리 아이들이 각자 여기저기 흩어져 외롭게 살아가는 거, 저는 절대 반대예요.”
그래서라도 이 아이들만은 서로 가까이 다복하게 모여서 살았으면 좋겠다, 이모 고모 삼촌도 곁에 있고 서로 모여 잡아주고 끌어주고 그렇게 사는 자식들 보는 거 그게 그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새삼 그의 노후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