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읽고(글/사진/이순구_안동대 교수)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저녁 여섯 시경 학교 연구실에서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의 신간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And the Mountains Echoed, 2013)〉를 다 읽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내 마음도 산처럼 울렸다.
애초에 내가 호세이니의 소설책을 읽었던 것은 젊은 여류 포토에세이스트인 정은진 씨의 〈카불의 사진사(2008)〉에, 호세이니의 첫 소설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2003)〉가 나와서, 우연히 읽게 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 2007)〉도 읽었고, 이번에 〈그리고 산이 울렸다〉도 번역 출간되자 바로 읽게 된 것이다.
1970년생인 정은진 사진가와 1965년생인 호세이니 씨, 두 사람 다 나보다 한참 후생後生이다. 그런데도 나보다 훨씬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 쓴다. 후생이 나의 선생先生이다. 그리고 호세이니 씨의 소설 3권을 모두 번역한 왕은철 교수도 55세로 나보다 후생이지만 내가 사숙(私淑; 그의 글을 읽고 배우는)하는 처지다. 나의 진짜 선생님들에게서 더 이상 내가 무얼 배우는가? 내가 그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후생님들이다(後生可畏). 가서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진짜 나의 선생님들한테서는 겨우 덕담 몇 조각으로 연명하며 감개무량해하지만, 실속은 거의 제로 수준이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 ‘제비’라는 닉네임으로 올렸던 글(2011년 5월 10일)을 다시 고쳐 쓴다.
I.
아무래도 나는 책벌레인 것 같다. 우연히 〈카불의 사진사〉 〈연을 쫓는 아이〉 두 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가들의 에세이를 다른 책들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책은 책에 연하여 다른 책들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 붙는다. 일간 신문의 신간 소개 코너를 통해 〈카불의 사진사〉를 2008년 10월에 읽은 후 강열하게 뇌리에 남아서, 그 책에 소개되어 있던 〈연을 쫓는 아이〉도 우리말 번역판(왕은철 역)으로 순식간에 읽고 말았다. 그 소설은 근래에 읽었던 어느 소설보다 더 나를 감동시켰다.
〈카불의 사진사〉를 쓴 정은진은 1970년생으로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사진학 석사, 미주리대에서 박사과정으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한, 한국 출신의 연약한 여성이다. 그리고 어떤 부모의 하나뿐인 소중한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그런 그녀가 부모 몰래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인간의 삶을 사진 찍기 위해, 그곳에 직접 단신으로 들어가서 2007년, 한해를 아주 굵고 짧게 고생고생하며, 여러 가지 개인적 경험을 했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포토저널리즘상도 받았다. 2007년 7월, 경기도 분당의 샘물교회 소속으로 선교 활동하던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20여명 이상이 억류되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서 우리나라 언론에 잠시 스치듯이 보도되었던, 30대 한국인 젊은 여인(김주선이란 가명으로 보도됨, 우리 정부 인사와 탈레반 당사자 사이의 중계 역할을 했음)이 바로 그녀였다.
고교 입학할 때까지 영어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한 문학 소년이 15세에 미국에 이민 와서, 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 학부(생물학과)와 메디컬 스쿨을 졸업해 전문의 생활을 하면서 쓴 소설(그래서 고교생 수준으로 쓴 영어 문장이지만)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계로 번역된 책이 바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문화와 생활, 종교를 겨우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내 딸에게도 그 책을 소개했는데, 쉬운 영어라서 우리나라 고교생들도 거의 사전 없이 잘 읽어낼 수 있겠다고 했다.
문학은 단지 언어가 아니라 어떤 고급 정신, 혹은 마음인 것을 바로 그 책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인문학을 전공하시는 어느 여 교수님께도 〈연을 쫓는 아이〉를 권해 드렸더니 정말 좋은 책을 추천해 주었다고 기뻐하셨다. 작가의 어머니가 페르시아 시詩를 좋아해서 어릴 적부터 그런 책들 속에서 자란 환경 때문에, 비록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쓴 소설이지만, 크나 큰 문학적 감동과 아름다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 속에 나오는 부분인데, 백합과(科; Liliaceae) 파 속(Allium 屬: 파, 마늘, 양파 등) 식물의 원산지가 바로 힌두쿠시 산맥과 연결된 파미르 고원이 있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한다. 7세기 신라승 혜초가 파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파미르 고원을 달밤에 걸어가는 정경을 〈왕오천축국전〉에서 읽고 인용해서 소설 속에 한글로 문장화한 부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630년경, 당나라 구법승 현장법사 일행(서유기의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함께 갔던)의 〈대당서역기〉의 실제 현장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불교의 원류인 대승불교의 발상지가 바로 그곳이다.
다음은 그 카페 글에 달려있었던 댓글이다.
실비아: 소설 속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과거의 실수는 묻어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아미르의 용기와 삶”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연을 쫓는 아이들’을 읽고 제 홈피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일부분을 다시 찾아서 가져와 봤어요. 〈카불의 사진사〉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글라라: 제 독서의 편식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네요. 동생이 여러 번 권했지만 미뤘는데 사서 스테파노도 함께 읽어봐야겠네요. 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비: 저도 두 살 아래 동생하고 무지 싸우면서 커서, 나중에 각자 서로 다른 길로 갔습니다만 소설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제간에는 지금도 가장 친합니다. 역시 소설의 끝부분이 실비아 님께도 아스라하게 남아있어서 한층 더 공감합니다. 며칠 전 영화도 DVD로 봤는데, 역시 마지막 부분을 감독도 강조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되뇌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리안나: *^^* 고등학생들이 거의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책 좋아하는 아이들이 읽어내긴 하지만, 원서강독이 쉽지는 않아서 어려워하는 녀석들도 많았답니다.^^ 그래도 흡입력이 있어 원서로도 많이 도전해 본 책이고, 아이들이 좋아했던 책이지요.
Ⅱ.
그 후, 어리석은 나는 정은진의 〈카불의 사진사〉에 나오는 카메라와 렌즈들을 모두 다 샀다. 요즘은 출고되지 않는 캐논 EOS 20D카메라도 최근에 일부러 중고로 구입했다. 그녀를 흉내 내고 쫓아서 바로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내 사진 실력도 그녀만큼 따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 실력은, 사진 찍는 사람이 사진 내용의 실존적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음을, 무지하게 어리석은 내 자신, 그런 것을 잘 몰랐던 것이다. 사진은 카메라나 렌즈가 찍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인간의 필요성이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 인간적인 배고픔과 어려움과 힘듦, 인간적인 만남과 갈등 및 기쁨과 반가움, 평화와 행복 기원 등의 염원이 가장 첨예하게 요구되는 지점이 바로 사진의 현장이 되는 셈이고, 그래서 정은진 씨가 여자 홀몸으로 그곳에 용감하게 잠입하여 사진을 찍은 것이다.
〈카불의 사진사〉는 내가 다 읽고 나서 내 딸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은 다시 내 딸이 담임으로 있는 반의 어느 고등학생도 읽었다. 읽고 나서, 책 뒷날개에 그 학생이 다음과 같이 몇 줄 적어 놓았다. 이 책으로 인해 사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남의 책에 함부로 낙서한 것이지만(제발 남의 책에 함부로 낙서하지 맙시다), 그래도 많이 기특했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의 스토리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마크 포스터 감독의 DVD 영화를 다시 본다. 영화 속 주인공(작가 자신)은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에 망명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모임에서 중매로 약혼자를 만나게 된다. 장차 장인이 될 어떤 유명한 전직 장군은 그가 한번 보라고 열심히 타자를 쳐서 가져온 그 원고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그 장면을 보며 작가는 나보다 확실히 마음이 더 넓다는 생각을 한다. 나 같으면 금방 돌아서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는 (장차 장인이 될 그 장군과 그 딸인 약혼녀를) 안 만났을 것 같다. 작가의 포용력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대부분의 인간들도 그 장군과 마찬가지로 그 소설 원고를 읽지도 않고 “이런 쓸데없는 것!” 하면서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려고 했던 것 같다. 문학, 인문학을 그렇게 쓸데없는 것, 실용적이지 않은 것으로 내다 버리는 것은 요즈음 우리 이웃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Ⅲ.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 2007)〉’에 대해 작가 호세이니와 번역자 왕은철의 이메일 인터뷰(왕은철 2010. 문학의 거장들. 현대문학.) 중에서 발췌해본다. 작가는 말한다. 아프간 여성들의 베일 속에 있는 인간성을 소설 공간에 재현해 보고 싶었노라고. 그들 안에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드러내 보고 싶었다고.
왕은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제목은 페르시아 시인의 시에서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호세이니: 사이브에타브리지saib-e-tabrizi는 17세기의 페르시아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귀양을 왔다가 돌아가면서 카불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시를 남겼습니다. 시 제목은 제가 태어난 ‘카불’이었습니다. 천 개의 태양과 수많은 달들이 있다고 한 것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일컫기 위한 수사였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을 처음에는 다른 제목으로 정했다가 등장인물이 사랑하는 카불을 떠나는 걸 슬퍼하는 장면에 어울리는 더 좋은 제목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장면만이 아니라 소설 전체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제목을 사이브에타브리지의 시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움을 아프간 여성들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광기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아프간 여성들의 내면에 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그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습니다.
탈레반 정권은 극단적 형태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비인간화했습니다. 그것은 성의 아파르트헤이트였습니다. 아프간 여성들에게 가해진 유형, 무형의 폭력은 언어로 다 드러낼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멜로드라마는 그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제 소설은 그 현실에 기초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부르카 속에 감춰져 있는 아프간 여성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오래 전에도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과 흡사한 형태의 여성 억압이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국경과의 인접 지역에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주의적인 그곳에서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습니다. 여자들은 갇혀 살아야 했고 거리에 나갈 때는 언제나 부르카를 입어야 했습니다. 열두 살이 넘으면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랬습니다. 여자들이 누구와 언제 결혼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건 남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카불과 같은 도시에서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1920년대만 해도 아마눌라 왕이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여학교와 여성전용 병원을 세웠으며 여자들을 해외로 보내 교육받게 했습니다. 최소 결혼 연령을 열여섯 살로 높이고 부르카를 입는 걸 금지했습니다. 그러다가 왕은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가부장적인 종족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던 것입니다. 50-60년대에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1964년에는 아프간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카불에서 이뤄진 개혁은 반란을 불러 왔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탈레반 정권 이전에도 아프간 여성들은 힘겨운 종속적 삶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부족과 파당의 전쟁이 터지면서 여성들의 삶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폭탄 공격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유괴당하고 노예로 팔리고 강간당하고 윤락 행위를 강요당하고 강제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아프간 여성들의 삶은 눈물 없이는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저한테 그토록 소중한 소설인 것입니다. 제 소설은 수난의 삶을 살아온 아프간 여성들에 대한 자그만 헌사입니다.
왕은철: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읽을 때도 그랬고 번역할 때도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소설을 번역했지만 번역을 하면서 울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은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지만 17세기에는 천국에 이르는 길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찬란한 도시였다.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는 ‘카불’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은 셀 수도 없었네
One could not count the moon that shimmer on her roofs
And the thousand splendid suns that hide behind her walls
Ⅳ.
〈그리고 산이 울렸다(And the Mountains Echoed, 2013)〉라는 소설의 제목도 작품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에 나오는 ‘유모의 노래(Nurse’s Song)’에서 제목을 빌려왔다고 한다.
그래, 그래, 어두워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가서 자려무나
작은 아이들이 뛰고 소리치고 웃었다
그러자 모든 언덕이 울렸다
Well, well, go and play till the light fades away,
And then go home to bed.’
The little ones leaped, and shouted, and laugh’d.
And all the hills echoed.
작가는 블레이크의 시에 나오는 “And all the hills echoed”를 “And the Mountains Echoed”로 살짝 바꿔 놓았다. 호세이니의 소설은 그만그만한 언덕이 주를 이루는 영국이 아니라 산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을 부분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이니의 소설에 나오는 산은 인간이 행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고 또 그것을 영원히 반향을 일으키는 존재다. 그러니 산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사를 지켜보고 인간의 절망과 절규를 울림으로 전하는 능동적인 존재다. 파르와나가 쌍둥이 언니 마수마를 사막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두고 자기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목격한 것도 산이고 사부르가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음에도 굳이 딸을 수레에 태워 손수 카불로 끌고가는 고독하고 처절한 모습을 목격하는 것도 산이다.) 작가가 소설 머리에 얹어놓은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는 의미심장하다.
잘잘못에 대한 생각을
넘어선 저 멀리에
들판이 있다.
나, 그대를 그곳에서 만나리.
Out beyond ideas
Of wrongdoing and rightdoing,
There is a field,
I’ll meet you there
이 시는 호세이니의 관심이 정치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개인의 잘잘못에 관한 것도 아니란 것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딸을 팔아버린 아버지도, 언니를 사막에 버리고 온 동생도,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는 동정의 대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작가가 지향하는 것은 휴머니즘인 것이다.
이 소설이 전작들에 비하여 덜 폭력적이고 덜 자극적이면서, 더 아름답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서사전략을 구사하면서, 잘잘못을 떠나 인간을 보듬으려 하는 작가의 넉넉한 품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소설 초입에 얹어놓은 루미의 시가 어떤 것보다 더 큰 울림으로 남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호세이니가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놓은 루미의 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소설로 시를 쓸 줄 아는 감각적인 작가다.(왕은철. 2013. 서사의 울림과 확장성. 현대문학 8월호 p 172-184.)
작가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가 두 소년(주인과 하인의 신분에서 만난 두 소년이 같은 형제임을 상징하는)의 이야기라면, 두 번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자(아프가니스탄을 떠나지 못하는 두 여성의 비인간적인 속박 그리고 그 해방과 희망의 치유를 상징)의 이야기이며, 세 번째 소설인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두 남매(오빠는 배 다른 젖먹이 어린 아기 누이동생을 마치 엄마처럼 보살피며 키운다)의 헤어짐이 각각 그 다음 세대에까지 이르러 각각 프랑스 파리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그 자식이 마침내 고모와 조카 딸 사이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만나지만 그 핏줄을 확인한다는 눈물 겨운 이야기다.
그리고 그 위에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의 그리스인 젊은 의사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바야흐로 소설은 전 세계로, 열린(open-minded)상태로,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
Ⅴ.
세계의 지붕인 바로 그곳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고원 하얀 눈 덮인 힌두쿠시 산맥이 나라의 북쪽에 펼쳐져 있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파른 지붕의 고장.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했던 러시아의 공산주의와 종교가 바로 우리 정치와 생활이라는 이슬람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아주 첨예하게 싸워 이긴 사람들(사실은 미국 도움으로, 그리고 소련은 아프간에서 철군 후 바로 해체되었다), 현대의 자본주의 세계(미국)와 다시 또 첨예하게 싸워서 피투성이가 된 나라. 현대화를 반대하여 전근대적 생각과 관습을 고수하여 그 문화를 고스란히 움켜쥐며 살아가는 사람들(1838-1842년 제1차 아프간-영국 전쟁에서 제국주의 영국군마저 궤멸시켰던 경험을 자랑하는). 인류 정신문화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대승불교의 발상지, 인도불교사상과 그리스 예술이 합쳐져서 섬세하고 오묘하게 그 아름다움을 지금도 (우상숭배로 비방하며 파괴된 채로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는, 인류의 가장 높은 미술 수준인 간다라 미술(버려진 소련군 탱크처럼 그냥 총탄과 비바람에 그대로 방치하고 내버려 둔 채)로 전하고 있는 그 곳, 그 대지와 풍요한 언덕과 산맥, 사막,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 이야기는 두고두고 우리 가슴에 남는다.
그들은 결코 타인이 아니고 그들은 결코 적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는 그 수많은 타인과 적들을 얼마나 나는 미워했던가? 장근후가 곡을 붙여 노래한 신동엽의 시 ‘아니요’(신동엽 시, 장근후 작곡 노래, ‘사랑하는 모차르트, 난 갈 곳이 없어요’, 서울음반LP)가 불현듯 생각나서 결미에 붙인다.
아니요 미워한 적 없어요
산마루 투명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 했을리야
아니요 괴로워한 적 없어요
능선 위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눈물 밖으로 쏟았을리야
아니요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맞으며
차마 옷입은 도시계집 사랑했을리야.<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