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강병두의 ′사각 프레임 속 세상′(글/피재현_시인, 노암공방)
사진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명료한 미학의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던 때, 올림푸스 팬으로 시작해서 FM2, 캐논 시리즈 몇몇 기종까지 필름카메라를 거쳤다. 근대예술에서 사진의 등장이 그러했듯이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사진만한 도구는 또 없었다. 너무나 정직한 반영이었기에 사진은 오히려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낯설게 반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천착했고 피사체는 역으로 현실답지 않게 표현되는 경지를 경쟁해야만 했던. 내 수준에서의 사진은 한때의 매력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나는 그것이 값비싼 장비를 따라가지 못한 내 경제력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항상 사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사물을 사각 프레임 속에 넣고 보는 버릇도 버리지 않았다.
사진작가 강병두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에 새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이곳저곳 떠돌더니만 드디어 둥지를 틀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선뜻 취재를 가겠노라고 했고 그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콘텐츠진흥원은 옛날 안동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안동교구에서 운영하던 건물이다. 오랜 세월동안 안동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고 나도 어려서부터 드나들던 건물이었지만 새 단장을 해서 콘텐츠진흥원으로 탈바꿈한 뒤에는 처음 들어서보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려서 이리저리 ‘안동문화사진연구소’라는 방 이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콘텐츠개발사업단’이라는 방 이름 앞에서 혹시나? 하면서 아니면 강작가의 방이 어디냐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강작가가 거기에 있었다. 채 정리되지 않은 방, 책상이 여럿 있지만 한눈에도 썰렁해 보이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방. 본능적으로 낭패감을 느낀다. 작업실 기사를 쓰려면 작업실다운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그는 제주 전시에 보낼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근래 제주풍경을 그리고 있는 김규승 화백을 비롯 김기덕, 권오준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12인이 참여하는 ‘또다시 바람이 분다’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대구사람이 안동사람 된 사연
강병두, 그는 안동사람이 아니다. 1990년 군 생활을 접고 나와서 대구에서 삼성카메라 대리점을 비롯해 속셈학원, 체육관 등의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고 2000년 처가곳인 안동으로 왔다. 사업을 하면서도 예우회를 중심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러 다녔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였지 전업작가는 아니었다. 다행히 간호사를 하는 부인(황오숙)의 응원에 힘입어 안동에서 그는 전업 사진작가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은 오랫동안 제 곁에 있었죠. 직업군인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1985년 명지전문대에 다닐 때 ‘고리’라는 사진서클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전역하고 대구에서 삼성카메라 대리점과 QSS를 같이 할 때였는데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대구예술대 홍상탁 교수가 같이 활동하자고 그래서 ‘예우회’ 활동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진협회 활동과 공모전 전시회가 일상처럼 이어졌지요.
꿈을 찾는 사람들 –외국인 근로자를 통해 본 초상
안동에서 그가 사진작가로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6년 안동시민회관에서 열린 개인전이다. 그의 첫 개인전이기도 했던 이 전시회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흑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안동에 와 처음에는 이것저것 일을 했다. 2003년에는 예천의 한 공단에서 관리부서 일을 했는데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그가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초상이 고스란히 그의 카메라에 남았고 첫 전시회의 주제가 되었다.
화려한 풍경과 토속적인 추억에 익숙해 있던 지역 구경꾼에게 강병두의 사진은 새로운 감성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의 노동현실을 찍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처럼, 그는 낯선 이국에서 노동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초상을 통해 삶의 고단함과 노동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이 전시회는 ‘꿈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연작으로 2008년에는 남후농공단지 사람들의 모습이, 2011년에는 안동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이어졌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찍어봤지만 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궁금해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이유로 삶이 이어지는 걸까? 그 사람의 삶은 다른 삶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슬픔이나 분노 기쁨과 희망... 그런 걸 찍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무실 한 켠에는 이청초 화백이 쓰고 새긴 안동문화사진연구소 현판이 우두커니 서 있다.
“하하, 제 사무실이 아니라 영남신문에서 운영하는 콘텐츠개발사업단 사무실인데 당분간 신세를 좀 지기로 했습니다. 맘 같으면 저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지만 쉽지가 않네요.”
안동에서 사진 작업을 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것이 바로 그가 소장으로 있는 ‘안동문화사진연구소’다. ‘안동 사진문화’가 아니라 ‘안동 문화사진’이라는 연구소 이름이 보기에 따라서는 물음이 생긴다.
“안동문화 전체를 바라보는 사진적인 시각? 그런거 같아요. 안동에 살면서 문화에 대해서 많은걸 배웠어요. 문화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총체적인 모습일텐데 안동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이 생겼고 저는 그 물음을 사진을 통해서 풀어가는 것이지요. 내가 하고 있는 사진을 통해서는 안동문화가 어떻게 해석되고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연구소를 통해서 해답을 찾아봐야죠. 15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작업도 하고 정기전도 열고 있는데 이 일은 제가 평생 해나가야 할 일로 알고 있습니다.”
시선전
2012년 해외봉사활동에서 만난 아이들을 찍은 사진으로 연 ‘시선전’ 그리고 ‘용상시장 어제와 오늘전’, 2013년 그가 기획한 ‘사랑과 봉사 이미지전’ 등을 통해서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 군상들의 삶이다. 슬픔을 담은 눈, 삶의 무게를 실은 노동, 분노와 걸망, 기쁨과 쾌락의 몸짓들, 그는 정지된 셔터의 순간을 통해 인간실존의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2년여 동안 그가 준비하고 있는 다문화가족 사진전도 같은 맥락에 있을 터이다.
용상시장, 어제와 오늘
사진가 강병두
경일대학교 대학원 사진영상학과 졸업. 개인전 〈꿈을 찾는 사람들ⅠⅡⅢ-외국인 근로자를 통해 본 초상〉 외 연작시리즈 3회, 〈안동, 사언절구〉 〈시선〉 〈용상시장 어제 그리고 오늘〉 등과 10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예술교육진흥원 사진교육위원, 현대사진영상학회 회원,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안동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사진 강사, (사)대구등산학교 사진 강사로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에 시집 와서 사는 사람들, 일하러 왔다가 이주민이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다문화라는 말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만큼 우리사회의 성원이 되어 있고 우리 문화와 합쳐져서 어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에게는 타자화 되어 있고 이방인처럼 있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과 우리사회의 갈등을 풀어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데 대해서 안타깝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는 기쁨도 있습니다.”
‘나의 작업실’ 취재를 나온 내 입장에서 오늘은 좀 당혹스럽다. 그러나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진작가’에게 작업실이 뭐 따로 있나 싶다. 문 열고 나가면 천지가 작업실이고 아무 곳에나 앉으면 사진을 들여다보고 만지니 그 또한 작업실이지 싶다.
“사진예술도 ‘이름값’이 중요해요. 그 이름값이라는 것이 누구의 작품이니까 얼마다 하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이름에는 그 작가의 노력과 연륜과 사진작업의 이력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거거든요. 저는 지금 그 이름값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실도 중요하지만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면서 다녀야죠.”
그는 지금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월급을 받던 신문사 일을 프리랜서로 전환했다. 갓 한 달이 지났다. 더욱 부지런히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하는 사진교육사 공부가 그것이다. 지금도 안동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사진 강사로 대구등산학교 사진강사로 여기저기 품을 팔러 다니지만 앞으로도 최소한 밥벌이를 준비하면서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1년 꼬박 사진교육사 공부를 했다. 새해는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다니고 더 많은 전시회를 해야 할 판이다. 각오가 단단하다.
“새해에는 좀 더 사람냄새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람 냄새가 꼭 얼굴에서만 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과 흔적을 통해서 사람냄새를 찾을 수도 있고, 자연 속에 있는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지요. 사진도 결국은 휴머니즘 아닐까요? 다양한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통해 저만의 휴머니즘을 구현하는 작업. 열심히 해야죠 하하하.”
그는 이야기 중에도 어제 바꾼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줌렌즈가 달린 스마트폰. 텔레비전 광고에서 본 적이 있는 기종이다. 언제나처럼 올해에도 숱한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는 그를 만날 것 같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