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글/임세권)사진작가 김종세가 중국 광시좡족자치구(中國廣西壯族自治區)의 롱지(龍脊) 계단식 논을 안동까지 가져와 보여준 사진전시회(전시회 명칭은 '中國龍背梯田/다락논 이야기'이나 여기의 龍背는 龍脊의 오기이다)는 안동에서는 거의 처음이라 할 만큼 오랜만에 보는 대규모 개인전이었을 뿐 아니라 나에게는 특별히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 의미있는 전시회였다.
내가 처음 롱지의 계단식 논을 찾은 것은 1993년 1월24일 음력 설 다음날이었다. 그때 나는 우연찮게 롱지를 찾게 되었다. 당시 나는 1992년 3월부터 중국에 머물러 거의 1년을 지내고 있던 끝이었고 귀국하기 전의 한달 가량을 윈난성과 광시좡족자치구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을 중국이 자랑하는 경승지 뀌린(桂林)에서 보내다가 우연히 롱셩(龍勝)이란 산골도시로 들어갔고 다시 거기서 롱지라는 기이한 산촌으로 찾아들게 되었었다. 이 산촌의 이야기가 후에 출판한 여행기에 사진 몇 장과 함께 소개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사협 안동지부에서 롱지의 계단식 논을 촬영하러 간 것이 1999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사협회원인 김종세는 그후 다섯 번이나 더 롱지를 찾았고 이번 전시회는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롱지는 용척(龍脊) 즉 용의 등뼈라는 뜻이다. 롱지의 계단식 논은 공용의 등뼈 같기도 하고 하늘로 오르는 계단 같기도 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신비스러움을
보여준다. 그 용의 등뼈를 김종세는 만 두 해 동안 여섯 번을 찾았다고 했다. 파노라마 카메라까지 둘러메고 갔으니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과 롱지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장의 벽면은 온통 계단식 논으로 꽉 차 있었다.
이제 전시회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사진 찍는 솜씨로 말하자면 내가 어찌 이렇게 큰 전시회를 이러쿵 저러쿵 말 할 수 있을까마는 바둑에서도 훈수는 본 실력보다 삼급은 높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사실 옛 추억에서 벗어나면서 전시회를 약간의 실망을 가지고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내가 8년여 전에 현지에서 느꼈던 감상이 크게 작용했을 터이고 그런 만큼 기대하는 것도 컸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어쨌든 김종세의 계단식 논은 그 장대함과 경이로움이 그 모양새가 갖는 아름다움에만 국한되어 버린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장대함을 한껏 나타내려고 사용한 파노라마 사진은 거듭되는 같은 장면으로 인해 오히려 보는 이들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구불구불한 논자락들도 수십 장의 사진이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 식상함을 더해 주었다.
전시회의 구성도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초보자들의 경우 사진의 실패는 대체로 자신의 눈에 보인 것 모두를 한 장의 사진에 담으려고 하는데서 비롯된다. 파인더 속에 들어온 모든 것이 도무지 아까워서 버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주제도 산만해지고 그래서 도무지 무엇을 찍었는지 아리송한 사진이 되어버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런 것이 눈에 띄었다. 사실 작가로서야 만 두 해를 철이 바뀔 때마다 여섯 번이나 찾아가서 담아온 사진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있었겠는가? 그래서 전시작품을 골라내는 데는 자신의 살을 자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진도 비슷한 것을 자꾸 보여주면 식상함을 느끼는
법이다.
또 하나 전시회에서 느낀 것은 사람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논의 계단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생의 터전이고 그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스며있는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그 논자락들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며 그 땅에서 나고 자라면서 일구어낸 좡족들의 생명줄인 것이다. 우리가 롱지의 계단식 사다리 논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과 자연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사진은 찍는 이의 눈에 따라 같은 장소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종세는 이곳 롱지의 계단식 논에서 논 자체의 장대함에 빠져서 그만 논이 가진 외형적인 아름다움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닌가? 전시회의 제목처럼 그 논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러한 생각은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얼마 안되는 사진조차 논의 풍광을 담은 파노라마에 비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작은 크기로 프린트하여 한쪽 벽면의 일부를 이용 다닥다닥 붙여 놓은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롱지의 좡족들이 자랑으로 삼는 세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가 된 계단식논이고 둘은 펑우치아오 즉 풍우교(風雨橋)라는 다리이고 셋은 희게 빛나는 넓적한 판석을 깔아 만든 산길이다. 이 셋은 서로 떼어서 말할 수 없는 좡족들의 생활을 하나로 엮어주는 존재들이다. 산밑에서 산위로 마을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모든 길은 흰 판석을 깔아 만들었다.
이는 계단식 논 만큼이나 신기할 정도이며 어느 한 곳도 맨 흙이 드러난 길은 없다. 이 돌은 깜깜한 밤에도 밝게 빛나기 때문에 급경사진 논둑길이지만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발을 헛디디지 않는다. 풍우교는 다리 위에 지붕을 씌운 건물을 세우고 교각 위에는 목탑형의 누각을 만들었다. 이 다리는 무더운 여름 햇볕을 피할 수 있고 비가 올땐 또 비를 피하게 해준다. 다리로 이어
지는 두 마을의 공동 휴게실이며 정보의 집합과 배분이 이를 통해 일어난다. 그래서 전시회의
주제인 티티엔(梯田) 즉 계단식 논은 풍우교와 돌길이 함께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돌길에 대해서는 약간 다루어졌지만 풍우교는 전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더 했다.
우리가 어느 지역을 필름에 담을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인문환경에 대한
이해이다.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의 삶과 생각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리고 그 땅에 대해 애정을 가질 때 비로소 그 땅과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나온 작품 만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 김종세가 롱지의 사람들과 그 땅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고 애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작가는 충분히 그 곳의 사람들을 이해할 만한 시간을 가졌고 그 마을과 땅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전시회장을 메운 그 많은 사진들과 그의 진지한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다만 위에서 내가 지적한 몇 가지 문제는 김종세 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 특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작업을 할 때 흔히 겪을 수 있는 것들이며 사진 찍는 이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다. 그러나 이러한 훈수꾼의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종세는 이번 전시회로 대단한 사진가임을 보여주었다.
롱지는 중국의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다. 좡족이라는 소수민족들이 산자락을 잘라 논을 만들어 살아가는 중국 내륙의 깊은 산골이다. 이러한 산골에 2년이라는 시간을 집착한 김종세의 끈기는 가히 안동 숙맥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멀뚱이 뒷짐진 훈수꾼의 잔소리가 이 전시회의 큰 성과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작가의 다음 전시가 기대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국내의 외딴 지역과 국외의 미개척지로 사진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 여름에도 여러 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갈 것이다. 그곳에 가면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준비를 가기 전에 충분히 해두어야 할 것이며 스쳐 지나간 풍경 하나에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을 한줌이라도 묻혀 왔으면 좋겠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