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扁鵲과 명의名醫(글/박인수_본지 운영위원, 경희한의원 원장)오늘날에는 명의가 너무 많다. 대한민국 명의 인물 열전이라는 책도 나오고 인터넷에서 ‘한국의 명의 100인’이라고 검색해보면 내로라하는 굴지의 병원들과 대학병원 교수님들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명의들이 있으니 환자들로서는 참 좋아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명의에게 진료 받으려면 예약하고서 몇 달은 다반사고 심지어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에게 진료 받으면 자신의 병이 다 나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 명의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명의로 된 것은 각 분야에서 진료 실적이 뛰어나서이고 메머드급 병원을 대표하기 위한 인물들이라 선정된 이유가 더 크다. 때문에 실제로 그들을 명의로 선정한 방송사나 언론사들조차도 그들이 진짜 명의라고는 믿지 않는 듯하다. 그냥 이름이 난 명의니 명의라고 하는 건데 사실 명의라는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당대의 명의로 알려졌고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를 명의라고 부름에 있어 거리낌이 없는 편작이라는 분의 기준에서 보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명의들은 다들 의술이 미천한 하의下醫에 해당하니까.
돈과 명예를 탐하지 않은 명의, 편작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최고의 명의들을 한 순간에 하의로 곤두박질치게 만든 편작扁鵲은 누구인가? 편작은 기원전 6세기 전국시대 초기의 인물로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으로 발해군渤海郡 사람이다. 젊었을 때 여관의 관리인으로 일했는데 객사에 장상군長桑君이란 노인이 찾아와서 가끔 머물다 가곤 했는데 편작은 그를 특이한 인물로 여겨 정중히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상군이 편작을 불러 “나에게 비밀로 전해오는 의술의 비방秘方이 있는데 이제 늙어 필요 없으니 그대에게 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편작은 그 비밀을 잘 지키겠노라 다짐한다. 이에 장상군은 품에서 귀한 환丸약을 꺼내 편작에게 건네주며 “이 약을 땅에 떨어지지 않은 물(이슬)에 타서 마신 뒤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라며 자신의 의서를 모두 편작에게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편작은 장상군의 말대로 환약을 먹은 지 30일이 지나자 투시력이 생겨 담장 너머 저편에 숨어 있는 사람까지도 볼 수 있었다. 투시력으로 환자를 보니 사람의 오장 속 질병의 뿌리까지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는데 겉으로는 맥을 짚는 척했지만 누구도 모르는 그만의 비방을 간직하고 있었다.(하략)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이나 한漢 무제武帝때 사마천이 남긴 사기史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추증해보면 진월인秦越人은 뛰어난 의술로 당대의 명의로 인정받아 고대 황제시대의 신화적 인물인 편작이란 명호를 부여받았던 것 같다. 그의 스승인 장상군은 10여년 넘게 객사를 드나들면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그의 됨됨이를 눈 여겨 보다가 후일 그가 명의가 되더라도 재물을 탐하거나 환자를 속이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제자로 삼았고 환자의 병을 근본적으로 꿰뚫어보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나 보다. 그리고 진월인은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의서로 탐독하여 치료의 바탕으로 삼았던 것 같은데 분명한 사실은 그가 후일 명의가 되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면서도 결코 돈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 수 있는 사람을 살게 한다
또한 편작은 명의이면서도 겸손했다고 한다. 그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수많은 일화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괵나라 태자를 치료한 일이다. 그가 괵나라를 지날 때 그 나라의 태자가 급질로 죽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편작은 사람들에게서 죽은 태자가 걸린 병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자기가 아는 병인 듯하여 혹시라도 죽은 태자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왕궁으로 들어갔다. 편작은 시체처럼 죽어있는 태자의 몸을 살피고 제자들에게 침을 준비하게 했다. 그런 다음 혈 자리를 찾아 몇 군데에 침을 놓자 죽은 태자의 혈색이 돌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놀라 “편작이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며 소리쳤는데 편작은 담담하게 “의원이 죽은 사람은 살려낼 수 없지요. 저는 그저 다만 가사假死상태에 빠져 있던 왕자의 혈맥을 뚫어 통하게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3일을 더 치료하자 태자는 거짓말 같이 소생하였다. 태자의 병은 다름 아닌 ‘시궐尸厥’이었다. 음기가 파괴되고 양기가 끊겨서 혈색이 없어지고 맥이 어지러워져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아 몸이 시체처럼 굳어지는 병이었는데 편작이 그걸 알고서 치료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소문났지만 정작 편작은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사람을 살게 한 것일 뿐이다”라며 겸손해했다.
그렇다면 편작이 말하는 명의는 어떤 사람일까? 편작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그 집안의 형제들도 다들 명의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번은 위魏나라의 문文왕이 편작을 불러 형제 중에 누가 더 의술이 뛰어난지 물었다. 그러자 편작은 이렇게 답했다.
“큰 형이 제일 훌륭한 의사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제가 가장 못합니다. 첫째 형은 환자가 병의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그 안색만 보고서도 그 사람이 장차 병에 걸릴 것을 알아서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해버립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받으므로 자신에게 병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큰 형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형은 환자들의 병세가 아주 미미한 상태에서 그 병을 알아내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이런 때에는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가벼운 것이라 여겨 둘째 형이 잘 치료해서 낫게 해주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환자들의 병이 커지고 고통스런 신음을 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차립니다. 그때는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반드시 맥을 짚어야하고 탕약을 먹이고 때로는 살을 도려내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저의 행동을 보고서 제가 환자들의 중병을 고쳐주었다고 믿습니다. 제가 두 형님들에 비해 의술이 가장 미천하면서도 명의로 소문나게 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편작의 이 말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치료의 원칙인 치미병治未病의 중요성에 대해 돌려 말한 것이다. 한의학의 최고경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에는 ‘불치이병 치미병不治已病 治未病’이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이미 병이 된 것을 치료하지 말고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하라’는 뜻이다. 의사는 평상시 사람들의 잘못된 식생활습관을 고쳐주고 절제된 생활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운동을 통해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서 사람들이 무병장수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데 이를 행하는 의사를 의술이 가장 뛰어난 상의上醫라 한다. 그리고 병이 생긴 초기에 치료해주어서 더 심해지지 않도록 하는 의사를 그 다음 등급의 중의中醫라하며 병의 생기고 난 뒤에 커져서 그때에 치료하는 의사를 가장 못한 하의下醫라고 하였다. 그런데 편작은 왕의 질문에 답하기를 자신의 실력을 하의의 범주에 놓으면서 치미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규모가 곧 실력은 아니다
편작은 하의라 하며 자신을 낮췄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 돋보이게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만을 진실로 여기기에 환자가 죽을 정도의 큰 병에 걸렸는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다가 용한 의원이 있어 그 환자를 치료해서 살려낸다면 그런 의사를 명의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주변에서 감기나 위장병 같은 일반인들이 사소하게 여기는 초기질환을 고쳐주는 동네의사들에 대해서는 그 평가는 야박할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환자로 내원했을 때 자신의 병이 무언지 잘 알지도 못하여 오진하거나 설령 병명은 안다 해도 제대로 못 고치기 때문에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동네의원들은 실력이 없고 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실력이 더 낫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동네병원에서는 잘 모르는 병도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면 알 수 있다는 믿음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편작의 말대로라면 정말 훌륭한 의사는 환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미리 알아서 예방해주며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맡은 바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이 아닐까? 환자의 병세를 미리 미리 파악하여 예후를 알려주면서 불안해하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어렵고 힘든 치료마저도 쉬운 치료인 것처럼 행하고 시간이 없다며 귀찮아하는 환자를 앉혀놓고서 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들인 것인데 이런 의사들이 더 큰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이유는 좀 더 정밀한 진찰을 위해서 그리고 보다 더 좋은 시설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해주고하는 배려에서이지 결코 실력이 뒤떨어진다거나 병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좋은 의사들이 많다. 하지만 반면에 질이 나쁜 의사들도 간혹 있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여 환자의 병을 실제보다 부풀려 중병인 것처럼 과장하여 불안하게 만들고, 검증되지 않은 치료기술을 자기만의 특별한 비법인 양 현혹하고 비싼 치료비용을 받으며, 나을 때가 되어 나은 것을 자신이 치료를 잘 해줘서 나은 것이라며 자기선전을 일삼는 가짜 명의들이 많다.
조선시대 임금 세조가 말한 여덟 가지 타입의 의사 팔의八醫중에 최악이라 할 수 있는 광의狂醫와 사의詐醫 그리고 살의殺醫들이니 이런 의사들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간의 믿음
진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와 의사간의 믿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신뢰가 깨어진지 오래고 요즘은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이 보편화되어있다. 물론 자기 몸이 소중하니까 일단 병에 걸리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 한다는 명의에게 진료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같다. 안동 같은 시골에서도 형편이 조금 된다 싶은 분들은 죄다 서울삼성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 그리고 서울대나 연세대병원에 한 두 번씩은 가보고 거기서 대한민국 명의로 소문난 박사님들에게 진찰을 받는다. 아예 그런 명의들을 주치의로 여기고 한 달에 한 두 번씩 정기적으로 한양 땅을 밟으시기도 한다. 그런 분들에게는 동네 의원들이 하는 말은 씨가 안 먹힌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불합리한 현실에도 단지 대한민국 굴지의 병원에 근무하는 명의라는 이유만으로 최선의 진료를 받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명의일지라도 그 짧은 시간에 환자의 병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병원의 검사결과는 병의 상태에 대해서 잘 알아보기 위한 검사의 수치결과일 뿐 그것이 환자의 병을 정확히 모두 대변해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에게 치료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병을 키워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 그런 명의들에 비해 유명세는 없지만 늘 가까이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주면서 가끔은 정밀하게 찬찬히 살펴봐주고 30분씩 진료해주는 의사가 더 확실한 건강지킴이가 될 수 있는데 환자들은 그걸 모른다.
의료의 지나친 상업화가 외려 불신을 초래한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는 불신하게 된 데는 신문 방송이나 잡지 그리고 인터넷에 각종 의학 정보가 난무하는 탓도 있다. 의료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다보니 자기광고(PR)를 해야 병원이 유지가 되고 돈벌이가 되는 세태다보니 이름깨나 알려졌다는 의사들이 너도 나도 각종 방송매체에 등장하여 이 병은 어떻고 저 병은 어떻고 우리병원의 치료기술은 이러이러하고 자기는 이런 병을 이렇게 잘 고친다며 선전을 해댄다. 이렇듯 건강상담을 빙자한 광고성 프로그램들이 난무하다보니 환자들은 자기 병에 대해서 자기가 듣고 싶고 알고 싶은 정보만 편취하게 된다.
환자나 환자 가족이 병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나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 지식이 불완전하고 편협 된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서 자신의 병에 대해서는 자신이 의사보다 더 정확히 안다며 진료하는 의사를 믿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정확히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해주는 의사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말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닥터 쇼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이다. 의학은 무척이나 어려운 분야고 질병의 종류는 다양할 뿐 아니라 그 나타나는 양상이 워낙 비슷한 것이 많고 치료법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치료방법이 환자에게 더 나은지는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조차도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 의료인들이 타 분야와는 달리 더 오랜 수련과정을 거치고 그리고 나서도 가벼운 병조차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확인해보고 치료하면서 진단과 치료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전문영역인 의료분야를 일반인들로서는 아무리 열심히 파고든다 해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대체의학자들이 올린 민간요법이나 건강기능식품회사 같은 곳에서 제공하는 근거 없는 의학 정보 등을 옳은 것으로 믿고서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다. 환자는 의사를 믿어야 하고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환자가 의사보다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어찌될까?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고 자기 판단을 앞세우게 되면 어떤 비극이 생기는지 편작의 일화를 하나 더 들어보자.
편작은 환자의 병이 어떻게 변할지 추정하기위해 진맥을 중요시 했는데 특히 관형찰색觀形察色을 통해 예후를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런 그가 제齊나라에 들렀을 때 제나라의 왕 환후桓侯는 그를 빈객으로 맞아들였다. 그때 편작이 환후를 보며 대뜸 “왕께서는 피부에 병이 있는데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환후는 자신은 병이 없는데 편작이 거짓으로 병이 있다고 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쯤으로 여겼다.
닷새 뒤에 편작이 환후를 찾아와 “왕께서는 혈맥에 병이 있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환후는 기분이 상하여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로부터 닷새 뒤에 다시 편작이 찾아와서는 좀 더 심각한 어조로 “이제 장위腸胃에 병이 들어갔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더 위중해진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환후는 그 말을 믿지 않고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편작을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닷새 뒤 편작이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물끄러미 환후를 쳐다보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든 환후는 신하를 보내 그 까닭을 묻자 편작이 답하기를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살갗을 지지는 것으로 고칠 수 있고, 혈맥에 있을 때는 침針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장위腸胃에 있을 때는 약藥으로 고칠 수 있지만 골수에까지 이르면 사명(司命: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는 고대 전설 속의 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환후의 병이 골수까지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하고 답했다.
신하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환후는 미심쩍긴 하였으나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닷새 후 왕은 통증을 느껴 급히 사람을 보내 편작을 찾았다. 하지만 편작은 황급히 제나라를 도망쳐 진나라에 피신 가 있었다. 환후는 그때서야 자신의 병을 치료해줄 명의를 곁에 두고서도 불신하여 치료받지 않다가 병세가 깊어진 후에야 알아차린 것에 절망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 환후는 죽고 말았다.
심의心醫의 자세, 환자의 신뢰를 얻는다
어떤 일이든 조짐이라는 게 있듯이 병에 있어서도 징후(徵候 signs)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실체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표식 같은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하여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병은 몸 안에 있는 것이라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일반인조차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드러나게 되었을 때는 손쓸 겨를도 없이 목숨을 앗아가 버릴 수도 있기에 이런 징후를 미리 알아서 잘 판단하여 대처하는 사람이 의사들인 것이다. 제나라 환후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지 않고 편작의 말을 미리 알아들었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편작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고 그 결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황망하게 죽어야 했다.
어떠한 명의도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불치병인 육불치六不治중의 첫 번째가 교자불론어리驕恣不論於理로 환자가 교만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제 환후는 결국 이것 때문에 죽었다. 그러니 환자는 모름지기 의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의사는 환자를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잘 치료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들부터 심의心醫가 되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심의는 환자의 마음까지 안정시켜서 편안하게 해주는 의사로 늘 인격을 수양하고 환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씨가 있으면 이를 수 있는 경지다. 그리하면 환자는 의사를 신뢰할 수 있고 의사는 또 환자를 더 잘 치료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