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내용

북카페가 있는 영양 감천마을을 찾아서(글/사진/한경희_본지 편집위원, 문학평론가)

외씨버선길 스토리를 따라 오일도 시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외씨버선길은 청송 주왕산에서 영월 관풍헌까지 200km에 달하는 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영양, 청송, 봉화, 영월의 지역이 함께 기획해서 만든 길이다. 이미 예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과 새로 닦인 길을 잇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 길을 연결해 두었다. 각 지역마다 풍광 좋은 길을 묶어 내거나 끊어진 길을 다시 이어가면서 스토리가 풍성한 길을 만들어낸 것인데, 그 열세 구간 중에서 다섯 번째 길로 불리는 오일도 시인의 길을 걸어봤다. 길을 걸었던 목적은 오일도 길에서 스토리를 찾아내는 데 있었다. 길이 주는 그 느낌에 충실할 때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모든 길 이야기가 그렇듯 일단 걸어야 한다. 길 위에 서야 한다. 걷지 않으면 어떤 스토리도 느끼지 못할테니. 다만, 걷는 자에게 그 길의 역사가 들어온다는 말밖에.

차마고도의 옛길처럼 새와 쥐가 만들어낸 길도, 마방이 걸어가며 낸 길도, 대서양을 횡단하는 혹등고래의 지구 반 바퀴가 되는 길도. 모두가 걸어가야 만들어낼 수 있다. 길이 써낸 숭고한 삶은 모두 인간의 몫이다. 생명이란 길 위에 있어야 하는 운명을 이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길은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혹은 만든 퇴적물이다. 그 오래된 시간 위에 발을 올려놓는 일은 역사를 잇는 일이 된다. 그 역사의 바퀴살 어딘가에 내 삶도 맞물려 돌고 있음을 길 위에서 느낄 수 있다. 오일도시인의 길 역시 다르지 않다. 그 시인도 걸었을 오래된 길, 누구라고 호명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쳐 지나갔을 길. 영양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오일도(1902~1946;오희병)시인의 이름으로 길을 낸 구간은 선바위에서 시작해서 영양전통시장까지 이어진다. 아스팔트길이 하나도 없는 길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사정이 그러지 못하니 좀 아쉽기는 하다.

영양은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고 인구노령화도 심각한 대표적인 농촌지역이다. 한국이 늙고 있으니 전체적인 경향이기도 한데, 그 중 순위를 매겨보면 그렇다. 탈농촌 현상이 심각해지는 건, 모든 사람이 길을 걷지 않아서 그럴까. 웃을 일이다. 거주하는 사람은 자꾸 줄어들고 있을지 모르지만 반변천이 감아 흘러내려오는 물길과 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산은 병풍처럼 우아하게 펼쳐진다. 조화의 덕은 아름다움에 있으니. 열두 폭의 병풍보다 폭이 넓은 병풍. 그 산과 물의 조화로움이 영양가는 길을 함께 한다. 길을 돌아보다 놀라운 걸 발견했는데 감천마을의 북카페이다. 도시골목에나 어울릴 아담한 단층의 카페공간은 시골마을 풍경에서 단연 두드러지게 보였다. 처음엔 귀농 혹은 귀향한 사람의 로망이 숨은 집이려니 했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땅과 하늘과 물과 더불어 마음껏 놀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 낭만이 일어난 중년의 공간이려니 했다.

아파트 살이에 지친 중년이나 장년들 가운데 도시를 벗어나 땅을 밟고 텃밭을 가꾸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처럼 똑같은 공간에 같은 방향으로 잠을 자고 같은 거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다르게 살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특별한 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런그런 사람들의 예쁜 집이라고 여겼다. 담도 없어서 더욱 들과 산으로 마음을 낸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개인집이 아닌 듯 보인다. 사람 손으로 쓰다듬은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건물이다. 개인들 가정집에는 다듬은 손길이 흐른다. 그 마음이 이 건물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형식적이고 건조한 느낌이 들었으며 사람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듯 했다. 간판이 없어서 가게로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오일도 생가를 진입하는 도로에서부터 문학공원도 꾸며져 있고 영양의 현대문학가들을 기념하는 기념돌도 세워뒀다. 오일도 시인의 고향마을을 문학마을로 단장하기 전에도 이미 마을 도로 건너에는 ‘오일도시비’가 아주 우아하게 세워져 있었다.

처음 이 북카페를 가게 된 건, 오일도문학공원을 빙빙 돌다 예쁜 집이 보여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오일도 시비가 있는 입구로 들어왔더라면 금방 그 존재를 알아챘을 텐데, 반대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전혀 눈치를 못 챘다. 건물 안에 누구라도 있는가 문 밖에서 살펴보니 창가로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계신다. 카페라고 착각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께 이것저것 여쭤보는데 마을의? 군단위의? 북카페라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이 건물에 와서 오후햇볕을 쬐며 신문을 보고 계셨는데 뒤를 따라 동네 아이가 따라 들어왔다. 현대화된 마을 사랑방으로도 기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카페 안에는 특별한 장식은 없는 대신 각도를 달리한 서가가 공간 중심에 놓여 있다.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는 나지막하니 편안해 보였다. 책을 보기 편한 테이블과 의자도 잘 갖춰져 있다. 또 멋진 책꽂이에 얹힌 책들.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전문적인 분야에서 수필,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도로 쪽으로 유리벽면을 하고 있어서 차가 달려가고 사람이 다니는 풍경이 유리가득 들어온다. 차가 없이 빈 도로가 길게 이어진 모습도 또 다른 그림이 되기도 하는. 이 건물 유리벽은 길을 향해 나 있어서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림처럼 비치고 있었다.

북카페라는 건물이 마을에 들어서고 달라진 점이 있을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우리들. 오래된 여론조사가 기억나는데 우리는 책을 진짜로 잘 안 읽고 산다. 학생들, 그것도 중학생이 되기 전 학생들의 동화가 독서시장에서 아주 비중있고 그 외 대중 상대의 독서는 빈곤한 상태이다. 만약 책이 먹는 음식처럼 몸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면!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우린 정신적인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시하고 산다. 독서가 그냥 밥과 다를 게 없다면 우린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려 있거나 병원에 장기 입원해야 할 상태일 거다. 그런데 안 읽어도 사는 일에 불편하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자기 마음과 정신을 돌보고 배려하고 다독이는 일을 잘 할 줄 모르니 괜찮을 수밖에. 배운 적도 없고 시간은 더욱 없다. 시험을 위해 혹은 어떤 목적을 두고 책 보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정신과 마음을 풍부하게 하느라 책을 꺼내는 일은 드물다. 책 읽는 일도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일이니 우리가 익숙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런 우리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북카페를 지었을까. 그것도 학생도, 청년도 귀한 시골마을에. 눈도 어둑어둑하고 허리도 굽은 할매, 할배들이 많이 계시는 시골에다가. 작은 마을에 북카페는 왜 세웠을까. 오일도 시인의 고향마을이니까. 그 이름에 버금가는 건물이 필요했던 것일까. 사실, 카페의 기능은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장소이다. 거기에 나오는 음료는 대화를 풍부하게 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에서든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만나면 갈 곳이 없다. 카페가 아니고는 앉을 곳이 마땅치 않다. 마을마다 공원이 있는 도시라면 숲이 있는 공원 의자가 좋겠지만 안동만 하더라도 도시 안에 그 기능을 하는 곳은 없다. 물론 웅부공원이 그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그 공간은 너무 좁다. 웅부공원같은 공원이 도시 안에 여러 개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겨울 초입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더 없다. 마을이 조용하다. 문을 닫아두니 들판의 풀과 나무처럼 동네도 겨울에 들어선 것 같다. 동네를 돌아봐도 사람구경하기 힘들다. 물론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면 동네 어른들을 만날 수 있겠지만 마을골목을 그냥 걸어서는 사람만나기는 힘들다. 마을 건너 측백나무 숲 앞에서 캠핑장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릴 때 감천마을에서 태어나 살았지만 이사를 도시로 가면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귀향했다. 고향이 좋아서 돌아왔는지, 도시 삶이 힘들어서 귀향했는지는 묻지 않았으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청년이었다. 오일도 시인 집안과는 방계였으나 그 마을 입향조 후손이라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동네 어른들은 그 북카페에는 거의 안 가신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채비를 하고 있어 바쁘다고 하신다. 여가가 나도 그 공간에 앉아 책 볼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 공간에는 건물을 지키는 분, 한 분 빼고 아무도 안 보인다. 이 공간이 안동 시내에만 있어도 젊은 청춘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드나들텐데. 아쉬운 일이다. 사람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산천은 텅 비어 간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드물거나 거의 없는 마을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일은 별 의미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만 좀 있어도 이 공간은 책방의 기능을 멋지게 할텐데, 아쉽다. 열린 공간에서 책 읽고 그러다 자연스레 글 쓰는 일이 일상이 된다면. 사실 지식교육의 가장 핵심은 읽고 쓰는 일인데 책을 읽어가다 어쩌다 쉽게 쓰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렇게 북카페라는 공간이 배우는 장소가 될 수 있지만. 그럴 사람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럼, 이런 시골에 멋진 북카페는 어울리는 일일까.
우리에게 공간이 주는 영향력은 엄청날 거다. 평생을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어르신들이 이 북 카페를 보는 시선을 어떨까. 그냥 첫 눈에는 낯설 거다. 그리고 딱히 특별히 쓰일 데 없는 목적이 궁금한 건물일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소용없을 별로 마을과 어울리지도 않을 건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시골 일상의 문화와는 먼 거리에 있는 건물임에 분명하다. 시골에 지은 마을회관은 내용상 경로당이다. 겨울이면 함께 마을회관에 모여 밥을 해 드시고 잠까지 청하기도 하는 곳이니. 윷놀이와 화투놀이, 집안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보태는 공간이다.

마을회관이면 충분할 어른들에게 북카페는 새로운 문화로 다가갈 수 있다. 우리의 온돌문화가 입식문화와 절충했듯이 우리 사랑방 역시 서양 사랑방과 소통하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 좀더 개인영역이 강조되는 도시 삶에서 사랑방은 없어지고 카페가 그 빈자리를 대신했다. 시골에서는 아직 사랑방문화가 그대로 살아있으나 카페문화가 그 중간역할을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카페공간을 활용할 매개나 소재가 시골이란 특수 공간에서 과연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은 이제 시작단계라는 사실이다. 북카페라는 건물을 통해 그 고민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도 현재 감천마을 북카페의 의의가 될 수 있다.

마을회관이면 충분한 어른들에게 책이라는 문화환경을 단순히 전시하는 일은 곤란하다. 마을문화의 제일 중요한 기능은 구경에서 멈추지 않고 참여와 체험하는 것이다. 책에서 마을 주민이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북카페가 제 기능을 하는 출발점이 된다. 마을회관과 북카페는 너무 다른 개성을 지닌 건물이다. 북카페가 마을도서관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자면 마을에서 생각있는 누군가 시간과 마음을 내놓아야 한다. 건물도 사람 손이 가야 훈기도 돌아가고 마음이 보태져야 원활하게 제 기능을 하는 법이다. 마을회관이 식, 주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라면 북카페는 마음과 정신을 돌아보고 살찌우는 공동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책 읽는 일이 편안한 휴식처럼 마음의 여유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면 북카페는 본연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북카페는 서재에다 사랑방 기능까지 포함한 공간이다. 책을 읽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혼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은 더불어 읽지 못한다. 물론 독서토론도 있다. 그것은 이미 혼자 책을 읽은 후의 일이다. 책읽기는 혼자서 감당해내는 일이지만 그 읽기를 더불어 어울려서도 할 수 있는 곳이 이런 열린 공간이다.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또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책 읽는 한 사람을 보면서 다시 또 다른 사람이 책을 읽어가게 되면 독서의 연쇄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창조는 흉내와 모방에서 시작한다. 남의 읽기를 흉내내는 읽기를 이곳 북카페에서 시도해보는 일도 좋지 않을까.

아직은 별로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으나 여전히 아무도 가지 않는 공간이 되면 곤란하다. 지금은 북카페를 관리하는 할아버지만 들락날락거리거나, 동네 꼬마가 궁금해서 가끔 들여다보는 공간일 뿐이지만. 언젠가는 바깥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감천마을 사람들의 동네 사랑방을 넘어 보다 풍부한 상식과 정보를 나누는 멋진 장이 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물론 그러자면 도시형 북카페 그대로보다는 시골형 북카페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철에 이 공간을 이용할 시간이 생긴다면. 그 시간부터 함께 나눌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누가? 감천마을 사람들일 것임은 분명한 답이 아닌가.

개성 넘치는 서가에 꽂힌 책을 살펴봤다. 도서분류 기준으로 000부터 900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다양한 책이 있다는 것은 모든 분야의 책을 고루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계획 없이 책을 들여놓았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이유는? 감천마을의 연령별 세대별로 배려를 했는가를 묻고 싶기 때문이다. 이 마을 주민들의 주업은 농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농사와 관련된 책이 가장 중심을 이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건강, 취미, 상식을 포함한 책들이 빠져서는 안 되지만. 농사짓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농사짓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특별한 농사이야기를 읽어보고 그 농사를 시도하는 일을 꿈꾸려면 다른 농부들의 삶을 알아야 할테고, 그 책을 읽으면 농사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책을 꽂아두고 홍보하는 일이다. 필요한 정보는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는 사실을 북카페에서 경험하는 일은 어떤가.

북카페가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거나 더불어 어울릴 수 있으려면 그곳엘 사람들이 자주 찾아가야 한다. 건물을 관리하느라 드는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사람이 건물에 눌리지 않고 사람이 건물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북카페가 활성화되는 비결이 무얼까. 건축하는 일은 겉으로 확 눈에 들어오는 사업이고 일을 추진하면 결과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그 건축물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얼마나 그 건물과 함께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과 익숙한 것의 조화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간의 틀 안에서 산다. 그래서 늘 시간과 조화를 이루려 애쓴다. 그 조화는 바로 익숙함일 터인데 낯선 것도 시간 속에서 익어가니 익숙해질밖에. 시간 속에서 북카페는 마을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익어갈 것이라 믿는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9호>